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오 Jan 26. 2023

먼지



  삼 년 만에 찾아온 집이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장면과 내 눈앞에 보이는 집은 가구배치나 올려진 물건조차 다를 게 없었다. 아니. 다른 게 있긴 하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거다. 늦은 저녁 학원을 마치고 현관문을 열면 엄마는 늘 저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곤 하셨다. 드라마를 보던, 예능을 보던, 영화를 보던, 엄마는 늘 리모컨을 손에 꽉 쥐고 실없는 웃음을 보이셨다. 그러다 내 한숨소리가 들리면 곧장 고개를 돌려 밥은 먹었냐 물어보는 엄마. 이제 우리 집에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옷가지들이 바닥에 잔뜩 널려있었다. 빨래를 했던 모양이다. 누런 티셔츠, 다 해진 청바지, 변색된 속옷. 삼 년 전에 보았던 옷과 똑같은 옷이었다. 삼 일을 방치된 탓인지 그 위로 먼지들이 쌓여 있었다. 엄마가 보던 티브이 위에도, 저녁 식사를 함께 한 식탁 위에도, 엄마의 주름을 가려주던 화장품이 놓인 화장대에도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약지와 중지로 티브이 위를 쓸었다. 지나간 내 손길을 따라 새하얀 티브이의 색이 드리워졌다. 이상하게 헛웃음이 나왔다. 만약 엄마가 이걸 본다면 까무러치며 청소를 하셨을 텐데……

  엄마는 결벽증이 있었다. 뭐, 남들이 보기엔 그냥 깔끔한 성격이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같이 사는 내 입장에선 늘 나를 피곤하게 만들 정도로 증상이 심했다. 그것이 사건의 발달이었다. 엄마의 결벽은 갱년기가 온 뒤로 집착에 가까워졌다. 가볍게 핀잔을 주는 것으로 넘어가던 사소한 일들이 버럭 소리를 지르게 된 것이었다. 갱년기가 왔음을 알던 나는 그녀를 이해해줘야 했지만 말만큼 그게 쉽지는 않았다. 늘 일방적으로 참기만 했던 나도 쌓아둔 감정이 폭발했고 그녀에게 언성을 높이며 대들었다.

  -엄마의 그 좆같은 결벽증이 좀 없어질 때까지 나 찾지 마. 나도 참는 데까지 한계가 있어.

  그 말을 뱉고 집을 뛰쳐나왔을 땐, 심장 뛰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릴 정도로 가슴이 뜨거웠다. 아무리 심호흡을 해보아도 몸이 진정되기까지는 몇 달이 걸렸던 것 같았다. 나는 곧장 서울에서 자취를 하는 친구의 집으로 가 며칠 묵었다. 마침 그녀가 직장에서 가까운 곳 중 룸메이트를 구해 더 넓은 집을 이사를 갈 예정이란 소식을 들었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집으로부터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게 되었다. 그때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건 아마 이 쿵쾅거리는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았기에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너무 말을 심하게 했었나. 지금이라도 전화를 걸어 엄마한테 사과를 해야겠지? 이 생각이 들었을 땐 학기가 시작한 중이었다. 졸업을 앞두고 있었기에 실습이나 자기소개서 작성에 쉽게 내 시간을 낼 틈이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나는 늘 생각만 했다. 생각만…… 바쁘다는 변명은 그냥 통화 버튼만 눌러도 되는 가벼운 일을 삼 년이나 미루게 만들었다.


  엄마에게 큰 상처가 되었을 말이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라는 걸 떠올리면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분명 망자가 생전에 입던 옷은 모두 태워야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모두 태우자니 엄마의 흔적을 모두 없애버리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여행을 갔을 때 엄마가 입었던 옷, 장을 보러 갈 때마다 입었던 옷, 편하게 집에서 입던 옷 등등 이 모든 게 엄마를 떠올리게 해 주었다.

  생각을 해보면 엄마가 결벽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방 청소 한 번을 하지 않았었다. 이유는 그냥 늘 엄마가 해주니까. 그 안일한 생각에 어질러진 방을 보고도 늘 방치를 했었다. 매일 지겹게 들었던 핀잔이 왜 그랬는지 이제야 알겠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그곳엔 여전히 엄마가 쓰던 걸레와 청소 도구들이 있었다. 걸레를 빨고 나와 곳곳에 보이는 먼지들을 천천히 닦았다. 먼지가 닦이면 닦을수록 마지막으로 보았던 장면과 흡사해졌다. 그럼 엄마를 떠올리는 농도는 점점 짙어졌다.

  매일 엄마가 유지하던 모습이 되었다. 기왕 청소를 한 겸 그냥 다른 방도 청소를 할까 했다. 안방, 부엌, 서재. 모두 빼곡히 쌓인 먼지들을 닦아냈다. 마지막으로 내가 쓰던 방으로 향했다. 삼 년을 공석으로 둔 탓인지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여기도 해야겠지. 걸레를 다시 한번 빨고 내 방 문을 열었다. 그런데 내 방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분명 청소를 했던 다른 방들의 첫 모습과는 달리 유별나게 깨끗했다. 잘 개어진 침대, 말끔히 정리된 책상, 먼지 한 톨 보이지 않는 바닥. 어쩌면 내가 마지막으로 본 장면보다 더 깨끗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나를 기다리며 방을 청소했을 엄마의 모습이 도무지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바닥에 눈물자국이 남았다. 나는 후회에 잠겼음에도 자국이 남을 때마다 걸레로 그 흔적을 훔쳤다. 도무지 이 공간을…… 더럽힐 수 없을 것 같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가 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