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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Jan 31. 2023

백일몽 속에서



  거뭇해진 왼손. 그 약지에 아직까지 적나라하게 남은 자국. 매일 이 자국을 지우려 손가락을 비볐다. 때가 벗겨지고 피부가 붉게 달아올라도 매일 손가락을 비비는 걸 멈추지 않았다. 영원을 약속했고, 나는 미련하게도 홀로 이 약속을 지키고 있다. 왜 사람마다 주어진 명이 다를까. 가끔은 조물주란 존재가 못 미더울 때가 있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 욕설을 퍼붓기도 했고 매일 읊었던 주님의 기도와 식사 기도를 멈추기도 했다. 그럼에도 새하얀 여백은 채워지지 않았다. 적어도…… 내 평생을 그가 책임지지 못하더라도 나와 그가 맺은 열매는 내 곁에 머무를 줄 알았다. 차가운 바람이 얇은 콘크리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럴 때면 나는 옷장에서 이불을 한 장 더 꺼내 덮었다. 귀를 찢을 듯한 바람 소리를 묻을 수 있는 건 역시 이 조그만 티브이뿐이었다. 아마 오늘도 나는 이 티브이를 자장가 삼아 눈을 감을 것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이대로 다시 눈을 뜨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바닥에 발을 디딤과 동시에 무릎의 통증이 느껴졌다. 절로 곡소리가 나왔지만 벽을 짚음으로 고통을 덜었다. 부엌으로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멀게만 느껴졌다. 간신히 부엌에 도착했다. 굳게 닫힌 냄비 뚜껑을 열어보았지만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쉰 냄새에 곧장 뚜껑을 다시 닫았다. 내가 이 된장찌개를 언제 끓였더라…… 분명 두부 한 모, 된장 한 스푼, 다진 마늘 그리고 썰어둔 양파를 넣어 국을 끓인 기억은 나는데 이게 언제 일이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결국 남은 찌개를 모두 싱크대 바닥에 부었다. 어찌나 많이 남았던지 상한 된장의 냄새가 집안 전체에 풍겼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지만 든 거라곤 김치와 언제 샀는지 기억나지 않는 달걀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결국 김치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렸다. 밥솥 안에는 딱 점심을 때울 만한 만큼의 밥이 남아 있었다. 나는 밥그릇에 밥을 옮겨 담아 물을 부었다. 오래된 숟가락 위에 물을 만 밥, 그 위에 올려둔 김치. 내가 된장찌개를 언제 끓였는 지도, 달걀을 언제 샀는 지도 기억을 못 하는데 물을 잔뜩 먹은 밥알갱이를 보니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게 기억났다.

  

  아들은 교복을 입고 있었고 얼굴에는 인상이 잔뜩 피워져 있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비가 내린 탓에 창문 바깥은 컴컴했고 집에는 비릿한 비냄새가 풍겼다. 그날은 아들의 열다섯 번째 생일이었다. 그는 안 그래도 생일에 비가 온다는 사실이 불만이었지만 아침 식사가 고작 물을 만 밥이라고 더 내게 신경질을 냈었다.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곤 미안하단 말밖에 없었다. 저녁에 함께 먹을 삼겹살을 샀기에 아침을 이렇게 때울 수밖에 없었기에, 그럼에도 아침에 진수성찬을 못 내주어 미안하단 말만 연신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냉장고에 넣어둔 삼겹살을 더 깊은 곳에 숨겼다. 그래도 저녁에 삼겹살을 먹는다고 하면 아들이 좋아하겠지. 그 생각만으로 남편의 직장과 아들의 학원이 끝나기 까지만 기다렸다. 그런데 그날 밤, 아들은 친구들과 저녁에 생일 파티로 치킨과 피자를 먹고 온다고 했고 결국 나와 남편만 그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괜찮아. 내년 생일에 더 맛있는 거 먹으면 되지. 내가 일 더 열심히 해서 보너스 받을게.”

  분명 내년에도 아들의 생일이 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젓가락질을 하는 내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너무 옛 생각에 잠든 것 같다. 밥그릇에 담아둔 물이 거의 졸아 알갱이들이 퉁퉁 부어 있었다. 숟가락을 입 안으로 욱여넣으면서도 티브이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어떤 말을 했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티브이 속 사람들이 밝게 웃고 있었다. 그 소리에 그냥 나도 따라 웃었다. 무언가 그래야만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분명 내 귀는 티브이의 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나는 아직까지 남겨둔 가족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오래되어 사진의 색이 다 바랬지만 다시 찍을 수 없음을 알고 있기에 그냥 액자를 하릴없이 보기만 했다. 잘 살고 있겠지. 액자를 보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게 어느덧 습관이 되었다. 예전에는 보고 싶다는 말이 불쑥 나왔는데, 어쩌다 이 습관이 바뀌게 된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만약 그날, 아침 식사로 다른 걸 내주었다면…… 적어도 아들과 안부 전화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겨울은 해가 빨리 진다. 해가 지면 나는 늘 여려 겹의 이불 안으로 들어간다. 그렇지 않으면 도무지 이 추위를 견딜 수 없다. 처녀 시절엔 아무리 추워도 남편의 품 속에 안기면 포근한 잠에 빠지곤 했는데. 다투는 일이 있어도 늘 옆에서 같이 잠에 드는 그가 보고 싶다. 티브이 옆 탁자에 놓인 남편의 액자를 보았다. 주름도 없고, 링거를 꽂고 있지도 않는 남편. 저 때가 언제였을까. 지금 나는 이렇게 쭈글쭈글한데. 저때의 남편이 지금의 나를 보면 똑같이 사랑한다고 말을 해줄까. 그 말이 다시 듣고 싶다. 내 손가락에, 아직도 자국이 남은 이 손가락에, 이 빌어먹을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며 한 따듯한 그 말. 사랑한다는 말. 눈두덩이가 뜨거웠다. 베개에는 눈물이 떨어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몸을 일으켜 흔적 위로 손을 연신 비볐지만 자국은 마르지 않았다. 왜 이런 흔적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까. 서둘러 남편이라도 만나고 싶다. 이 감은 눈을 다시 못 뜬다면…… 남편의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계세요?”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문을 잠가 두지 않기에 그냥 들어오라고 답했다. 나는 퉁퉁 부운 눈가를 소매로 훔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문이 열리자 탱글탱글한 얼굴의 청년들이 손에 무언가를 가득 쥐고 들어왔다. 어쩌면 그들이 지은 미소는 단체복으로 입은 형광색 조끼보다 더 밝을지도 몰랐다. 남편과 처음 만났을 때 우리도 저렇게 밝았고 마지막으로 본 아들의 얼굴도 저렇게 탱글탱글했는데…… 여전히 얇은 콘크리트 벽 사이로 바람이 새어 들어왔지만 누군가 집에 들어온 것만으로 집 안에 온도가 따듯해진 기분이 들었다. 정오의 햇빛이 들어오고 있다기엔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따듯했다. 그들은 자리에 앉아 안부를 묻거나 음식을 건네주며 내 손을 잡아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 말고는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어르신, 죄송해요. 학기 중에 정신이 없었어서 찾아뵙지를 못 했네요. 이제 방학 기간이니 자주 올게요. 그동안 몸 건강하게 잘 있으셔야 해요.”

  저들은 뭐가 저렇게 미안한 걸까. 그러나 그들이 온 지 십 분 가량 지났을까, 그들은 다음 집에도 가보아야 한다며 해 두었던 양반다리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욕심임을 알고 있지만 그들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었다.

  “커피나 차라도 한 잔 들고 가요.”

  고맙다는 말 이후로 처음으로 뱉은 말이었다. 생각나는 말이 이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손을 저으며 괜찮다고 웃었다. 다시 현관문이 닫히고 집에는 나 홀로 남게 되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따스한 기운은 차가운 바람에 식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남긴 도시락을 열어보았다. 안에는 따듯한 밥과 국, 고기반찬, 김치 등이 가지런하게 담겨 있었다. 따듯한 밥은 남편과 아들의 생각이 나지 않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언젠가 또다시 그들이 오겠지. 그럼 그때까지…… 살아 봐야지. 아직은 집안이 따듯하니까. 나는 가장 큰 고깃덩이를 입에 넣고 남편의 사진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여보, 보고 싶어요. 그런데…… 사실 나 아직은 그곳으로 가기 두려운가 봐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줘요. 이야깃거리를 더 만들고 갈 테니 만나면 오래오래 오순도순 떠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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