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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Jan 25. 2023

송곳니



  충치가 생겼다. 치과 의사는 인상을 찌푸리며 내 입안에 차가운 막대기를 집어넣었다. 송곳니 안쪽에 생긴 충치였다. 그는 안경을 벗더니 삿대질 대신 막대기를 내게 가리켰다.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더 심해질 겁니다. 어금니가 아니라 금니나 은니를 끼우기도 애매해서 더 서둘러야죠. 그의 목소리가 한층 내려앉았다. 옆에서 보조를 하던 간호사가 내게 물 잔을 건넸다. 나는 물을 한참 동안 머금고 있다가 세면대에 뱉었다. 입이 여전히 얼얼해 턱관절을 여러 번 돌렸다. 어떡하시겠어요? 당장 예약 잡아드릴까요. 의사의 재촉에 관절운동을 멈추고 침을 한 번 삼켰다. 남편이랑 한 번 상의를 해보고 연락드릴게요. 의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등 너머 가려진 커튼 뒤에선 치과 기계 소리가 넘어왔다.

  송곳니는 우리가 고기 같은 질긴 음식을 뜯을 때 자주 쓰는 치아다. 씹는 것보다 뜯는 용도로 사용되기에 더 날카롭지만 그만큼 약하다고 했다. 충치가 잘 생기지 않는 부위라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 생기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고는 했다. 그런데 의사의 입에서 나온 송곳니의 치료 가격은 어금니보다 훨씬 비쌌다.


  똑같은 치아인데 가격이 다른 이유가 뭐지? 스마트폰 스크린을 내리다 주먹을 꽉 쥐었다. 지하철이 연신내 역에서 곧 정차한다는 안내방송이 울렸다. 사람들은 6호선으로 환승을 하려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 줄지어 섰다. 나는 스크린 도어가 열리기 전까지 좌석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았다.

  환승을 하러 가는 길, 곳곳에 보이는 광고판에서 불빛이 일었다. 대부분 광고는 연예인의 생일을 축하하거나 모바일 게임, 그리고 병원이었다. 에스컬 레이터 위로 뻗어 나는 여러 개의 광고판은 모두 새로 개업한 치과가 그려져 있었다. 가운을 입은 여자가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옆에 조그맣게 써진 글씨는 ‘더 새하얀 치아, 더 당당한 미소’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 보았다. 모두가 새하얀 미소 대신 새하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어쩌면 마스크가 치아보다 더 하얀 듯했다. 다시 광고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가지런한 송곳니는 전혀 날카로워 보이지 않았다.

  남편의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회식이 있으니 늦게 들어갈 것 같다. 먼저 자라는 일종의 통보였다. 6호선이 빠른 속도로 오다가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문이 열리고 보이는 칸에는 빈 좌석이 없었다. 분홍색 좌석 하나가 비어 있었지만 양심적으로 손잡이를 잡고 갔다. 문에는 내 얼굴이 비추어졌다. 마스크로 쉽사리 가려지지 않는 주름과 거뭇한 피부, 굴곡이 모두 사라진 몸. 더 이상 내 모습을 마주하기 싫어 괜히 노선도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한 남자가 언성을 높여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한 할머니가 분홍 좌석에 앉아 있었다. 남자는 그녀에게 검지를 뻗으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얼마나 소리가 컸는지 책을 읽던 사람도 이어폰을 꺼내 귀를 막았다. 그녀도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왜 앉으면 안 되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서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결국 할머니는 가방을 그의 배를 향해 힘껏 내려쳤다. 주변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둘에게 쏠렸다. 누구는 스마트폰을 가로로 들었고 누구는 벌떡 일어나 옆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왜 그렇게 늙어서까지 남한테 민폐를 끼치고 싶은 거야? 그는 소리를 지르더니 문이 열린 응암역에서 내렸다. 할머니는 등을 돌린 남자를 째려보며 중얼거렸다. 당장 내릴 곳이 다음 정거장인데 도착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훨씬 길어짐을 체감했다.


  집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건 큰 거울이었다. 나는 마스크를 벗고 치아를 드러내 보았다. 뾰족하게 솟은 송곳니에는 의사가 말 한대로 거뭇한 충치가 보였다. 이게 다 나이가 들어서 났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거울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졌다. 늙어서까지 남한테 민폐…… 갑자기 지하철에서 남자가 한 말이 번뜩였다. 다시 거울을 보고 치아를 보였다. 머릿속은 연신 늙었다는 남자의 말이 곱씹어졌다. 이빨을 붙이고 입을 벌려서 그런지 어색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입가엔 주름이 잔뜩 묻어 있었다.

  역시나 남편은 아직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치과에 대해 상의를 해야 해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연결음은 곧장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갔다. 시곗바늘은 자정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릴없이 틀어놓은 티브이에선 동안의 50대 여성이 관리법을 전수하고 있었다. 그녀의 탄탄한 피부와 콜라병 몸매에 나도 모르게 거울로 고개가 돌아갔다.

  “나이가 들었어도 제가 여자인 건 변하지 않아요. 여자라면 예뻐 보이고 싶은 욕망은 절대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멍하니 그녀의 말을 중얼거렸다.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한참 전에 남편에 보낸 문자 답장이었다. 치과 치료를 허락받는 문자였는데 그는 전화 한 통 없이 짧은 답장만 남겼다. 비싸. 답장을 보자마자 스마트폰 화면을 껐다. 티브이 속 그녀가 웃음을 지었다. 가지런한 치아는 달빛이 비치어질 정도로 하얬다. 반면에 거울 속 나는 달빛은커녕 가로등 하나 비추어지지 않았다. 주먹을 꽉 쥐었다. 자정이 넘어갔다. 시간에 맞춰 스마트폰 알림이 하나 더 울렸다. 예정일임을 알리는 알림이었다. 티브이를 보며 개어둔 옷가지들엔 알록달록한 속옷과 원피스가 놓여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아직 여자임을 말하는 듯했다. 나는 알림을 끄는 대신 곧장 인터넷으로 충치 치료와 치아 미백까지 예약했다. 예약 완료 소리와 동시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회식이 언제 끝난다거나 집에 곧 들어간다는 말이 아닌 빠져나간 돈에 대해 물었다. 술기운에 더해 목소리에서 분노가 묻어 나왔다. 덜컥 겁이 났지만 티브이에 보이는 여자의 모습에 입술을 꽉 깨물게 되었다.

  “여보, 나도 아직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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