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오 Jan 06. 2023

아마도 우린



  “거긴 내가 먼저 찜한 자리야. 비켜.”

  옥탑방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지르며 손에 쥔 성경책을 책상 위로 던졌다. 의자에 앉은 국밥집 할머니도 지지 않고 언성을 높였다.

  “네 자리, 내 자리가 어딨어. 먼저 온 사람이 앉는 거지.”

  국밥집 할머니는 책상 위에 올려진 성경책을 옆에 빈자리를 향해 밀어 던졌다. 일촉즉발이었다. 옥탑방 할머니의 손이 국밥집 할머니의 머리로 향하더니 덥석 머리카락을 잡았다. 국밥집 할머니의 하얗고 구불구불한 머리가 잡히자 그녀도 옥탑방 할머니의 머리채를 잡았다. 주변에 다른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둘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곰돌이가 그려진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주방 문을 벌컥 열었다. 복지사 혜정이였다. 그녀는 한 손에 계란이 묻은 뒤집개를 들고는 둘의 목소리보다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뭐 하는 거예요! 나 이러면 밥 안 줄 거야.”

  두 노인은 자기 딸 뻘 되는 여자의 외침에 서로 눈치를 보다 엉덩이를 의자에 붙였다. 아무래도 이 복지관에 서열 1위는 복지사인 모양이었다.

  “아니, 경애 할머니, 자꾸 여기서 텃세 부리시면 어떡해요. 나 진짜 경애 할머니 때문에 속상해 죽겠네.”

  혜정은 이런 소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능숙하고 침착했다. 방금까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를 지르던 할머니가 고작 그녀가 뱉은 몇 마디로 금세 잠잠해졌다. 게다가 옥탑방 할머니가 국밥집 할머니에게 미안해요, 하면서 손을 건네기까지 했다. 그렇게 소란이 잠잠해지듯 싶더니 이번엔 주방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늘 새로 온 봉사자가 애써 만든 잡채를 홀라당 태워버린 것이었다. 매캐한 연기에 어르신들은 물론 혜정과 다른 봉사자들도 연신 기침을 쿨럭였다. 혜정은 잽싸게 창문을 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해서 그녀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갔다. 혜정은 먼저 겁에 질려 울먹이는 어린 봉사자를 일으키고는 다친 데는 없냐고 물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곧장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나와보세요, 하고는 연기가 나는 잡채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혜정은 잡채가 담긴 웍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집개로 탄 잡채를 골라냈다. 이어서 능숙한 솜씨로 손목을 돌렸다.

  “어유, 살려낼 게 많이 없네. 정우 선생님, 냉장고에 고기 완자랑 다진 야채 남은 거 있죠? 그거 좀 가져와주세요.”

  나는 혜정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녀가 시킨 대로 고기 완자랑 야채를 가져왔다. 그녀는 새 웍을 꺼내 고기와 야채를 볶기 시작하더니 살린 잡채와 밥, 그리고 몇 가지 소스를 넣었다.

  “어쩔 수 없어요. 오늘 메뉴는 잡채밥으로 바꿔야 해요.”

  혜정이 깨를 솔솔 뿌리자 나름 그럴싸한 잡채밥이 완성되었다. 당면이 그다지 많이 남지는 않았지만 제법 먹음직스러웠다. 주방의 상황을 모르는 어르신들은 어서 밥을 달라고 하나 둘씩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들의 짜증 섞인 말투에 주방 밖으로 나온 젊은 봉사자는 어쩔 줄 몰라 손만 연신 휘저었다. 혜정이 웍을 들고 주방을 나오고서야 그는 미소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녀가 밥과 반찬을 배식대 위에 올리자 어르신들은 나란히 줄을 섰다.

  따듯한 밥은 이야기를 부풀어 오르게 하는데 일조했다. 옥탑방 할머니도, 국밥집 할머니도, 세탁소 할아버지도 모두 웃음을 피우며 서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혜정과 다른 봉사자들도 한 시름 놓고 밥을 펐다. 혜정은 늘 한 손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한꺼번에 쥐고 밥을 먹었다. 불편할 법도 한데 그녀는 익숙하다는 듯 거침없이 음식을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초등학생 때, 담임 선생님도 식기를 저렇게 쥐곤 했는데 아마 지금은 그녀가 여기 노인들의 담임 선생님이지 않을까. 나는 모든 담임 선생님은 저렇게 식사를 하나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혜정의 식사시간은 우리가 밥을 절반 채 먹었을 때 끝이 난다. 그녀는 빨리 식사를 마친 어르신들의 자리를 치우고 그릇을 설거지 통에 담갔다.

  “원래 복지사 님이 밥을 빨리 드시나 봐요?”

  젊은 봉사자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네, 그렇죠. 하고 대답하는 것 말고는 덧붙일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어쩌면 그의 말에 제대로 집중을 하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지만 내 시선은 홀로 설거지를 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향하고 있었으니.


  빈자리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곳엔 혜정에게 남겨둔 귤이나 쌀과자 따위가 놓여 있었다.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은 옥탑방 할머니였다. 그녀는 배웅을 하는 혜정의 손을 덥석 잡고 걱정 말라는 말을 남겼다. 할머니가 등을 돌리고 문으로 향하자 혜정이 성경책을 두고 갔다고 그녀를 불러 세웠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가지라고 말하곤 문을 닫았다. 내가 이 센터에 봉사를 시작하게 된 건 몇 달 되지 않았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휴대전화나 지갑 등을 두고 왔다고는 말해도 성경책은 늘 빠짐없이 들고 다녔던 그녀에게 성경책은 보물 1호와 다름없었다. 매일 품속에 넣고 다닌 저 보물을 왜 혜정에게 준 걸까. 문득 드는 호기심에 혜정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입가엔 멋쩍은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왜 성경책을 줬는지 묻고 싶었지만 혜정이 산더미같이 쌓인 설거지 더미에 소매를 걷어 올린 탓에 피어오르던 질문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청소까지 모두 마쳤을 땐, 이미 창밖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나와 다른 봉사자들은 봉사 실적 확인서를 작성한 뒤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혜정은 서류를 가지런히 정리해 파일에 넣더니 큰 한숨을 내뱉었다. 나는 쉽게 문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때, 창문을 두드리는 가벼운 소리를 선두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혜정도 창밖을 보더니 아, 하고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우산 없으시죠? 차로 데려다 드릴게요.”

  혜정은 한참 동안 대답을 하지 않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기다리는데 뭔가 서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움직이는 내내 한숨도 여럿 내쉬었다. 혜정이 옥탑방 할머니에게 받은 성경책을 쥐고서야 복지관에 전등이 전부 꺼졌다.

  혜정이 말 한 목적지는 다름 아닌 요양병원이었다. 비가 내리는 탓에 내비게이션에 적힌 예상 도착 시간이 20분이나 미뤄졌다. 차 안은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오가지 않았다. 혜정은 옥탑방 할머니처럼 성경책을 품에 꼭 껴안고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정우 쌤은 봉사활동을 왜 하세요?”

  정적을 깨는 질문이었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볼멘소리를 내다가 입을 열었다.

  “그야, 혜정 쌤이랑 같은 이유이지 않을까요. 그냥 남을 돕는 게 좋아서?”

  “그럼 저와 같은 이유는 아니네요.”

  다시 정적이 맴돌았다. 내가 무슨 실수를 저지른 걸까. 나도 모르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괜히 어색한 분위기를 깨트리려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무작정 내뱉었다.

  “아까 보니까 내일까지 비가 내린다는데 근처 편의점에 들러서 우산 하나 사드릴까요?”

  “마음만 받겠습니다. 고마워요. 신경 써줘서.”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그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고마워요. 데려다줘서. 내일 뵙겠습니다.”

  혜정은 차 문을 닫자마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본 그녀의 표정은 어르신들을 진두지휘할 때와는 달리 어딘가 어두워 보였다.


  다음 날 복지관에 갔을 땐, 봉사자들이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웅성이고 있었다. 문에는 ‘개인 사정으로 인해 금일 쉽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적혀있었다. 분명 어제 혜정이 문에 이런 걸 붙이고 나온 기억이 없는데…… 모두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오늘도 제일 먼저 얼굴을 보인 사람은 국밥집 할머니였다. 그녀는 닫힌 문을 보고는 혀를 끌끌 찼다. 뒤이어 온 사람은 옥탑방 할머니였다. 그녀도 국밥집 할머니와 같이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참, 불쌍한 아여. 내일 성당에서 보이면 용돈이나 줘야겄어.”

  분명 문에는 개인 사정이라고 적혀있었지만 그들은 그녀가 쉬는 이유를 아는 듯했다. 나는 혀를 차며 돌아가려는 둘을 향해 달려가 연신 끓어오르던 질문을 던졌다.

  “혜정 쌤한테 무슨 일이 있나요?”

  “어휴, 젊은 총각이 뭘 알겄어. 와? 우리 선상님한테 관심이라도 있나?”

  옥탑방 할머니가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 괜히 목소리가 떨렸지만 그녀를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원래 쟈가 지지리도 말 안 듣는 아였어. 엄마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만날 성당에 와서 기도 혀고 그랬지. 그런데 갑자기 갸 엄마가 쓰러져 뿐 거야. 아직까지도 병원살이 하고 있다제? 그러곤 복지사니 뭐니 그거 된다고 하다 저러고 있는 겨. 지도 엄마한테 미안한 건 아는갑지.”

  “당장 가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지 않능가? 다음에 보면 갸 말 좀 잘 들어야겠네.”

  문득, 어제 차 안에서 혜정이 던진 질문이 떠올랐다. 봉사를 하는 이유가 나와 다르다…… 나는 다시 두 할머니를 불러 세울 수 없었다.


  오래간만에 여유로운 평일 오후였다. 그러나 심란한 마음은 쉽게 떠나질 않았다. 나는 휴대전화를 들고 연신 머릿속을 떠다니는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정우구나. 오랜만에 전화하네.”

  “네, 수녀님. 잘 지내시죠?”

  “인석아, 네가 통 소식을 안 전해주는데 잘 지낼 수가 있겠나.”

  “죄송해요. 앞으로 통화 자주 드릴게요. 그런데 수녀님, 수녀님은 어쩌다 남을 위해 봉사하시게 된 거예요?”

  “오랜만에 전화하더니 그게 궁금해서 한 거였나. 글쎄다. 나도 너처럼 고아원 출신이지 않니. 그래서인지 정신을 차려보니 이렇게 수녀가 되어있더라고. 남들이 나처럼 사는 게 싫었나 봐.”

  “아…… 그랬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에 통화 말고 한 번 찾아뵐게요.”

  혜정에게 했던 말, 그 말은 진실이었을까. 생각해보니 혜정은 봉사를 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노인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단 한 번을 웃질 않았다.

  마치 본인이 그렇게 하는 게 의무인 것처럼…… 아마도 우린 그냥 남을 돕기보단, 내가 겪은 비참함이 대물림되는 것이 싫은 게 아닐까. 천천히 먹구름이 걷혔다. 그럼에도 차가운 칼바람은 내 귀를 붉게 물들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송곳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