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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Jan 05. 2023

담배 한 개비가 다 타기까지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우는 데 몇 분이나 소요될까, 문득 드는 호기심에 시간을 재본 적이 있었다. 4분 23초. 사람마다 빨아들이고 내뿜는 시간이 다 다르겠지만 내가 잰 시간은 4분 23초였다. 4분 23초. 그 시간만큼은 내가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다.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물을 마시기도, 아내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꽁초가 떨어져 나가면 곧장 공장 안으로 뛰어 들어가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근무 태도 기만으로 벌점 스티커가 내 이름 위에 붙을 테니. 공장 안에서 흐느끼는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찢어질 듯한 목소리의 데시벨은 높게 솟구치더니 이내 천천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나는 고개 한 번을 돌리지 않고 입에 문 담배 끝에 불을 붙였다. 살아남는 것. 그것이 우리의 경쟁이었다.


  공장 안은 마치 동굴과 같았다. 빠르게 돌아가는 기계들은 공장 벽에 부딪히면서 메아리를 쳤고 나가는 곳이라곤 좁은 출입문 하나가 전부였다. 벨이 세 번 울리면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 선다. 그리고 레일을 따라 물건들이 나오면 기계 속도에 맞춰 감싸고, 붙이고, 두드려야 했다. 일을 시작한 지 한 시간가량이 지나면 기계의 속도가 빨라진다. 그럼 동시에 사람들의 거칠어진 숨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점점 저려오는 팔에 눈을 질끈 감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3층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남자가 확성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탓에 눈 대신 입술을 질끈 깨무는 수밖에 없었다. 기계는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멈추지를 않았다. 그전까지 물을 마시지도, 용변을 보러 가지도 못 한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허락되는 것. 공장장을 시작으로 연차가 오래된 순서대로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고 올 수 있었다. 차례가 다가오면 담배를 피우지 않더라도 자리에서 벗어나 화장실을 다녀오곤 했다. 마침 한 달 선배인 마이콜이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나는 슬쩍 비워진 그의 자리를 보았다. 흠뻑 젖은 그의 의자를 보자 나도 모르게 어서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피워 올랐다. 마침 오늘은 둘째 딸인 미카엘라의 생일이었다. 어서 담배를 피우면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 생각에 절로 다리가 떨렸다. 그런데 5분이 지났음에도 마이콜은 나타나질 않았다. 나는 곁눈질로 공장 위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분명 그가 올 시간이다. 다시 출입문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나 점점 더 빨라지는 기계 속도에 그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걸 알릴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그의 부재로 내 손은 더 분주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내 뒤에 사람들의 곡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들도 살짝 고개를 돌려 마이콜의 부재를 확인했다. 어느덧 그가 사라진 지 20분이 지났다. 보다 못한 후배는 결국 소리를 질렀다.

  “마이콜! 어디 갔어!”

  그의 외침에 턱을 괴고 졸음에 빠져있던 공장장이 눈을 번뜩 떴다.

  “뭐야, 누가 근무 중에 소리를 질러?”

  그가 뒷짐을 지고 현장을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빈자리가 보였는지 명단이 적힌 서류를 한 번 보고 고개를 시계로 돌렸다.

  “필리핀에서 온 애네. 지금 쯤 이미 한 바퀴 돌았을 시간 아닌가? 이봐, 콩고. 기계 속도를 좀 줄여줄 테니 네 선임 후딱 가서 찾아와.”

  공장장이 내게 손가락을 펼치며 명령했다. 동시에 기계가 속도가 줄어들었다. 나는 줄어든 속도를 체감하기 무섭게 그를 찾으러 발을 재촉했다. 공장장이 더 빨리 뛰라고 재촉했지만 장시간 앉아있던 탓에 더 속도를 내는 건 무리였다.

  흡연구역에 도착했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거친 숨이 몰아 나왔지만 발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정수기가 있는 곳에도, 화장실 칸에도 그는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이마를 탁 짚었다. 더 늦으면 내게도 벌점 스티커가 붙을 수도 있다. 이번엔 그의 이름을 외치며 공장 주변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때, 흡연구역에서 20미터가량 떨어진 화단에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나는 천천히 실루엣을 향해 다가갔다. 그 아래엔 마이콜이 쪼그려 앉아 흐느껴 울고 있었다.

  “마이꼴, 뭐 하고 있는 거야요. 여기써?”

  나는 터져 나오는 분노를 꾹 참고 차분하게 물었다. 그러나 그는 인기척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여전히 무언가를 꼭 끌어안고 울음을 그치질 않았다. 보다 못 한 나는 그의 축 늘어진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그제서 마이콜은 고개를 돌렸다. 눈가에 잔뜩 남은 눈물자국은 나도 모르게 치밀어 오른 화를 잠재웠다.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야? 아내가 죽었는데도 왜 나는 여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거야? 왜 저 세끼는 아내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도 오늘 나오지 않으면 그동안 월급을 안 줄 거라고 하는 거야? 왜…… 나는 여기 있어야 하는 거야?”

  나는 그가 꼭 끌어안고 있었던 게 무엇인지 들여다보았다. 그 어떤 말도 그에게 건넬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줄 게 이것밖에 없다.”

  마이콜은 담배를 받아 들더니 곧장 담뱃불을 붙였다. 담배를 몇 번 빨아들이다 정신이 들었는지 일어나 내게 고개를 숙였다. 차마 미안하다는 말까지는 나오지 않았던 것 같았다. 하긴, 저렇게 눈물자국이 남았는데 목이 메는 건 당연한 거였다. 나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터로 복귀하려 등을 돌리자 그가 금방 갈게,라고 말했다.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느려졌다. 생각해보니 나도 미카엘라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는데. 나는 다시 그에게 돌아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4분 23초. 그 정도는 괜찮을 껍니다.”

  마이콜이 돌아왔을 땐, 뒤에 사람들의 원망의 눈빛이 그를 반겼다. 그는 자리로 돌아가는 대신 공장장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기계의 속도는 다시 빨라지기 시작했다. 3층에서는 마이콜과 공장장의 높아진 언성이 이곳까지 흘러 내려왔다. 우리는 연신 읊어지는 욕설들을 듣지 않으려 눈앞을 지나가는 물건들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때, 갑자기 기계의 작동이 멈추었다. 공장 안에 사람들은 멈춰버린 기계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잡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창문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3층에서 공장장의 육중한 몸뚱이가 떨어지고 있었다. 마이콜은 그가 떨어진 자리를 보더니 곧바로 도망을 쳤다.


  마이콜이 어디로 향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6개월을 함께 한 기숙사로 갔는지, 아내의 장례를 치르러 필리핀으로 돌아갔는지. 멈춰버린 기계를 다시 작동시키는 법을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는 가운데 나는 흡연장소로 가 다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불이 붙는 동시에 휴대전화를 들어 미카엘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생일 축하한다는 말 말고는 더 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나는 그녀가 나열하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듣고는 전화 시간을 확인했다. 4분 23초가 가까워지자 나는 이제 돌아가야 한다고 전화를 끊었다. 왜 딸과 더 통화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던 걸까.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은 쉽사리 답안이 나오지 않았다. 다시 담배를 하나 더 피우려 담뱃갑을 꺼냈지만 안은 텅텅 비어있었다. 만약 아까 마이콜에게 한 개비를 주지 않았다면, 지금 그 담배를 피웠다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왔을까.

아마 기계가 멈췄는데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 사람들과 같은 이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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