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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Apr 23. 2023

너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얼음과 눈물



  박울보. 박울보는 어릴 적 내 별명이었다. 단어 그대로 자주 눈물을 터뜨리곤 해서 박울보라는 별명이 붙여진 건데 사실 난 그 별명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그냥…… 평범하기 짝이 없다고 해야 할까. 한 번은 이런 별명이 싫어 눈물을 떨어뜨린 적이 있었다. 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훌쩍이면 늘 조용히 내 방 문이 열렸다. 그리곤 쭈글쭈글하고 잔뜩 튼 손이 내 눈가를  훑고 지나갔다. ’ 울지 마라.‘ ,’ 괜찮다.‘ 이런 말 한마디 없이 내 눈가를 훑고 지나간 손은 제 역할을 다 했다는 듯 다시 조용히 사라졌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흐르던 눈물이 어느새 그치곤 했다. 그것에 너무 익숙해진 탓이었을까, 그 손길이 닿지 않으면 눈물은 쉽게 그쳐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살아야지, 하면서 나는 늘 그 쭈글쭈글한 손을 원하고 있었다. 텅 비어있는 자리에 공허함이 나를 잠식시키면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쩌면 그게 그 손의 대체제가 된 게 아닐까.

  ‘그럼에도 살아야지.’

  반면에, 분명 같은 배에서 나온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언니는 내게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당연히 그녀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언니는 그 따스함을 모를 것이다. 애초에 그녀는 마치 차가운 겨울 바다 같았다. 냉정한 동시에 무언가 편안한 느낌을 주었으니. 어쩌면 그녀는 가사 안드로이드가 아닐까 싶었던 적도 있었다. 평범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해, 평범한 대학교에 입학했고, 평범한 직장에 다니는 우리 안드로이드 언니. 가끔은 언니가 불쌍하게도 느껴졌다.


  박얼음. 박얼음은 어릴 적 내 별명이었다. 단어 그대로 늘 차가운 모습을 보여주어서 박얼음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건데 사실 난 그 별명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만 여름이 되면 얼음은 금세 녹아버리는데, 나도 무언가 그런 따스함 앞에선 천천히 녹아버릴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나의 여름은 쉽게 오지 않았다. 다만, 나를 여름보다 더 뜨겁게 만드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하나뿐인 내 여동생이었다. 매일 질질 눈물을 흘릴 줄만 알지, 본인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가끔은 그녀를 나무라고 싶어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모습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 한숨은 아마 포기의 의미였지 않을까 싶었다. 그녀의 유일한 버팀목이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동생은 일주일 내내 더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었다.

  “언니는 어떻게 슬픈 모습을 한 번도 안 보일 수 있어? 할머니가 돌아가신 게 슬프지도 않아? ”

  ‘슬프지. 괴롭지. 미칠 것 같지. 그런데 어떡해. 그럼에도 살아야지. ‘

  턱끝까지 차오른 말을 차마 뱉을 수 없었던 건 그때 쉰 한숨과 함께 모든 걸 포기해서일까.

  분명 같은 배에서 나온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모든 일에 눈물부터 보였다. 그러니 할머니는 그녀의 얼굴을 향해서만 손을 뻗었겠지. 동생은 그 허무함을 모를 것이다. 애초에 그녀는 마치 울창한 숲 같았다. 울창한 동시에 무언가 손길을 내밀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으니. 어쩌면 그녀는 개미가 아닐까 싶었던 적도 있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작은 회사에서 잠깐 근무했다가, 지금은 유튜브와 인터넷 방송을 하는 우리 동생. 가끔은 동생이 불쌍하게도 느껴졌다.


  ‘진짜 존나 못생겼네.’

  ‘그냥 시원하게 한 번 벗으면 안 되냐? 얼마 주면 벗어줄 건데?’

  나도 모르게 돌아가는 눈길에 이를 악 물고 모른 척했다. 어차피 가만히 있다 보면 매니저가 알아서 입장 제한을 주거나, 정지를 줄 것이었다. 최대한 채팅창을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고 내 할 말만 지껄이면 됐다.

  “이번에 가져온 건 바다포도라는 건데, 씹을 때마다 소리가 너무 좋아서 저도 모르게 사버렸어요. 그럼 한 번 먹어볼게요.”

  봉투 안에서 음식을 꺼내자 미역과 같은 기괴한 모습이 드러났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다시 미소를 머금었다.

  “젤리처럼 생기지 않았나요? 이걸 씹으면 오도독 소리가 난대요.”

  ASMR 마이크를 입 가까이에 가져다 댄 뒤, 일부로 소리가 날 정도로 턱관절을 움직였다. 혀 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일부로 음, 소리를 내며 달콤한 맛이 나는 척했다. 그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아직 한참이나 남은 바다포도가 보이자 눈을 질끈 감았다. 채팅창은 점점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후원된 돈이 들어올 때마다 닉네임을 읽어주며 감사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는데, 문득 채팅창에 적힌 글 중 하나가 연신 눈에 밟혔다.

  ‘너희 가족은 네가 그러고 사는 거 아니?’

  악플은 신경 쓰지 말자고 한 다짐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어 턱을 움직이지도, 눈을 깜빡이지도 못 했다. 그 채팅은 다른 채팅들에 밀려 빠르게 위로 올라갔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에는 그 문장만이 뚜렷하게 그려졌다. 결국 씹던 바다포도를 삼키고 급하게 방송을 껐다. 공지사항엔 집에 급한 일이 생긴 탓에 방송을 종료했다고 올렸지만 사람들은 쉽게 그 말을 믿어주진 않았다. 남자친구설, 남편설, 급 담배설 등 온갖 루머들이 공지사항 댓글창에 난무했지만 가족에 대한 댓글에 비하면 큰 타격감은 없었다. 오랜만에 눈물이 떨어진 것 같았다. 천천히 떨어지는 눈물은 이내 걷잡을 수 없듯이 흐르기 시작했다. 화장을 지우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러나 아무리 코를 훌쩍여도 굳게 닫힌 방 문은 열리지 않았다. 추억 속에 잠겼던 할머니의 얼굴이 머릿속을 비집고 나왔다. 따스함 하나 없이 차갑기만 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어떡해…… 그럼에도 살아야지.

  눈물이 그치고 휴대전화를 들어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매니저의 문자와 부재중 통화, 열혈 팬의 안부 문자, 그것 외에 온 내용은 없었다.

  ‘악플 단 애들은 모두 벤 처리했어. 마음 잘 추스르고 푹 쉬렴.’

  매니저는 모두 벤 처리를 했다고 했지만 그들은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 여전히 머릿속을 선명하게 떠도는 채팅. ‘entant321’ 그 위에 적힌 그의 아이디. 나는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아 떠오른 아이디를 플랫폼에 검색해 보았다. 곧장 그의 즐겨찾기 목록과 활동 기록이 떠올랐다. 익명의 그는 오직 나만 즐겨찾기를 해놓았고 채팅도 오롯이 그게 전부였다. 초범이기보단 한 번 정지를 먹어 부계정을 새로 만든 악질임이 분명했다. 즐겨찾기 목록에 덩그러니 내 얼굴이 드러난 탓인지 요상한 승부욕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매니저에게 부탁해 지금까지 정지를 부여한 계정 리스트를 싹 받았다. 그리고 비슷한 아이디가 있는지, 비슷한 말을 했는지를 모두 비교하며 나열했다. 눈이 시뻘겋게 달아오를 즈음 마우스 휠을 내리던 검지를 멈추었다. 나의 패배다. 아무리 목록을 뒤져보아도 같은 느낌의 계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연 씨, 미안하게 됐어요. 요즘 워낙 불경기다 보니 우리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거든요. 지연 씨 열심히 한 거 아니까, 지연 씨만큼 우리도 속상하고 아쉬워요. “

  텅 빈 눈으로 매뉴얼을 읊듯 나불거리는 저 입에 주먹을 꽂아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마스크 안에 숨겨진 입술을 꽉 깨무는 것으로 이 충동을 억누르기로 했다.

  “아닙니다. 그럼 몸 건강하세요.”

  박스 안에 사용했던 짐을 넣는데 생각보다 무게가 가벼웠다. 큰 박스와 달리 안에 든 내용물도 사실 별 것 없었다. 당이 떨어질 때마다 먹으려고 둔 초콜릿, 삼색 볼펜 두 자루, 화이트, 포스트잇 등 중요할 거라고 여길 만한 물건은 단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나는 이 회사를 가벼운 마음으로 다닌 게 아닐까. 사원증에 달린 목걸이를 돌돌 말아 인사처에 반납했다. 그들은 안쓰럽게 나를 바라보았지만 사실 별 생각이 들진 않았다. 어차피 가벼운 마음으로 다닌 거니까…… 매봉역까진 걸어서 10분 남짓 걸렸다. 박스를 품에 안고 주위를 둘러보자니 출퇴근을 하며 못 본 광경들이 눈에 밟혔다. 생각보다 큰 소나무가 아파트 단지 안에 있었고, 어릴 적엔 매주 갔지만 지금은 발길을 끊어버린 성당도 있었다. 산뜻한 바람도 한껏 싱숭생숭한 내 기분을 달래주는 듯했다. 지하철 역까지는 금세 도착한 듯싶었으나 시간을 보니 10분 거리를 30분이나 걸어왔다. 늘 북적이는 지하철만 탔었는데 이렇게 한적한 지하철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오랜만에 의자에 앉아 멍하니 노선도를 바라보았다. 지렁이들이 요란하게 돌아다니는 듯한 저 노선도 안에는 서울과 경기가 모두 감겨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한적한 지하철에도 소음은 존재했다. 캐리어를 끌고 무언가를 파는 잡상인과 언성을 높이며 통화를 하는 어르신. 출퇴근 길에는 차마 보지 못 한 광경들에 멋쩍은 웃음이 지어졌다.

  이제 뭘 하지?

  막상 일찍이 집에 도착하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거실을 한참 돌아다니다 회사에서 가져온 박스를 열어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뭐 정리할 것도 있지 않았다. 그냥 현관 앞에 둔 박스와 책상을 두어 번 왔다 갔다 하고 나니 금세 박스 안이 텅 비어있었다. 그런데 막상 빈 박스를 보자니 내 가슴도 텅 비워진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공허하고 쓸쓸했다. 사실 지난주에 탕비실 사이로 들린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었다. 이번에 새로 면접을 본 사람 중 학력도, 스펙도 뛰어난 사람이 있다고… 어린 나이에 경력도 있었기에 그를 곧장 사원으로 채용하고 싶었으나 TO가 없어서 난감한 상황이라고 했다. 결국 그를 채용하는 대신 어중간했던 나를 자르기로 한 것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기에 정리해고 소식을 듣고도 반응이 시원찮게 나온 것이었다. 나처럼 어중간한 소도구는 언제든지 대체가 가능하다. 거스를 수 없는 법칙임을 알기에 나는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억울하고, 화가 나지만 이게 현실인걸 어떡하나. 그럼에도 살아야지. 어떻게든 살아야지. 문득 동생의 눈가를 훔치러 방으로 들어온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만약, 나도 슬플 때마다 눈물을 보였다면 그녀도 차갑기만 했던 박얼음의 눈가를 훔쳐주었을까.

  암막 커튼을 치고 몸을 침대 위로 내동댕이 쳤다. 푹신한 이불이 나를 포근하게 감싸 안는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그렇다고 잠이 오진 않았다. 이상하게 이 시간에 회사에선 잠이 솔솔 쏟아졌는데 막상 침대 위에 누우니 눈이 말똥말똥 떠지는 건 모순적인 일이었다. 휴대전화를 들어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았다. 팔로잉 한 사람은 몇 없었지만 그 모두가 일찍이부터 독서를 하거나 운동 따위를 하는 게시글을 올리며 해시태그를 댓글창에 달아댔다. #독서 #오운완 #자기 계발 #좋아요 #맞팔 나는 괜히 그런 해시태그가 보이면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다. 위에 떠돌아다니는 스토리도 본인 게시글을 리그램 해서 올렸거나 비슷한 내용을 사진이나 짧은 영상으로 올린 게 전부였다. 하릴없이 스토리를 넘기며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는데 문득 한 스토리에서 손가락이 멈추었다. 내가 동생이랑 팔로우가 되어 있었나? 회사에 다니는 동안 인스타그램에 들어간 적이 없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녀가 올린 스토리엔 가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메이드복을 입은 사진과 방송 링크가 달려 있었다. 올린 지 한 시간도 안 됐으니 아직 방송 중이라고 생각해 한 번 링크를 타고 방송에 들어가 보았다. 처음 보는 동생의 모습에 오글거리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쟤는 저렇게 돈을 버는 건가? 창피하지도 않나?

  방금 떠올린 할머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화면 한가운데에 한껏 모은 가슴을 드러내며 이상한 포도를 씹는 동생. 개미라는 별명조차 아까웠다. 적어도 개미는 열심히 일이라도 하지, 쟤는 도대체 이런 공간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댓글을 달려고 채팅창을 열었는데 로그인이 필요하다는 창이 떠올랐다. 이런 플랫폼에 내 신상을 적는 일은 꺼려했지만 홧김은 내 다짐을 무너뜨렸다. ‘entant321’ 딱히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진 않았지만 동생을 볼 때마다 개미, 어쩌면 더 미개한 존재라고 생각이 들어 지은 아이디였다. 그리고 차마 구두로는 하지 못 할 문장을 손가락으로 두드려 만들어냈다.

  ‘너희 가족은 네가 그러고 사는 거 아니?’

  이 말은 시청자인 동시에 너의 가족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인 거야. 그러니 너무 상처받고 울지 않았으면 좋겠어.

  엔터를 누르고 채팅이 올라왔다. 동생은 한참 동안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이다 이내 ‘방송 종료’라는 어두운 창을 화면에 띄웠다. 아직 동생이 변하지 않았다면 저 텅 빈 눈 뒤에는 반드시 눈물이 흐를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도 곧장 휴대전화 화면을 끄고 눈을 감았다.


  가끔 언니는 나를 ‘개미’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내가 예상하기론 ‘개미’를 뒤집으면 ‘미개’가 되니 아마 나를 미개한 생물체 중 하나로 보지 않았을까, 예상을 한다. 언니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니까. 사실 아이디 ‘entant321’의 ant를 보고  곧장 언니가 떠올랐지만 애써 그녀가 아닐 거라고 부정했다. 겉보기엔 차갑고 딱딱하지만 마음만큼은 따듯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오늘도 방송 공지사항에 휴방 공지를 올렸다. 갑작스레 몸 컨디션이 안 좋아 하루만 쉬어간다고 말을 했으나 역시 사람들의 여론은 쉽사리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머리를 감고 나온 뒤 최대한 차분한 모습으로 머리를 말렸고, 화장도 평소와 달리 연하게 했다. 옷은 흰색과 검은색으로 무난하게 맞추기로 했다.


  나는 가끔 동생을 ‘개미’라고 불렀다. 개미는 한없이 작은 생물체지만 자기들끼리 모여 본인 몸집의 열 배가 넘는 물건을 들어 올리기도 하고, 성이 나면 이빨로 물어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힘들게 모아둔 식량은 모두 여왕개미에게 가져다 바친다. 일개미와 여왕개미 중 동생을 보고 떠올린 건 여왕개미였다. 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누군가 자신에게 바치길 바라는 그런 여왕개미.

  어제 동생에게 그런 악플을 쓴 건 잠에서 깨어나도 씻겨 내려가지 않았다. 죄책감은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고 내 피부에 박혀버린 듯했다. 여전히 출근 시간에 맞춰 울리는 알람을 끄고 곧장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어제 벗어 의자 위에 걸쳐둔 정장을 입고 거울을 한 번 들여다보았다. 초췌하기 짝이 없지만 얼굴 한 번 안 보인 것보단 낫겠지, 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나 왔어.”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새하얗게 오른 머리와 자글자글하게 주름 진 얼굴로 활짝 웃는 사진 속 할머니는 대답 하나 건네주지 않았다. 나도 더 이상 말을 뱉지는 않았다. 오늘은 왜 방송을 쉬냐고 재촉하는 매니저의 문자를 뒤로하고 가만히 앉아 할머니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이 모든 게 손길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았다.

  “지혜 아니니……? ”

  익숙한 목소리에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처음 마주하는 그녀의 얼굴. 분명 다시 만난다면 버럭, 화가 날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언니……”

  ”어쩐 일이야? “

  “그냥…… 잠깐 시간 나서 들렸어. 언니는? “

  “응. 나도 마찬가지. 밥은 먹었어? “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평일 늦은 오전, 그녀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지만 턱끝까지 차오르는 질문을 집어삼키기로 했다.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네고 우리가 간 곳은 장례식 때 갔던 허름한 국밥집이었다. 낡은 간판에선 지직, 소리가 났고 가게 안은 파리가 날아다녔지만 그 맛만큼은 다시 이곳을 찾아오기에 충분했다. 식탁 위에 앉아 식기를 올려놓는데 언니가 요즘 뭐 하고 지내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한동안 볼멘소리만 내다 별 것 안 하는 중이라고 답했다. 그녀는 아, 하고 짧은 대답을 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가 의심을 할 때 나오는 버릇이다.

  “방송…… 잘 안 되나 봐? ”

  “그냥 먹고살 만큼은 벌고 있어.”

  한동안 정적이 일었다. 정적은 국밥 두 그릇이 식탁 위에 올라올 때까지 가게 안을 잔뜩 메꾸었다. 언니는 숟가락을 들고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벗방만은 하지 마라.”

  “그런 건 절대 안 하니까 걱정하지 마.”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국물에 새우젓 한 숟갈과 깍두기 국물을 넣었다.

  “짜게 먹지 말라니까. 그러다 빨리 죽어.”

  “그럴 일 없어. 괜찮아.”

  끊어지는 대화. 사실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국밥을 입에 욱여넣을 때마다 숨이 턱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그릇은 빠르게 바닥을 보였고 속은 더부룩하게 오른 듯했다. 언니의 그릇도 빠르게 바닥을 보였다. 우리는 티슈로 입가를 훔치며 천천히 자리를 정리했다. 아주머니에게 카드를 들이민 건 언니였다. 잘 먹었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냥 고개만 꾸벅 숙이고 밖으로 나가는 언니는 여전히 변한 게 하나 없었다.

  “자주 찾아오는 것 같아 다행이네. 고마워. 나는 시간이 없어서 자주 못 왔거든.”

  언니가 가게 앞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담배 끊지 않았어? ”

  “어쩌다 보니 다시 피우게 됐어.”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고 연신 기침을 하는 걸 보니 다시 피우게 된 건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한 손을 주머니 안으로 깊숙이 넣고 담배를 피우는 그녀의 뒷모습에 하지 말아야 할 질문이 입 안을 맴돌았다. 그리고 결국 나는 참지 못 하고 그녀의 뒤를 보며 말했다.

  “혹시…… 아이디 ‘entant321’ 이거 언니야? ”

  “왜? ”

  그녀의 대답에 확신할 수 있었다. 아닌 건 분명 아니라고 대답하는 그녀는 늘 무언가 찔리는 게 있으면 눈썹을 치켜세우며 왜?라고 물었다.

  “그냥…… 궁금해서.”

  언니는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며 담배연기를 내뿜어댔다. 한 개비를 다 태우고 다시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런데 라이터는 불이 붙지 않고 불꽃만 몇 번 튀기만 했다.

  “나 급하게 일이 생겨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보자.”

  끊임없이 라이터를 켜려는 언니를 뒤로하고 언덕을 내려갔다. 그 채팅을 남긴 사람이 언니라는 의심이 확신이 되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다행히 언니는 내 뒤를 따라오지 않았다. 서서히 언니에게서 멀어지자 옷깃으로 눈가를 훔치며 쉴 틈 없이 훌쩍였다.

  다시는 저년을 보지 말아야지.


  3년이 지났다. 그날 이후로 동생은 번호를 비롯해 모든 sns에 나를 차단했다. 그녀는 내게 변명을 할 여지조차 주지 않았다. 이럴 때만큼은 지혜가 왜 나를 닮았을까.

  다시 일자리를 구하는 일도 하늘의 별 따기였다. 어중간한 나로선 작은 스타트업 회사 인턴직이 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당분간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기로 했다. 늦은 나이 덕분에 음식점이나 카페 등에선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나마 사무직 경력을 인정받아 퇴직금도 주는 한 회사에서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인터넷 방송을 하는 사람들을 키워나가는 작은 회사였다. 이곳에서 동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들었지만 내 기대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현 씨, 이번에 이 친구들 스케줄 좀 잡아줄 수 있어? 참 열심히 하는 애들인데 아직 하꼬라 아쉽담 말이지. “

  “네, 찾아보겠습니다.”

  지혜도 이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려고 했을까. 연신 피어오르던 의심이 확신에 차오르게 될 때, 그 연기는 매캐하게 내 코를 찔렀다.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모든 것들이 거짓일 수 있겠구나. 나는 동생에게 화가 나기보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피어올랐다. 지금은 무엇을 하고 지낼까. 아직도 방송이나 유튜브를 하고 있을까? 밥은 잘 먹고 지낼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돌아가 타자를 두드리던 엄지를 꽉 묶어버리고 싶었다.

  인터넷 방송 플랫폼 안에는 사람들끼리 소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가 존재했다. 그곳은 정보나 스케줄을 손쉽게 구할 수 있어 가끔 접속하곤 했다. 마우스 휠을 내리며 익명의 인간들이 쓴 글들을 내리며 읊어보았다. 아직까지 쓸모 있는 정보는 없는 듯했다. 턱을 괴고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페이지를 넘겨댔다. 그때, 지루함에 슬슬 눈이 감길 즈음 나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게 되는 제목이 보였다. ‘얘 이 정도면 뒤진 거 아니냐? ’ 게시글의 제목은 가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지혜의 사진이 함께 걸려 있었다. 나는 곧장 게시글을 클릭해 본문을 읽어보았다. 업로드가 된 날짜는 3일 전, 오전 2시 14분이었다. 작성자는 동생의 방송 사진을 올리며 한 장씩 설명을 덧붙여 적었다.

  ‘이때부터 시작일 거임 ㅇㅅㅇ. 갑자기 방송에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삼천 만 원짜리 광고가 들어왔다고 자랑한 날. 우리는 사기가 아닌지 제대로 확인하라고 주의를 줬지만 어떻게 사람이 삼천 만 원에 안 넘어가겠음?  그날 이후로 방송을 켤 때마다 애가 다크서클도 잔뜩 내려오고 볼도 다 꺼지고, 점점 초췌해지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혹시나 해서 지혜 집 근처 쓰레기봉투를 뒤져봤는데 여기 우울증 약이랑 같이 갈기갈기 찢어놓은 협박 편지가 있었음. 아마 사채를 쓴 것 같은데 내가 이걸 본 뒤로는 방송을 안 켜더라. 벌써 2년이 지났는데 진짜 이 정도면 뒤진 것 같음ㅋㅋ. 이제 볼 만한 여캠 없냐? 추천 좀 해줘라. 지금까지 후원한 돈 좀 아깝긴 해도 뭐 우짜노.’

  나는 연신 휠을 올렸다 내리며 익명의 작성자가 올린 사진과 글을 보았다. 확대를 해도, 화면 밝기를 높여도 사진 속 여자는 지혜가 틀림없었다. 화면 속 그의 모니터 안에 지혜의 유튜브 채널 이름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눈살을 찌푸린 채 글자를 향해 고개를 들이밀었다. 유튜브 채널 이름은 평범하게 그냥 ‘지혜의 일상’이었다. 나는 곧장 유튜브에 들어가 ‘지혜의 일상’을 검색해 보았다. 그러자 한동안 찾지 못했던 그녀의 영상이 쭉 나열되었다. 가장 최근에 업로드된 동영상은 약 1년 전이었다. 익명의 남자가 올린 사진과는 달리 지극히 평범한 옷을 입고, 요리를 하거나 책을 읽는 게 전부인 진부한 영상이었다. 가끔씩 비추어지는 그녀의 얼굴은 사진처럼 초췌하게 볼이 쏙 들어가긴 했어도 도무지 이상한 옷을 입고, 이상한 일을 하게 됐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순수한 얼굴이었다. 댓글은 모두 막혀 읽거나 쓸 수 없었다. 최근 영상뿐 아닌 지금까지 업로드된 모든 영상의 댓글 기능은 막혀 있었다. 그나마 보이는 거라곤 조회수뿐이었는데, 처음엔 꽤나 높았던 조회수도 시간이 지날수록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영상이 업로드되는 주기도 길어졌다. ’첫 필라테스 후기+ 성수동 카페 탐방 브이로그‘라고 길게 적혔던 제목도 점점 ’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 등으로 짧아졌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럼 유튜브와 방송과 다른 모습을 보였던 걸까. 동생이 방송을 켜던 플랫폼에 들어가 똑같이 ‘지혜의 일상’이라 검색해 보았다. 그러나 화면 위로 떠오르는 건 ‘일치하는 항목 없음’ 뿐이었다. 1년 전 동영상 만으로는 도무지 동생의 행방을 어림잡을 수 없었다. 결국 불현듯 떠오른 지혜의 존재는 내 하루를 전부 망치기에 충분했다. 다른 일을 잡으려 마우스를 휘적거려도, 코가 찡해질 때까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켜도 내 손은 자꾸만 지혜의 이름을 적어 내렸다.

  “지현 씨, 곧 퇴근시간인데 아직도 스케줄 못 잡았어? 어휴. 아니야. 그래도 일단 되는대로 잡아봐. 뭐든 되겠지. 나는 먼저 퇴근할게. 그럼 주말 잘 보내.”

  그가 재킷을 걸치면서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나는 그가 사라졌음을 확인한 후에야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떨어지면 즉사할 것 같은 난간에 기대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를 켠다. 깊게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빨아들인 후 몸 안에 한 바퀴 돌도록 숨을 쉰다. 연기를 다시 내뿜어낸다. 이 행동이 반복이 될수록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지혜의 얼굴이 조금은 잊혀지는 듯했다. 난간 아래를 바라보자니 생각보다 회사 옥상은 꽤나 높은 곳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멍하니 바닥을 응시하며 꽁초가 되어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와버렸다.

  “정말…… 죽었을까? ”

  할머니의 유골함이 있는 곳에도, 예전에 할머니와 셋이서 살던 집에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모든 sns가 차단된 이후로 당연히 안부 인사 하나 주고받지 못했다. 굳이 그녀의 닉네임을 외우는 편은 아니었기에 다시 그녀의 방송을 찾을 수도 없었다. 정말 그녀가 죽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죄책감과 슬픔에 매일밤을 시달릴 것 같았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할머니는 어떤 방법으로 상황을 대처했을까. 만약, 나를 보고 있다면 작은 속삭임이라도 좋으니 내게 건네줬으면 좋겠다.


  “솔직히 방송하는 게 개꿀이긴 해.”

  한호 오빠는 말을 툭 던져버리는 버릇이 있었다. 자칫 누가 들으면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전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그 말에 무어라 답변을 할 수 없는 건, 꼭 그 뒤에는 반박 불가능한 근거가 따라왔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봐. 10대 시절에 6년을 공부하고, 힘들게 대학에 들어가. 그럼 거기서 억에 달하는 돈을 쏟아부으면서까지 또 공부해. 요즘엔 석사만으론 취직이 힘들다고 하니 대학원까지 가려고들 하잖아? 어렵사리 회사에 취직하면 엄청 혼나고, 숨 막히는 억압 속에서 꾸역꾸역 돈을 버는데 그것만으론 쉽게 돈을 모으지도 못해. 얼마나 안타까워. 투자대비효율이 엄청 떨어지잖아. 그런데 이건 좀 젊을 때, 바짝 벌면 당장 먹고사는 데 지장 하나 없고, 꾸준히 모은 돈으로 은퇴한 뒤에 사업을 하던 자영업을 하던 빚도 많이 안 낼 수 있고. 나는 늘 다른 사람들이 불쌍하게 느껴지더라.”

  나르시시즘. 그는 본인이 도와주거나 해결할 수 있는 것 하나 없으면서 저렇게 입을 나불거렸다. 한호 오빠의 말을 듣자마자 떠오른 건 언니였다. 분명 언니가 그의 말을 듣는다면 얼굴을 붉게 달아 올리며 온갖 욕설을 퍼부었을 것이다. 네가 뭘 아냐며. 나는 언니처럼 할 수 없었기에 그냥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동의를 하지 않는 것 또한 아니었다. 정말 내 얼굴이 주름이 생기기 전에 바짝 벌어두면 충분히 은퇴를 하고도 무언가를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계절이 두 번 바뀔 동안 할머니의 빈소를 찾아가지 못했다. 아니, 안 갔다. 그날, 언니를 등지고 정류장에 향하기까진 그녀가 혐오스럽고, 밉고, 죽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어두운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있자니 왜 그녀가 그런 말을 했을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어차피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남은 가족이라곤 서로밖에 없는 건 본인도 아는 사실일 텐데, 그녀는 내가 이러고 사는 걸 본인도 아는지 왜 물어봤던 것일까. 질문은 꼬리의 꼬리를 물다가 결국 해답에 도달하지는 못 했다. 그러나 하나 깨달을 수 있던 건 정말 가족 중 누군가가 내 모습을 본다면 부끄럽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곧장 침대에서 일어나 옷장 문을 열었다. 그리고 옷장 한편에 걸려있는 하녀 옷, 짧은 기장의 간호사 옷, 아슬아슬하게 가슴만 가려지는 옷 등을 꺼내 침대 위에 쌓아 올렸다. 당장이라도 갖다 버려야겠다는 생각은 잠시, 이 옷을 순간에는 순식간에 시청자 수가 늘었다는 사실이 번뜩이자 옷가지를 꺼내는 손이 멈추어버렸다. 그래…… 한호 오빠 말처럼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 두어야지…… 결국은 쌓아 올려둔 옷들을 다시 옷장 안에 집어넣었다.

  “할머니, 미안해. 당분간은 할머니를 보러 못 갈 것 같아.”


  할머니의 빈소를 가지 않을 동안, 꾸준히 방송을 켰고, 방송을 하지 않을 동안에는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편집했다. 햇수가 거듭될수록 시청자는 늘어났고 후원받는 돈의 액수도 점점 커져갔다.

  ‘빨리 돈을 모으면 그때, 할머니를 보러 갈게.’

  나는 음성 메시지와 함께 떠오르는 돈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빨리 돈을 모으고, 빨리 은퇴를 하고, 멀끔한 옷차림으로 할머니의 앞에 서겠다고…… 머릿속은 온통 돈밖에 없었다. 유튜브 광고도, 인스타그램 후원도 모두 거절하지 않고 받는 족족 수락하니 통장에 돈이 차곡차곡 쌓이는 걸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광고 문의를 받았던 책 한을 리뷰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기지개를 켰을 때였다. 갑자기 울린 스마트폰 화면 안에는 또 광고 문의 연락이 와 있었다. 익명의 누군가가 보낸 메시지는 한 링크가 걸려 있었고 그 밑에 적힌 광고 수익은 나도 모르게 입을 떡 벌어지게 했다. 이 정도면 언니의 연봉 수준의 돈이었기에 링크를 타고 들어가기도 전에 하겠다는 답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질문을 할 때마다 익명의 누군가는 친절하게 답장을 해주었고, 인증 사진까지 보내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가 부탁한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냥 세 달 동안 다이어트 보조제를 먹고 주마다 달라지는 몸매 사진을 찍어 올리면 되는데, 그들이 보내주는 옷을 입고 찍어야 하는 것. 오롯이 그게 전부였다. 한 달에 삼천만 원. 세 달 동안 하면 약 일억에 달하는 돈이 통장에 꽂힌다. 나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그들이 보낸 링크를 타고 들어가 보조제와 옷을 받을 집 주소를 적었다. 세 달이 지나고, 정말로 통장엔 7,700만 원이라는 돈이 들어와 있었다. 일부 수수료와 세금을 제외한 돈이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입가에 번지는 미소는 지울 수 없었다. 나는 그 돈으로 할머니의 빈소에 갈 때 입을 정장 한 벌과 구두 한 켤레를 샀다. 쇼핑백을 양손에 들고 백화점을 나서려고 할 때, 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잠시 구석 한편에 쇼핑백을 내려놓고 메시지를 보내려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 그런데 메시지를 보낸 계정은 탈퇴하고 없는 계정이란 안내가 떠올랐다. 이상하게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그제서 돈을 입금한 계좌를 확인하니 입금자 이름에는 신원 불명이라고 적혀 있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가슴이 쿵 내려앉지만 돈까지 받았으니 별일 없겠지, 라며 신경 안 써도 되겠지,라고 중얼거리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우편함에 꽂힌 한 편지를 보았을 때, 다시 그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떨리는 손으로 편지 봉투를 열어보았다. 편지지 안에는 직접 수기로 쓴 글씨로 어서 메일을 확인하라고 했다. 곧장 컴퓨터 앞에 앉아 그가 시킨 대로 메일창을 열었다. 도착한 메일엔 첨부 파일이 하나 있었고, 파일을 열어보자 세 달 동안 휴대전화로 활동한 기록과 집을 돌아다니며 찍혔을 법한 내 알몸 사진 수십 장이 떠올랐다. 수많은 사진과 달리 밑에 텍스트는 짧고 간결하게 적혀 있었다. 스마트폰 기록은 한 장 오 백만 원, A파일에 있는 사진은 한 장 당 천만 원, B파일에 있는 사진은 한 장 당 오 천만 원. 아마 그만큼의 돈을 지불하면 사진을 지워준다는 말 같았다. 그러나 그 사진들을 모두 지우는데 총 얼마나 드는지 계산할 정신 따위 없었다. 신고를 한다면 한 장도 안 거르고 모두 커뮤니티와 팬들에게 보낸다고 하니 신고를 할 수도 없었다. B파일엔 내 알몸 사진이 잔뜩 있었는데 그들에게 받은 7,700만 원으로 사진을 모두 지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할머니…… 미안해.’


  지혜의 근황을 물어본 익명의 게시글도 화력이 오래가진 않았다. 일주일 동안은 글이 베스트 게시판까지 올라 사람들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혜에 대한 주제는 흥미가 점점 빠져갔다. 그녀가 어디에 있을지 추론하는 댓글도 모두 도움 안 되는 추측뿐이었고, 이젠 그 마저도 달리지 않았다. 할머니의 빈소를 찾아가도 여전히 그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꾸준히 그녀의 유튜브와 방송 플랫폼에 들어가 영상이 올라오는지, 방송을 켰는지도 확인하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이제는 정말…… 그녀가 죽었다고 결론을 지어야 하는 걸까.

  그저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갑작스레 반차를 내고 회사를 나온 건. 발을 할 발짝 디딜 때마다 찰박이는 소리가 났고, 훤히 드러난 살갗은 끈적거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럼에도 도무지 회사에 틀어박혀 있을 순 없었다. 목적지 없는 발걸음이 닿은 곳은 예전에 지혜랑 할머니와 함께 살던 집이었다. 작은 빌라였지만 셋을 감싸주기에 충분했던 집. 지금 불이 켜진 저 거실엔 새로 들어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있겠지. 어쩌면 우리가 나가고 입주한 가족은 이미 이사를 가고 또 다른 새 가족일 수 있겠다. 한 세대당 0.4대가 가능하다던 협소한 주차공간도, 건물 뒤편에 붉은 페인트로 SEX라고 적힌 낙서도 변한 것 하나 없었다. 오롯이 변한 거라곤 이제 남은 가족이 하나 없다는 나뿐이었다. 더 세차게 빗줄기가 우산을 두드렸다. 갑자기 울린 스마트폰은 호우주의보를 시끄럽게 경고했다. 나는 우산을 고쳐 쓰지도, 알람을 끄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먼저. 내가 먼저 해야 할 것.

  “사실 너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혹시 이게 내가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연신 피어오르는 질문에도 이상하게 가슴이 후련해진 듯했다. 나는 어깨가 잔뜩 젖은 것도 모르고 실없이 웃기만 했다. 자동차 클락션이 울리고 나서야 이 미친 웃음을 멈출 수 있었다. 그리고 불현듯 떠오른 목적지를 향해 다시 하릴없이 걷기 시작했다.


  여전히 공터 한가운데에는 재개발 반대 슬로건이 걸려 있었다. 이미 재개발은 무산되었지만 의심 많은 주민들은 아직까지 슬로건을 수거하지 않았다. 덕분에 공터 곳곳에는 깃발과 슬로건 따위로 가득 차버렸고, 아이들의 발길이 끊기게 되었다. 어릴 적, 나와 지혜는 주말마다 이 공터에 와 두꺼비집을 만들었다. 지혜는 그 주에 속상한 일이 있거나 재밌는 일이 있으면 대충 찢은 노트에 적어 그 두꺼비 집 안에 숨겼다. 나는 매번 그걸 보고도 모른 척했다. 어차피 다시 집으로 가면 할머니한테 말을 할 게 뻔했으니. 그런데도 나는 지금 이 모래밭을 파고 있었다. 그냥 죄책감. 떠오르는 이유는 죄책감 때문이라는 것 말고는 없었다. 빗물에 젖은 모래를 퍼올리면서 손톱에 모래가 끼고, 손가락에는 상처가 생겼지만 그냥 연신 땅을 팠다. 그리고 무언가 손에 걸리자 나도 모르게 짧은 신음이 나왔다. 더 깊게 땅을 파자 작은 플라스틱 상자 하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침을 한 번 크게 삼키고 상자를 얼어 안을 확인했다. 그 안에는 여러 번 접은 편지지 하나가 담겨 있었다. 나는 편지지를 펼쳐 적힌 글씨를 천천히 읊어보았다.


  ‘안녕, 언니. 언니가 이걸 찾을 수 있을지 도박을 걸어보기로 한 건 언니를 마지막으로 본 지 2년이 지난 뒤야. 만약, 이 편지를 찾았다면 나를 찾아줘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그동안 언니가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나는 또 어떻게 살았는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을 사이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차마 그러지 못할 것 같았어. 어릴 적부터 언니는 언니만의 자본이 있었잖아. 똑똑하고, 현명하고, 냉정한 언니만의 자본. 그건 언니가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선물이야.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박지현만의 무기. 반면에 내가 받은 선물은 매력자본이라고 생각해. 가끔 이렇게 방송을 켜서 시청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유튜브 영상을 올리면서 내 매력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박지혜만의 자본이더라고. 언니랑 했던 약속은 어기지 않았어. 벗방 따위는 절대 하지 않았거든. 나는 내 풍만한 가슴도, 잘록한 허리도, 봉긋한 엉덩이도 모두 사랑했지만 이게 남들에게 보이는 순간 더 이상 이것들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았거든. 그만큼 나는 내 몸을 할머니처럼, 언니처럼 진심을 다 해 사랑했어.

  그런데 내가 돈에 너무 눈이 멀었던 탓일까, 어쩔 수 없이 내가 보이고 난 뒤로는 도무지 내가 나 같지 않더라고. 아무리 시청자들과 시답잖은 말들을 주고받아도, 재미없는 일상을 재밌게 꾸며내 편집을 해도 그저 내 삶이 한심하게만 보였어. 거액의 돈을 지불해야 내 알몸 사진을 지워준다는 협박범들도 내가 연락두절이 되니까 딱히 사진을 올리거나 더 협박을 하는 문자를 보내진 않더라고. 사실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내 삶에만 신경을 쓴 게 아닐까 싶기도 해. 그래도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오진 않았어. 차마 할머니를 보러 갈 수는 없겠더라고.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방송과 유튜브로 번 돈을 모두 기부하고 절에 들어가기로 했어. 전화가 안 되는 건 아마 내가 이 편지를 공터에 숨기고 스마트폰을 박살 내버릴 거라 안 되는 것일 거야. 이걸 읽는다고 해도 나를 찾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적어도 내가 더 멋진 사람이 되고 나면… 그때 언니가 나를 찾았던 것처럼 내가 언니를 찾으러 다닐게. 기다려줄 수 있지? 나는 늘 언니가 부러웠고, 아직까지도 언니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그리고 할머니도 언니를 진심으로 사랑했어. 그것 만큼은 꼭 알아줬으면 좋겠어.’


  글씨가 잔뜩 번졌더라도 지혜의 필체라는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녀의 편지는 도무지 개미가 쓴 글이라고 여기지 못할 편지였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멋있는 사람일지 몰랐다. 미개한 개미가 아닌 똑똑하고, 매사에 열심인 개미.

  그래, 아무리 차가운 얼음이라도 뜨거운 눈물이 위에 떨어지면 언젠가 녹아 없어지잖아. 그러니 박울보는 박얼음보다 강한 사람이었을 거야. 그래서 나는 할머니처럼 너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던 거야. 내가 녹아 없어질까 두려웠던 거지. 나는 너보다 한없이 약해빠진 사람이니까. 그런데 다시 네가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내 몸이 전부 녹아 없어지더라도 너를 꼭 껴안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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