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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May 01. 2023

달콤하게 속삭이는 목소리



  *스토리 전개를 위해 소설에 제가 있는 봉사 단체의 선착순 신청 방법을 따오긴 하였으나 본 소설은 특정 단체나 인물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음을 밝힙니다. 또한 제가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도록 훌륭한 작품 ‘종의 기원’을 출판해 주신 정유정 작가님께 진심을 다해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또다시 귓가에 맴도는 환청. 그녀는 달콤한 유혹을 속삭이며 내 손을 떨도록 만들었다. 주먹을 꽉 쥐면 달콤함의 척도는 더욱이 높아졌다.

  “어차피 보는 눈은 없어. 그러니 손을 뻗어! 그리고 그걸 주머니 안에 넣어! 네가 아무런 표정만 안 지으면 돼. 그냥 평소대로 가던 길을 가. 그럼 네가 행복할 수 있어. “

  멀리서 보더라도 루이비통 로고가 박힌 지갑 안에 현금이 가득 들어 두툼하게 올라와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말에 통장 잔고가 불현듯 떠올랐다. 학자금 대출부터, 생활비 대출, 부모님의 병원비…… 빚을 갚으려고, 병원비를 마련하려고 큰 컵라면 하나마저 사치라 생각해 고개를 가로저었었다. 눈을 질끈 감아도 떨리는 손은 어쩔 수 없었다.

  “뭘 꾸물거려? 이러다 누가 오겠어. 그저 허리를 숙이고 손만 뻗기만 하면 돼! 그게 어려워? ”

  “닥쳐……”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심장이 뛰는 속도에 맞춰 헐떡거리는 숨소리도 비례해 빨라졌다. 몸을 돌려 일부로 길을 돌아가기로 했다.

  “병신.”

  나도 모르게 고개가 떨어진 지갑을 향해 돌아갔지만 입술을 꽉 깨물어 끓어오르는 욕구를 참아냈다.

  스마트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봉사 활동 신청 시간까지 10분 남았다는 알람이었다. 알람을 끄고 제자리에 서 신청 플랫폼에 미리 로그인을 해두었다. 하릴없이 걷던 발걸음의 보폭을 줄이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골목길에 들어서자 유일하게 거리를 밝히는 가로등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밑에는 쓰레기 더미가 잔뜩 쌓여 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신청을 할 수 있는 정각까지 3분 남짓 남았다. 이제 스마트폰을 꺼내 플랫폼에 미리 접속해 정각이 되기까지 스마트폰 상단에 떠오른 시간만 빤히 바라보았다.

  “어이, 할멈! 똑바로 안 다녀? 가뜩이나 길도 좁은데! 어휴, 씨발. 여기로 온 내 잘못이지.”

  갑작스레 누군가의 높아진 언성에 고개를 돌려보았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수레에 쌓아둔 폐지가 떨어져 허겁지겁 줍는 할머니와 검정 세단이 있었다. 세단에 탄 남자는 한 번 고함을 지르곤 다시 창문을 올려 가던 길로 향했다. 나는 할머니를 향해 가려다 문득 들려오는 환청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굳이 가야 해? 당장 2분밖에 안 남았어. ”

  “……“

  그녀의 말대로 스마트폰 화면 위로 떠오르는 시각은 5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분명 지금 하지 않으면 신청 인원 안에 들지 못할 거야. 정 신경이 쓰이면 신청을 한 뒤에 가도 되잖아? ”

  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러나 연신 할머니를 향해 시선이 돌아갔다. 그리고 결국 스마트폰을 주머니 안에 집어넣고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선우야, 너는 성악설과 성선설 중 뭐가 맞다고 생각해? ”

  그의 말에 나는 볼멘소리만 낼 수밖에 없었다. 사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를 바라보는 반짝이는 그의 눈빛은 필히 내가 답변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성선설에 더 가깝지 않을까? 영화나 다큐멘터리 등을 보면서 슬프거나 안타까운 장면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되잖아.”

  “그건 네가 선해서가 아니라 동정심이 깊은 거 아니야? ”

  예상치 못 한 그의 답변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난 오히려 반대야. 솔직히 한 번 즈음은 누군가 죽길 바랄 때가 있잖아. 또 술자리나 식사 자리에서 남을 헐뜯는 주제가 시작되면 조용히 있다가도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인간의 본연은 악에서 시작이 되었으니 그런 게 아닐까 싶어.”

  “너는 지금까지 진심으로 죽여버리고 싶은 사람이 있었어? ”

  “음… 아직까지 진심으로 누구를 죽여버리고 싶은 적은 없어,”

  “다행이네. 범죄자가 되는 걸 면하게 돼서.”

  그가 말했던 것처럼 나 또한 그와 반대였다. 사실 나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죽여버리고 싶었다. 내 양 어깨에 짐을 가득 얹은 것도 모자라 집도, 돈도 모두 앗아가고 엄마를 병원 침대에 수개월간 누워있도록 한 장본인. 가끔은 그의 옆구리 깊은 곳에 칼날을 쑤셔 박거나 얼굴이 파랗게 질릴 때까지 목을 조르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말없이 링거를 꽂고 누워있는 엄마를 보면 그 충동은 더 짙어졌다.


  결국 아무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오빠, 이번에 같이 못 가서 너무 아쉽다. 다음엔 꼭 같이 가자.‘

  연락이 없을 줄 알았던 정아에게서 문자가 오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응. 다음엔 꼭 성공해서 같이 즐거운 시간 보내자.’

  이걸로 오가는 문자는 끝이라 생각해 화면을 끄고 침대 위로 몸을 내던졌다. 그런데 다시 울린 스마트폰에 다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번에 끝나고 다 같이 회식 한 번 가기로 했는데 오빠도 올래? ‘

  미리 보기로 떠오르는 그녀의 제안에 쉽사리 문자를 읽지 못했다.

  “왜 망설여? 이번에 봉사에 가고 싶었던 거, 정아가 보고 싶어서도 있잖아. 끝나고 잠시 보면 좋잖아? “

  그녀에게 답장을 보내지 않고 괜히 SNS나 인터넷 기사 따위를 뒤져보았다. 글씨는 쉽게 읽히지 않았지만 어수선한 화면은 복잡하게 엉킨 머릿속을 지우기에 알맞았다. 그리고 화면이 완전히 멈추었을 때, 그녀에게 보낼 최적의 문장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니야. 그날 같이 간 사람들이랑 피드백 나누면서 시간 보내는 게 훨씬 좋지. 나는 다음에 가도록 할게.‘

  “너 미쳤구나? ”

  “참여하지도 않은 내가 불쑥 나타나면 오히려 그게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잖아.”

  환청을 들려주는 그녀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이어지는 정아의 답장은 없었다.


  미친 건 무엇일까. 단지 나는 피해 덩어리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인데. 물론 아무도 내 노력을 알아주진 않았다. 그렇다고 생색을 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면 결국 내 손에는 먼지 한 톨 쥐어지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선한 걸까? 아님 텅 빈 내 손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나는 악한 걸까?

  “아니, 너는 그냥 병신이야.”

  “너의 말을 듣는다면 내 손에 뭐가 쥐어지는데? ”

  “적어도 먼지 정도는 쥐어지겠지.”

  “매번 내게 속삭이는 너는 누구야? ”

  “그럼 너는 누군데? 스스로 답해봐.”

  “씨발, 지금 내가 말장난하는 걸로 보여? “

  “나름 성의 있는 대답이라 생각했는데 네가 보기엔 아닌 것 같네.”

  “죽이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

  “그럼 죽여. 그래야 네가 행복하다면.”

  “생각을 좀 더 해보고.”


  “사랑해.”

  “응. 나도 사랑해. 그것도 아주 많이.”

  정아의 웃음은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했다. 다만, 그 환한 빛이 향하는 곳이 내가 아닐 뿐. 그럼에도 그녀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만족을 느낀다는 내가, 이렇게까지 좆같을 수 없다.

  “이게 네가 원한 건가? ”

  “우리 나중에 다시 얘기할까? 지금은 날 내버려 둬.”

  정아와 팔짱을 끼고 있던 남자가 불쑥 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정대형이라고 합니다.”

  나는 잠깐동안 멍하니 그의 큼지막한 손을 바라보다 그 손을 맞잡았다.

  “네, 한선우라고 합니다.”

  그의 손을 잡자 차가운 바람이 살갗에 와닿는 듯했다. 팔에는 닭살이 돋아 있었고, 털은 곤두세워져 있었다. 묘한 패배감이었다. 정말 환청의 말대로 이게 내가 원했던 결과일까. 멋쩍은 웃음으로 인사를 마무리지었지만 가슴 언저리에 박힌 무언가는 쉽사리 빠지지 않았다.


  본가에 다녀왔다. 서울역에 도착했음에도 여전히 배가 더부룩해 벨트를 살짝 느슨하게 풀었다. 야외 흡연장으로 가 담배를 꺼내려는데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러 헛구역질이 나왔다. 코를 막고 옆을 돌아보니 다 해진 옷과 덥수룩한 수염 위에 흰 가루가 잔뜩 낀 남자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어눌하게 무어라 중얼거리며 내게 두 손을 모아 뻗고 있었다. 보아하니 돈을 달라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결국 지갑에 딱 한 장 남은 오 천 원 권 한 장을 꺼내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는 연신 허리를 숙여 감사하다고 말하곤 어디론가 잰걸음으로 사라져 버렸다.

  “풉”

  그녀의 목소리였다. 애써 모른 척하며 담배를 입에 물었지만 다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뭘 그렇게 웃지? ”

  “그냥.”

  불을 붙이자 담배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서 소름이 끼치는 그녀의 목소리를 묻어버릴 수 있었다. 허공을 향해 연기를 내뿜으려 하는데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오 천 원을 쥐어준 남자였다. 그는 흡연구역으로 들어와 새 담뱃갑 종이를 뜯으며 실실 웃고 있었다. 그러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내게 검지를 치켜세웠다. 치켜세운 손 손바닥에 오 백 원짜리 동전이 꼭 쥐어져 있었다. 갑자기 정신이 아찔하게 핑 도는 듯했다. 내가 무얼 한 거지?

  “모르겠어? 너는 그냥 저 사람의 쾌락을 도와준 거야. 삶을 도와준 게 아니라니까? ”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꽉 쥔 주먹을 펴지 않았다. 분명 온몸에 힘이 쫙 빠져나갔음에도 주먹만큼은 힘이 잔뜩 들어가고 있었다. 뭔가……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아직도 네가 착한 사람이라 생각해? ”

  집에 오자마자 소파 위에 누운 여자의 형태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녀는 한 팔로 머리를 받치며 나를 비아냥거렸고 킬킬거리며 웃고 있었다.

  “몰라.”

  “이젠 착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네가 정말 선한 건지, 멍청한 건지. “

  “그래. 모르겠어. 그냥… 죽고 싶어. 아니, 살고 싶어. 그럼에도 다 죽여버리고 싶어. 그런데 죽이고 싶지 않아. “

  “선택해. 어쩔 수 없어. 네 몸은 단 하나잖아.”

  순간의 충동이었다. 그녀의 우리 올라 타 두 팔로 목을 조르는 것은. 킬킬거리던 그녀의 입은 어느덧 컥컥거리며 샛노란 혓바닥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그냥 나였으면 좋겠어. 그러니……. 간섭하지 말고 제발 죽어줘.”

  그녀의 얼굴이 천천히 파랗게 질려갔다. 그 얼굴 위로 눈물이 툭, 떨어졌다.

  “그냥…… 이렇게 사는 게 나인 걸 어떡해……“

  덧붙여지는 환청은 없었다. 그저 고요한 정적이 나를 반길 뿐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다시 한번 고민을 해본다.

  ‘나는 선한 사람인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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