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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May 05. 2023

Horizon

어버이날 맞이 창작 소설



  “윤정아, 학교 잘 다녀오렴. 차 조심하고.”

  “응. 다녀올게.”

  윤정의 주머니 안에 초콜릿 바 두 개를 넣어주었다. 그녀의 얼굴 위로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이내 한 숨을 쉬며 다시 주름을 펴냈다.

  “나 이런 거 안 줘도 된다니까.”

  “무슨 말이야. 아침은 꼭 챙겨야지.”

  현관문이 닫히는 동시에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목도리라도 하고 가지! …… 가버렸네. “

  괜스레 신발장 앞에 서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퀴퀴한 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제서 나는 가스레인지에 찌개를 올려두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서둘러 부엌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남편이 불을 끈 채였다. 냄비에는 연기가 피어올라 목을 찔러댔다. 연신 기침을 콜록이다 남편이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쉬었다.

  “요즘 왜 그래.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여.”

  “착각이야. 전혀 그렇지 않아. 이건 그냥……”

  말을 이어가려다 문득, 지난주 일이 떠올랐다. 식당을 예약했는데 16시와 6시를 착각해 예약시간보다 늦게 가 2주간의 기다림이 보기 좋게 무산됐었다. 말고도 통화를 하면서 스마트폰을 찾거나 리모컨을 손에 쥐고 리모컨을 찾으러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요즘 잠을 잘 못 자서 그래. 좀 쉬면 괜찮아질 거야. 이제 출근하지? ”

  대충 얼버부리며 넘기는 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남편의 눈에는 의심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는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넥타이를 고쳐매며 입을 열었다.

  “연말이라 그런지 이래저래 할 일이 좀 많네. 아마 오늘은 좀 늦게 들어올 것 같아. 밥 먹고 들어오니 기다리지 않아도 돼. “

  “그래도 밥은 같이 먹어야지.”

  “한 끼 같이 못 한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뭘 그래.”

  그가 국자를 들고 새카맣게 타버린 된장찌개를 뒤적거렸다. 탄 냄새에 고개를 가로젓더니 냉장고에서 우유와 시리얼을 꺼냈다.

  “빨리 다른 거 해주면 되는데, 그거 먹지. “

  “요즘 부담되게 왜 이럴까? 난 시리얼의 단 맛이 녹아든 이 우유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처음에 씹히는 바삭바삭함과 뒤에 눅눅해도 달콤한 우유를 한 번에 들이켜면 최고의 아침식사가 된다고.”

  숟가락 한가득 시리얼을 퍼올려 입안에 넣는 모습에 이상하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더군다나 바삭거리며 시리얼을 씹어대는 그의 입은 남편을 더욱이 못생겨 보이게 했다. 차마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앞치마를 벗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문 너머로도 거슬리는 소리는 끊기지 않았다. 마지막에 우유를 들이켜며 캬, 하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찌푸렸던 인상을 다시 펼 수 있었다.

  “나 갈게.”

  남편이 말했지만 일부로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도 두 번은 말하지 않았다.


  솔솔 잠이 오는 건 무엇 때문일까? 차가운 몸을 녹이는 보일러 때문일까, 창가로 스며드는 따스한 겨울의 햇빛 때문일까…… 아님 머릿속을 맴도는 이상한 망상들에 지쳐서일까. 그렇다고 잠에 들고 싶지는 않았다. 눈을 감으면 또다시 피어오르는 악몽이 땀으로 온몸을 적시고, 입술을 바짝바짝 마르게 했으니까. 화재, 살인범, 지진, 폭우, 쓰나미, 코로나, 폭탄 테러. 이번엔 또 어떤 망상 속 사건이 나의 가족을 몰살시킬까.

  연신 내려오는 눈꺼풀을 올리려 뺨을 두들겨 보았다. 소파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기도, 창문을 열어 차가운 바람을 살갗에 닿게 하여도 몽롱한 기운은 쉽사리 사라지질 않았다. 눈이 깜빡일 때마다 여태까지 악몽이 섬광처럼 반짝였다. 그럼 내 팔에는 닭살이 잔뜩 돋았고 나도 모르게 윤정과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정은 전화를 받는 대신 문자로 안부를 알렸다.

  ‘나 지금 학교야. 전화 못 해. 문자로 말해.’

  반면에 남편은 신호가 두어 번밖에 울리지 않았음에도 전화를 받아냈다. 그는 바쁜 듯 한 층 빨라진 목소리로 왜 전화를 걸었냐고 물었다. 막상 그가 전화를 받으니 할 말이 떠오르질 않아 볼멘소리를 내며 무어라 말을 할지 떠올렸다.

  “밥은 먹었어? “

  고작 떠오른 말이라곤 고작 이게 전부였다. 그는 대답 대신 깊은 한숨을 수화기에 내뱉었다. 시계를 보자 이제 오전 열 시 삼십 분을 가리켜고 있었다.

  "정말 그게 용건이야? ”

  “어? 어어... 응. 아침을 부실하게 먹었으니.”

  “응. 집 나오면서 시리얼 먹었어. 고마워. 여보. 물어봐줘서. “

  “응. 나도 고마워.”

  통화 종료음마저 무심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가족이 잘 살아있다는 사실에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덕분에 몰려오던 잠이 좀 깬 듯했다.

  옆에 놓인 리모컨을 들어 티브이를 켜보았다. 전원이 켜지자마자 드러난 화면은 뉴스였다. 마지막으로 본 채널이 뉴스였나, 고개를 갸우뚱 기울여 기억을 더듬어 보려 했지만 어제의 기억조차 새하얀 백지였다. 그때,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한 층 더 심각한 분위기를 냈다. 떠오른 화면 위로는 지면에 큰 구멍 하나와 잔뜩 몰린 사람들이 있었다. 줄기가 얇고 잎이 뾰족하게 솟아오른 걸 보니 한국은 아닌 듯했다. 이어서 들리는 말로는 갑작스레 뚫려버린 싱크홀에 두 명이 실종되었다고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쥐고 윤정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래. 너무 과한 걱정일 거야.”

  고개를 뒤로 젖히며 소파에 등을 기대었다. 다시 잠이 솔솔 오는 듯했다. 눈을 감으면 피어오르게 될 악몽에 두려웠지만 이번엔 그냥 몸에 힘을 빼기로 했다.


  드라이플라워. 이름만 들으면 바짝 마른 꽃에 불과한데 향도, 색도 있다. 그래서 난 드라이플라워를 좋아했다. 모순 같지만 모순은 아닌. 또 어쩌면 이것조차 모순이 되는 모순. 하지만 함부로 이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아니, 윤정 엄마. 결혼한 뒤로 남편한테 꽃 선물 한 번 못 받아봤어? ”

  “설마 딸이 작은 꽃 선물 하나 안 해줬어? 원래 딸들이 그런 거 잘해주는데.”

  무심코 뱉은 말은 나를 대화의 주인공이 되도록 했다. 남을 헐뜯는 게 가장 재밌는 사람들은 숨을 쉴 작은 숨구멍조차 뚫어주지 않고 고슴도치가 될 정도로 가시 박힌 말들을 던져댔다.

  “아니, 우리는 아들이 고등학생인데 아직까지 내 젖을 만지며 잔다니까? “

  “우리는 애들이랑 야한 농담을 주고받곤 해. 애들이 성인이라 그런가, 알 건 다 아는 나이니까. 가끔 보면 아줌마들이랑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 “

  “윤정이네 집은 좀 어때? ”

  갑작스레 여러 명의 시선이 한 번에 내게 집중되니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마스크를 잠시 벗었기에 혀를 날름거리는 게 적나라하게 보일 것 같았다.

  “어…… 화목해. 굉장히.”

  “부럽네. 그게 가장 좋은 거야. 무색무취가 가장 좋다고들 하잖아.”

  “맞아, 맞아. 그걸로 행복한 가정이라면 그게 가장 이상적인 가족이지.”

  무색무취…… 드라이플라워는 무색무취가 아닌데. 절로 미소를 머금게 되는 향도 있고, 진하게 빛을 발하는 색도 있는데.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미소를 띤 윤정이 얼굴을 떠올렸다. 색도 없고, 향도 없다고 말하기엔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병연이네는 요즘 안 보이네. 무슨 일 있나? “

  생맥주잔을 벌컥벌컥 들이켜던 현진이 불현듯 물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 뒤로는 정적이 잇따라 붙었다. 모두가 서로 눈치를 보다 현진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무슨 일 있어서 그래? ”

  결국 총무인 유정이 검지를 콧잔등 앞에 세웠다.

  “요즘 너 모임에 잘 안 나와서 모를 수 있겠는데 병연이네는 당분간 안 나올 거야.”

  “아예 안 나올 수도 있고.”

  현진의 부릅뜬 눈이 더욱이 확장되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그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저 큰 눈에서 눈물을 떨어트려버릴 듯싶었다. 결국 유정이 깊게 한숨을 내뱉더니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예전에 한참 코로나가 심각했을 때, 병연이가 확진이 됐었거든. 그런데 애가 증상이 되게 심하게 나타났나 본 지 2주가 지났는데도 병원에만 있었어. ”

  “아니, 실내 마스크 해제가 된 지가 언젠데. 막상 코로나 그거, 별 거 아닌 병 아니었어? ”

  “몰라. 내가 의사는 아니잖아. 아무튼 그렇게 병원에서 괴로워하다 결국 죽어버렸어.”

  “죽었다고? ”

  “확진자였으니 장례도 제대로 못 하고.”

  나는 그들의 대화를 숨죽이고 들었다. 병연이 죽게 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코로나 확진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생각을 해보니 아들의 죽음인데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는 의문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었다. 당연히 그의 부고장은 만들어지지 않았고 과부, 고아 등 어떤 단어로도 칭해지지 않는 자식 잃은 부모는 한참 동안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 대충 소식만 들은 나는 부조금으로 50만 원을 보내주었으나 그녀는 고맙다는 짧은 말만 남겼다. 오 년 전, 그녀를 만났던 카페를 떠올렸다. 분명 그때, 그녀는 병연이 이번 중간고사에서 반 일 등을 한 사실을 자랑했었다. 부모라면 자식 자랑을 늘 이야깃거리로 삼는다고 하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세 달을 넘게 우리며 떠들고 다녔다. 그랬던 그녀가 사랑하는 자식을 잃었다는 건…… 나로선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일 것이었다.

  “자, 자, 건배나 하자. 우리 모임 영원하길 바라며. 건배! ”

  유리잔이 서로 맞닿는 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 해도 컵에 입을 대고 맥주를 마시는 순간만큼은 말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맥주가 입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서로 말이 없는 게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나는 맥주잔을 내려놓자마자 이유를 알 수 없는 떨림을 느꼈다. 이는 손을 파르르 떨리게 하기에 충분했고 연신 고개를 시계를 향해 돌리게 했다. 아마 나의 망상은 이때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정말 만약에…… 내 가족 중 한 명이 저렇게 죽게 된다면 어쩌지.


  “윤정아. 지금 시간이 두 시가 넘었어.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윤정이 집에 들어오기 전까진 잠에 들지 않았다. 아니, 잠에 들지 못했다. 마음 같아선 그녀를 데리러 독서실 앞까지 나가고 싶었지만 인상을 찌푸릴 것이 뻔해 꾹 참기로 했다.

  “나 당장 다음 주부터 기말고사잖아. 공부하고 온 건데, 나 기다리지 말고 바로 자라니까.”

  “씻고 바로 잘 거니?”

  “아니. 아까 독서실에서 못 풀었던 화학 양적관계 문제랑, 작년 수학 수능 29번 문제인 기하와 벡터 문제를 한 번씩 풀어보고 공책에 정리해 둔 생명과학이랑 한국사 일회독씩만 하고 자려고.”

  “다 끝나면 이미 해가 중천이겠는데? 널 위한 시간을 좀 가져야지.”

  “이게 날 위한 시간이야. 엄마. 엄마가 내 미래를 모두 책임질 순 없잖아.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지.”

  “그래…… 알았다. 그럼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 네 아빠랑 섹스는 다음 주로 미루어야겠네.”

  “고마워. 그런 것까지 알려줘서.”

  윤정의 방 문이 굳게 닫혔다. 그녀가 문에 붙인 ‘노크 필수!’ 팻말에는 붉은색 펜으로 별표가 진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너머로 들리는 윤정의 한숨소리는 안방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의 무게를 더 무거워지게 했다.

  “여보. 아직 안 잤어? ”

  남편이 눈을 비비며 안방에서 나왔다.

  “어. 윤정이가 방금 들어와서.”

  “공부 열심히 하는구먼. 그래. 저렇게 해야 인서울에 합격하지.”

  윤정이 자랑스럽다는 듯 방긋 웃는 남편의 미소에 나도 따라 멋쩍게 웃었다.

  “그래도 몸 좀 먼저 챙겼으면 하는데. 인서울에 합격했다고 몸이 더 건강해지는 건 아니잖아.”

  “내버려두어. 그게 윤정이 꿈이잖아. 그러니 이제 어서 가서 자자.”

  사실 잠을 못 이루는 건 밤늦도록 윤정이 집에 없으면 눈을 뜨고 있어도 악몽이 그려지기 때문이었다. 밤은 캄캄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으니 살인, 납치, 뺑소니 등이 이루어지기 최적의 환경이다. 그러니 수 만 가지의 경우의 수가 윤정을 죽였다. 나는 피를 잔뜩 흘리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지만 모든 경우의 수에서 손은 윤정에 뺨까지 닿을 수 없었다. 그녀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오면…… 나이키 운동화를 가지런하게 신발장에 두고 무거운 책가방을 내려놓으면, 나도 모르게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고 싶은 욕망이 심장을 간질였다. 그러나 그녀를 마주하는 건 오직 그 순간뿐이었다. 방금처럼 온갖 망상 속에서 죽게 되는 그녀를 보고 난 뒤, 윤정의 실체는 현관문 앞부터 그녀의 방까지, 약 10초가량의 시간이었다. 그 찰나도 되지 않는 순간은 내가 다가가기조차 버거운 시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굳게 닫힌 문을 하릴없이 바라보는 것.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취미 생활을 좀 해봐. 그게 정서 건강에도 좋고 치매 예방에도 좋다잖아. “

  취미...... 언니는 40년을 넘게 나를 봤으면서 나에 대해 아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언니. 내가 취미 생활이랍시고 뭐 한 걸 봤어? ”

  “그러니까. 뭐라도 도전하면서 찾아보라는 거지.”

  더 이상 떠오르는 말은 없었다. 사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내 심정을 이야기 한 건 그저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었던 거지, 정서 건강과 치매 예방 따위를 알려달라는 게 아니었다. 절로 나오는 한숨을 꾹 참으려 수화기를 꽉 쥐었다.

  “고마워. 조만간 한 번 찾아갈게. 잘 지내고. “

  기약 없는 약속을 건네고 통화 종료음이 울렸다.

  “엄마...... 보고 싶네.”

  머리를 한 번 훑고 지나가지도 않은 혼잣말이었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지금까지 엄마는 어떻게 한 걸까? 꿈에서라도 좋으니 정답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너무 늦기 전에 한 번이라도 물어볼걸.

  그때,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열 자리 숫자가 5초도 걸리지 않는 짧은 시간에 모두 눌린 걸 보니 윤정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청아한 잠금장치가 열린 소리가 들리고 두꺼운 현관문 너머로 윤정이 들어왔다.

  “딸 왔어? ”

  방금까지 엄마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숨기려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늘은 좀 빨리 왔네? ”

  “나 이번주 시험기간이라고 말했었잖아. 정말 딸한테 관심 하나 없구먼. “

  언제 말했더라? 사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냥 머리를 긁적이는 걸로 얼버부리며 맞다,라고 내뱉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오늘 시험 다 끝나서 좀 자려고. 점심은 안 먹을래. 이따 배고파지면 나 알아서 먹을 테니 엄마 먼저 먹어. ”

  윤정이 양말을 뒤집어 벗어 빨래 바구니를 향해 던졌다. 동글동글 말린 양말은 이내 바구니에 맞아 골인에 실패했다. 그게 화가 났던 걸까, 다른 게 화가 났던 걸까. 나도 모르게 그녀를 향해 언성이 높아진 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유를 모르겠다.

  “너 정말 왜 그래? 엄마가 싫어? 가족이 싫어? 나, 네 엄마야. 그럼 적어도 엄마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

  날카로웠던 말 끝에 닿은 윤정은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러다 혀를 몇 번 날름거리더니 윤정의 목소리도 한껏 톤이 높아졌다.

  “그럼 엄마는? 맞아. 엄마 맞아. 나 낳아주고, 키워준 엄마. 근데 나도, 아빠도 엄마의 가족인 동시에 학생이고, 회사원이고, 친구들의 친한 친구이고, 멋진 선배고, 자랑스런 후배야. 내 시간과 노력을 오롯이 가족에게만 투자하는 건 비현실적인 거야.”

  “너는 그럼 화목한 가정이 싫다는 거야? “

  “엄마. 이건 화목한 게 아니고 화목한 척하는 거야. 그대로 내버려두어도 충분히 평화롭잖아. 근데 엄마가 욕심부리는 거라고. 남들에게 더 화목한 가정으로 보이고 싶어서. “

  “남들? 맞아. 근데 그래야 네가 행복해 보이잖아. “

  ”그게 나를 더 불행하게 만들어. “

  갑자기 윤정이 방 문을 세게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또다시 멍하니 굳게 닫힌 윤정의 방 문을 하릴없이 바라만 보았다. 정말......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정답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엄마는 가족가 찌개를 먹을 때마다 가장 먼저 숟가락을 들이밀었다. 그리곤 온도가 적당하다 말하며 그 뒤로 찌개에 두 번 다시 숟가락을 집어넣지 않았다.

  “엄마 김치찌개 더 안 먹어? 완전 맛있는데.”

  한 번은 호기심을 못 참고 엄마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엄마는 젓가락으로 달걀말이 하나를 집어 들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짜서. “

  생각보다 단순한 대답에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너랑 네 아빠는 찌개만큼은 짜게 먹잖아. 나 짠 거 싫어. “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엄마의 첫 번째 숟가락질이 향하는 게 먹기 싫은 찌개라는 사실에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말없이 빨랫바구니 안에 들어가지 못 한 뒤집어진 양말을 다시 뒤집어 바구니 안에 넣었다. 사실 나도 어릴 적 교복을 빨랫바구니를 향해 던져 넣곤 했었다. 옷은 공중으로 뜨게 되면 힘없이 펼쳐져 펄럭이며 내려가는 탓에 쉽게 골인을 할 수 없었다. 윤정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내 어릴 적 모습과 겹쳐 보이니 찌푸렸던 인상이 사르르 풀어헤쳐진 듯했다. 그래. 정답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답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어떤 게 옳고, 그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윤정을 만나게 된 순간, 그 판단은 나의 숙제로 남아 평생을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었다.  

  흥분했던 가슴이 가라앉고 나는 윤정의 방 문을 살짝 두드려 보았다. 눈물을 흘렸는지 조금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짧게 왜,라는 말이 넘어 들렸다.

  “들어가도 돼? ”

  내가 문고리에 손을 뻗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막상 그녀의 얼굴을 보자 말문이 턱, 막혔다. 굵은 침을 여러 번 삼키면서 꿀꺽,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 괜히 서로를 민망하게 만든 듯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턱 끝에서 일렁이던 말을 어렵사리 꺼내 보았다.

  “윤정아. 너 오답노트 자주 쓰니? ”

  “매일 해. 오늘 저녁에도 할 계획이야. ”

  “똑똑한 우리 딸이 틀리는 건 대부분 처음 본 문제이려나? ”

  “아무래도 그렇지? ”

  “다행이네. 윤정아, 사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야. 뭐가 정답인지, 뭐가 오답인지 아무것도 몰라. 그러니…… 엄마의 오답노트가 완성될 때까지 조금만, 아주 조금만 기다려 줄 수 있을까? 딸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처럼 엄마도 열심히 공부할게.”


  윤정과 화해를 한 뒤로, 그녀는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적어 내리고 있었다. 저녁에 한다는 오답노트일까? 일단, 병연이네 사건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불안이 폭발하게 된 건 확실한 나의 오답이었다. 나의 시행착오를…… 기다려준다고 고개를 끄덕인 윤정이, 그저 사랑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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