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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Oct 06. 2022

플랫폼에 나타난 기린

 처음엔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다. 내가 걸었던 길을 돌아보면 어린 아이들이 소독차를 졸졸 따라가던 것처럼 수십 개의 눈동자들이 내 뒤를 밟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웅성웅성 거리는 목소리는 온 몸의 털들이 곤두세워질 정도로 소름이 끼쳤다. 마치 고슴도치가 된 것 같았다. 과녁이 된 내 등에 송곳같이 뾰족한 다트가 잔뜩 꽂혀버린 거울 속 내 모습이. 더 이상 게임을 원치 않은 고슴도치는 아무도 찾지 않는 깊은 숲속으로 몸을 감추고 싶었다. 포식자도, 사냥꾼도 없는 아주 싶은 산속으로…….


 “그거 다 네가 예쁘니까 질투하는 거야.”

 한동안의 잠적 후 이 말을 들었을 때, 한참을 웃었다. 빈말처럼 느껴지는 그녀의 말이 그저 웃겨서 그런 걸까? 만약 사실이라면, 내 등을 향해 다트바늘을 던진 사람들이 우스워서 그런 걸까? 내가 던진 질문들이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녀는 다시 당당하게 밖을 나가 사람들이 내뱉는 말들을 한 번 귀 기울여 들어보라고 조언해 나를 숲 밖으로 내던졌다. 여전히 내게 다가오는 시선들이 날카롭게 느껴졌다. 이대로 다시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녀가 다시 나를 돌려보낼 게 뻔했다. 나는 눈을 감고 그녀의 조언대로 시선과 말들을 느껴 보았다. 뾰족하지 않은 바늘의 뒷면, 거기엔 부러움이 가득 묻어있었다. 그녀의 말이 증명되었다.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그들이 지금껏 내게 청한 게임의 승자는 이미 나로 정해져 있던 것을 깨닫고 나니. 그날부터 난 다트를 던지려는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높게 치켜들어 깔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트를 던져보지도 않고 바로 기권을 선언했다. 나의 승리가 적립될수록 내 고개는 올라갔고 그것에 반비례해 눈은 아래를 향했다. 고슴도치는 죽고 이제 나는 고슴도치 따위 긴 다리로 사뿐히 지르밟을 수 있는 기린이라 불렸다. 내 목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나를 동경하듯 쳐다보았다. 그런 시선이 즐거웠다. 여전히 나의 등에 꽂아대는 다트는 내 자존감을 더 높여주는 주사기 같았다. 나는 일부로 사람이 많은 곳을 골라서 다녔다. 더 많은 주사를 맞기 위해, 더 농도가 짙은 주사를 맞기 위해.


 바다가 가고 싶었다. 딱히 바다가 보고 싶어서는 아니고 마침 휴가철임으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일 것 같았다. 나는 바다로 가기 위해 당장 짐을 싸 가까운 기차역으로 향했다. 플랫폼 안에는 큼지막한 여행용 가방을 들고 잔뜩 들떠있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저렇게 설레어 하는 얼굴이 곧 내게 다트를 던질 거란 생각에 애써 미소를 감추려 해도 감추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그 누구의 시선도 내 등에 닿지 않는다. 분명 뭔가 잘못 된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고개를 더 높게 치켜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내 등엔 어떤 감촉조차 없었다. 잠시 고개를 내려 이번엔 내가 남들을 향해 시선을 던져 보았다. 화목하게 대화를 나누는 가족, 애정이 담긴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연인들, 고향에서 기다리는 부모님에게 웃으며 통화를 하는 사람, 간만에 모두 모여 즐거워하는 사람들 모두 얼굴에 질투가 시선이 아닌 싱그러운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그들에게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 플랫폼에 기린이 나타났든 고슴도치가 나타났든. 길거리와는 달리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나는 거울 속에 비추어지는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곁에 아무도 없는 내 모습이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분명 나도 행복한 줄 알았는데…….


 예매한 기차가 왔지만 타지 않았다. 모두가 기차를 타고난 뒤, 텅 빈 플랫폼 안은 7월의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쌀쌀했다. 발바닥이 따가웠다. 과거에 고슴도치를 밟고 가시에 찔린 게 상처가 된 것 같다. 어떻게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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