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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Oct 06. 2022

축복받은 집

2,000

 

 길게 늘어진 능선 위로 노랗게 노을이 물들었다. 나는 창문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순식간에 기울던 해가 사라지더니 먹구름이 하늘을 가렸다. 쾅, 소리가 크게 울렸다. 이윽고 세찬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려댔다. 나는 서둘러 널어놓은 빨래를 걷으러 마당으로 나갔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기분이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드넓게 깔린 먹구름 중에 정확히 우리 집에만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서있는데 주민들이 뒤따라 나오기 시작했다.

 “워메, 이거 무슨 일인겨? 다 쓰러져가는 집에 뭔 일이라도 났나?”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바구니에 빨랫감을 서둘러 넣었다. 수건을 바구니 위에 덮어두고 뒤를 돌았다. 그런데 맨션 벽에 생긴 균열이 비를 맞으니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이걸 우쨔, 하면서 멍하니 벌어지는 틈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를 뒤로 하고 계단 앞에 있는 양동이를 하나 챙겨 계단을 올랐다.


 현관을 열고 들어오니 역시나 천장 위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아래로 양동이를 올려놓았다. 오늘 편히 자기엔 글렀구나, 비를 맞으니 노랗게 변색되는 벽지를 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빨리 돈을 벌어 이 집을 나오고 싶은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휴대전화 액정 위로 수십 개의 알림이 떠 있었다. 이렇게까지 연락이 올 사람이 없을 텐데? 곧장  알림을 확인하러 화면을 열자 내 계좌로 돈이 입금되었다는 글씨가 액정 위로 떠올랐다. 나는 입을 틀어막고 그 자리에서 망부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천장 위에서 물이 툭, 하고 떨어진 순간 만 원이 입금되었다. 나는 고개를 절로 천장으로 향했다. 에이 설마,라고 중얼거렸지만 물이 떨어지자 다시 만원이 입금되었다는 알림이 울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나는 머리를 말리는 것도 잊고 쪼그려 앉아 물 새는 천장과 휴대전화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알림음이 울릴 때마다 한 번씩 미소를 지었다. 분명, 휴대전화가 울리면 인상부터 찌푸리던 나였는데 지금은 알림이 더 많이 울렸으면 했다. 그때, 기가 막힌 생각이 번뜩여 박수를 쳤다. 나는 의자를 밟고 올라가 가위로 천장에 구멍을 하나 더 뚫었다. 구멍이 많을수록 돈이 더 많이 입금되겠지? 구멍을 뚫은 천장에 물자국이 서서히 그려지자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 물이 떨어지자 이번엔 두 개의 알림이 동시에 울렸다. 내게 2만 원이 입금 되었다. 나는 그제서 실소가 아닌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밖에서 현관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고 묻자  옆집 사는 사람이라고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넘어왔다. 문을 살짝 열자 그는 얼이 빠진 눈으로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하니 그는 소리가 다 넘어오니 조용히 좀 해달라 요구했다. 분명 늘 온화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저렇게 짜증을 내니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뒤로 물이 툭, 떨어지자 이번엔 그의 손에 쥐어진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는 액정을 한 번 보더니 거친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하, 왜 자꾸 돈이 새어나가는 거냐••••••”

 나는 그의 혼잣말에 휴대전화를 등 뒤로 하고 무음으로 두었다. 그가 돌아간 뒤로 나는 웃음을 짓지 않았다. 그러나 손에 쥔 가위는 놓을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니 천장 위에 구멍은 잔뜩 늘어나 있었다. 그리고 내 메모장에는 돈이 생기면 할 리스트들이 차례로 나열되어 있었다.


 우리 집에만 내리던 비는 아침이 밝아도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출근을 하려 집을 나서며 마주친 이웃들의 표정은 모두 퀭, 늘어져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 우산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런데 주인아주머니가 매매를 구한다는 카드를 집 앞에 붙였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까딱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이제 주인이 바뀔 테니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우산도 없어 흠뻑 젖은 그녀의 축 늘어진 어깨를 보니 가슴 한편이 시렸다.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가 뚫어둔 모든 구멍에 방수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였다. 그리고 회사에 병원을 다녀온다는 문자를 보내고 곧장 은행으로 달렸다. 그리고 어제 입금된 돈을 모두 현금으로 뽑았다. 기록된 거래내역을 보며 9개의 봉투에 돈을 분배해 담자 꽤나 봉투가 두둑해졌다. 나는 각자 집 앞에 봉투를 두고 다시 회사로 향했다.

 퇴근을 하고 돌아왔을 땐, 비가 그쳐있었다.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계단을 올랐다. 예상대로 모두 돌려받은 돈을 챙긴 모양이었다. 그런데 9명 각자 현관 앞에  빵이 담긴 바구니가 하나씩 놓여있었다. 주인아주머니가 아침으로 먹으라고 나눠준 빵이었다. 그 안에는 도와줘서 감사하다는 편지가 함께 들어있었다. 나는 각자 놓인 편지만 챙기고 발꿈치를 들어 집 현관을 열었다. 그리고 나도 바구니에 빵을 넣어둔 채 앞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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