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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Oct 06. 2022

기억의 구멍, 19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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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똑딱똑딱, 나는 시계를 향해 고개를 휙, 돌렸다. 바늘은 19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칠판에 적힌 글씨가 점점 희미해졌다. 나는 정신을 차리려 고개를 여러번 가로저었다. 그러나 멍해진 기분을 되돌릴 수 없었다. 눈이 천천히 감겼다. 나는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책상에 이마를 붙였다.

 나를 깨운 건 다름아닌 수업종이었다.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 둘씩 가방을 싸고 있었고 학원 선생님은 칠판에 쓴 글씨를 지우고 있었다. 우선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19시 45분. 나는 절로 탄식을 내뱉었다. 그때, 선생님이 나를 노려보았다. ‘윤희순, 나랑 면담 좀 하자.’ 나는 고개를 푹 숙인 뒤 짧게 네, 라고 답했다.


 꽉 막힌 상담실에 들어서자 숨이 턱 막혔다. 선생님은 의자에 앉자마자 차분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내게 말없이 손을 슥, 내밀었다. 나는 그녀의 쭉 편 손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아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가방을 열어 그 위에 성적표를 쥐어주었다. 그녀는 성적표를 받자마자 얼굴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잉크가 마르지도 않은 숫자를 몇 번을 곱씹어 읽더니 그녀는 이내 깊은 한숨을 쉬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입술이 바싹바싹 말랐다. 나는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을 피해 시선을 이곳저곳으로 돌렸다. 상담실 안에 내려앉은 침묵이 무겁게 느껴졌다. 뭐라고 답해야 하지? 마침내 이 침묵이 깨진 건 에어컨 바람이었다. 그녀는 여름인데  왜 이렇게 추워, 하며 몸을 웅크렸다. 그래도 난 여전히 말라 비틀어진 입술을 뗄 수 없었다. 그녀는 허리를 쭉 피더니 성적표를 다시 돌려주었다.

 “어차피 자느라 수업 내용 기억 하나도 못 하지? 너는 중요한 시간을 놓친 거야."


 집에 돌아오고 나서도 머리가 지끈거려 계속 관자놀이늘 지그시 눌렀다. 그러나 책상 앞에 붙여둔 수능 일정에 놓았던 펜을 잡았다. 우선, 오늘 할 공부를 정리했다. 나는 성적표를 펼쳤다. 수학이 부족하니 오늘 삼각함수를 좀 하고, 영어 단어 좀 외우고, 한국사는 별로 안 중요하니••••••.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시간이 멈춘 듯 몸을 움직이질 못했다. 그때, 선생님의 말씀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중요한 시간을 놓쳤다.' 그리고 내가 잠에서 깨고 본 시계바늘이 떠올랐다. 19시 45분. 1945•••••• 순간,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쥐구멍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숨고 싶었다. 나는 펜으로 오늘의 일정에 사선을 연신 그었다. 그리고 '매일 30분씩 한국사 읽기'를 또박또박 큰 글씨로 적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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