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오 Oct 06. 2022

은수저

 

  땀이 옷을 흠뻑 적셨다. 유진은 손에 든 휴대용 선풍기의 강도를 최대로 올렸다. 그럼에도 무더운 8월의 햇살을 감당할 수 없었다. 옆에는 가빈이 손으로 부채질을 하다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만 더 가면 아이스크림 할인점 있는데 가서 먹자.”

 유진은 그녀의 말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더운데 멀리까지 가지 말고 근처 편의점에서 사 먹자며 가빈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나 가빈은 발걸음을 머뭇거리다 이내 잡힌 손을 놓았다.

 “편의점 아이스크림 너무 비싸.”

 유진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고작 얼마 아끼려고 고생을 해야 하는지 따지고 싶었지만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땀이 연신 이마를 타고 흘렀지만 유진은 아이스크림만을 떠올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할인점에 도착하자 유진은 곧장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녀가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꺼내더니 가빈에게 이걸 사서 나눠먹자고 말했다. 가빈은 그녀의 해맑은 웃음에 음, 하고 볼멘소리를 냈다. 그리고 냉장고 옆에 적힌 가격표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에 가빈은 냉정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진은 짧은 신음을 냈다. 그러나 가빈을 설득하기엔 이미 그녀의 손에는 500원짜리 하드가 쥐어져 있었다. 유진은 그냥 혼자 먹겠다며 꿋꿋하게 하겐다즈 바코드를 찍었다.

 “정말 금수저야. 어떻게 세일도 안 하는데 아무렇지 않게 이런 걸 사 먹어?”

 유진이 금수저라는 말을 듣자 인상을 찌푸렸다. 가빈이 나는 이런 거 세일해도 사려면 손이 발발 떨리더라,라고 말을 덧붙이자 유진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돈이 부족하면 부모님께 용돈을 받으면 되지 않나? 그러나 아이스크림을 사고 휴대전화로 통장잔고를 확인하는 가빈을 보니 차마 질문을 던질 수 없었다.


 과방으로 돌아오자 수업이 끝난 동기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유진과 가빈이 들어온 것도 모르고 노트북을 두드리느라 바빴다. 유진이 헛기침을 연신 하자 그제서 동기들이 둘을 반겼다. 그때 한 학생의 시선이 유진의 손으로 꽂혔다. 그는 유진의 손에 든 가방을 가리키며 이거 명품 가방 아니냐고 물었다. 유진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아빠에게 선물 받은 거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나 주변에서 오, 금수저라고 말하는 탓에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관심을 돌리기 위해 유진은 가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가빈이는 아빠한테 받은 선물 있어?’라고 묻자 가빈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이내 과방을 나갔다. 유진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왜 또 정색이야?라는 말이 차올랐지만 미안하다는 말로 상황을 얼버무리기로 했다.


 유진의 휴대전화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액정에는 커다란 하트와 함께 엄망,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전화를 받으려 비상계단으로 들어가자 동굴에 들어온 것처럼 목소리가 울렸다. 수화기 너머론 엄마가 시험기간에 고생 많으니 용돈 넣어뒀다고 말했다. 그때, 위에서 전화를 하는 가빈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나 딸이라 부르지 마. 난 아빠가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어.”

 가빈이 수화기를 툭 끊고 내려오다 유진과 눈이 마주쳤다. 유진은 그래도 너희 아빠인데 나중에 진심으로 사과해보라는 조언을 남겼다. 그러나 가빈의 눈시울은 점점 붉어질 뿐이었다.

 “유진아,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네가 누리고 있는 것들, 다른 사람한테는 당연한 게 아닐 수 있어. 그러니 함부로 말하지 말아 줘.”

 쾅, 소리와 함께 가빈이 문을 박차고 나갔다. 서늘한 비상계단의 온도가 더 기분 나쁘게 느껴졌다. 유진은 가빈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너도 날 이해 못 하겠지만 사실 나도 그런 너를 이해 못 하겠어.”

 

keyword
작가의 이전글 기억의 구멍, 19시 45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