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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Oct 06. 2022

없던 것과 잃어버린 것


 “주민번호가 어떻게 되세요?”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물었다. 나는 현금뭉치가 든 봉투를 만지작거리며 볼멘소리만 내었다. 신분증을 줘야지만 통장을 만들 수 있다는 그의 말에 나는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었다. 남자가 깊은 한숨을 쉬더니 다시 미소를 되찾았다. 그리고 주민번호 열세 자리를 모두 불러달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억지로 올린 입꼬리에 보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그가 입술을 깨물었다. 남자는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더니 버튼을 하나 눌렀다. 그러자 내 다음 순서의 번호가 전광판 위로 떠올랐다. 그는 다음에 신분증을 꼭 지참해서 오라며 뒤에 선 다음 손님에게 인사했다. 짧게 네,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갈색 모피를 입은 여자가 팔짱을 끼고 내 뒤에 서있었다. 그녀와 옷깃이 스치자 뭐야, 라며 짜증 섞인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고개를 까딱 숙이고 문으로 향하자 커다란 거울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나는 거울에 비친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검게 칠해진 볼, 갈색 모피와 달리 다 헤져버린 옷. 더 이상 거울 속에 나와 마주 보다간 거울을 깨고 싶다는 충동이 들 것 같아 시선을 돌려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도착하니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린 아빠가 왔니? 하고 물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하고 방으로 향했다. 그도 내 손에 쥐어진 게 통장이 아닌 봉투인 걸 봤는지 말없이 작업복을 벗었다. 나는 곧장 문을 걸어 잠갔다. 그저 잠시라도 조용히 쉬고 싶었다. 그러나 침묵의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는 문을 살짝 열었다. 그 앞에는 아빠가 서있었다.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빠가 작업하다 손을 좀 다쳐서 그런데 성아가 대신 가줄 수 있을까? 대신 오늘 일당은 다 너 줄게.”

 그가 검붉은 피가 흐르는 손을 보여주었다. 나는 왜 그가 탄광 안에 있을 시간에 집에 들어와 있는지 납득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작업복을 입고 나오자 아빠가 짧게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짧은 단어 안에 여러 의미가 내포돼있는 것 같아 아니에요,라고 답해주었다.


 계단을 내려오자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늘 집 앞에 펼쳐지는 광경이지만 쉽게 익숙해지진 않았다.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 누군가 나를 불렀다. 소리가 들린 방향을 보자 김 아저씨가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성아 이제 왔나! 느그 아빠가 없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나? 저짝에 오늘 새로 온 아가 있거든? 네가 걔좀 잘 도와 준나.”

 나는 김 아저씨가 손가락 끝으로 가리킨 곳으로 들어갔다. 승강기를 타기도 전에 곡괭이질 하는 소리가 탄광 안에서 크게 울려 퍼졌다. 나는 오늘 처음 왔다니 저렇게 열정적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이어 플러그를 꼈다.

 승강기가 도착하니 곡괭이 소리가 더 빠르게 울렸다. 그 소리와 함께 울부짖는 소리가 이어 플러그를 뚫고 들어왔다. 나는 사고가 일어난 건 아닐까 싶어 탄광 깊숙한 곳으로 달렸다. 그곳엔 새로 온 남자가 눈시울이 붉어진 채 미친 듯이 곡괭이를 든 팔을 휘젓고 있었다. 자칫 잘못 다가갔다간 화를 입을 것 같아 뒷걸음질을 쳤다. 그때,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잠시 나를 멍하니 보더니 초점 잃은 눈으로 달려와 나를 와락 안았다. 놀라 그를 뿌리치자 그는 심호흡을 하더니 미안하다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나는 일단 밖으로 나가 진정을 하자며 그를 데리고 시커만 탄광 밖을 나왔다.


 담배 한 개비를 건네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까는 미안했습니다. 제 동생과 너무 닮았어서 저도 모르게……”

 나는 그에게 건네었던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어쩌다 이런 곳에 왔는지 물었다. 그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여동생의 유골이라도 찾으러 왔습니다.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요.”

 얼핏 들은 적 있었다. 몇 년 전, 실종된 여자를 찾으러 탄광에 경찰과 구조대가 온 적 있다고. 그들은 마지막 실종지인 이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시체는커녕 그녀의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철수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사건을 까맣게 잊고 곡괭이질을 다시 시작했다. 저 남자에겐 까맣게 그을린 피부보다 더 까맣고 답답한 시간이었겠지.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남자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제가 더 신경 썼더라면……우리가 가난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자책에 빠진 그를 방해하지 않으려 천천히 담배 타들어가는 소리만 내주었다.


 그때, 탄광 근처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사슴 한 마리가 탄광 밖으로 뛰쳐나왔다. 사슴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러나 검은 연기로 가득 찬 하늘에 실망했는지 눈물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이내 피를 토하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밖에서 담배를 피우던 광부들이 사슴을 보고 혀를 찼다. 그러나 남자는 떡 벌린 입을 다물질 못했다.

 “흔한 일이에요. 탄광 안에 갇힌 사슴들은 대부분 저 안에서 죽거나 빠져나오더라도 그을린 하늘을 보고 힘이 빠져 죽어요.”

 “가빈이도…… 저랬겠죠?”

 남자가 텅 빈 눈으로 말했다. 그의 말을 듣자 손이 떨렸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슴을 향해 힘없이 걸었다. 그리고 시체를 꼭 껴안았다. 나는 한참을 멍하니 서있다 침을 꿀꺽 삼켰다. 가빈, 가빈, 나는 그 이름을 여러 번 곱씹었다. 그녀에게 그 이름은 법적으로 지어진 이름이겠지? 가난했더라도 그도, 그녀에게도 신분이 있었겠지?

 나는 시체를 끌어안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질 못했다. 어쩌면 나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었다. 잃을 게 있었다는 게 그저 부러웠다.


 잠시 뒤 남자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내게 와 허리를 굽혔다.

 “동생을 찾은 것 같네요. 감사했습니다.”

 나는 그가 했던 것처럼 그를 안아주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를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솔직히 그를 품에 안은 내내 그를 이해하진 못했다. 그러나 이 따듯한 기분은 잊을 수 없었다. 우리에겐 벽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다. 서로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는 벽이 아닌 기댈 수 있는, 비빌 수 있는 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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