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오 May 13. 2023

ALZ

아주 짧은 단편



  담배 한 개비가 타기까지, 눈을 감고 천천히 시간을 세어본 적이 있었다. 종이 타들어가는 소리는 숫자를 헤아리는 손을 점점 무뎌지게 만들었고 몽롱해지는 기분은 머릿속에 아른거리던 숫자를 새하얗게 지워버렸다. 결국 난 시간을 세는 데 성공한 적이 없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이 가벼운 바람을 이루긴 어려울 것 같다고.


  노랑. 파랑. 빨강. 초록. 알록달록. 창 밖은 알록달록. 하양. 파랑. 보라. 검정. 검정. 검정. 검정. 검정. 검정. 검정. 검정. 검정. 창 안은…… 알록달록? 다시 빨강. 빨강 위를 덮은 파랑. 하양을 대면 검정과 빨강. 그 위를 떠다니는 하양. 어? 노랑도 있네? 다시 숫자를 헤아려 볼까? 하나, 둘, 셋…… 어디까지 세었더라? 어? 내가 왜 손가락을 뻗었지? 다시 하양. 내 입에도 하양. 벽과 천장은 노랑…? 누렇…?

  

  아무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내 주변은, 내가 가진 건. 퀴퀴한 나프탈렌 냄새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누군가 새하얀 솔을 들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벌떡 일어나 누구냐고 소리쳤지만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엌으로 향했다. 나는 멍하니 낯선 여자의 뒤통수를 바라보다 갑자기 저려오는 무릎을 움켜쥐었다.

  “그니까, 몸을 갑자기 움직이니까 그런 거잖아요. 그러니 가만히 앉아 계셔요.”

  저 여자는 왜 내게 명령을 하는 걸까?


  노랑, 검정, 하양…… 그 안에 환한 미소. 내게 미소를 보이는 너는 누구냐. 하양, 검정, 빨강. 참 밝게 앉아있는 넌데 왜 눈물이 나는 걸까? 다시 손을 뻗는다. 빨강. 빨강 위를 덮은 파랑. 하양을 대면 검정과 빨강. 그 위를 떠다니는 하양. 내 입에도 하양. 너의 입가에 보이는 치아의 색도 하양.

매거진의 이전글 Dry Flower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