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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Jul 20. 2023

하늘에 유성이 떨어지면

그저


  1


  옥탑방에서 보내는 첫 번째 겨울이었다. 벽도 얇고 유리창이 한 겹이라 벽 가까이 붙으면 온몸에 닭살이 곤두세워지곤 했다. 혹여 눈이 잔뜩 쌓이는 날이면 현관문을 열기 힘들어져 꼼짝없이 방 안에 갇혀있기도 했다. 전기장판을 켜고 이불을 꽁꽁 싸매어도 몸에 끈끈하게 달라붙은 찬 기운은 쉽게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전기장판의 붉은빛이 방 안을 희미하게 밝혔다. 입으로 숨을 쉬는 버릇 때문에 아침에 눈을 뜨면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고, 목소리가 반쯤 쉬어버리곤 했다. 코로 숨을 쉬는 버릇을 들이려 테이프로 입을 막고 자보기도 했지만 잠결에 테이프를 떼어내는 모양인지 아침이면 갈라진 입술에서 피맛이 났다. 이불을 여미다 벽에 붙은 보일러에 눈길이 갔다. 당장이라도 누워있던 바닥에 일어나 전원 버튼을 켤까 했다. 감당하기 힘든 가스비와 당장 얼어 죽을 수 있겠다는 본능이 머릿속에서 저울질하다 결국 이불을 더욱 여몄다.

  지구 온난화 때문인가, 이번 겨울은 유독 따듯하담 말이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관리소장이 손으로 이마를 닦으며 말했다. 거짓말은 아닌 듯했다. 그가 장갑에서 손을 빼내자마자 땀이 물처럼 쏟아져 나왔으니까. 가끔은 차라리 공장에서 잠을 숙식을 해결한다면 적어도 겨울에 춥진 않겠다고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매번 당직 근무를 신청했지만 일반 생산직은 다음날 휴무가 생기면 일을 못 하게 된다는 이유로 매번 기각되기 일쑤였다. 실제로 작업장에는 5미터 간격으로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선 사람들과 공장기계가 뿜어내는 열기로 일을 하는 동안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발바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땀이 마른 후에는 온몸에서 오한이 느껴졌고 젖었던 발바닥은 얼어붙으면서 동상의 위험이 높아졌다. 나는 땀에 젖은 옷과 양말을 벗어버리기 위해 쉬는 시간마다 여분 옷과 양말을 갈아 신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무지 추위를 견딜 수 없었다. 휴식 시간에도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연신 움직여대는 탓인지 퇴근 도장을 찍으면 쉽게 몸에 힘이 빠져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한적한 버스 안, 덜컹거리는 버스의 움직임에 맞춰 몸이 흔들렸다. 따듯하게 버스 안을 댑힌 히터 바람은 연신 눈을 감기도록 했다. 집까지 남은 정거장을 확인해 보았다. 아직 스무 정거장이 넘도록 달려야만 했다. 결국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창가에 머리를 기대어 눈을 감았다. 꿈도 꾸지 않았다. 그저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눈을 떴을 땐, 여태 공장을 다니면서 보지 못 한 광경이 펼쳐졌다. 버스는 초조해진 내 마음도 모르고 열심히 갈 길을 달리기만 했다. 마침, 다음 정류소 안내 방송이 나왔다. 나는 안내 음성이 말한 정류장을 중얼거리며 버스 노선도를 훑어보았다. 이미 버스는 종점에 가까워져 있었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면 스무 정거장이 넘도록 달려야만 했다. 우선 단말기를 찍고 버스에 내려 횡단보도를 건넜다. 다행히 희미한 불빛이 주변을 밝혔지만 차가운 냉기와 두려움을 없애기엔 충분하지 않았다. 지직, 소리를 내는 버스 안내판도 두려움을 더욱이 키우도록 했다. 마침내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 시간이 떠올랐다. 그런데 남은 앞으로 남은 시간이 75분이라는 것을 알고는 의자에 철퍼덕 앉아버렸다. 절로 나오는 한숨이 새하얀 입김에 칠해져 선명하게 드러났다. 결국 스마트폰을 켜서 집까지 향하는 택시비를 찾아보았다. 택시비는 야간 할증까지 붙어 3만 원 좀 안 되게 나왔다. 나는 이마에 손을 짚고 갈등하기 시작했다. 75분을 기다려 3만 원을 아껴야 할까, 3만 원을 내고서라도 집에 돌아가 빨리 쉬어야 할까. 찰나의 고민 끝에 택시를 호출했다. 약 5분 뒤에 택시가 도착하는 알람이 울리고 집에 도착하기까지 약 30분이 걸린다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택시가 도착하는 5분 동안 겉옷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몸을 웅크렸다. 찬 바람에 귀가 찢어질 듯 아려왔다. 만약 이렇게 75분을 기다린다면 정말 죽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자 3만 원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가 전조등을 켜고 천천히 내 앞에 섰다. 번호를 확인할 것도 없었다. 주변에 사람이라곤 나 말곤 없었고 택시가 오는 5분 동안 차가 한 대도 오지 않았으니. 문을 열고 앞 좌석에 타자 기사가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를 건넸다. 나도 그를 따라 고개를 까닥 꾸벅였다. 그는 목적지를 한 번 확인하곤 천천히 액셀을 밟기 시작했다. 도로가 텅 비었기에 과속 방지 카메라가 안 보이는 이상 그는 안전 속도보다 더 속도를 높여 달리곤 했다. 틈틈이 시사 이야기나 정치 이야기를 꺼내곤 했지만 너무 피곤한 탓에 일체 한 마디 답도 하지 않았다. 계속되는 침묵에 그도 지쳤는지 더 이상 말을 건네지 않았다. 덕분에 도착 예상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고 잠에 들기도 전에 익숙한 동네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 골목만 한 번 꺾으면 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 고라니처럼 무언가가 튀어나와 그대로 택시 범퍼에 들이 받쳤다. 좁을 골목길이었기에 사람이 걸어가는 것보다 속도가 낮아 저 정도로 나가떨어지지 않을 텐데 들이 받아친 무언가는 족히 3미터는 날아가 있었다. 기사는 황급히 비상등을 켜고 차 문을 열고 나왔다. 나도 앞에 상황을 확인해 보기 위해 안전벨트를 풀어 나와보았다. 밝혀진 전조등 앞에는 키가 170도 안 되는 한 남자아이가 신음 소리를 내며 쓰러져 있었다. 기사는 남자아이를 일으키며 괜찮냐고 연신 물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신음소리를 내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기사님, 그냥 가세요. 여기, 택시비 드릴게요. “

  택시 기사와 남자아이가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기사는 어떻게 그러냐며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나는 억지로 그의 주머니에 현금 삼만 원을 구겨 넣었다.

  “너네들은 아직도 이런 걸로 돈 버니? 엉뚱한 사람 잡지 말고 보내드려라.”

  “아저씨가 뭔데 참견이죠? 저 차에 치였어요.”

  나는 남자아이 앞에 쪼그려 앉아 그가 부여잡은 다리를 꾹 눌러보았다.

  “뭐 하시는 거예요? ”

  “보통 이렇게 누르면 말도 못 할 정도로 고통스러울 텐데, 넌 아무렇지도 않네? 완전 초짜구만. 아저씨, 신경 쓰지 마시고 어서 가세요.”

  내가 어서 가라고 손짓하자 기사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택시 안으로 들어갔다. 전조등이 점점 희미해지면서 남자아이의 얼굴도 희미해져 갔다. 그는 분을 못 이겼는지 연신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씨발, 왜 참견이냐고요.”

  “너 가출했지? 딱 봐도 중학생처럼 보이는데 정상적인 중학생이 돌아다닐 시간은 아니고 말이야. “

  “아저씨 알 바예요? ”

  “적어도 씻고는 다녀라. 냄새 때문에 가까이 가질 못 하겠다.”

  그는 본인 몸에서 나는 냄새를 인지하지 못했는지 소매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다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엄청나니까 그렇게까지 의심하지 않아도 돼. 아님 저기 앞이 우리 집인데 씻고 가던가.”

  “됐어요.”

  “잘 곳은 있어? 오래는 아니고 하룻밤 정도는 재워줄 수 있다.”

  “진짜 됐어요. 엄마가 낯선 사람 말 함부로 따르지 말랬어요.”

  “그렇게 효자가 가출을 하냐? 말 들어. 아파트는 아니어도 하루 따듯하게 보낼 순 있으니까. “

  그도 결국 내 말에 못 이겼는지 말대꾸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왜 그에게 이런 선행을 베풀었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그저 턱끝에서 맴돌던 문장들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곧장 뱉어져 버린 것이었다. 왼손가락 마디마디가 뻐근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를 없애려 주먹을 쥐었다 펴보기도 하고, 엄지로 관절을 눌러 뚝, 소리가 나도록도 했다. 그럼에도 뻐근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잊은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내 몸 한편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는 듯했다. 아마 평생 지워지지 않을 일일 수 있었다. 마치 새커만 문신처럼.


    2



  “이 씨발세끼가 감히 내 지갑에 손을 대? “

  아버지의 손은 농구공처럼 커다랬다. 아버지가 손바닥을 쫙 펴면 나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손바닥이 천장 높이 올라가 있었고 빠르게 내 뺨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눈을 질끈 감기 전에 소파 위에 앉은 어머니를 향해 시선을 한 번 돌려보았다. 적어도 눈이 마주친다면 아버지를 말려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결국 눈을 감기도 전에 손바닥이 내 뺨에 닿으면서 짝,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이걸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여전히 얼굴이 붉그락 푸르락 달아오른 아버지는 다음번 행동을 위해 다시 손바닥을 천장 높이 들어 올렸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의 분이 전부 풀릴 때까지 뺨을 내주었다. 세 번째까진 치아가 서로 부딪혀 눈물이 핑 돌았지만 그다음부턴 감각이 마비되어 어떤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지쳐 깊게 한숨을 내쉬고 나서도 나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내가 지갑에 손을 댄 게 아니라는 사실마저도. 그가 안방에 들어가자 뒤에 있던 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거리며 곧장 티브이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녀의 뺨에 손톱 생채기가 있는 걸 보니 최근에 어머니도 아버지에게 맞은 것 같았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억울해서인지, 좆같아서인지 모를 허탈한 웃음. 바닥으로 고개를 떨구니 바닥엔 새빨간 피가 물들어 있었다. 처음이었다. 이렇게까지 가슴이 뜨거웠던 적은. 무작정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도, 가만히 지켜만 보는 어머니도 모두 증오스러웠다.  가슴 깊은 곳에서 일렁이던 답변은 이곳을 나가야겠다는 결심이었다. 이곳에 더 남아있는 게 밖에 나가 고생하는 것보다 더욱 최악이라는 확신. 그것이 나를 가출의 길로 이끌어냈다.


  처음 가출을 했을 땐 내가 한 게 가출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오랜 외출, 오랜 외박이 계속되는 거라고 착각하기 충분했으니까. 나는 주로 마트 시식코너나 서울역 앞 무료 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PC방이나 공원 화장실에서 잠자리를 해결했다. 주로 있던 곳은 PC방이었는데 동네에 작은 PC방이었고, 손님이라고 해보았자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아저씨들이나 모자를 푹 눌러쓴 20대, 30대 남자가 전부였다. 사장이나 아르바이트생도 가게에 관심이 없었기에 청소년인 내가 있다는 사실은 모른 척 넘어갔다. 가끔 안경을 쓴 여자 아르바이트생은 순찰을 돌다 충전을 안 하고 꺼진 컴퓨터 앞에 잠에 든 손님을 내쫓곤 했는데 그녀가 카운터에 있는 날에는 눈치를 보다 천 원씩 충전을 하곤 했다.

  가출한 지 일주일이 지난 즈음이었다. 집에서 가져온 돈도 슬슬 떨어져 가는데 하필 PC방 카운터에 그 여자가 서 있었다. 나는 지갑을 열어 남은 돈을 세어보았다. 딱 오늘 밤을 새우기까지 돈이 남아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충전을 한다면 중간에 라면은커녕 500원짜리 과자도 못 사 먹을 돈이었다. 일단 자리에 앉기 위해 천 원을 충전했다. 지정 자리 번호와 남은 시간이 떠오르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게임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전원을 켜자마자 인터넷에 들어가 오늘 기사를 살펴보았다. 기사는 전부 꽃샘추위를 조심하라는 제목과 이번 대선으로 정권이 바뀌었다는 제목으로 가득 떠올랐다. 턱을 괴고 하릴없이 마우스 휠을 내리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길거리에 얼어 죽는다면 뉴스에 나오기는 할까. 아직까지 세상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었다. 세상뿐만이 아니다. 당장 우리 고등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여름, 우리 고등학교에선 학생 두 명이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둘은 나흘 차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한 명은 집에 불이 나서 죽었고, 다른 한 명은 오토바이를 타다 모퉁이에서 나온 승용차를 차마 보지 못 해 사고로 죽었다. 그다음 주, 학교는 수요일 예배 시간에 세상을 떠난 우리 학교 학생을 추모한다는 기도를 올렸다. 십자가를 가린 큰 스크린에는 집에 불이 나 죽은 학생의 얼굴과 이름 등이 떠올랐다. 예배를 집도하던 담당 목사 선생은 기도를 올리다 눈물을 터뜨렸고, 다른 학생들도 조용히 손은 모았다. 추모 예배는 그걸로 끝이 났다. 그 학생이 죽고 난 사흘 뒤,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학생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의 분을 참지 못한 한 남학생은 친구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기도문을 외웠지만 결국 다른 선생님들에 의해 제지당하고 처벌로 교내봉사를 하게 되었다. 집에 불이 나 죽은 학생은 우리 고등학교 학생이고,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학생은 절로 퇴학이 된 걸까. 그 두 명 모두 나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었으나 말도 안 되는 모순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안경 쓴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카운터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힐긋거리다 남은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아직 10분이 남았으니 굳이 충전은 안 해도 될 듯했다. 내가 있던 곳을 지나 흡연석 바로 앞을 지나갈 때였다. 끝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고개만 내밀면 충분히 그녀가 멈춘 좌석을 볼 수 있었다. 거기선 동갑내기처럼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가 벌떡 일어나더니 여자에게 연신 허리를 숙여댔다. 또래처럼 보여서 그랬을까. 남자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목을 더 길게 내빼었다.

  “정말 여기가 아니면 잘 곳이 없어서 그래요.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

  ”그냥 나가라고 하는 건 아니잖아. 적어도 돈은 내야지. 이 시간까지 여기 있는 것도 눈감아주는 건데. “

  ”이제 더 이상 돈이 없어서 그래요…… 저를 봐서라도 한 번만 봐주세요.”

  ”안 돼. “

  “그럼 딱 10분만 기다려주세요. 어떻게든 돈을 빌려서라도 올 테니까요.”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작스레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발걸음을 돌려 성큼성큼 다가왔다.

  “천 원만 빌려주라. 나중에 꼭 갚을게. 못 믿겠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내 전화번호 받아가도 돼. “

  번지르르한 말투나 똘망똘망한 눈 때문은 아니었다. 그에게 천 원을 빌려준다면 남은 돈은 고작 삼 천 원 남짓일 텐데, 이걸로 남은 밤을 새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지갑을 열어 그에게 2천 원을 건넸다. 그가 지폐를 받으려 손을 뻗는 순간, 왼쪽 손등에 생채기가 가득 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일부로 모른 척하려 했지만 깊은 상처 하나하나에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맞은 걸까? 아님 스스로 상처를 낸 걸까? 온갖 의심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입을 꾹 다무는 걸로 질문을 억누르기로 했다.

  ”2천 원 충전할 테니까 자리 옮겨주세요. “

  그는 곧장 여자에게 지폐를 건네더니 본인 자리에 있던 가방을 챙겨 내 옆 자리로 왔다. 여자는 콧방귀를 뀌며 이번 한 번만 봐준다며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너도 시간 얼마 안 남았네. 충전 안 해? ”

  남자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여자에게 남은 잔돈 2천 원을 건네며 시간 충전을 했다. 그의 화면에 파란색 불빛이 들어오더니 수갖가지 게임들이 떠올랐다. 그는 곧장 게임을 하지 않고 내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척 부담스럽고 심란했다. 자연스럽게 나가야 할 때라고 직감했다. 무언가 잘못 걸리면 돈을 더 뜯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남은 시간을 충전했기에 지금 나가기엔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결국 게임이라도 하는 척하려 서든어택 아이콘을 더블클릭했다.

  “몇 살이야? “

  그가 물었다.

  “열여덟.”

  “거봐. 나랑 동갑이네. 그럴 것 같았어. 너 며칠 전부터 여기 있었잖아. “

  남자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마치 나에 대해 모든 걸 안다는 듯.

  “너도 며칠 전부터 여기서 잤나 보네? ”

  “난 자주 여기서 시간 때워. 넌 집 나온 지 얼마나 됐냐? ”

  “일주일 정도 됐어.”

  “아아, 얼마 안 됐네.”

  PC방이나 공용 화장실에서 지새우는 밤이 너무 길어 일주일이 마치 한 달처럼 길게만 느껴졌는데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럼 너는 얼마나 됐길래 그렇게 자랑스럽게 말하냐? ”

  “음…… 이번엔 세 달?  “

  “세 달이면 기네……”

  “원래 다섯 달은 됐을 텐데 중간에 엄마한테 잡혀서 집 들어갔었거든. 그런데 한 이 주 있다가 지겨워서 또 나왔어. 그것만 아니었음 이 동네 가출팸 기록 깨는 건데.”

  그는 대수롭지 않게 자기 이야기를 했다가 곧장 서든어택 서버에 접속했다. 그의 계급은 별 두 개였고 창고엔 온갖 총들과 캐릭터들이 가득했다. 손을 푼다고 리스폰이 되는 게임방에 들어가서는 침착하게 적들이 보일 때마다 저격총을 빠르게 쏘았다. 나는 그의 모니터를 힐끔거리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넋을 놓고 구경을 했다. 연습 게임이 끝나고 점수판이 나오자 그의 닉네임이 VIP 칸에 올라와 있었다. 그가 손목을 돌리며 이제 손 다 풀렸다,라고 혼잣말을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너 돈 있으면 라면이라도 먹을래? ”

  그는 꽤 친근한 말투로 내게 권하는 척했다.

  “나 아까 너한테 빌려준 돈이 마지막이야. 이제 더 이상 돈 없어.”

  “아, 배고픈데…… 큰일 났네. 배 고프면 게임도 잘 안 된담 말이야.”

  분명 찡찡거리는 듯했지만 괜스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다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옆에 올려두었던 가방을 뒤적거렸다.

  “너는 뭐 먹을래? 진라면? 신라면? ”

  한참을 뒤적거리다 손을 빼내니 꼬깃하게 접힌 만 원짜리가 쥐어져 있었다. 그리곤 카운터로 가 라면 두 개를 주문하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뭐야. 너 돈 없는 거 아니었어? “

  “아껴 써야만 했어. 원래 이것도 없었는데 오늘 생긴 돈이라.”

  “어디서 구했는데? ”

  “고스톱 하는 아재한테서.”

  “훔친 거야? ”

  “당연하지. 술에 잔뜩 취해 길바닥에 흘려도 모르더라고. “

  뭐 그렇게 뻔한 걸 묻냐는 듯 그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새로운 친구를 만났는데 이 정도야 사줘야지. 아까 동갑이라는 건 확인했고 그럼 이름을 알아야겠네? 너는 이름이 뭐야? ”

  ”하늘.”

  “하늘? 이름 예쁘네? 성은 뭔데? ”

  “추. 추하늘.”

  “추신수 할 때 추? 되게 특이하고 예쁜 성이네.”

  칭찬이랍시고 말을 했지만 웃음을 참는 게 그의 표정에서 드러났다.

  “나는 한유성. 우리 이름은 비슷하네. 유성은 하늘에서 내리니까.”

  “그러네.”

  “이걸로 빌린 돈은 퉁치는 거다? ”

  “이거 라면 천 원이잖아.”

  유성은 의아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반복해서 끄덕이며 천 원짜리 지폐를 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래. 지금 갚을게. ”

  내 주머니에 손을 빼고 나서야 그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왼 손을 쭉 뻗어 내게 건넸다.

  “악수라도 하자. 오늘부터 친구 된 기념으로. “

  “원래 악수를 왼손으로 하냐? ”

  “상식의 틀에서 벗어나자는 거지. 왼 손이 심장이랑 더 가깝잖아? 그래서 난 무조건 우정의 악수는 왼 손으로 해.”

  당당한 표정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곤 그의 손을 잡아 한 번 흔들어주었다. 유성은 의자에 머리를 기대며 기지개를 켜다 갑작스레 고개를 나를 향해 돌렸다.

  “아니면 우리 충전한 시간 끝나면 돈이나 벌러 갈래? 해 뜨기 전에 빨리 가야 더 벌 수 있다? ”

  “또 훔치게? ”

  “아니? 이번엔 훔치는 거 아니야. 나름 합법적이라고.”

  살면서 큰돈을 탐낸 적은 없었다. 가난한 동네 구석에 박힌 치과에서 일하는 아버지. 그는 돈은 못 벌었지만 치과 의사라는 자부심 하나는 굳건했다. 보험회사에서 일하는 어머니도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나름 대기업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나 둘의 자부심만큼 부가 비례해 커지진 않았다. 그런 나의 부모님은 단 한 번도 돈에 대해 불만을 가진 적이 없었다. 행복은 돈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데 마트나 편의점에서 가격표를 보고 물건을 제자리에 올려두거나 카드 명세서를 보고 관자놀이를 누르는 그들의 모습에 모순을 느꼈다. 행복은 돈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당장 티브이만 보아도 부유해 보이는 사람들은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돈은 행복이다. 행복은 돈이다. 그것이 나의 신념이었는데 이상하게 오늘만큼은 고작 천 원으로 이렇게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날 유성이 ‘돈 벌 수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분수대였다.

  “날 밝으면 사람들 보니까 빨리 걷어가야 해.”

  유성은 바짓단을 무릎까지 걷고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그리곤 익숙하다는 듯 분수대 안으로 들어가 물 안에 던져진 동전들을 주웠다.

  “너도 빨리 와서 도와. 오늘 목표는 여기 있는 동전 다 줍는 거니까.”

  그의 손짓에 나도 따라 바짓단을 걷고 분수대 안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물기가 겨울바람에 마르면서 몸에 있던 온기가 전부 빼앗기는 듯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춥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우리는 그날 누가 더 동전을 많이 줍나 내기를 했다. 입술이 새파랗게 질리고 온몸에 닭살이 돋아도 연신 허리를 굽히며 동전을 쓸어 담았다. 겨울바람에 바짝바짝 말라가는 것도 모자라 헤벌쭉 웃고만 있었으니 입술이 갈라져 피맛이 났다. 고작 유성을 만난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지만 분명 확신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있다면 매번 웃을 일이 가득할 거라는 걸.


3


  “넌 이름이 뭐냐? ”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어오르자 썰어둔 두부를 찌개 안으로 빠트렸다.

  “지아요. 유지아. “

  “여자애 같은 이름이네.”

  방금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는 수건으로 몸을 다 닦지도 않고 나와 코를 킁킁거렸다. 바닥에 물기가 잔뜩 번져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내가 데려오기로 했으니 참자, 하고 깊게 심호흡을 내뱉었다. 때마침 전자레인지에 넣어둔 냉동 만두가 댑혀지며 띵, 소리를 냈다. 지아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저씨, 밥 언제 돼요? ”

  “금방 다 되니까 조금만 기다려.”

  두부에 된장 국물이 짭조름하게 벤 듯했다. 불을 끄고 벙어리장갑을 껴서 식탁 위에 냅리를 올려두었다. 지아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곧장 자리에 앉았다.

  “야, 적어도 머리는 말리고 먹어. 그러다 감기 걸린다.”

 “먹다 보면 알아서 마를 거예요. “

  지아는 흠뻑 젖은 머리칼에서 물이 떨어진다는 사실도 잊은 채 허겁지겁 밥을 입 안으로 욱여넣었다. 문득, 유성과 서울역 무료 급식소에서 허겁지겁 밥을 먹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10일 만에 제대로 된 밥을 먹은 것이었기에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롯이 지금이 아니면 이 따듯한 밥으로 배를 채울 수 없다는 생각만으로 숟가락을 퍼 올렸다.

  “근데 아저씨는 어떻게 알았어요? ”

  지아가 입 안에 밥을 못 삼키고 우물거리며 물었다.

  “뭐가.”

  “아까 있잖아요. 택시에 일부로 치인 거. “

  “난 딱 봐도 다 안다. 너희 같은 애들.”

  “아저씨가 뭘 안다고요.”

  “일단 아저씨 아니니까 아저씨라 부르지 말아 줄래? ”

  “그럼 뭐라고 부르는데요.”

  “형이라 불러. 하늘이 형. ”

  “이름이 하늘이에요? 형도 만만치 않게 여자 이름인데요? “

  “그럼 강하늘은 여자니? ”

  "듣고 보니 그러네요. “

  지아는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밥을 먹다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까지 웃음을 터뜨려본 적이 얼마였는지도 가물가물했다. 적어도 유성과 어두컴컴한 미래를 꿈꾸던 그 시절, 그때처럼 나는 활짝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다시 똑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는 것. 그것만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지아라는 이 아이에게서 유성의 모습이 보이진 않았지만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볼 때마다 유성과 함께 어울리던 나의 모습이 그려지곤 했다. 그렇기에 반복을 가져와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어느새 가슴 한편에 자리 잡힌 듯했다.

  “너 잘 곳 없으면 여기서 당분간 살던가. “

  “잘 곳이 없다뇨. 공원 화장실도 있고, 피시방도 있고, 24시간 카페도 있고, 롯데리아도 있고 수두룩 빽빽한걸요.”

  “적어도 암모니아 냄새랑, 담배 냄새, 기름 냄새가 나는 곳에서 잘 일은 없을 텐데? 왜? 같이 다니는 친구라도 있는 거냐? ”

  “지금은 딱히 없어요. 한 명은 엊그제 엄마한테 잡혀 들어갔고, 다른 한 명은 소년원에 갔거든요. “

  “가관이네. 돈은 어떡하고. “

  “벌긴 해야죠.”

  지아가 밥그릇을 들어 바닥을 싹싹 긁더니 된장찌개 국물을 한 번 떠올려 입 안에 넣었다. 지아는 평범한 가출 청소년이 아닌 청소년 보호 센터에서 도망쳐 나온 아이였다. 부모라는 사람은 그를 센터에 맡기고 연락두절이 되었고, 센터에서도 매번 지아를 구박하거나 때려 결국 도망쳐 나왔다고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다시 거처지로 돌아가라는 말이 쉽사리 나오지 못했다. 결국 나는 지아와 동거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는 새벽에 나가 늦은 밤에 돌아오고, 지아는 동네 고깃집에 서빙 아르바이트를 구하게 되어 나와 비슷한 시간에 집에 돌아오곤 했다.


  지아와의 동거는 성가시고 불편한 일의 연속이었다. 변비가 있는 지아가 화장실을 다 쓸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 세탁기를 돌릴 일이 많아졌다는 것, 지아의 고약한 잠버릇으로 한밤중 걷어차여 잠에서 깨는 것. 그래도 이런 일들은 나름 참을 만한 일이었다. 다만, 익숙해지지 않는 것 야간 업무가 있을 때 지아에게 연락을 해주는 일이었다.

  ‘오늘 늦으니까 혼자서 저녁 챙겨 먹어라. 냉장고에 반찬 있어.’

  이상하게도 그런 문자 한 통은 익숙해지지 않고 늘 보내기 전에 망설여졌다. 신경을 끄자고 다짐해도 지아가 대충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까 걱정됐다. 지아는 원래 라면을 좋아해서 먹는 거라고 말했지만 내가 야근을 할 때마다 라면을 먹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싶었다.

  한 편으론 지아가 내게 충분히 물어볼 수 있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할 때마다 큰 자괴감을 느꼈다. 대통령 선거 때 어차피 국민들은 1번 아니면 2번을 뽑을 거면서 왜 후보가 열두 명이나 출마하냐는 질문이나 최저시급은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지,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는 뭐가 다른 나라인지 물을 때마다 머릿속이 새하얘저서 애써 다른 질문으로 그의 입을 막곤 했다. 심지어 어떤 엉뚱한 말로 둘러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몇 번은 자리를 피해버렸고 몇 번은 전부 헛소리였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검색해서 알려주는 것이 더 어른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지아가 나를 얼마나 무식하게 생각할지 걱정되고 부끄러웠다. 지아는 뭔가 물을 때마다 내가 곤란해한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는지 요즘은 야구 경기나 축구 경기를 볼 때만 질문했다.

  “형은 원래부터 여기 살았어요? ”

  “여기? 이제 한 5년 됐나? “

  “그럼 형이 몇 살 때 산 건데요?”

  “너 나이대 즈음. 한 열아홉? ”

  ”그럼 지금 형이……“

  “어. 지금 스물넷이야.”

  “그럼 부모님은…… 아니에요. 어? 지금 손흥민이 공 받았어요. 빨리 집중해서 봐요.”

  내가 지아에게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내가 왜 가출을 했었는지, 지금 왜 부모님과 멀어져 이런 옥탑방에서 사는 건지. 그러다 내 나이를 듣게 된 뒤로는 지아도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신경을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지아를 이곳에 살도록 허락한 일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나는 지아에게 어떤 간섭도, 조언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이미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알려준 것만으로도 충분한 조언이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매일매일 잠자리를 찾아 헤매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지 충분히 잘 알았기에 머무르고 싶어 할 때마다 잘 곳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 충분한 위로가 되었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지아와 가까워질수록 그를 가만히 지켜만 볼 순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가 말을 하진 않았지만 오히려 신세를 지는 쪽이 내 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아가 집에 들어온 뒤로는 늘 저렸던 왼손이 이상하게도 아무렇지 않았다. 애써 손목을 돌리고 주먹을 쥐었다 펴보아도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한 걸음 뒤에 물러서서 이 아이의 상황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는 게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덧 창밖엔 눈이 녹고 꽃봉오리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학교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힌 거라면 검정고시를 보는 게 어떠냐고 묻고 싶었다. 나도 일찍이 검정고시를 보았고 그 경력이 도움이 안 되진 않았기에 아이에게도 추천을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지아가 거부감을 느낄까 봐 말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제안을 하기 위해 편의점에서 초콜릿우유를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을 열자 지아는 검은색 슈트를 걸친 채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에 취해있는 모습이 보였다. 또래보다 키가 작았고 빼빼 마른 체형이었기에 누가 보아도 미성년자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껏 자신의 모습에 심취한 지아를 보니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온 나를 보자 이번에 고깃집을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그리곤 아는 형이 소개해준 곳인데 미성년자도 할 수 있는 일이고, 잘만 하면 돈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자랑했다. 말 끝으로 생활비를 보탤 수 있다며 나를 설득하기도 했다. 썩 좋은 예감은 들지 않아 잘 알아보고 하라고 말했지만 그는 이미 충분히 알아볼 만큼 알아봤고 같이 일하는 형들도 꽤 괜찮은 형들 같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 뒤로 저번 며칠 동안 지아가 집에 들어오지 않아 며칠 동안 왼손의 통증으로 시달렸던 순간이 떠올랐다. 이제 보니 카카오톡을 보내는 지아의 스마트폰이 최신형 아이폰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아는 밝게 웃으며 같이 일을 하게 될 형이 이번에 스마트폰을 바꾸어주었다고 자랑을 했다. 내일부터 정식으로 일을 시작하기로 했으며 자신이 노력한 만큼 벌 수 있다고 했다. 졸업장도, 경력도 필요 없는 오롯이 본인의 능력만을 보는 일이라며.

  “옷도 형이 사주신 거예요. 짭 아니고요. 이 일을 하려면 일단 옷을 좋은 거 입어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당장 내일부터인데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오늘 잠은 다 잤네.”

  시작하려는 일이 떳떳하지 않은 일이 되리라고 지아는 알까. 아마 지아도 알 것이었다. 그렇기에 같이 일하게 될 사람들의 호의를 저렇게 늘어놓는 것이겠지. 이 일이 얼마나 본인에게 절실한지 내가 알아주길 바라는 것이다. 나는 편의점에서 사 온 초콜릿우유를 등 뒤로 숨겨 냉장고 안에 넣었다. 지금 검정고시를 보는 건 어떠냐는 말을 했다간 분명 지아가 실망하거나 큰 싸움을 번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기에 입술을 꽉 깨물어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다짐했다.

  “그래. 이왕 하게 된 거 열심히 잘해봐라.”

  이번에도 한 걸음 뒤에 서서 그가 하는 것을 바라만 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지아에게 닥쳐올 미래가 선명하게 보임에도 나는 어떠한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그저 우물쭈물거리며 사 왔던 초코우유 대신 캔맥주를 따 들이켜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4


  나와 유성에게도 ‘우리 집’이라는 곳이 생겼다. 아무도 안 쓰는 낡은 투룸이었고 전기세와 가스비, 수도세를 꼬박 낸다면 별 탈 없이 잠자리가 제공이 되었다. 주인도 없는 건물이었기에 보증금이나 월세 따위도 없었다. 심지어 휴대전화를 충전하거나 샤워를 할 수도 있어서 최적의 숙소이긴 했다. 다만, 우리 집에 들어오기 위해 가출한 다른 아이들도 함께 집에 살게 되었고 각자 돈을 모아 n빵으로 돈을 내게 되었다. 멤버는 나와 유성을 포함해 총 8명이었고 여자 아이 두 명이, 남자아이 여섯 명으로 나누어 두 방을 쓰기로 했다. 가끔 자기 친구를 데려와 9명이 되기도 했고 다른 곳에서 자고 온다고 해 7명이 되기도 했다.

  처음 우리 집 문을 열었을 때, 그 집은 아수라장이었다. 집주인이 집을 비운 수년간 많은 아이들이 드나든 흔적이 남아 있었고, 누구도 그 공간을 깨끗하게 가꾸어 점유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모든 애들이 방 안에서 담배를 피워 벽지가 누렇게 물들었고, 파리와 돈벌레, 그 밖에도 다리가 많고 빠르게 기어 다니는 벌레들을 수없이 목격했다. 아이들은 지친 몸을 누일 공간만 있다면 어디던 비집고 들어와 누웠지만 유독 유성만 인상을 찌푸리며 집 청소를 시작했다. 마침내 청소가 끝나자 아이들은 전부 입을 떡 벌리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유성은 땀을 닦으며 괜히 어깨를 으쓱이다 이내 구석에 누워 잠에 들었다.

  거처지가 생겼으니 이제 돈을 벌 방법을 궁리해야만 했다. 수환은 고깃집에서, 유나는 햄버거 가게에서 이미 일을 하고 있었지만 나를 포함한 6명은 아직 아무런 일도 하고 있지 않았다. 모두가 미성년자였기에 아르바이트를 받아주는 가게도 찾기 쉽지 않았고 수환과 유나도 미성년자였기에 근무 시간이 남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월세는 내지 않더라도 8명이 먹을 식자재와 생활 용품을 생각하면 그것도 만만치 않은 지출이었다. 간신히 나는 수환이 일하는 고깃집에서, 유성은 작은 분식집에서 일자리를 구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일을 구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이번 멤버도 다를 것 없이 방 안에서 담배를 피워 매캐한 공기를 마시며 잠에 들었다. 눈을 뜰 때마다 매번 낯선 얼굴이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고 나도 비몽사몽간에 그 틈에 끼어 어울리기도 했다. 종종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면 쓰레기를 치우지 않고 그대로 놓고 나가 좁은 방 어디에나 쓰레기가 빈틈없이 쌓여 있었고 음식물 쓰레기를 제때 버리지 않아 곳곳에서 썩은 냄새가 났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부엌 천장엔 날파리들이 붙어 있었고 가끔은 잘 때 귓가에 윙, 소리를 내어 잠을 깨우곤 했다. 변기는 단단히 막혀 화장실을 가려면 집 앞에 있는 공원까지 가야 했으며 술에 취한 애들이 빌라 벽에 노상방뇨를 하는 탓에 창문을 열면 지린내가 나 환기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살면서 이런 거처 지는 처음 겪어보았다. 아버지는 서재마저 먼지 한 톨 없이 말끔하게 청소를 하시는 분이었고, 어머니는 난초나 허브 같은 화분을 꾸미는 것이 취미였기에 이런 광경을 볼 일은 전혀 없었다. 덕택에 행복한 우리 집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와 유성은 우리 둘만 서둘러 이 집을 나올까 얘기하기도 했지만 그나마 일을 하는 수환과 유나에게 큰 짐덩이를 안기는 것 같았고 당장 나와 유성이 잘 곳이 없었기에 쉽게 실천으로 옮긴 순 없었다. 결국 이 집은 우리 집이 아닌 내가 임시로 머무르는 공간이라고 인색했다. 이름도 모르는 아이들이 발 밑에서 아무렇게 구겨져 잠에 들고, 다른 사람이 콜록거려도 연신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이 미개한 아이들을 보고 절대 애들이랑은 엮이지 말고 서둘러 새로운 방을 알아봐야지, 하고 다짐하게 된 듯했다.


  슬금슬금 먼저 집을 정리한 건 유성이었다. 낡은 가구와 낡은 물건을 내 다 버리고 다리가 망가진 식탁, 깨진 거울 등을 모두 밖에다 버렸다. 쓸모없는 물건들을 치우고 나니 반지하 집이 훨씬 넓어졌다. 수시로 전기와 가스 공급이 중단된다는 고지서가 날아오는 걸 확인한 뒤로 유성이 먼저 나서 애들의 돈을 걷어 가스비를 냈다. 박스를 모아 플라스틱, 병, 일반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는 공간을 만들고 집 안에선 담배 피우지 않기, 분리수거 철저하게 하기 등 집 안의 규칙을 만들었다. 이런 간단한 규칙을 만들기 위해 유성은 애들과 매일같이 싸워야 했다. 하루만 손을 놓고 있으면 금세 원상 복구되는 집에서 혼자 부지런하게 살았다.

  “스무 살이 되면 본격적으로 돈 벌어야지. 분식집은 할머니가 건강이 시원찮아서 금방 가게를 닫을 것 같은데 내가 서둘러 일 배워가지고 물려받으려고.”

  “돈 벌면 뭐 하려고? ”

  “엄마 찾게.”

  “나 처음 만났을 때 엄마한테 잡혀서 집에 들어갔다고 하지 않았어? “

  “당연히 거짓말이었지.”

  유성은 엄마와 살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위탁된 최초의 기억은 할머니였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둘째 이모가, 둘째 이모 뒤로는 막내 이모가, 그 뒤로는 곧장 보육원에 맡겨졌다고 했다. 그 후로 계속 보육원에 머물다 중학생이 될 열네 살 생일에 처음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고 했다. 유성의 엄마는 유성의 얼굴을 한 번 보고는 다시 택시를 타고 갔다고 했다. 보육원을 운영하던 수녀님은 문 너머에서 멍하니 밖을 바라보던 유성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지금 어머니의 형편이 너무 안 좋아서 지금 보육원에 있는 게 훨씬 나을 거라고. 그게 유성에게 더 좋을 거라고.

  “보육원에 있을 때 찾으러 오기는커녕 얼굴 한 번 안 비추는 부모가 태반이었어. 그래서 자기 엄마 아빠가 누군지, 어떻게 생겼는지, 이름은 뭔지 조차도 모르는 애들이 많았지. 그런데 적어도 난 아니니까. 또 엄마가 나를 완전히 잊어버린 건 아니니까. ”

  떠올리기 힘든 기억일 텐데 유성은 동요 없이 눈동자 한 번 흔들리지 않았다.

  “다시 엄마의 얼굴을 마주한다면 어색할 것 같지 않아? ”

  “가족끼리 그런 게 어디 있어. 솔직히 엄마도 얼마나 나를 데리고 오고 싶었겠어. 너 같으면 싫은 사람 보러 시간 내서 오겠니? 그때 수녀님한테 전해 들었어. 자리를 잡으면 분명 데리러 오겠다고.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했어. “

  “그럼 엄마가 안 미워? ”

  “그 당시엔 저 여자가 왜 다시 가는지 여러 번 생각하느라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던 거야. 누가 봐도 우리 엄마였거든. 신기하고 반가웠지. 분명 엄마의 얼굴을 모르는데 직감적으로 알 수 있겠더라고. 엄마다. 그런데 그건 하나 확실하게 알겠더라. 우리 엄마가 다른 친구들의 엄마보다 훨씬 젊은 편이라는 걸. 그래서 엄마가 나를 감당하지 못해서 할머니에게 나를 맡겼구나, 저절로 알게 됐어.”

  유성이 엄마에 대해 긍정적인 말들만 늘어놓는 것이 어쩐지 기분이 나쁘고 심술이 났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간질하듯 말이 함부로 터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래도 좀 책임감이 없는 거 아냐? ”

  “어렸잖아. 어쩔 수 없지. 적어도 나를 할머니한테라도 맡겼는걸? “

  “너희 엄마가 너를 원했을까? ”

  “당연히 원하진 않았겠지. 그런데 덜컥, 내가 생기고 그 순간 떠오른 감정이 나를 사랑했다는 거 아닐까. 그러니까 나를 낳았고…… 막상 낳아보니 감당하기 힘들어 할머니한테 먼저 맡긴 거고.”

  유성이 무한한 인내심을 보일 때마다 나는 그 마음을 짓밟고 싶었다. 분명 나쁜 의도로 던진 질문에 유성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면서 속으로는 뜨거운 고통과 싸우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손님 테이블에 넣을 숯을 넣으려 갈 때였다. 비가 오는 날이었기에 바닥이 미끄러웠고, 바빴던 탓에 물기를 제대로 닦지 못해 조금이라도 중심을 잃으면 곧장 넘어지기 딱 좋은 상태였다. 나는 애써 조심스레 한 발자국씩 발걸음을 디뎠지만 젖은 바닥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바닥과 숯을 번갈아 보던 시야는 어느새 천장으로 가 있었고 그 위에는 뜨거운 숯들이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하나는 내 왼손에, 다른 하나는 어깨에 떨어졌고 나는 뜨거움에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러나 고통에 몸부림을 치다가도 근처에서 들리는 비명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날아오른 숯 하나가 손님의 허벅지 위로 떨어지게 된 것이었다. 나는 터져 나오는 비명을 참고 손님에게 다가가 괜찮냐고 다그쳤다. 다른 손님들과 더불어 아르바이트생들과 사장님의 시선이 한 번에 쏠려버렸다. 당연히 모두의 걱정은 손님을 향했고 나는 애써 새빨갛게 달아오른 왼손을 보이지 않으려 오른손으로 왼손을 덮었다. 사장은 나를 따로 불러 큰 소리로 나를 야단쳤다. 수환의 친구라고 해서 믿고 맡겼는데 이렇게 큰 사고를 쳐버리면 어쩌냐고. 결국 오늘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가게에 나오지 말라는 통보까지 받았다. 나는 애써 화상 자국이 난 손을 감추며 죄송하다는 말만 연신 내뱉었다.

  늦은 저녁 시간에 퇴근을 했기에 응급실 말고는 갈 만한 병원은 없었다. 그렇다고 응급실은 돈이 많이 들었기에 애써 피부가 벗겨지는 고통을 참고 날이 밝기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유성은 내 손과 어깨를 보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리고 당장 응급실이라도 가자며 나를 이끌었지만 나는 애써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르바이트비를 받으면 기분을 낸다고 아이들에게 밥을 사거나 술을 사는 바람에 돈을 일주일도 안 되어 전부 탕진했기에 당장 가진 돈이 없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가난한데 마음까지 가난한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허벅지에 숯이 떨어진 손님도 내게 치료비를 청구할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에서 잘렸기에 더 이상 돈을 벌 방법도 없었다. 머리가 띵해져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찰나 유성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한테 돈 있으니까 그냥 가. 손님 치료비도 만약 청구한다면 내가 일단 낼 테니까 너는 걱정하지 말고 치료부터 받아.”

  시간이 지날수록 벗겨진 살갗이 쓰라렸기에 덥석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유성은 곧장 119에 전화를 걸어 엠뷸런스를 부르려고 했지만 낯부끄러워 택시를 타고 가자고 했다. 택시가 오자 유성은 내 옆에 앉아 응급실까지 나와 함께 동행해 주었다. 택시 기사는 이 늦은 시간에 병원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나는 애써 답을 하지 않았다.

  “이 친구가 많이 다쳐서요.”

  그러나 유성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듯 덤덤하게 말을 꺼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도 치료에 바로 들어가진 못했다. 전광판 위로 떠오른 내 이름 위엔 무려 여덟 개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예상 대기 시간은 한 시간이나 되었다. 점점 피부에 통증이 심해지고 있었기에 기다리는 동안 유성에게 어떠한 말도 건넬 수 없었다. 유성도 이를 눈치챘는지 내게 말을 걸기보다는 간호사에게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보채는데 에너지를 쓰곤 했다. 마침내 내 이름이 불리고 응급실에 들어가자 의사가 피부가 벗겨진 오른쪽 어깨와 왼손에 소독 솜을 올려놓았다. 피부가 타는 것 같은 고통에 결국 비명을 참지 못했고 내 모습을 보던 유성은 입을 꾹 다물고 킬킬거리며 웃었다. 내 모습이 부끄러워 애써 입술을 꽉 깨물었지만 소독이 끝나고 다른 액체를 몸에 부었을 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일어 더 크게 비명을 지르게 되었다. 의사는 사흘 뒤에 또 와야 한다, 오지 않으면 흉이 진다고 경고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납창구에서 치료비를 대신 납부하는 유성의 뒤에서 나는 면목 없는 기분으로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나중에 돈은 꼭 갚을게.”

  “응. 꼭 갚아라. 나 짠돌이인 거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유성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치료비를 갚으라고 채근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숯이 몸에 튄 손님도 내게 치료비를 청구했고 그 치료비마저 유성이 지불했다. 내가 치료를 받으러 다닐 땐 어떻게든 유성의 돈부터 갚겠노라 다짐했지만 유성이 별 말이 없자 나도 곧 급할 게 없어졌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도 모르게 그 일은 잊혀버렸다. 아니, 어쩌면 내가 모른 척하는 것일 수 있었다. 희미하게 남은 왼쪽 손목에 흉터와 떨어진 숯의 무게 때문에 손목이 나가 손목을 돌릴 때마다 통증이 생기는 걸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5


  “유성이는 참 구김살이 없지? 늘 웃고, 예의도 바르고.”

  “그렇죠. 기분이 좋아져요. 유성이를 보면. “

  급한 대로 수환과 일했던 고깃집 대신 유성이 일하는 분식집에서 일을 하기로 했다. 나는 오전 열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유성은 그대로 네 시부터 열 시까지 분식집에 있었다. 나는 학교가 끝나고 방과 후에 군것질을 하러 오는 아이들 때문에 바빴고, 유성은 학원을 마치고 야식을 먹으러 오는 아이들 때문에 바빴다. 분식집 할머니는 나와 오픈 준비를 하다가 이젠 듬직한 친구가 둘이나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며 여섯 시가 되면 키를 유성에게 맡기고 퇴근을 하셨다. 그럼 유성은 집에 돌아올 때마다 남은 떡볶이나 튀김 등을 가져와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구김살이 없다. 나는 지금껏 유성이에게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그제야 조금 알 수 있었다. 특히 유성과 함께 다니는 동안은 사람들이 내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가출 청소년이라는 편견이 경우와 함께 있는 순간만큼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유성이 무서워서나 덩치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웃어른에게 깍듯했고, 아이들에겐 리더십을 발휘하며 늘 앞장서서 싸울 줄 아는 아이였다. 타인이 내게 함부로 대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터였는데 고깃집에서 만난 손님들과 달리 어른들이 내게 친절하게 굴면 오히려 당황스럽기도 했다. 혼자 있으면 모두가 나를 냉대하곤 했다. 돈이 있었어도 식당에 들어가기 겁이 났다. 그러나 유성이 들어오며 제가 데려온 애예요. 제 친구입니다.라고 말하면 환대까진 아니더라도 노골적으로 나를 훑어보거나 음식을 던지듯 놓는 경우는 없었다. 적어도 계산을 하지 않고 도망가진 않겠지,라는 의심의 눈초리는 받지 않았다. 그렇게 평범한 청소년으로 대우를 받는다는 게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 모든 게 유성과 함께여만 가능하다는 사실이 한 편으론 어이없고 웃겼다. 식당 주인들은 당연히 우리가 학교를 마치고 밥을 먹으러 오는 거라고 여겼고 우리더러 수능 공부는 잘 되어가냐고 묻는 주인도 있었다. 식당에 있다가 갑자기 비가 온 날에도 손님이 두고 간 우산을 쥐어주며 다음에 올 때 가지고 오라며 우산을 빌려주기도 했다. 그런데 유성의 경우, 티가 나게 아부를 떨거나 동정심을 유발해 무언가를 얻어내려 하지는 않았다. 그저 유성이 조심스럽고 평소에 예의 바르게 말을 걸면 어른들은 이것저것 유성을 도와주곤 했다. 가끔은 유성이 거짓말을 내뱉어도 전혀 음흉하게 여기거나 의심하지 않아 탁월하게 그가 원하던 것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만의 특징일지, 매력일지 무엇이 어른들이 그를 이렇게 대하도록 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유성의 곁에서 나쁜 짓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이 아르바이트하는 거 허락해 주셨어? 아이고, 우리 아들이 아르바이트한다고 하면 공부나 하라고 야단쳤을 것 같은데 기특해서 어째.”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떡볶이를 먹으러 온 여자가 물었을 때 나는 당황에서 얼버부렸었다. 그러나 일찍이 교대를 나온 유성이 대신 “다 허락받았죠. 대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조건으로요.” 하고 말했다.

  “하여간 요즘 애들은 정말 대단해. 젊어서 그런가. 아들, 너도 저 형아들처럼 멋진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지금도 충분히 멋진 사람으로 보이는 걸요? 이게 전부 어머님과 아버님 덕분일 거예요.”

  심하지 않은 아부를 끼워 넣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일을 하는 내내 ‘부모 없는 애‘ ’제대로 못 배우고 자란 애‘라는 편견을 받을 일 따위 없었다. 여자는 잘 먹었다고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만 원을 건넸다. 칠천 원을 거슬려주려 하자 여자는 손을 거세게 저었다.

  “남은 건 아들들 팁 해요. 기특해서 주는 거니까.”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

  처음 보는 팁이었다. 유성은 만 원짜리 지폐를 카운터에 넣으려고 하다 다시 지폐를 펼쳐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렇게 부끄럽지 않게 돈 버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데…… 왜 애들은 이상한 방법으로 돈을 벌려고 할까? “

  “그래도 조금씩 보태긴 하잖아. “

  “차에 뛰어들어 보험 사기를 치거나 트위터에서 아저씨를 만나 성매매 협박으로 뜯어낸 돈으로 얼마나 보탠다고. 게다가 그것도 자기들 술값이랑 댐뱃값으로 거의 탕진하잖아. “

  “그럼 애들이 그런 짓을 그만했으면 좋겠어? ”

  “걔네들이 어떻게 되던 상관없어. 솔직히 미성년자랑 한 번 자고 싶어서 나온 남자도 어떻게 되던 상관없어. 그런데 다른 것들은……. 전부 남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돈을 버는 일이잖아. 그런 돈으로 내 생활비를 보탠다는 게 솔직히 부끄러워.”

  “맞는 말이야. 그런데 그것마저 안 하면 애들이 전혀 돈 벌 생각을 하지 않는데 어떡해.”

  “하늘아. 우리 서둘러 집을 뜨자. 어떤 동네가 됐던 상관없으니까 가까운 시일 내로 여기를 떠버리자. 둘이 적당히 깨끗한 곳, 적당히 부끄럽지 않을 곳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일도 하자. ”

  “그래. 그러자.”

  수환과 유나도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생활비를 보태지만 다른 아이들이 보험 사기와 성매매 협박으로 쉽게 큰돈을 버는 걸 보고 그 일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우선 유나와 지수가 적당히 야릇한 사진을 올리면 알아서 댓글이 잇따라 달렸다. 그럼 그들 중 아무나 한 명을 잡아 메신저를 보냈고 근처 모텔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다. 여자애들이 약속을 잡은 모텔과 방을 알려주면 남자아이들이 연장을 챙겨 들어갔다. 미성년자와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온 남자는 경찰에 넘어가거나 신상이 털리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에게 큰돈을 낼 수밖에 없었다. 주동자인 설은 금액이 맞는지 일일이 확인을 한 뒤에야 남자를 보내주었다. 번 돈은 정확히 n빵으로 애들을 나누어주었고 늘 성공을 축하해야 한다는 축하주를 마신다고 술을 사 마시면서 탕진하기 일쑤였다. 나름 아이들의 계획은 치밀했다. 사기 계정이라고 그들 사이에서도 퍼져나갈 수 있으니 빈번히 계정을 바꾸어 야릇한 사진을 올렸고, 보험 사기 같은 경우에도 곳곳에 CCTV 위치와 사각지대까지 모두 파악해 두었다. 동네 사람들은 하나둘씩 아이들의 존재를 알아갔다. 유나는 이러다 우리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까지 알려진다면 잡혀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라고 일을 그만두자고 말했다. 그러나 설은 유나의 멱살을 잡아 올려 욕을 들이부었다.

  “너 이렇게 돈 안 벌면 전기랑 가스비는 누가 해결할 건데? 그럼 이 집은? 우리 밥은? 우리 술은? ”

  “그거야 너희가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돈 벌면 되잖아.”

  “이봐, 같잖은 햄버거 가게 아가씨. 네가 왜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허름한 햄버거 가게에 일하게 된 줄 알아? 네가 일을 잘해서가 아니야. 네 가슴이 크고 반반하게 생겨서지. 너 같은 아르바이트생이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 손님들이 더 오니까. “

  “씨발 세끼야, 너 뭐라고 했냐? ”

  유나는 멱살을 잡은 설의 손을 뿌리치고 그대로 주먹을 그의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설의 코에서 피가 주룩, 흘러내리자 그도 이성을 잃고 유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저 큰 덩치가 달려듬에도 유나는 침착하게 그의 주먹을 피해 턱을 한 번 더 올려 쳤다. 설이 혀를 씹었나 본지 입에서도 피가 흘러내렸다. 전에 빙 둘러앉아 술을 마시다 흘려들은 적이 있었다. 유나는 어릴 적부터 복싱 챔피언이었다고. 정의감이 강했던 그녀는 불의를 저지르는 아이를 보면 피가 터지도록 쥐어 팼다고 했고, 결국 관장은 그녀에게 복싱을 그만두라고 하라 했었다. 격투기를 배우는 사람이 일반인에게 기술을 쓰거나 좋지 않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면 그저 깡패와 다를 게 없다면서. 말만 들었을 땐 그냥 그렇구나, 하고 고개만 끄덕였지만 실제로 그녀가 싸우는 장면을 보니 어쩌다 챔피언까지 오르게 되었는지 금방 납득이 되었다.

  “당장 그만 안 둬? ”

  유성의 외침에 둘은 동작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유성의 한 손에는 유나가 아끼는 디올 지갑과 설이 없어서 못 피운다는 초콜릿 맛 향담배를 쥐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라이터에 불을 켠 채 쥐고 있었다. 그는 다른 아이들이 말릴 틈도 없던 싸움을 현명하게 멈추었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움직인다면 좋은 광경은 볼 수 없을 거야.”

  유나와 설은 움직임을 멈춘 채 동공을 떨고 있었다. 둘 다 자신이 아끼는 물건의 최후를 맞이하고 싶진 않았던 모양이었다.

  “이봐, 설. 너 다른 동네에 이렇게 살 만한 집 찾아본 적 있어? ”

  “집주인이 버린 집이 뭐 한 둘이겠어? 찾아보면 분명 하나쯤은 있겠지.”

  “오케이. 일단 안 찾아봤다는 거고. 유나…… 넌 잘 참았어. 그래도 애 얼굴을 저 지경까지 때릴 필요는 없었잖아.”

  “아니, 씨발 왜 저 계집년 편만 들어주는 건데? 얘가 한 번 대줬냐? ”

  유나가 그의 말에 다시 주먹을 쥐어 들었고 설도 유나를 노려보았지만 유성이 다시 라이터 불을 켜자 둘은 다시 입을 앙 다물었다.

  “설아, 이게 그렇게 간절하지 않은가? 너 이거 한 갑 더 있다고 그런 거야? 내 주머니에 네 담배 한 갑이 더 있는데 이제 좀 간절해졌나? ”

  “이 씨발 세끼야, 진짜 하지 마라. 아, 진짜로. ”

  “그럼 움직이지도 말고 입도 닥치고 있어.”

  “유성아, 네 생각은 어떤데. 우리 신상이 밝혀지면 분명 부모님한테까지 소문이 들릴 테고, 그럼 잡혀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야. 난 적어도 당분간은 이 일은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유나 말이 맞아. 적어도 임시방편으로 살 집도 안 알아봤잖아. ”

  “내가 일하는 햄버거 가게도 지금 아르바이트생을 모집 중이긴 해. 우리 가게가 아니더라도 패스트푸드 가게는 대부분 아르바이트생을 많이 뽑고, 미성년자도 어지간하면 뽑아. 그러니까 내가 생각했을 땐 그냥 애들이 진지하게 알아보지 않은 거라고 생각해. ”

  “그럼 우리가 하루 만에 벌 수 있는 돈을 한 달이나 좆뺑이쳐서 받아야 하는 건데 굳이 그런 수고를 덜자고? ”

  “설아, 입 다물고 있으라고 했지? ”

  “씨발……”

  “니들이 어떻게 돈을 벌어 오던, 난 아무런 신경 안 써. 나는 그저 생활비만 보탤 수 있기만 한다면 그만이야. 대신 너희 때문에 간신히 구한 우리 거처 지를 빼앗기는 건 용납할 수 없어. 그러니 당분간이라도 그냥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돈 벌어. 만약 안 구해서 생활비를 못 보탠다면 그대로 내쫓아버릴 테니까 그런 줄 알아.”

  유성이 단호하게 말하자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의 말을 전적으로 따르고자 웅성이는 듯 보이진 않았다. 그나마 원래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던 유나와 수환만이 유성의 말에 동조하는 듯했다. 설이 씩씩거리며 유성을 노려보았다. 솔직히 유성의 말이 잘못된 판단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적어도 그들에겐 아니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편하게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었고 남은 시간과 남는 돈으로 술을 마시는 것만이 머릿속을 떠다닐 뿐이었다.

  

  그날 이후 암묵적으로 우리 사이에서 세력이 나뉘어버렸다. 한유성 세력과 정 설 세력.  나와 유성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수환이 내게 어렴풋이 말해주었다. 만약 유성의 귀에 들어간다면 분명 좋은 일이 벌어지진 않을 것 같으니 어느 정도 해결이 되기 전까진 비밀로 해달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꽉 다물기로 했다. 그러나 눈치 빠른 유성에게 비밀을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의 세력에 선 세 명의 아이들이 유성이 말을 걸 때마다 서로 눈치를 보기 바쁜 모습을 보자 유성은 숨김없이 본인 생각을 말해버렸다.

  “너희 벌써 갈라지기로 한 거냐? ”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설은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키가 185 센티미터에 팔뚝이 굵은 설을 보면 분명 둘이 싸움이 나면 유성의 완패가 될 것이었다. 그럼에도 유성은 겁먹지 않고 설을 바라보았다.

  “뭐 어떻게 되건 상관은 없는데 적어도 물 흐리는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인간의 도리 정도는 지키자 이거야. ”

  “씨발, 그럼 넌 도리가 있는 세끼니까 가출해서 이곳에 있나 보네? “

  “응. 최소한의 도리는 있지. 너와는 다르게.”

  “병신이 존나 띠껍게 말하네.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지? ”

  설이 주먹을 쥐고 유성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유성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말했다.

  “너희 나 없으면 당장 여기 관리할 감당은 돼? 전기세랑 가스비 어떻게 납부하는지조차 모르잖아. 애초에 그걸 낼 돈은 모을 수 있고? 지금 여덟 명이 나누어 내니까 그 돈이 감당되는 거지, 나랑 하늘이, 수환이, 유나까지 전부 나가면 하루 이틀 만에 돈을 전부 탕진하는 너네가 그걸 낼 순 있을까? ”

  유성의 말에 설이 팔을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멱살을 쥔 손을 풀었다. 이번엔 유성이 가소롭다는 듯 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밥 해야 하니까 설거지나 좀 하고 와. 이번엔 네가 설거지 당번이잖아.”

  아마 설의 세력 아이들도 그 사실 하나만큼은 똑똑히 알았을 것이었다. 싸움은 설이 일 순위여도 유성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다는 것을. 곧, 싸움 실력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6


  지아가 집에 안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하릴없일 그를 기다리며 저려오는 왼쪽 손목을 빙빙 돌리기만 했다. 스포츠 경기를 보아도 재미가 없었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어도 맛이 없어 남기기 일쑤였다. 이번엔 지아가 할 법한 질문에 미리 공부를 하기도 했다. 왜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는지, 중국이 왜 공산당인지, 여름이 시작될 때 왜 장마가 함께 오는지, 조선 왕은 누구누구가 있었는지. 언젠가 지아가 물어보았을 때 부끄러움 없이 대답해 주기 위해 퇴근을 하면 늘 틈틈이 공부를 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퇴를 하지 않고, 검정고시를 보지 않고 대학에 갔다면…… 이런 상식들은 당연히 알고 있었겠지. 라면을 자주 먹는 편이 아니었기에 집에 쌓아둔 라면 봉지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장을 보러 갈 때마다 오늘은 라면을 사지 말아야지, 다짐해 놓고 늘 습관처럼 라면을 한 봉씩 쥐어 카트에 넣었다. 지아가 없으니 손목의 통증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보니 숯이 떨어지며 났던 화상 자국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었다. 분명 며칠 동안은 열심히 치료를 다녔는데 어느 센가 병원에 가야 한다는 중요성을 잊어버린 탓이었다.

  공허한 마음에 습관처럼 티브이를 켰다. 적어도 티브이 소리가 난다면 방 안에 적적함이 가라앉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아의 질문이 없으니 하루종일 집 안에서 침묵의 연속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지아가 어떤 일을 시작하게 됐는진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찜찜하는 괜히 가슴을 붕 뜨게 만들었다. 그가 걱정되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유성도, 설도, 유나도, 지수도, 종하도, 한성도…… 심지어 나조차도 아무도 구제하지 못 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지아만큼은 꺼내주고 싶었다. 그거라도 하지 못한다면 정말…… 나 자신이 한심하기만 할 것 같았다.

  가끔은 집에 들어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스무 살이 되고 완전히 부모님을 보지 않겠다 다짐하고 다시 집을 나왔다. 이건 가출이 아니었다. 그저 완전히 단절이었다. 부모님도 나를 찾지 않았고, 나도 부모님을 찾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적적함과 공허함이 내 주변을 둘러싸 차갑게 물들일 때면 가끔씩 집 생각이 나곤 했다. 그러다가도 아버지의 큰 손바닥이 떠오르면 곧장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각을 지워버렸다. 지아와 일상을 공유했다고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 나만 지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얼마나 이 바닥이 거지 같은지, 하릴없이 거리를 방황하는 게 얼마나 지옥 같은지, 이런 생활의 끝이 결코 좋지 않을 거라고 전혀 말해주지 못했다. 유성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체구는 작았어도 늘 듬직하고, 카리스마가 있어 누구든 본인을 따르게 할 수 있던 유성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물어보고 싶었다.

  지아에게 연락이 온 건 새벽 이른 시간이었다. 문자나 전화는 아니었고 지아의 이름과 돈 십만 원이 내 계좌로 입금되었다는 알림이 그의 소식을 알려주었다. 아래 메모에는 그동안 생활비라고 말했고 그 이상의 연락은 없었다. 전화라도 걸어볼까 했지만 선뜻 손이 나서진 않았다. 차마 지금 당장은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적어도 잊어먹지 말아야지, 하고 달력에 ‘지아에게 전화하기’라고 적어두었다. 그러나 내가 먼저 할 것도 없이 그날 밤, 지아에게 먼저 전화가 걸려왔다.

  “형, 잘 지내세요? 오늘 새벽에 돈 부쳐드렸는데.”

  “응. 잘 지내지. 돈은 확인했다. 이런 거 안 보내줘도 되는데.”

  “제게도 양심이란 게 있어요.”

  “별 일은 없지? ”

  “네…… 없어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갑자기 자신감 넘치던 지아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지만 결국 모른 척 넘어가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다행이네.”

  “돈을 조금만 더 벌면 형 한 번 찾아갈게요.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래. 돈 열심히 벌고. 또 무슨 일 있으면 통화하렴. ”

  “네. 건강하세요.”

  통화 종료음이 들리자 다시 손목의 통증이 시작되었다. 스피커 너머로 어렴풋이 들리던 지아의 한숨소리가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당장 지아가 사는 곳도, 일하는 곳도 모르는 지금 나는 하릴없이 지아의 연락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님 그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잠에 들기 전, 늘 타이레놀 두 정을 먹어야만 잠이 왔다. 그렇지 않고서야 밤마다 두통에 시달렸기에 진통제가 없으면 잠을 못 이루었다. 그러나 잠에서 깨면 다시 밀려오는 두통에 헛구역질을 하거나 한동안 머리를 움켜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한동안은 두통 탓에 책을 내려두기도 했다. 주말처럼 일을 안 가는 날에는 일찍이 산책을 나가곤 했는데 지아를 만난 골목을 지나칠 때마다 다시 두통이 나를 괴롭혔다.

  여분의 타이레놀을 사기 위해 약국으로 향했다. 어느새 벚꽃 잎은 모두 떨어지고 푸른 나뭇잎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곧 장마가 시작된다는 예보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기상청은 오늘 날씨를 예측할 수 있었지만 오늘 나의 하루를 예측할 수는 없었다. 약국에 들어가자 나도 모르게 흠칫하게 되는 인상에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너, 하늘이 맞지? ”

  사람들이 내뱉는 말은 늘 모순이 가득했다. 세상은 넓으니 나아가라, 세상은 좁으니 착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면 나는 세상은 넓은 건지, 좁은 건지 헷갈려 눈동자를 빙글빙글 돌리곤 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세상이 너무 좁게 느껴졌다. 일부로 부모님과 더 멀리 떨어지려고, 나와 잠깐의 시간을 함께한 가출 아이들과 멀어지려고 이 동네를 선택했지만 수환을 이곳에서 마주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어…… 오랜만이네? ”

  “약국은 무슨 일이야? ”

  “그냥 진통제 사러. 그럼 너는? ”

  “그냥 볼 일이 있어서? 오늘 일정 있어? 뭐 없으면 근처 카페에서 커피라도 한 잔 할래? ”

  “커피? ”

  “응. 내가 살게. ”


  나와 수환은 근처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최대한 우리 대화가 들리지 않도록 구석 자리를 골라 앉았다.

  “잘 지내고 있었어? 그 일 뒤로 우리 완전 뿔뿔이 흩어졌잖아. 몇 명은 소년원 들어가고, 딱 너랑 나 그리고 혜선이 누나만 소년원은 피했으니까. “

  “아, 유나? 소식은 잠깐 듣긴 했어. “

  “그래? 누나는 어떻게 됐다는데? ”

  “유나는 수감됐어. 본인이 그러길 선택했대.”

  혜선이 누나는 사실 유나였다. 그녀는 우리가 열 일곱 때 세 살 많은 스무 살이었고 나이와 이름을 모두 속이고 떠돌이 삶은 선택하게 되었다. 나이를 속인 이유는 우리도 알 수 없었지만 이름을 속인 건 적어도 복싱 챔피언 이름에 누가 되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분명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나를 따로 불러 솔직하게 고백하긴 했지만 혜선이란 이름이 쉽게 입에 붙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직은 자신을 부를 때 혜선이 누나가 아닌 유나라고 불러달라 부탁했기에 더욱이 그 이름이 익숙하진 않았다. 결국 그녀는 나이 탓에 소년원에 갈 수 없었다. 그렇기에 더 높은 처벌인 징역형을 받게 된 것이었다.

  “적어도 혜선이 누나는 우리처럼 그 일과 크게 관련이 없었을 텐데……”

  “맞아. 그런데도 본인이 불리한 쪽으로 자백해 들어갔어. 이유는 나도 모르겠어.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라.”

  “유성이랑은 연락해……? ”

  당연히 할 법한 질문이라 생각했다. 예상을 했음에도 괜히 목소리가 떨렸다. 그렇다고 유성에게 실망을 하거나 상처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저 그가 미웠다. 유성이 싫었다. 그래서 일부로 대화를 빨리 다른 주제로 돌리기로 다짐했다.

  “아니, 그때 이후로 완전히 끊겼지. 수환이 너는 어떻게 지냈어. “

  “나는 집에 붙잡히고 그대로 더 안 나가고 공부에 집중했어. 뭐 입시까지 치러서 좋은 대학은 아니지만 나름 대학생으로 살고 있고.”

  “다행이네. 생각해 보니 너는 원래 공부를 나름 잘해왔고 머리도 좋았으니까. “

  “학교도 여기 근처야. 완전 깡촌에 있긴 한데 버스가 많이 다녀서 그런지 나쁘진 않더라고.”

  “여기서 사는구나.”

  “응. 혼자서.”

  “심심하겠네.”

  “과제랑 아르바이트하다 보면 그럴 틈이 없어.”

  부러운 삶이었다. 대학생. 나도 그런 직업을 가져보고 싶었다. 과제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고, 시험이란 것을 치르고 싶었고, CC라는 것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나를 속박시켜 공장 안으로 집어넣어 버린 것이었다. 그러니 제발…… 지아만큼은 내 소원을 들어주었으면 했다. 그렇기에 그 아이에게 이런 오지랖을 떤 게 아닐까. 가출 생활을 했어도 수환이처럼 다시 공부에 집중한다면 충분히 대학에 갈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솔직히 좀 후회하고 있어.”

  “뭐를? ”

  “내가 그런 삶을 살지 않았더라면 더 좋은 대학에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연신 머릿속을 맴돌더라.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배부른 소리였다. 애초에 부유한 집안에 태어난 수환은 다시 돌아가기만 한다면 편안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나도 가난한 집은 아니었지만 ‘그 사건’ 이후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부모님과 대화 한 번 섞지 않았고, 스무 살이 넘어가고는 돈은커녕 연락 한 번 보내주지 않았다. 나도 수환과 같이 그런 삶을 살지 않았더라면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고 후회하곤 하지만…… 적어도 수환만큼은 그 후회를 하지 않는 게 이치에 맞다고 생각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수환아, 미안해. 나 급하게 가볼 일이 생겨서. 나중에 또 기회 되면 커피 한 잔 하자. 커피 잘 마셨어. 고마워.”

  최대한 신사답게 말한 뒤 카페 밖으로 나갔다. 거짓말을 하지도, 허세를 부린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괜히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듯해 뒤를 돌자마자 발걸음을 재촉했다. 경보로 보폭을 좁히며 빠르게 걷고 있던 중이었다. 부끄럽다는 생각이 눈앞을 캄캄하게 채운 탓에 차마 앞을 보지 못하고 누군가의 어깨에 코를 박았다. 나와 부딪힌 남자는 건장한 체격 덕분에 뒤로 밀려나진 않았지만 반면 빈약한 내 코는 부러질 듯 아려왔다.

  “씨발, 앞 똑바로 안 보고 다녀? ”

  그는 인상을 험상궃게  찌푸리곤 내 앞에 침을 찍, 뱉었다. 피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그의 민소매 밖으론 보기 흉한 이레즈미 문신이 그려져 있었고 얼굴에 흉터도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애써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한 덕분에 그는 그냥 가던 길을 돌아갔지만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장 지아를 말리지 않으면 적어도 수환처럼이 아닌 저 남자처럼 될 수 있겠다고. 서둘러 지아를 바로잡아야만 했다. 내 머릿속에 작은 버튼이 눌렸다. 어떻게든 지아를 다시 우리 집에 오도록 해야만 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7


  우리의 거처 지는 어느덧 침묵이 자주 가라앉았다. 특히 유성과 설이 함께 있을 때면, 아이들은 숨이 막힐 듯한 표정으로 서로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이미 나와 유성, 유나, 수환을 제외한 나머지 넷은 보험 사기와 협박을 다시 시작한 듯했다. 사실 의심을 할 여지조차 없었다. 지나가는 차에 뛰어드는 탓에 아이들의 몸 군데군데 멍과 상처가 자주 보였고, 밤마다 속옷만 입은 지수가 포즈를 취하면 다른 아이들이 사진을 찍어댔기 때문이었다. 유성도 눈치를 챘지만 애써 모른 척해주었다. 이제 아이들을 위한 마음이 전부 떠나간 것처럼. 이제 네 명의 아이들이 보태는 생활비 금액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유성은 그들에게 한마디 말도 안 하고 자기 돈으로 생활비를 메꾸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유성의 표정이 매번 딱딱하게 굳어진 게 느껴졌다. 싹싹하던 태도도 조금은 차분하게 가라앉았고, 던지는 말 하나하나가 무겁게 느껴졌다. 이런 그의 변화는 분명 설의 세력이 다시 나쁜 일을 시작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확신했다.


  유성이 갑자기 나를 부른 건 분식집 일이 끝난 새벽이었다.

  “하늘아.”

  “응? “

  유성은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곤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다른 애들한테 물어봤었어. 이걸 왜 피냐고. 냄새도 지독하고, 어지럽게만 보이는데. 그런데 다 하나같이 대답이 똑같더라? 이걸 피우면 스트레스가 잠시나마 덜어지는 것 같다고. 그래서 종하 겉옷에서 하나 훔쳐왔어. 이걸 피면 나도 좀 스트레스가 덜어지지 않을까 해서.”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일까? “

  “그거야 나도 모르지. ”

  유성이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자 연신 기침을 해댔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남은 담배를 마저 빨아들였다.

  “그거 기억나? 우리 엄마에 대해 말했던 거. “

  “기억나지.”

  “자리가 잡히면 언젠가 나를 찾으러 온다고 수녀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거.”

  “그랬었지.”

  “그런데 우리 엄마가 사실 수녀였더라고? ”

  “……”

  “그래서 끝까지 나를 데리러 못 왔던 거지. 책임을 못 질 어린 나이에 나를 낳았더라도 수녀의 꿈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나 봐.”

  “엄마가 수녀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는데? ”

  “우연히 페이스북으로 내가 맡겨졌던 보육원을 보다가 알고리즘으로 다른 보육원이 떴어. 그런데 거기 걸려있던 사진에 그날 봤던 여자의 얼굴이 있더라고. 나와 같이 부모도, 집도 없는 아이들은 잔뜩 있는데…… 그 아이들 사이에 나는 없었어. 그래서…… 솔직히 다 죽어버렸으면 해. 엄마도, 내게 거짓말을 한 수녀님도. “

  전에 일부로 유성에게 모질게 말했던 날이 떠올랐다. 괜히 심술이 나 대답하기 곤란한 말들을 연신 내뱉은 게 무안해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보육원을 나온 이유도 엄마를 찾고 싶어서였어.”

  “아무래도 그랬겠지……”

  “그런데 그거 알아? 보육원은 신부님의 허락 없이는 절대 부모와 아이가 서로 만날 순 없어. 열네 번째 생일 이후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를 기다렸어. 소나무 한 그루만 덩그러니 놓인 유리문 바깥을 하릴없이 바라보면서.”

  유성이 담배를 다시 깊게 빨아들이며 숨을 골랐다.

  “그래서 여기 갇혀있기보단 일단 밖으로 나가는 게 엄마를 찾기 더 쉽다고 판단했지. 그리고 일단 돈을 많이 벌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 그러면 적어도 엄마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데? ”

  “글쎄. 일단 돈은 많이 모아놔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어. 그러나 돈을 많이 벌겠다는 목적은 아직까지 모르겠네.”

  주변 공원에 있는 호수에서 개구리가 시끄럽게 울어댔다. 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었기에 입을 앙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유성은 말을 잇지 않고 담배 타들어가는 소리만 냈다. 다행히 개구리 덕분에 어색한 정적은 일지 않았지만 아직까진 차마 유성의 얼굴을 못 볼 듯했다.


  오늘은 유성이 대신 분식집 할머니가 마감까지 계셔야 한다고 했다. 유성은 그녀에게 몸이 안 좋으니 오늘 하루만 쉴 수 있겠냐고 물어본 것이었다. 할머니는 흔쾌히 유성의 부탁을 들어주었고 내가 오후 여섯 시까지 가게에 있는 걸로 퉁치기로 했다. 이제 막 방학을 했기에 아이들이 많이 몰려들어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어제 처음으로 담배를 입에 문 유성을 생각하며 참아냈다. 스파츌라로 떡볶이를 저어내고, 기름에 튀김을 넣고, 순대를 자르다 보니 시간은 금방 지나갈 수 있었다. 나는 내가 퇴근 시간이라는 것도 전혀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다. 더군다나 여름이라 그런지 저녁 식사 시간이 왔음에도 하늘은 아직 푸른 것도 한몫했다.

  “얘, 하늘아. 이거 집 가서 유성이랑 먹어. 몸이 시원찮을 땐 무조건 잘 먹어야 해. 내가 일부로 유성이 좋아하는 튀김들로 골라 넣었어. 그러니 안 먹겠다고 해도 억지로라도 먹여라. 알겠지? “

  방금 막 포장을 했는지 검은 비닐 봉지 안이 따끈따끈했다.

  “네, 감사합니다. 유성이랑 잘 챙겨 먹을게요. “

  최근에 표정이 굳고, 말투가 딱딱해졌어도 지금까지 쌓아온 유성의 이미지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 따끈따끈한 떡볶이와 순대, 튀김에선 분식집 할머니가 유성을 얼마나 아끼는지가 느껴졌다.

  “유성아, 이거 할머니가 너랑 먹으라고 싸주셨어. 떡볶이 먹자.”

  팔짱을 낀 채 바닥에 누워 눈을 감은 유성이 냄새를 맡자마자 눈을 번뜩 떴다. 하루종일 누워만 있었나 본지 몸을 일으키는데 뚜둑, 하고 뼈 소리가 났다.

  “가게는? ”

  유성은 일어나자마자 할머니 걱정을 먼저 했다.

  “오늘은 할머니께서 마감까지 계시기로 했어.”

  “아…… 좀 쉬셔야 할 텐데. 괜히 죄송하네. 내일은 꼭 다시 나가야지.”

  “유성이 너도 좀 쉴 필요가 있는 거였잖아. ”

  비닐 봉다리 안에서 떡볶이와 순대, 튀김을 꺼내 포장지를 뜯었다. 매콤한 고추장 냄새와 튀김의 기름 냄새가 콧잔등에 맴돌자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유성도 배가 고팠나 본지 포장을 뜯자마자 떡볶이 두 개를 겹쳐 입에 구겨 넣었다.  

  “근데 다른 애들은 어디 가고 너 혼자야? ”

  “수환이랑 유나는 아르바이트 갔고, 다른 애들은 피시방 간다고 했어.”

  “넌 안 가고? ”

  “내가 걔네랑 왜 가냐? ”

  “그렇지.”

  “오늘 무슨 서든 대항전 있다고 하더구먼. 내가 갔으면 너무 손쉽게 이겨서 재미도 없었을걸? ”

  언제 풀이 죽었냐는 듯 뻔뻔하게 말했다. 원래 나였다면 모질게 말하거나 대충 넘어갔을 법한데 이번만큼은 말없이 웃어주었다. 한 편으론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근데 하늘아. “

  “응? ”

  유성이 떡볶이 국물을 잔뜩 묻힌 오징어 튀김을 날름거리며 입 안에 욱여넣고는 한참 동안 우물거렸다.

  “너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 ”

  “응? 갑자기 왜? ”

  “너 기분 나쁘라고 하는 소리는 절대 아니야. 그러니까 오해하지는 마. 그냥 문득 궁금해졌어. 나야 뭐 이제 돌아갈 곳이 없다 쳐도 너는 적어도 돌아갈 곳은 있잖아. 이렇게 냄새나는 집에서 한심한 애들이랑 어울리고…… 어쩌면 이 삶이 더 괴로울 것 같아서.”

  “아냐, 그렇지만은 않아.”

  이번엔 내가 순대에 떡볶이 국물을 잔뜩 찍어 먹었다. 사실 유성 없이 다른 아이들과 집을 꾸렸다면 분명 얼마 못 버티고 집으로 돌았을 거다. 그러나 유성과 함께하는 이상 이 삶의 끝을 보고 싶었다. 무언가 정말 좆될 것 같지만은 않았다. 그런 확신이 들었기에 숨 막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무리 지금 아이들과 사는 이 집이 괴롭고, 다른 어른들에게 받는 대우가 비참하더라도.

  “다 먹고 둘이서 오랜만에 피시방이나 갈래? ”

  “좋지.”

  “일 대 일 내기 한 번 할까? ”

  “야, 당연히 네가 이길 텐데? ”

  “대신 난 권총만 쓸게. 피시방 값 내기 어때? 콜? ”

  “콜. 가자.”

  우발적인 선택이었지만 그게 싫지만은 않았다. 당장 피시방을 가자고 했지만 우리가 먹은 플라스틱 용기를 물로 닦아내고, 분리수거까지 하는 걸 잊지는 않았다.


  게임은 유성이 권총만 쓴다고 했음에도 내가 처참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5점 내기에서 내가 3점을 따낸 것도 유성이 일부로 봐주었다는 의심을 저버릴 수 없었다. 더 오래 앉아 게임을 하고 싶었지만 11시 즈음이 되자 충전한 시간이 다 되었고 유성과 더 충전을 할지, 집으로 돌아갈지 고민하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걸 택했다. 아직 문을 닫지 않은 동네 구멍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들어 집으로 향했다. 깜빡거리는 가로등, 풀밭에서 들리는 귀뚜라미 우는 소리, 공터에서 개구리들이 우는 소리, 모든 게 여름이 다가왔음을 알려주었다. 만약 집을 나가지 않았더라면 막 학교 방학을 맞이해 집에서 빈 둥 거렸을 나를 떠올리며 아이스크림을 핥짝거렸다.

  아이들이 아직 잘 시간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반지하에 불이 켜져 있는 것도 어느 정도 익숙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목소리가 현관까지 닿는 건 나도, 유성도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벌컥, 열어보았다. 안에는 아이들이 거실 한 복판에 빙 둘러싸여 웅성거리고 있었고, 그 사이엔 설이 누워 있었다. 아이들 틈을 비집고 설을 보니 그의 머리에서 피가 잔뜩 흐르고 있었고, 돌아보니 바닥이 온통 피로 가득 물들어 있었다.

  “이게 뭐야. 무슨 일이야.”

  “별 거 아니니까…… 제발, 쿨럭, 제발 신경 꺼줘.”

  설이 애써 몸을 일으켜 세워 말했지만 기침 한 번에 피가 사방에 튀었다. 덕분에 벽지에도 그의 피가 붉게 물들었고 점점 그의 초점이 흐려지는 게 보였다. 유성은 주먹을 꽉 쥐더니 종하의 멱살을 잡고 물었다.

  “넌 다 알지? 빨리 솔직하게 말해. 무슨 일이야. 왜 설이가 저렇게 됐는데. “

  종하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설의 눈치를 보다 이내 입을 열었다.

  ”그……. 사실 지나가는 차에 뛰어들어 돈을 뜯어내려고 했는데 미친놈이 그대로 설이를 들이받고 도망쳤어. CCTV도 없어서 찾지도 못해. “

  “씨발, 그 차를 어떻게 찾냐고.”

  유성이 종하의 멱살을 잡은 손을 풀었다.

  “너 당장 병원부터 가. 지금 온통 피바다잖아.”

  “좆 까. 내일 되면 괜찮아져. 쿨럭, 그리고 병원 가면 의사가 가만히 있겠어? 쿨럭,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물어볼 거고, 그럼 나나 너희나 경찰한테 넘어가는 건 시간문제라고.”

  ”그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 “

  “호들갑 떨지 마. 야, 너희들. 너희 전부 경찰한테 붙잡히고 싶어? 좆같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싫잖아! 그러면 가만히 있어. 그게 우리 모두를 위한 거니까.”

  다른 아이들이 설의 말에 흔들렸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설도 그들의 눈치를 보다 깊은 한숨으로 숨을 골라냈다.

  “얘들아, 설이 방으로 옮겨주자. 그동안 내가 바닥을 닦을 테니까.”

  “어어……”

  아이들은 거구의 설이를 옮기기 위해 각 팔과 다리를 하나씩 들어 올렸다. 그럼에도 무게 분산이 안 되었나 본지 신음소리를 내는 아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동안 설은 화장실에서 걸레를 빨아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하늘아, 베이킹파우더랑 물 좀 섞어서 가져와 줄 수 있어? 벽지에 묻은 피는 걸레로 닦기 힘들 것 같아서.”

  “그걸로 닦이려나? ”

  “나도 확신은 못 해. 그래도 해봐야지. “

  바닥 구석구석과 벽을 꼼꼼히 닦아냈다. 바닥은 순식간에 새하얀 타일을 드러냈지만 벽은 쉽게 얼룩이 지워지지 않았다.

  “예감이 좋지만은 않네.”

  유성이 손톱으로 벽지를 박박 긁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지만 나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마 그의 혼잣말에 어느 정도 동조를 하게 된 것 같았다.


  “유성아, 하늘아 일어나 봐…… 큰일 난 것 같아.”

  희미하게 들리는 수환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아직 시간은 새벽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새벽에 무슨 일이야……”

  유성이 눈을 비비며 물었다. 정신을 차리니 수환의 목소리와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불길한 마음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유성도 이를 눈치챘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설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유성을 따라 들어가니 우리의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설의 주변엔 유나와 지수, 종하가 둘러싸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고 그 가운데 설은 헐떡거렸던 숨이 멎은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얼굴에 파리가 앉아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굳건하게 천장을 향하고 있었다.

  “죽은 걸까……? ”

  “그런 것 같아……”

  “우리 어떡하면 좋지? ”

  “야, 우리가 죽인 게 아니잖아. ”

  눈앞에 싸늘한 시체가 놓여있는 상황을 맞이하기에 우리는 너무 어렸다. 늘 상황을 지휘하려던 유성도 동공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우리가 죽인 게 아니더라도 그걸 어떻게 증명할 건데? ”

  “뭐? ”

  “CCTV도 없었잖아.”

  ”그러네……“

  아이들도 의견 하나 맞지 않았다. 모두가 방황하고 있었다.

  “일단 바깥이 깜깜하니 뒷산에 가서 묻어야 하나? ”

  “그래야 하나? ”

  “그럼 얘를 어떻게 옮기고? ”

  “여기 옷장에 큰 캐리어가 놓인 걸 봤어. 어떻게든 구겨 넣으면 들어가지 않을까? ”

  “하늘아, 나랑 애들이 뒷산에 가서 묻고 올 테니까 너랑 유나는 여기 튄 피를 잘 닦아줘. 아직 벽지에도 피가 좀 묻어있으니 그것도 박박 문질러 닦고. “

  유성이 말을 하자마자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걸레를 빨았다. 설은 팔과 다리를 접어두니 간신히 캐리어 안에 들어간 듯했다. 그리고 캐리어 소리가 나지 않도록 남자 네 명이 캐리어를 들어 올렸고 지수가 앞장서 망을 보기로 했다. 나와 유나는 집에 남아 캐리어 자국과 핏자국을 꼼꼼하게 닦아냈다. 피가 묻은 걸레를 빨 때마다 피비린내가 코를 찔러 헛구역질이 나왔지만 꾹 참고 걸레를 문질렀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

  걸레를 문지르다 말고 유나가 물었다.

  “뭘? ”

  “지금 이 상황을.”

  “좆됐지 뭐……”

  “난 이제 우리의 이런 삶이 오늘부로 끝날 거라고 생각해.”

  “이유는? ”

  “겪었거든. 나도 누군가의 죽음을. 그런데 꼭 죽음 뒤에는 끝이 오더라고.”

  “누가 죽었길래.”

  “내 라이벌. 승리에 눈이 멀었던 나는 걔의 마우스피스가 빠지고 가드가 내려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손 한 번 들지 않고 마구잡이로 펀치를 날렸어. 걔가 쓰러지고 나서도 얼굴을 향해 펀치를 날렸지. 나는 당연히 금메달을 박탈당했고 그다음 날, 그 애는 뇌진탕으로 사망했어. 그렇게 그 애가 죽고 내 선수 생활이 끝나더라고. “

  “……”

  “그래도 끝까지 마우스 피스가 빠진 걸 모른 척해서 법적 처벌을 받진 않았어.”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

  “다행은 아니지.”

  “그래. 대충 생각이 난다. 아빠가 말했던 적 있는 거 같아.”

  “그래. 유명하지. 18살 소녀가 링 위에서 죽었는데. 추모 방송도 많이 나오고.”

  “그게 너…… 그런데 그 사건은 시간이 꽤 지난 걸로 알고 있는데.”

  “응. 맞아. 그때 내가 너희랑 동갑이었을 거야.”

  “그럼 유나 너……”

  “맞아. 난 지금 스무 살이야. 이름도 유나가 아니야. 내 이름은 혜선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 한 순간에,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사실이었다. 말을 마치고 입을 앙 다문 채 다시 바닥을 닦는 그녀를 보자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씨발……”

  아직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해 받아들이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8


  여전히 지아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차마 지아에게 먼저 전화를 거는 건 선뜻 행해지지 않았다. 결국 공장에 하루 연차를 내고 지아의 흔적을 찾아 돌아다녔다. 우선, 이 동네는 확실히 아니었다. 적어도 이 동네에 지아가 있을 법한 일터가 보이진 않았다. 그럼 여기서 가까운 동네는 딱 두 군데였다. 오늘은 위에 있는 먼저 찾아보기로 하고 지아를 찾아 돌아다녔다. 뚜렷한 계획도, 목적지도 없었다. 그저 산책과 다름없는 우발적 산보를 하다 보면 저절로 배가 고파졌고, 목이 말라왔다. 그럼에도 꾹 참고 한 걸음을 더 나아갔다. 적어도 다른 곳에 한 눈을 파는 사이 지아가 지나가버릴 듯했다. 그러나 지아가 입었던 정장은커녕 그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루 반나절이 지났음에도 다행히 해는 저물지 않았다. 그러나 해가 산 능선에 가까워질수록 심장 박동은 점점 빠르게 뛰어오르고 있었다. 가슴이 뜨거워진 듯한 기분에 경보에서 천천히 달리기로 박자가 바뀌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이 동네에 있는지조차 확신하지 않았으면서 무조건 오늘 안에 지아를 찾아야만 한다는 강박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슴이 타오르는 온도는 뜨거워져만 갔다. 하릴없이 거리를 뛰 다니다 지아가 한 말을 천천히 곱씹어보았다. 말끔한 정장과 휴대전화가 꼭 필요하고, 운전자가 있기에 굳이 운전은 할 줄 몰라도 된다…… 같이 일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하나, 분명 합법적인 일은 아니다. 지아같이 어린아이를 필요로 한다…… 도무지 증거가 잡히질 않았다. 그러다 문득, 골목 아래에 놓인 명함이 눈에 들어왔다. ‘떼인 돈 찾아드립니다.’ 그 문장을 보자마자 무언가가 뒤통수를 세게 때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지아가 한 말들이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다가 차곡차곡 맞춰지고 있었다. 나는 주변에 보이는 흥신소나 불법 전당포 등의 명함을 모두 주워 들었다. 그리고 옆 동네로 가서도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손 가득 명함이 쥐어졌을 땐, 이미 해가 저물고 난 뒤였다. 각 유흥 주점이나 술집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나오고 있었고, 어떤 골목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 수많은 명함 중 지아가 있을 법한 장소를 찾아야만 했다. 의심이 확신에 달하자 심장은 미칠 듯한 속도로 뛰었다. 속도에 못 이겨 헛구역질이 나오고 두통이 일어도 명함을 뒤적거리는 손을 멈출 순 없었다.

  “씨발, 얼마나 있는데.”

  “야, 너. 그래, 거기 너. 뭘 쳐다보고 난리야? ”

  “우리 아내가 알면 안 돼. 그래 그래, 나도 사랑해.”

  절로 주먹이 꽉 쥐어지는 말들이 오가는 중 귀를 막으려 애써보려 했지만 쉽게 말들이 다른 귀로 흘러나오진 않았다. 점점 명함을 빠르게 뒤적거렸다. 그러다 드디어 찾던 이름이 보였다. ‘유지아’ 적어도 이렇게 예쁜 이름이 이런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할 순 없었다. 그러니 이 명함의 주인이 지아임을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흥신소의 위치는 명함에 적혀있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누가 불법 업소를 명함에 적나라하게 적어둘까. 그래도 구분을 한 순서를 보니 이 동네에 주웠던 명함이었으니 이곳에 위치하고 있음은 의심할 수 있었다. 발걸음이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길 꺼려하는 것 같았지만 침을 한 번 크게 삼키고 유흥 주점이 있는 골목을 더 들어가기로 했다. 주변은 온통 여인숙과 모텔, 유흥주점으로 꽉 채워져 있었고, 건물 위에 위치한 가게는 전부 전당포나 사주, 다방, 흥신소, 전당포 따위였다. 불법이 가득한 골목은 생각보다 넓었다. 덕분에 오랜 시간 동안 길을 헤맨 듯했다. 그러다 지아의 명함 위에 적힌 흥신소 이름과 똑같은 간판이 보였다. 막상 지아가 일하는 곳 앞에 오니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만히 앞에 서 있자니 왠지 모를 허탈감도 함께 나를 감쌌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

  몸이 그대로 굳어 손가락 하나 까딱여지지 않았다. 이런 곳에 지아가 돌아다니며 먹고, 잤을 거란 생각을 하니 이상하게 뜨거웠던 가슴이 내려앉아 버린 듯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푹 숙여졌다. 다시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한 남자의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야, 그 사람이 빚진 게 얼마인 줄 알기나 해? 그런데도 그냥 보내준다고? 적어도 이자를 더 받아내고 보내줬어야지.”

  “너 기혁이 형님이 일 잘할 것 같다고 해서 믿었구먼, 이딴 식으로 굴면 우리도 너 좋게 못 보내줘.”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그 말만 몇 번째야. 이래서 애세끼 받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으슥한 골목 안에 지아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이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험상궂게 생긴 남자 둘이 정장을 빼입고 지아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둘 중 한 남자는 설이보다 덩치가 더욱 커 보였다.

  “죄송하다는 말로 끝날 일은 아닌 거 알지? 어떻게 갚으려고.”

  “그런데 빌린 돈이 100만 원인데 이자가 300만 원인 건 너무하잖아요.”

  “어린 노무 세끼가 이제 말대꾸까지 해? ”

  남자가 지아의 멱살을 잡은 손을 세게 내팽개쳤다. 지아는 그 힘에 못 이겨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다음 지아가 고개를 들 틈조차 없었다. 이윽고 덩치가 큰 남자의 주먹이 곧장 지아의 얼굴을 향해 내리 꽂혔다. 분명 그 자리로 가 남자를 말리고 지아를 구해주고 싶었지만 다리가 후들거렸다. 당장 남자 한 명으로도 벅찬데 두 명이나 있으니 내가 나서봤자 보기 좋게 지아의 옆에 드러누워 실컷 두들겨 맞을 게 뻔했다. 당장이라도 지아가 고개를 돌리면 눈이 마주칠 것 같았다. 그러면 더욱이 지아를 보지 못할 것 같아 고개를 숙여 자리를 떠났다.


  두 남자가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지아가 있을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덜컥 겁이 났다. 설이나 유나가 때려죽인 라이벌처럼 지아도 죽어버렸으면 어떡하지. 지아가 죽는다면 어떤 내 삶이 끝나버리게 될 건지. 아니,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됐다. 나는 스마트폰에 119를 미리 입력하고 골목을 향해 뛰어 들어갔다. 그곳엔 피와 멍 투성이가 된 지아가 숨을 헐떡인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형…… 여긴 어떻게……”

  “설명은 나중에 해줄게. 일단 병원부터 가자.”

  “아니에요. 지금 갔다간……”

  “어. 네가 일자리에 잘리거나 저 사람들이 널 찾으러 다니겠지.”

  “형도 잘 아네요. 그러니까 못 본 척 그냥 가줘요.”

  “이미 널 봤는데 어떡해. 그러니 서둘러 병원부터 가자. 뒷일은 내가 어떻게든 책임질게.”

  지아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택시를 부르고 지아를 업으려 손목을 들었다가 이내 손목이 찢어질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지아를 내팽개칠 수 없어 입술을 꽉 깨물어 고통을 짓눌렀다.

  “형…… 근데 저 병원비가 없어요……”

  “내가 있어. 그러니 서둘러 치료부터 받자.”


  9


  집에 경찰이 들이닥친 건 설을 뒷산에 묻은 새벽이 지난 그날 오후였다. 갑작스러운 부름에 유성도 분식집에서 일을 하다 말고 서로 오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일곱 명은 모두 유치장에 들어가 부모님이 올 때까지 차례로 조사를 받았다. 우선 나와 유나를 제외한 다른 다섯 명은 모두 시체 유기죄가 적용되었다. 나와 유나는 방관과 주거침입 등으로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만 했다. 조사를 받는 도중 알게 되었는데 지수는 설과 사귀는 관계라고 했다. 그래서 수환을 대신해 지수가 땅을 파 설을 묻어주는 일에 동참했고 수환이 그녀 대신 앞에서 망을 보았다고 했다. 덕분에 설은 시체 유기죄에서 방관죄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우선 우린 모두 소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유나만 제외하고. 그리고 나와 수환은 부모님이 오셔 보조인을 고용했다. 나와 아버지, 보조인과 면담 시간에 보조인은 무서울 정도로 강조해 말했다.

  “하늘이 너는 무조건 시체를 묻으러 가지 않았고, 집에 있었다고만 진술해. 그게 거짓도 아니잖아.”

  “네……”

  “다시, 뭐라고 해야 한다고? 네가 직접 말해봐.”

  “저는 시체를 묻으러 가지 않았고, 집에만 있었습니다.”

  “그래.”

  아버지가 보조인을 고용한 탓인지 내 조사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나는 1호 처분을, 수환은 3호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이를 주동했다고 자백한 유성은 10호인 장기 소년원 송치 처분을 받았다. 다른 아이들 셋도 9호 처분을 받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유성과 어떤 대화도 나눌 수 없었다. 심지어 가벼운 인사조차도. 유성은 면회를 갈 수도, 편지를 쓸 수도 없었다. 원래는 가능하다고 했지만 전부 유성이 거절했다고 했다. 덕분에 그가 언제 나오게 되는지조차 알 길이 없었다.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고 ‘우리 집’이란 장소조차 이번 일을 계기로 완전히 매각되었다고 했다. 엄마를 찾기 위해 돈을 많이 벌 거라고 다짐한 소년은 그렇게 유성처럼 반짝이다 사라졌다. 보호자 위탁을 받고 외출금지로 집에 있는데 붉게 화상 흉터가 난 왼쪽 손목이 눈에 밟혔다. 늘 잊고 있었다가 이제야 유성에게 병원비를 갚아야 한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었다. 이상하게 그 사실이 너무 분하고 화가 났다. 당장이라도 이 왼 손을 잘리 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그저 우발적인 어린아이의 행동으로 나는 화단에 있는 벽돌로 손목을 세게 내리쳤다. 그냥 빚을 진 내 손목이 너무 싫었고, 수감된 아이들과 달리 편하게 집에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유성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 건 유나의 면회를 아니, 혜선이 누나의 면회를 갔을 때였다. 거짓 진술로 유치장에 들어간 그녀였기에 나는 어떤 위로의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9호 처분을 받은 아이들이 몇 번 그녀의 면회를 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혜선이 누나는 나보다 아이들의 근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유성이는 작년 말에 출소했지만 이번엔 교도소로 다시 들어갔어.”

  올해는 혜선이 누나를 제외한 우리 모두가 스무 살이 된 해였기에 잘못을 저질러도 소년원이 아닌 교도소로 바로 갔다. 처음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의심을 했다.

  “유성이가……? 왜? ”

  “오토바이 타다가 실수로 사람을 친 것 같아.”

  “……. 막 소년원에서 나온 애가 고작 몇 달 만에 오토바이는 어디서 구했길래요.”

  “훔친 거지. 그래서 더 오래 있을 것 같아.”

  믿을 수 없었다. 2년이란 시간 동안 유성이 소년원 안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 내가 알던 유성이 아니었기에 진실을 마주할 수 없었다.

  “내 면회도 이제 네가 마지막이야. 다른 애들은 이미 작년부터 하나둘씩 발걸음을 끊었어. 이젠 굳이 네가 아니더라도 내가 면회를 안 받을 거야. 그러니 네 삶을 살아. 어떻게든 살아남으라고.”

  유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등을 돌렸다. 그것이 지금까지 여덟 아이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10


  “형.”

  “왜.”

  지아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환자복에 붕대를 이곳저곳에 칭칭 감은 탓인지 지아의 훤칠했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지아가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내가 요즘 진지하게 고민해 봤거든요? ”

  “응? 뭐를. “

  “저 학교에 다시 가고 싶어요. 여기 일을 하면서 더 크게 와닿았어요. 당장 은행에서 돈을 빌려도 이렇게까지 이자를 받지 않는데 이런 불법 시설까지 와서 돈을 빌린다는 건 신용불량자라는 거잖아요.”

  “그렇지.”

  “적어도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어요.”

  “잘 생각했다.”

  “……”

  “돈은 내가 얼마든지 내줄 테니까 눈치 보지 말고 공부해. 서울대학교가 아니라도 좋으니까 대학에 들어가.”

  ”그럼 형은……“

  “무조건 내주는 거 아니야. 빌려주는 거야. 나 생각보다 짠돌이다. 그러니 나중에 원금에 이자까지 다 쳐서 받아낼 거야.”

  내가 나선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이런 생각을 했다는 지아가 그저 기특하기만 했다.

  “근데 저 형한테 정말 궁금한 게 있었는데 딱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

  “응. 얼마든지.”

  이번에 공부했던 내용이길 바랐다. 적어도 내가 정답을 대답하고 싶었으니까.

  “형은 집으로 안 돌아가세요? ”

  이번에도 정답을 말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희미한 기억 속 마지막 부모님의 얼굴은 내가 딱 스무 살이 되고 나서였다. 벽돌로 손목을 내려찍은 그날, 이미 부모님은 내게 모든 걸 내려놓은 게 느껴졌고, 이미 마음이 틀어진 그들에게 다시 호감을 줄 순 없을 게 분명했다.

  “언젠가…… 때가 되면.”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고 바래지만 그날의 기억만큼은 선명하게 짙어지고 깊어졌다. 그 기억이 불러일으킨 몸이 없는 존재들의 아우성을 느끼며 지겹다고 느낀 삶은 줄곧 아득하고 막막했지만 이건 모두 나의 업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나이를 먹어도 지혜나 연륜 같은 걸 터득하지 못하고 외로움과 아득함만 깨닫고 있었다. 산란하는 빛마저도 나를 괴롭히는 듯했다. 보조인과 판사는 내게 무죄를 판결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내 죄에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그와 멀어진 뒤로 나는 아니, 우리는 까마득한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문득 사건의 일어난 새벽의 밤하늘이 떠올랐다. 그날은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를 구한다고 여전히 내 죄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당연한 불변의 법칙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아이만큼은 그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은 게 전부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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