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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Mar 19. 2024

어중간하게 되는 과정



  애써 발버둥 쳐도 목을 옥죄이는 것.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고, 또 버리자기엔 너무 아까워 망설이다 스스로 목을 졸랐다.

  애써 모른 척해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나서자니 머뭇거리고, 가만 두기엔 불쌍해 망설이다 눈물로 앞을 가렸다.


  28살의 언니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화학공학과를 전공한 그녀는 졸업 후 곧장 전력공사에 취직을 했고, 틈틈이 운동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났다. 사건의 시발점이 된 건 은평구 응암동에서 하던 ’ 독서토론 모임‘이었다. 원래 책을 잘 읽는 편도 아니었고, 이공계 출신이었기에 문학에 대해 토론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그녀와는 괴리감이 있었다. 그랬던 그녀가 독서토론 모임에 간 건 단순한 호기심 내지 도전이었을 것이었다.

  며칠 못 갈 것 같았던 그녀의 취미는 예상보다 오래갔다. 매주 토요일 오전, 그녀는 꾸준히 독서토론에 나갔다. 모임에 나가기 위해 친구들과의 약속을 거절하거나, 금요일에는 절대로 야근을 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그녀의 건강한 취미로 이를 여겼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 가족 모두를 놀라게 했다.

  “나 퇴직서 냈어.”

  거실에 모여 앉은 가족들 앞에서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크게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다시 말을 이었다.

  “입시하려고.”

  언니의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아빠가 마시던 차를 분사했다. 엄마도 눈을 질끈 감았다.

  “문예창작과에 갈 거야.”

  아빠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에 들어가 겉옷을 챙겨 입은 아빠는 베란다로 향했다. 이윽고, 베란다를 기점으로 담배냄새가 거실까지 퍼져 흘렀다. 엄마도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티브이만 보았다.

  “겨레야, 너 국문과잖아. 네가 언니 좀 도와줄 수 있겠니? ”

  언니의 눈빛에 나도 모르게 기가 죽은 듯했다.  그녀에게 이유를 틈 따위 주어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내가 틈을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언니는 수시로 글을 썼다. 대학별로 추구하는 스타일을 정리하고, 제시어 같은 기출문제들로 몇 번이고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여기선 묘사를 더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소설이 아닌 다큐멘터리 대본 같아.”

  언니는 모진 말에도 불평 하나 없었다.

  “여기랑 여기는 띄어 쓰는 게 맞아. 그리고 여기서 여기로 넘어갈 땐 장소가 바뀌니까 문단을 나누는 게 더 깔끔할 거야.”

  “책을 읽는 거랑은 또 다르네. ”

  이번 언니가 선정한 기출은 ‘면접시험을 보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수험생이 면접을 보러 갔다는 상황을 글로 쓰시오.’이었다. 동국대학교의 제시 상황으로 묘사와 2,000자 내로 탄탄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평가 요소인데 책을 단기간에 많이 읽은 만큼 묘사 하나는 언니의 강점 중 하나였다.

  두 시간이 모두 지나서야 언니는 펜을 내려놓았다. 처음 해본 모의시험이었기에 원고지 작성법은 첫 문단부터 엉망진창이었다. 이를 모두 무시하고 그녀가 쓴 글을 차례로 읽어보았다.

  “언니.”

  “좀 어때? 괜찮아? “

  흔들리는 눈동자. 거기서 그녀가 오롯이 내게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묘사는 굉장히 좋아. 머릿속으로 장면 하나하나가 다 그려지니까.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재미가 없어. 어떤 내용을 담은 건지도 잘 모르겠고.”

  그렇다. 그녀의 강점은 묘사가 전부였다. 2,000자의 분위기를 장악하는 첫 문장도, 이야기의 종결을 내야 할 결말도, 문단들의 구성도 모두 엉망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오점은 ‘발상’이었다. 언니의 콩트는 다른 소설에서 보았을 법한 내용 내지 새롭지만 하품이 절로 나오는 것들 뿐이었다.

  평가를 마치면 언니는 ‘열심히 더 하다 보면 괜찮아지겠지.’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한 피드백들을 중얼거리며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일렁이는 말을 모두 턱 끝에서 삼킬 수밖에 없었다.


  결국 언니는 서울권 대학에 모두 떨어지고, 지방에 있는 학교 문예창작과에 갔다. 스물아홉 짜리 신입생, 심지어 서울에 있는 학교의 화학공학 전공과 전력공사에 일 했다는 커리어를 모두 버린 스물아홉 짜리 지방대 신입생. 혀를 끌끌 차는 친척이나 주변 사람들의 오지랖과는 달리 그녀에게 후회는 없었다. 언니는 대학생 때처럼 과제에 괴로워하거나 학교에 가기 싫어 거짓 병결 결석도 하지 않고 꾸준히 학교를 다녔고, 틈틈이 그녀가 쓰고 싶어 하는 소설도 만들어 블로그에 올렸다.


  나는 몇 번이고 그녀의 작품을 읽어보았다. 과제로 제출한 작품부터 블로그에 올라온 작품까지 모두를 언니가 4학년이 될 때까지. 언니가 갑자기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차마 하지 못 한 말. 두 번째 4학년을 맞이한 그녀도 그 말을 깨달은 듯했다.

  4학년부턴 작품의 분위기 자체가 바뀌었다. 인물 하나하나 비관적이었고, 이제는 뚜렷하게 드러나는 주제도 암울한 주제였다. 당연히 과제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고, 여전히 블로그 반응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겨레야.”

  “응? ”

  “꾸준히 열심히 하는 것보단, 꾸준히 잘해야겠더라.”

  “이번 학기만 좀 휴하하고 쉬어. 여행이라도 가라고.”

  “고민 중. “

  

  결국 언니는 막학기를 두고 휴학계를 냈다. 그리고 가장 빠른 파리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휴식을 취할 줄 알았던 그녀는 파리로 가기 전까지 남은 보름동안 내내 태블릿 PC를 손에 쥐고 있었다. 늘 노트북을 쓰던 언니가 태블릿 PC를 새로 산 건 블루투스 펜 때문이었다. 며칠 전, 인터넷에서 샀다고 한 블루투스 펜은 평범한 펜처럼 보였으나 위에 불빛이 연신 반짝이고 있었다. 위에는 충전 단자도 삽입되어 있었는데, 펜으로 무언가를 쓰거나 그리면 언니의 태블릿 PC에 연동되어 메모장에 남겨진다고 하였다.

  ”가져가게? “

  “그래야겠지? ”

  “그럼 쉬러 가는 게 아니지 않아? ”

  “그냥…… 생각날 때마다 끄적이긴 하려고.”

  “그래. 언니 마음이지 뭐.”

  결국 그녀는 펜과 태블릿 PC, 노트북을 가지고 파리로 떠났다.


  언니가 돌아오고 곧장 언니의 소설이 단번에 관심을 받았다. 처음엔 블로그에 반응이 폭발적으로 떴다가, 한 출판사가 언니에게 따로 연락을 하기도 했고, 잡지에 수록되기도 했다. 그녀가 소설을 쓴다고 말하고 처음으로 가족들이 칭찬을 했다. 아빠는 고이 모셔둔 비싼 와인까지 따면서 그녀의 흥행을 축하했다. 그러나 어떤 축하를 해도 언니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심지어 매일 밤, 언니는 방에 틀어박혀 홀로 눈물을 떨어트렸다. 평상시와는 달랐던 모습에 굳게 닫힌 언니의 방 문을 열었다. 어두웠지만 새빨간 눈물 자국이언니의 눈가에 진하게 묻어있다는 사실은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괜히 떠보는 식으로 물었다.

  “이번에 문체나 분위기, 묘사하는 것까지 다 바뀌었더라? 파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봐. “

  그녀는 소매로 눈가를 한 번 훔치곤 말했다.

  “없었어. ”

  “그래? 그런데 한 달 만에 그렇게 바뀐 비결이 뭐야.”

  “내가 쓴 게 아니니까…… 세상 밖으로 나오면 안 될 소설이었으니까.”

  그녀가 다시 한번 눈물을 쏟아냈다.

  “그게 무슨 말이야? ”

  “공항에서 블루투스 펜을 잃어버렸었어. 이런 신문물은 나와 맞지 않는구나, 포기했어. 펜을 쓰는 것도, 아무도 안 읽을 글을 싸지르는 것도.”

  “혹시 누가 펜을 주웠어? ”

  “갑자기 태블릿에 알람이 울리더라? 업데이트가 됐다고. 무슨 일인가 싶어 알림을 확인해 보니 두 편의 소설이 쓰여 있었어. 그 소설은 나와 완전히 달랐지. 매끄럽고, 가독성도 있고, 무엇보다 재미있었어. 그러다 맨 밑에 쓰인 저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을 쏙 빼놓고 올라온 소설을 블로그에 올린 거야.”

  “그 사람은 본인이 쓴 소설이 이렇게 올라왔는데 어떻게 한 번을 모를 수 있어? ”

  “모르는 게 당연하지.”

  “왜 당연한데? “

  “죽었으니까.”

  “……? “


  언니는 출국하기 직전까지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였다고 했다. 그리고 출국 비행기를 탔을 때, 블루투스 펜이 파우치 안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비행기는 이륙하는 중이었기에 펜은 다시 찾을 수는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파리로 향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리고 언니가 귀국하기 이틀 전, 언니의 태블릿 PC에 알림이 울렸다. 언니는 완벽한 소설들을 보고 몇 번을 고민했다. 결국 언니의 선택에 휘발점이 된 건 바로 다음날 올라온 뉴스였다. 소설은 배우였지만 부족한 연기력 탓에 낙하산이나 부당한 방법으로 배우가 되었다는 루머로 악플에 시달린 류진현의 소설이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인정받았던 것은 바로 ‘글’이었다. 그녀에 관한 기사가 나올 때마다 기사 제목 대부분은 그녀가 쓴 에세이나 소설 등이 메인을 차지했고, 베스트셀러 1위까지도 오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질책하던 사람들은 그녀의 모든 것에 대해 악플을 남겼고, 결국 마지막 소설을 내지 못한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다.

  언니는 그 기사를 보자마자 고민할 것도 없이 그녀의 소설을 가져와 업로드했다. 류진현이 언니의 펜을 주운 것도, 그 펜으로 마지막 소설을 쓴 것도 모두 본인에게 내려온 행운 따위라 여겼다. 그러나  베스트셀러에도 절반 넘게 악플이 달린 그녀와는 달리 여러 비평가나 출판사에게 추천을 받으면서 점차 그녀에겐 죄책감이 피어오른 것이었다.

  “앞으로 글 싸지르는 걸 더 할 수 있을까? ”

  “글쎄.”

  “더 이상 내 소설은 내 것이 아닌 게 되어버렸잖아.”

  “언니는 그걸로 여태 해온 걸 포기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 같아? ”

  “잘 모르겠네.”

  “이렇게 어중간 한 사람이 되는 건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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