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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Oct 13. 2022

발레 슈즈



  남편의 한숨 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렸다. 나는 고무장갑을 낀 손을 멈추었다. 수돗물 흐르는 소리를 거르고 남편의 방으로 귀를 기울였다.

 “감봉이라뇨. 아직, 애들 대학도 못 보냈습니다. 맞벌이를 해도 모자랄 판에 아내는 취직은 커녕 제대로 걷지도 못해 병원비만 더 나간다고요.”

 나는 그가 말 한 단어들을 배열해 곱씹어 보았다.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러나 이윽고 들리는 남편의 울음소리에 모르는 척 다시 설거지를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다 물이 발에 튀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주먹보다 작은 발이 눈에 들어왔다.


 보수적인 중국 집안에 태어난 나는 걸음마를 떼자마자 발에 헝겊을 씌웠다.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헝겊을 벗겼을 때, 나는 당장 발목을 잘라내고 싶었다. 그 충동은 나이가 들어서도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으로 어학연수를 오고 만나게 된 남편은 달랐다. 그는 내 저주받은 발 조차 사랑한다 말해주었다. 그 모습에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이었다.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남편은 내게 다시 사랑한다고 말할까?


 남편이 나오자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무심하게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작게 짱깨년,이라고 속삭였다. 나는 못 들은 척 수세미를 박박 문질렀지만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 도어락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재빨리 눈가를 훔치고 현관 앞으로 갔다. 딸의 얼굴을 보자 언제 눈물을 흘렸냐는 듯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녀는 신발을 벗지도 않고 가방을 앞으로 고쳐 매었다. 그리고 가방을 몇 번 뒤적거리다 발레학원 전단지를 꺼내보였다. 이게 뭐냐고 묻자 나, 발레 배우고 싶어! 라고 외쳤다. 나는 슬쩍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는 남편의 눈치를 봤다. 그는 딸을 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말했다. 딸의 입술이 뾰로퉁 나왔다. 나는 딸을 학원에 보내지 못 하는게 내 탓인가 싶어 눈을 아래로 깔았다.


 그날 밤, 나는 유튜브에 ‘발레 배우기’라고 검색을 했다. 백조같이 새햐안 사람들이 주르륵 화면에 나타났다. 나는 맨 위에 있는 영상을 눌렀다. 5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의 몸짓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주먹만한 발에 연신 시선이 고정되었다. 영상이 끝나자 나는 내 발을 내려다 보았다. 그녀도 이 작은 발로 아름다운 표현을 하는데…… 나는 곧장 딸의 방으로 들어가 그녀가 보여준 전단지를 챙겼다. 그리고 들고있던 휴대전화에 학원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학원 안에는 발레복을 입은 사람들이 다리를 찢고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호수 위에 백조떼를 연상케했다. ‘일일 체험 하신다는 분 맞으시죠?’ 강사가 나를 보자 어서 옷을 갈아입고 오라고 했다. 하얀 쫄쫄이가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지만 뭔가 백조가 된 듯한 기분이였다. 사람들은 새로 온 나를 보자 반갑다며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어머, 발 너무 사랑스럽게 생기셨다. 발레하기 정말 좋은 발이예요.”

 두 번째였다. 내 발이 사랑스럽다고 들은 건. 그런데 20년 전에 들었을 때보다 더 가슴이 설레였다. 그리고 남편의 찌푸린 인상이 떠오르지 않는 순간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강사를 찾아갔다. 그녀가 방긋 웃자 나로 따라 미소를 보였다.

 “수업 신청할게요. 제가 직접 딸을 알려주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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