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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Oct 13. 2022

금성과 편의점


 시곗바늘이 오후 세 시 정각을 가리켰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역시나 누더기 옷을 입은 남자가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가 나와 눈을 마주치자 미소를 보였다. 누렇다 못해 시커맣게 썩은 치아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시선을 돌리려는 찰나, 남자가 창문에 얼굴을 들이댔다. 나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벌컥,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 외쳤다.

 “모, 못 가요……우주선이 고장 났어요.”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러다 고개를 가로젓다 그를 밀어냈다. 그는 미련이 가득 남은 표정으로 편의점을 힐긋거리며 사라졌다.


 애들 대학 보내려면 여보도 뭐라도 좀 해, 남편의 말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늦게 결혼을 한 탓에 정년퇴직을 했지만 아직 두 자식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교복을 입은 딸의 얼굴을 떠올리다 거울로 고개를 돌려 숙여 입은 편의점 조끼를 보았다. 주름진 얼굴에 듬성듬성 난 흰머리.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때, 저 멀리서 아까 그 남자가 보였다. 핼쑥한 그의 볼이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창고로 들어가 유통기한이 지난 빵을 챙겨 야외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리고 빵을 가리킨 뒤,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그는 후다닥, 달려오더니 게걸스럽게 빵을 먹어치웠다. 그는 내게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다시 등을 돌렸다.


 11시, 교대 시간이 다가왔다. 다음 근무자를 기다리기엔 배가 너무 고팠다. 그러나 아까 남자에게 빵을 준 탓에 창고엔 먹을 게 하나도 없었다. 나는 물류를 정리하다 유통기한이 한 시간 남은 삼각김밥을 집어 들었다. 포장지를 벗기려는 순간, 묵직한 손바닥이 내 뒤통수를 갈겼다. 뒤를 보니 점장이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이래서 내가 아줌마들을 안 받아. 괜히 식탐만 많아가지고.”

 그가 뱉은 말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내 그가 나의 갱년기를 탓하기 시작했다. 나는 조끼를 벗어 집어던졌다. 문득, 딸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이를 갈며 문을 박차고 나왔다.


 차마 바로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집 앞 벤치에 앉아 아파트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집에 들어가면 남편이 또 돈 얘기를 꺼내겠지. 당장이라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그때, 누더기 옷을 입은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그는 동정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 코트 안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삼각김밥을 꺼내 내게 건넸다. 얼마 남지 않은 유통기한, 살짝 뜯어진 포장지. 내가 먹으려 했던 삼각김밥이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이걸 가져왔냐고 묻자 그가 쉿, 하고 손가락을 얼굴에 가져다 댔다.

 “집이 어디세요? 슬슬 추워지니 어서 들어가세요.”

 남자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그리고 밤하늘 한편을 가리키며 저곳이 집이지만 이제 갈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갑을 꺼냈다. 현금이 2만 원밖에 없었지만 전부를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걸로 샤워도 하고 머리도 자르라고 말했다. 그런데 남자의 뺨에 눈물이 흘렀다.

 “도, 도움받을 사람은 내가 아니고 당신인데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는 입을 바르르 떨더니 침을 한 번 삼기고 입을 열었다. 외지에서 와 거지꼴인 자신이 받는 취급보다 내 또래의 여성이 받는 대우가 더 잔인하다고.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삼각김밥 위에 손을 올렸다. 따스한 기운이 내 손을 타고 느껴졌다. 나는 곧장 따듯해진 삼각김밥의 포장지를 뜯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이게 뭐라고……어쩌면, 같은 지구, 같은 집에 사는 사람보다 저 멀리서 왔다는 이 남자의 거리가 더 가까운 게 아닐까. 나는 남은 삼각김밥을 한 입에 털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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