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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Oct 17. 2022

분류 전문가를 주인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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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안 돼. 시스템을 멈춰!”

 나의 간절한 외침에도 시스템을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분류소 앞으로 달려가 구멍을 두 손으로 막았다. 그러나 액체는 연신 그 틈으로 새어나왔다. 나는 당장 경보를 켜라고 소리쳤다. 건물 안이 온통 붉게 물들여 사이렌소리가 울려퍼졌다. 액체가 겉잡을 수 없이 흘러나왔다. 이내 손가락 사이로 액체가 뿜어져 나와 입가에 묻었다. 나는 느껴지는 달콤함에 절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다시 이를 꽉 물고 틈을 막았다. 절대로 이게 우리 안으로 들어오면 안됐다. 지금은, 지금은…… 사랑을 할 수 없었다. 경보음이 멈췄다. 동시에 새어 나오던 액체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동료가 테이프를 건네주자 곧장 틈에 덕지덕지 붙였다.


 사무실 안은 혼비백산이었다. 나는 대걸레를 챙겨 바닥을 닦았다. 새하얀 바닥이 다시 드러났다. 나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다시 일을 시작하자고 말했다. 그런데 도파민 수용체가 내게 우물쭈물 다가왔다.

 “그런데 왜 사랑을 수용하지 않는 거죠?”

 그의 말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나는 손가락으로 지식 부서를 가리켰다. 그곳은 다른 부서에 비해 많은 수용체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위에는 ‘취직’이라는 플랜카드가 크게 걸려있었다. 그는 다른 부서원들도 지식 부서에서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짧은 신음을 뱉었다.


 해가 저물고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나는 이제 퇴근준비를 하라며 손뼉을 쳤다. 겉옷을 입으려고 하는데 테이프로 막은 틈으로 분홍 액체가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겉옷을 다시 벗어 던졌다. 원인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시야 화면은 까맣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혼비백산이였다. 그때, 청각 부서 직원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는 숨을 한 번 고르더니 주인이 전화중이라고 일렀다. 머리가 핑 돌았다. 빨리 잠에 들어야 내일 지식부서에서 더 원활하게 일을 할텐데…… 나는 우선 흘러 나오는 액체를 다시 틀어 막았다. 그러나 액체는 낮보다 더 짙게 흘러 도무지 막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허리까지 액체가 차올랐다. 부서원들은 젖지 않도록 선반 위에 서류를 올리기 바빴다. 경보음이 끊기질 않았다. 나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그런데 청각 시스템에서 희미하게 목소리가 울렸다. ‘좋아해요.’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뭔가 마음이 차분해진 듯했다. 나는 도파민 수용체를 호출했다. 잽싸게 눈앞으로 온 그는 흥분된 듯한 얼굴을 보였다. 나는 그에게 수용을 허락했다.


 그가 순식간에 액체를 들이마셨다. 그러니 다른 부서원들도 한 층 더 안정되어 보였다. 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저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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