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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Nov 25. 2022

참치캔


  엄마가 돌아가신 지 일 년이 지났다. 장을 보러 가야 하나…… 냉장고는 텅 비어있었다.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 잔액을 확인해보았다. 일, 십, 백, 천, 만…… 장을 보러 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월급까진 한참 남았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밥솥 안에 오늘 먹을 정도의 밥이 있다는 것이다. 그때, 선반 위에 놓인 참치캔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집들이 선물로 받은 건데 아직도 남아있네. 조심스레 뚜껑을 열어보았다. 기름진 참치살이 드러나자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나는 곧장 냉장고 문을 열어 마요네즈를 꺼냈다. 얼마 들어있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밥그릇은 작을 것 같았다. 나는 국그릇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밥과 참치, 마요네즈를 넣어 숟가락으로 슥슥 비볐다. 참치 기름과 마요네즈가 비벼지는 소리는 절로 미소를 짓게 해 주었다. 먹음직스럽게 비벼진 덮밥을 크게 한 숟갈 떴다. 이제 입에 넣어야 하는데 도무지 숟가락이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멈출 수 없었다. 나는 그릇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연신 눈가를 훔쳤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늘 형광등은 꺼져 있었다. 내가 잠에 들려 침대에 누워야만 도어록 소리가 들렸고 눈을 뜨기도 전에 현관 열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눈을 비비며 방을 나오면 항상 탁자 위에는 참치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둥글고 노란, 언뜻 보면 고양이 사료 같은 참치캔. 그 위에는 삐뚤빼뚤 한 글씨로 적은 엄마의 쪽지가 놓여 있었다. 아침이랑 저녁으로 챙겨 먹어. 아마 엄마는 나를 고양이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가끔은 엄마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내 휴대전화 배경화면은 늘 엄마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마저도 의미가 없어졌다. 분명 휴대전화 속 여인과 동인 인물이어야 하는데, 까무잡잡해지고 주름이 져버린 엄마의 얼굴은 도무지 같은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엄마의 휴일, 꽃구경을 핑계로 엄마의 사진을 찍으러 공원에 간 적 있었다. 그러나 그날 엄마의 사진은커녕 내 사진만 카메라에 담겼다. 엄마도 와서 찍으라는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다 늙은 얼굴을 뭐하러 남긴다. 결국 내 휴대전화 속 엄마의 사진은 그대로 영정사진으로 쓰였다.


 결국 그릇 바닥에 기름이 가득 고였다. 그제서 나는 숟가락을 들고 허겁지겁 밥을 넘기기 시작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 조차도. 고요했던 침묵을 깬 건 밖에서 들려온 고양이 울음소리였다. 힐끗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내 손바닥만 한 새끼 고양이가 길거리를 방황하고 있었다. 고양이는 한껏 굶주려 갈비뼈가 훤히 드러났다. 나는 하나 남은 참치캔에 시선을 돌렸다. 그 뒤에는 달력이 걸려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 뜯다 이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캔을 따 밖으로 향했다.

 고양이는 나를 보자마자 울음소리를 내며 내게 다가왔다. 무릎을 굽혀 고양이 앞에 캔을 놓았다. 그런데 고양이는 코를 몇 번 킁킁거리더니 고개를 돌렸다. 참치를 안 좋아하나? 캔을 들어 냄새를 맡아보았다. 기름냄새 말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런데 어미 고양이는 어디 간 걸까. 그때 불현듯, 사람 손을 타면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포기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뻗었던 왼 손을 옆구리에 붙였다.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어미 고양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사람의 손을 탄 걸까. 너도 혼자구나 이제.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결국 나는 고양이를 들어 올렸다. 아무런 저항도 없었다. 우리 집으로 가자. 나는 곧장 고양이 사료를 샀고 병원에 데려가 검진도 받았다. 단말기에 카드가 긁힐 때마다 손이 절로 떨렸지만 고양이와 눈을 마주치면 이내 떨림이 멈추었다.

 나는 그에게 오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어느정도 살이 올라오자 오카는 매일 집 안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띠링, 하고 문자 알림이 울렸다. 나는 오카를 잡으려 집안을 돌아다니는 탓에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화면이 켜진 액정 안에는 오카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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