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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Nov 25. 2022

일회용품



  “제로 웨이스트를 좀 실천하라니까요.”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매주 화요일, 쓰레기를 버리러 아파트 아래로 내려가면 늘 그녀가 주민들을 감시했다. 그녀는 나이, 성별 따질 것 없이 모두 평등하게 잔소리를 해댔다. 거 참, 집에서 밥을 해 먹으면. 될 것이지, 뭔 편의점 도시락을 먹어요? 그녀가 쓰레기봉투를 뒤적거리며 끊임없이 잔소리를 했다. 펑퍼짐 한 잠옷을 입고도 저렇게 쓰레기통을 뒤지다니, 더럽지도 않은가.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등을 돌렸다.

 처음 이사를 왔을 땐, 그 여자의 잔소리에 몇 시간이나 밖에 붙잡혀 있었다. 지난겨울엔, 반팔 차림으로 쓰레기를 버리러 내려갔다가 한 시간이나 잡혀 잔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때문에 며칠은 감기에 시달렸었다. 이제는 주민 그 누구도 그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손가락질을 하며 무어라 떠들면 우리는 쓰레기만 버리고 등을 돌렸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또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휴, 빨리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든가 해야지. 엘리베이터가 빨리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나는 상승 버튼을 연신 눌러댔다.


 여보, 오늘도 그 아줌마 밑에 있지? 아내가 소파에 누운 채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물었다. 응, 여전하지. 나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키보드 위에 손을 얹으려는데 창밖에서 높아진 아주머니의 언성이 새어 들어왔다. 매주 화요일마다 지치지도 않을까. 나는 살짝 벌어진 창문 틈으로 바깥을 살펴보았다. 차가운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그럼에도 여자는 여전히 잠옷 차림이었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이 추운데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래.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창문을 닫았다.

 제로 웨이스트, 그게 뭘까. 불현듯 호기심이 생겼다. 모니터를 보니 이미 검색창에는 제로 웨이스트가 입력되어 있었다. 마우스 휠을 내리니 여러 개의 기사들이 떠올랐다. 그중 한 기사가 눈에 확 들어왔다. 기사를 클릭하자 초록색 앞치마를 두른 청년들의 사진이 곧장 나타났다. 나는 휠을 연신 올려 사진을 확대해 보았다. 활짝 미소를 보이는 청년들의 얼굴에 나도 따라 미소가 나왔다. 그런데 그 위에 적힌 기사 제목에 절로 탄식이 나왔다. 제로 웨이스트 실천을 전파하려던 청년 봉사단체, 매립장에서 운동 중 불의의 사고로 인해 전원 안타까운 소식 전해…… 차마 더 읽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곧장 닫기 버튼을 연신 클릭했다.

 창문을 닫았음에도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여보, 그냥 신고하자. 이 밤에 너무 시끄러운 거 아니야? 아내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좁아진 미간은 당장이라도 욕설을 내뱉을 것 같았다. 아냐. 저러다 추워지면 알아서 들어가겠지. 내 말에 아내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서 여보가 뭐라도 한 소리 하고 와. 나중에 애 낳으면 애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나도 이제 지긋지긋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의자 위에 올려둔 외투를 걸쳐 입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여전히 아주머니는 쓰레기장 앞에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았다. 슬리퍼를 신은 그녀의 발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주머니, 추운데 이제 들어가세요. 자꾸 소리 지르면 신고당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콧방귀를 뀔 뿐, 내게 아무런 대꾸도 보이지 않았다. 몇 마디를 더 하고 싶었지만 바람이 귀를 스치자 의욕이 뚝 떨어졌다. 나는 팔을 내리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냈다. 아파트 흡연장에 가자 경비 아저씨가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2005호 사시죠? 그가 라이터를 꺼내며 물었다. 동시에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건넸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고생 많겠어요,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살짝 미소를 짓는 걸로 대답했다. 그래도 이해해 줘요. 원래는 저 아줌마가 여기서 일회용품 제일 많이 버린 사람이었어요. 그가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말했다. 나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휙, 돌렸다.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챈 듯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음, 하고 볼멘소리를 냈다. 나는 궁금함에 다리를 연신 떨었다. 원래 저 2019호 여자가 아들이랑 둘이 산 거 아시죠? 그런데 아들이 제로 워스튼지 뭔지 하는 운동에 빠져버려서 한참 봉사활동도 하고 다니고 그랬어요. 그런데 갑자기 떡하니 시체가 돼서 돌아온 거지 뭐예요. 몇 달 동안은 집에서 나오지도 않았어요. 그러다 갑자기 저 여자도 아들의 뜻을 이으려나 본지 몇 년째 저러고 있어요. 짜증은 나는데 뭐 어쩌겠어요. 불쌍해서 신고도 못 하고. 말을 마치자 그가 담뱃불을 비벼 껐다. 그리고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다시 경비실로 들어갔다. 나는 이야기를 듣느라 다 피우지 못 한 담배를 다시 빨아들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전히 그녀는 팔짱을 끼고 쓰레기장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한 남자가 나오자 그녀는 덥석, 잔소리를 뱉어대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곧장 시선이 내 손으로 향했다. 이걸로 화분 삼으면 딱 좋겠다. 나는 괜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집에 들어오자 아내는 소파에 누워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제로 웨이스트를 좀 실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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