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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Oct 25. 2022

배달 음식

  의자를 젖히고 팔을 높게 들어 올렸다. 우두둑, 소리와 함께 뻐근함이 사라진 듯했다. 이어서 목을 돌리는데 냉장고에 붙은 노란 배달 음식 전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휴대전화를 들어 전단지에 적힌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다 한 여성의 음성이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예, 만리성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딘가 어설프게 더듬거렸다. 처음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주소도, 주문도 제대로 받지 못해 괜히 미간이 찌푸려졌다. 우리는 몇 분을 그렇게 통하지 않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의 말은 결론적으로 1인분은 배달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나는 손에 쥔 전단지 메뉴를 살폈다. 탕수육을 시키려 했지만 옆에 적힌 가격에 다른 메뉴로 시선을 옮겼다. 결국 난 짜장면 하나에 짬뽕을 하나 더 달라고 말했다.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나는 욕설을 중얼거렸다. 말귀도 못 알아들으면서 뭔 일을 한다는 거야.


  차임벨이 울렸다. 배달이요, 하고 짧은 목소리에 나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현관을 열자 한 여자가 철가방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도무지 나이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녀는 신발장 앞에 철가방을 내려놓고 음식을 하나씩 꺼냈다. 이, 얼……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다시 푹 고개를 숙인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수리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모를 이질감에 나도 따라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굽혔던 무릎을 피고 일어났다. 그리고 불쑥 내게 손을 내밀었다. 뭐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러자 그녀가 어눌한 말투로 말했다. 이 만원.  그제서 아, 하고 짧은 신음을 냈다. 나는 탁자 위에 올려둔 지갑을 가지러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현관 앞으로 가니 집 안을 살피는 그녀의 눈가에 그려진 흉터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다시 여기서 시키지 말아야지. 나는 카드를 꺼내려다 만 원짜리 두 장을 그녀에게 건넸다. 요즘은 다 배달 앱으로 주문하는데 이렇게 주문하는 사람은 오랜만이네요. 그녀가 입을 살짝 올리며 말했다. 또박또박하진 않지만 덜 어눌한 호흡. 마치 오면서 연습을 한 듯했다. 나는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가 현금을 받으려 몸을 가까이 당겼다. 그녀의 흉터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 코를 찌르고 들어오는 춘장 냄새는 내 시선을 흉터에 고정시키는 데 일조했다.

 정말 중국 사람들이 하는 곳인가. 불현듯,  호기심이 들었다. 나는 아직 포장지를 벗기지도 않고 휴대전화를 들어 만리성을 검색했다. 생각보다 많은 정보들이 떠올랐다. 엄지로 스크롤을 몇 번 내리는데 문득, 한 문장에 손을 멈추었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가게, 갑질 논란’ 나는 기사 제목을 터치해 본문을 읽어보았다. 불법 체류로 의심 중인 중국인 몇 명이 사채를 써 중국집을 차렸다. 깔끔한 주방에 음식도 그럴싸한 맛을 내지만 조선족 일행이 운영하는 것 같다는 이유로 늘 적자를 기록한다. 가끔 가게 안으로 사채업자들이 찾아와 난장판을 피면 어떡하지, 라는 의심에 자주 가게를 들리던 손님들도 발길을 끊었다.

 나는 엄지를 움직이며 몇몇 단어들을 곱씹어 읽었다. 의심,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앙 다물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그녀의 눈가에 난 흉터를 떠올렸다. 괜히 인상이 찌푸려졌다. 나무젓가락으로 짜장면 그릇 포장지를 비벼댔다. 조금씩 포장지가 벗겨질수록 그녀에게서 난 춘장 냄새가 올라왔다. 기사를 얼마나 본 걸까. 나무젓가락을 면을 뒤적거렸지만 면발은 떡처럼 뭉쳐져 있었다.


  산책이라도 할까. 더부룩한 느낌에 앉아있는 것조차 버거웠다. 나는 의자에 걸린 외투를 걸쳤다. 어느새 춘장 냄새가 옷에도 배어버린 것 같다.

 목적지를 딱히 정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내 발걸음은 어디론가 나를 이끄는 것처럼 가벼웠고 주저함이 없었다. 고개를 들었을 땐, 만리성이라 적힌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창문엔 아까 본 여자가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가게 안은 난장판이 된 흔적 하나 없이 깔끔하기만 했다.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나는 눈이 마주칠까 급히 등을 돌렸다. 집으로 가는 길에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한 번도 깔아본 적 없던 배달 앱을 깔았다. 주변 중국집 찾기에 만리성이란 이름이 떠올랐다. 나는 리뷰에 별점 5점을 남겨주었다. 그리고 엄지로 흔히 본 문구를 남겼다. 직원이 매우 친절하고 가게가 깨끗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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