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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Oct 06. 2022

경로를 잘못 들었습니다.

네비게이션 오작동

 ‘경로를 잘못 들었습니다.’ 네비게이션 경고음이 연신 울려댔지만 신경 쓰지 않고 페달을 밟았다. 창밖은 주홍빛으로 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나는 몰려오는 잠을 깨기 위해 갓길에 차를 세워 담배를 하나 입에 물었다.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다 하늘 위로 홀연히 사라졌다. 반 쯤 열린 자동차 창문 틈으로 네비게이션 소리가 새어나왔다. ‘경로를 재탐색 하시겠습니까?’ 몇 년 째 듣는 기계음에 짜증이 나 전원을 확 꺼버릴까, 조수석 문을 열었다. 그때,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전원을 끈 걸 알면 아내가 또 닭 똥 같은 눈물을 흘릴 것이기에 다시 문을 닫았다. 나는 깊은 한 숨을 담배연기를 뱉는 것으로 대신했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나는 꽁초를 버리고 다시 차에 올랐다. 백미러에 걸린 아들의 사진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아들이 며느리와 함께 사라진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처음 몇 년 동안은 날짜를 셌지만 아들이 돌아오지 않음에 확신이 들었다. 결국 아내 혼자만 오지 않을 아들을 기다렸다. 덕분에 그녀는 벽지에 부적을 덕지덕지 붙여댔다. 아내를 정신병원에 데려가기도 했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점점 미쳐가는 아내를 볼 때마다 아들이 증오스러워 이가 갈렸다. 돌아오면 반드시 다리몽둥이를 부러트릴 거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페달을 더 세게 밟았다. ‘제한속도를 준수하십시오.’ 기계음이 여러 번 울려대자 이내 네비게이션을 꺼버렸다. 타이어가 도로에 마찰되는 소리만 들리자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어느덧 도로의 가로등이 하나 둘씩 켜지고 있었다. 주홍빛이던 하늘이 벌써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하늘에 담긴 배경이 낯설었다. 나는 그제서 페달을 세게 밟는 바람에 길을 잘못 들어 선 것을 깨달았다.


 유턴 표지판을 찾는 데까지 10분이 소요되었다. 신호를 따라 유턴을 하는데 갑자기 차 한 대가 끼어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 충격 탓에 백미러에 걸린 아들의 사진이 조수석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차를 갓길에 세워 사진을 주울까 고민하다 사진을 다시 걸고 싶지 않아 그대로 페달을 밟았다. 그때, 네비게이션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길안내를 시작합니다.’ 전원을 켜지도 않았고 목적지를 입력하지도 않았다. 귀신이 씌었나 싶어 식은땀이 났다. 화면 위에 적힌 목적지를 보니 처음 보는 주소였다.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다. 나는 부적이 잔뜩 붙은 집에 일찍 들어가고 싶지 않아 기계음의 안내를 따라 핸들을 움직였다.


 울퉁불퉁한 산길에 들어서자 차가 덜컹거렸다. 그리고 자동차 앞 유리에 빗방울이 한 방울 툭, 떨어졌다 드세게 유리창을 두들길 정도로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급하게 와이퍼를 켰지만 시야가 트이지 않아 모든 감각을 헤드라이트에만 의존해야했다. 그때, 와이퍼 사이로 희미한 빛을 비추는 작은 집 하나가 보였다. ‘목적지에 곧 도착합니다.’ 나는 저 집으로 왜 나를 안내했을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속도를 천천히 줄였다. 집 앞에 다다르자 진한 갈색 나무로 지은 집이 선명하게 보였다. 군데군데 핀 버섯과 살짝 기운 지붕에 사람이 사는 곳인가 싶었다. 그러나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걸 보면 분명 사람이 사는 살고 있다. 눈꺼풀에 맺힌 물방울을 닦는데 문 밖으로 한 남자가 나왔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서로 아, 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벅벅 비볐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랐고 몸이 삐쩍 말랐지만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았다. 다시는 부르고 싶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런데 그의 이름이 턱 끝까지 복받쳐 올라왔다. 나는 턱 끝에서 머뭇거리는 그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가슴 깊이 묻어둔 말을 건넸다.

 “보고 싶었다. 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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