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신부님의 강론시간이 다가왔다. 그는 가득 채워진 성전을 앞에 두고 가벼운 농담과 성경의 말씀을 섞어 말했다. 신자들은 그의 말에 따라 웃음을 터뜨리기도,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나는 주보를 손에 꽉 쥐고 신부님의 움찔거리는 마스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대학생이던 시절, 서른 명 남짓 되는 학생들 앞에서 피피티 발표를 하는 것도 손에 바르르 떨렸는데 어떻게 하면 신부님은 목소리 하나 떨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니까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였다. 아마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는 사람 중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
성전을 나오면 검은 사제복을 입은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나와 미사를 드린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내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부님은 초승달을 연상케 하는 눈웃음을 보이며 내게 팔꿈치를 들이밀었다.
“요즘은 악수 대신 이렇게 한다네요.”
나는 오른쪽 팔꿈치를 맞대었다. 열전달이 가장 절 되는 신체부위에 여러 겹의 옷가지들이 있었지만 잠깐이나마 그의 따듯한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성당을 나오고 거대한 성모상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오른쪽 팔꿈치를 연신 매만졌다.
거리로 나오면 곳곳에 새하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일요일 오전임에도 사람들의 발걸음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가운데 한 남자가 붉은 옷을 입고 종을 치며 불우한 이웃을 돕자며 외치고 있었다. 옆에는 작은 모금함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갈 길을 묵묵히 걸었다. 한 번은 그를 돌아볼 법도 한데 아마 귀에 꽂은 유선 이어폰이 남자의 목소리를 묻어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지갑을 꺼내 열어보았다. 지갑엔 카드만 잔뜩 꽂혀있을 뿐, 지폐는 단 한 장도 없었다. 미사 헌금으로 마지막 남은 천 원을 다 써버린 탓이었다. 그때 숨이 턱 막히는 바람이 불었다. 남자는 종을 흔들던 손을 멈추더니 팔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을 보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남자의 팔꿈치 온도는 어떨까.
병원 안은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대기표를 손에 쥔 사람들은 새하얗게 머리가 물든 사람부터 바닥에 다리가 닿지 않아 발을 구를 수 있는 사람까지 연령대를 구분 짓지 않았다. 평일에는 회사나 학교 탓에 병원을 오지 못 하는데 주말은 오전밖에 진료를 하지 않으니 이렇게 사람이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발열 체크를 한 뒤 간호사는 접수증을 받고는 혈압 재는 기계 앞에 나를 앉혔다. 팔꿈치를 높게 들어 올리고 버튼을 누르자 서서히 팔이 조여지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맥박이 뛰는 게 느껴졌다. 공기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조임이 풀리자 나는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선생님.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제 딸을 봐서라도……”
“글쎄 동네 병원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늦기 전에 서둘러 대학병원으로 가셔야 해요.”
“거기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한 번만 도와주세요.”
의사의 깊은 한숨소리가 문 너머로 새어 나왔다. 그 뒤로 안경을 쓴 아주머니가 혀를 끌끌 찼다.
“어휴 애가 뭔 죄람.”
간호사 한 명이 다급히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남자는 눈물을 떨어트리며 로비로 나왔다. 그의 손을 잡은 어린 여자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으로 삭막한 주변을 둘러보기만 했다. 딸은 꼬깃하게 접힌 지폐로 진료비를 수납하는 아빠의 팔꿈치 옷자락을 꼬집어 잡고 있었다. 딸의 손이 느껴졌는지 그는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병원을 나오니 시간은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바깥은 새하얀 눈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붉은 옷을 입은 남자는 여전히 종을 흔들며 모금함 앞을 지키고 있었다. 주변은 여전히 그 남자를 못 본 척 본인들 갈 길을 가느라 바빴다. 점점 눈이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잇따라 빨라지기 시작했다. 큰 도로 쪽에는 리어카를 끄는 할머니도 눈이 쌓이기 전에 돌아가려는지 발걸음을 재촉하는 듯했다. 그때, 고무줄이 끊기며 리어카에 쌓인 폐지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할머니는 우짤꼬, 하면서 폐지를 주워 들었다. 자동차 경적소리가 거리를 가득 채웠다. 이젠 남자의 종소리도 이에 묻혀버렸다. 그러나 남자도 다른 사람들처럼 모금함 옆에서 종만 칠 뿐, 안절부절못해하며 폐지를 줍는 할머니에게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문득 헌금으로 낸 천 원이 떠올랐다. 모금함에, 헌금함에 모인 종이쪼가리들은 정말 필요한 곳으로 잘 옮겨지는 거겠지? 그럼 왜 저들은 저렇게 있는 걸까. 나는 도로로 나가 주변에 떨어진 폐지를 서둘러 줍기 시작했다. 나를 시작으로 주변을 거닐던 사람도 하나둘씩 모여 그녀를 도왔다.
덕분에 도로는 빠르게 안정되었다. 할머니는 차가운 두 손으로 내 손을 꽉 쥐고는 연신 허리를 굽혔다. 나는 다시 리어카를 끌고 집으로 향하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다 해진 옷이나 팔꿈치 쪽이 유난히 파여있었다. 그 안으로 할머니의 누런 팔꿈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내 팔꿈치를 비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