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오 Jan 18. 2023

마우스 커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었다. 작고 각진 로딩창이 모두 채워지면 모니터 화면 안에 푸르고 넓은 들판이 떠올랐다. 광활한 이 초원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한 포도밭으로 화면을 바라만 봐도 괜히 가슴이 설레곤 했다. 초원 옆에는 온갖 아이콘들이 정갈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휴지통, 인터넷 익스플로러, 메모장, 제어판, 뻐꾸기 폴더 등 클릭 한 번으로 우리는 화면을 사이로 많은 세상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린 나는 문득 이 마우스 커서에 집중을 하게 됐다. 우리가 클릭을 할 수 있는 건 모두 이 마우스 커서 덕분이다. 아버지가 읽는 뉴스 기사, 어머니가 보는 쇼핑몰, 내가 보는 게임 속 전쟁터, 동생이 보는 싸이월드. 마우스 커서는 우리가 보는 모든 걸 함께 바라봐왔다. 다만, 우리와 다른 점은 늘 모니터 화면 안에 갇혀 우리가 보는 걸 보기만 한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뉴스 안에서 보던 서울의 마천루들을, 쇼핑몰 안에서 보던 멋스러운 모델들을, 게임 안에서 보던 무시무시한 살상 무기들을, 싸이월드 안에서 보던 친구와의 유대감을 직접 보기는 했을까. 컴퓨터 화면이 켜지면 가장 먼저 떠오르던 저 광활한 초원을, 가보기는 했을까. 이 세상에 어떤 게 있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부 아는 커서일 텐데 모니터 화면 안에서 꼼짝도 못 하는 마우스 커서가 안타까웠다.

  

작가의 이전글 손금 봐드립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