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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Jan 19. 2023

존재만으로



  “나랑 영화 볼래? 아니야. 나 티켓 있는데 영화 같이 볼까? 아니야 아니야. 혹시 주말에 뭐 해?”

  “나는 네가 뭐하는지 묻고 싶다.”

  침대에 누워있던 성빈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괜히 찡그린 인상에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눈빛에 나도 모르게 발끈해 버렸다.

  “무슨 상관인데. 신경 꺼. “

  나는 곧장 겉옷을 챙겨 입고 문을 박차며 나왔다. 바깥에는 새하얗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절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막상 바깥으로 나오니 서둘러 끝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피어올랐다. 그런데 꽉 쥔 스마트폰에서 여보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식은땀이 흘렀다. 하윤에게 전화를 걸기 전, 전화번호를 눌러두고 말하기 연습을 했는데 밖으로 나오는 도중 통화 버튼이 눌린 모양이다. 나는 곧장 스마트폰을 귀에 갖다 댔다.

  “어, 하윤아…… 음, 지금 바빠? 통화되니?”

  “음, 지금 샤워하려고 했는데 그럼 내가 샤워 마치고 다시 전화 걸게.”

  “아, 응. 기디라고 있을게.”

  통화 종료음이 울렸다. 괜히 한숨이 나왔다. 아니야, 기다리면 다시 오겠지. 나는 다시 화면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여덟 시 이십 분. 대충 샤워를 하는데 삼십 분이 걸린다고 치면 아홉 시 즈음에 전화가 오겠지. 그런데 내가 데이트를 신청하는 모습을 저 룸메이트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겉옷을 여미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산책 좀 하다 보면 전화가 오겠지. 나는 그냥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보이는 길을 무작정 걸었다. 하윤의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손이 바르르 떨렸다. 귀는 이미 빨개질 대로 빨개져 따갑기 시작했다. 겉옷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썼지만 벌어진 틈은 차가운 바람을 막기엔 부족했다.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손이 찢어질 듯 따가웠다. 힘겹게 켠 스마트폰 화면 위에는 아홉 시 십 오분이란 시간이 떠올랐다. 아니, 샤워를 하는 데 한 시간이나 걸리나?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야, 기다리면 오겠지. 산책을 조금 더 할까 했지만 따가워지는 발바닥에 걸음을 옮길 순 없을 것 같았다.

  집 현관을 열자 따듯한 공기가 온 집안을 채우고 있었다. 차가웠던 몸이 단시간에 녹은 탓에 가렵기 시작했다. 성빈은 스마트폰을 보면서도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스마트폰을 통해 비추어지는 그의 입가에는 기분 나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따듯한 물로 손과 발을 씻고 물기를 닦으니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여졌다. 손이 녹는 데까지 약 오 분 가량이 소요되었지만 여전히 스마트폰은 울리지 않았다. 나는 도무지 참지 못 하고 인스타그램을 접속했다. 조촐하게 떠오르는 피드 위로 하윤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밑에 적힌 시간은 방금 전이라 적혀 있었다. 하윤이 올린 사진 속에는 그녀의 부드러운 손과 다른 여러 손들과 쥔 술잔을 서로 맞대고 있었다. 손등에 털이 난 손도,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도, 작은 꽃 타투가 그려진 손도 있었다. 그래, 약속이 있었으면 잊을 수 있지. 분명 이렇게 생각하고 말기로 했는데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하윤이 올린 게시글을 두 번 터치했다. 내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좋아요 목록에 추가되었다. 나 외에는 100명이 넘는 계정이 이 사진을 좋아한다. 방금 전에 올라왔는데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구나.


  주말이 지나고 하윤은 수업 시간이 되기 오 분 전에 겨우 강의실에 들어왔다. 그녀는 빈자리를 찾다 결국 내 옆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안녕”

  하윤이 눈웃음을 보이며 인사했다. 나는 짧은 시간 동안 그 인사를 받을지 말지 고민했지만 나도 모르게 손이 먼저 흔들렸다. 그녀가 가방에서 커다란 전공책을 힘겹게 꺼냈다. 자그만 체구에 저런 책을 어떻게 들고 다니는 걸까. 가끔 하윤이 가방을 들고 오지 않는 날이면 늘 전공책을 옆구리에 끼곤 했는데 그 모습을 보면 당장이라도 책이 하윤을 잡아먹을 듯했다.

  “너 오늘 학식 먹을 거야?”

  “어…… 응. 그럴 것 같은데.”

  ”같이 먹으러 가자. 나도 오늘은 학식 먹을 거야. “

  고개를 끄덕이고 곧장 강의실 문이 열렸다. 흰 백발 머리의 교수님은 단상에 책을 올려두자마자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내 이름이 불렸다는 사실도 모르고 하윤을 힐끗거리며 쳐다보았다. 왜 전화를 걸지 않았는지 물어봐도 될까? 지금 다시 말을 해봐도 될까?

  “야, 너 부르잖아.”

  하윤이 나를 부르고서야 어깨를 들썩이며 손을 들었다. 교수님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괜히 학생들의 눈치가 보였다. 그럼에도 그녀가 왜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는지, 전화로 할 말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는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일렁였다.

  분필 소리가 강의실 전체에 울렸다. 하윤은 스마트폰을 책상 아래에 숨기고 검지를 빠르게 두드리고 있었다. 누구랑 저렇게 연락을 주고받는 걸까. 눈이 자꾸 그녀의 스마트폰으로 향하려 했지만 눈을 질끈 감는 걸로 억누르기로 했다. 다행히 하윤은 내 시선을 눈치채지 못 한 듯싶었다. 그때, 하윤이 스마트폰 화면을 내게 들이밀었다.

  “이 남자 어때? 좀 잘생겼지?”

  나는 눈을 아래로 깔고 그녀가 보여준 화면을 보았다. 딱 남자답게 생겼지만 어딘가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화면을 다시 빤히 바라보면서 잘생겼어, 하고 감탄하고 있었다.

  “어디서 만난 사람인데?”

  턱끝에서 삼키려고 한 말인데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기분 나빠하면 어떡하지. 덜컥 내려앉는 가슴에 다리가 떨렸다.

  “응? 그냥 엊그제 술 마시다가 내 전화번호 물어보더라고. 이상형이라고.”

  하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다행히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식판 위에 담긴 국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하윤은 입맛을 다시며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밥을 먹을 때만큼은 미소를 잃지 않는 미소였다. 그 모습에 나도 따라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를 보고만 있어도 심장 박동이 빨라졌고 구름 위에 올라탄 기분이 들었다. 분명 나는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심장은 불수의근이라고 하지 않았나. 심장의 근육은 도무지 내 의지를 따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수업 끝나고 케이크나 먹으러 갈래? 달달한 거 먹고 싶은데.”

  나는 스마트폰을 켜 오늘 일정을 확인해 보았다. 수업이 끝나면 곧장 서점에 들러 인문학 책을 한 권 사고 얼추 마무리된 자기소개서를 검토해 내일 아침이 밝기 전까지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고개를 끄덕였다. 목 근육은 불수의근이 아닐 텐데 왜 이 근육도 내 의지를 따르지 않는 거지.

  

  마지막 수업의 쉬는 시간,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머리와 옷깃을 정리하고 가지고 다니는 향수를 뿌렸다. 혹여 점심에 먹은 학식이 이빨에 끼진 않았는지 치아 사이사이도 꼼꼼히 확인했다. 정리를 마치고 강의실로 들어가니 하윤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다시 그녀의 검지가 빠르게 움직였다. 자리에 앉자 하윤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냄새 좋다. 너는 늘 냄새가 좋아서 옆에 있고 싶어. “

  하윤이 고개를 내 몸에 들이대더니 코를 킁킁거렸다. 입이 씰룩거렸다. 어떻게든 웃음을 참아보려 했지만 이 마저도 불수의근인 듯했다. 그녀의 정수리에서 은은한 샴푸 냄새가 올라왔다. 조그만 저 머리를 쓰다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가 내 몸에서 고개를 들 때까지 이 감정을 참으려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아, 맞아. 하윤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오늘 케이크 먹으러 못 갈 것 같아. 아까 보여준 사람이 차 타고 데리러 온다고 해서.”

  “아, 그래? 어쩔 수 없지. 조심히 가. “

나는 멋쩍게 웃음을 보였다. 그런데 연신 떨리는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아니야, 차라리 잘 됐어. 만약 하윤과 카페를 갔다면 오늘 하려던 일을 제대로 못 했을 텐데……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다리를 꼬았다. 그러니 다리가 떨리지 않았다. 잇따라 허리를 숙여 노트와 몸을 밀착시켰다. 남은 수업시간 동안 절대 그녀를 쳐다보지 말아야지. 나는 펜을 잡은 손을 꽉 쥐고 다짐했다.


  자기소개서 제출이 끝났다. 의자에 허리를 기대 기지개를 켜며 창밖을 보았다. 광활한 산 능선 위로 해가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곧장 거울을 보니 판다를 연상케 하는 다크서클이 눈가를 뒤덮었다. 두통이 일기 시작했지만 수업에 늦어서는 안 됐다. 나는 몰려오는 잠을 깨려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다. 차갑게 떨어지는 물을 가만히 맞고 있자니 비를 맞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내가 우울한 날이면 타이밍 좋게 비가 내렸다. 일찍부터 일을 나가는 부모님이 날씨 소식을 알려줄 수도, 우산을 두고 온 아들을 데리러 올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내가 우울한 날은 늘 비에 젖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사실 비를 맞는다는 것 자체가 싫지만은 않았다. 내 묵은 감정을 씻겨 내려가게 해주는 듯싶기도, 굵은 빗방울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듯싶기도 했기에. 배꼽시계가 울릴 즈음, 부모님이 집에 오시면 난 늘 웃고 있었다. 날 위로해 준 건 다름 아닌 비였다. 그런데 왜 오늘은 이 차가운 물줄기가 내 머리를 적신다고만 생각이 드는 걸까. 서둘러 마른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내고 싶었다.

  그날 내 옆자리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공석이었다. 몸이 아픈 걸까. 수업을 모두 마치고 나는 학교 편의점에 들러 종합 감기약과 그녀가 좋아하던 복숭아 음료 하나를 샀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SNS가 떠올랐다. 버스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가 보았다. 그녀의 게시물은 어젯밤에 하나 올라와 있었다.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그녀의 손과 그 반대편에 있는 남자의 손. 두 손은 술잔을 서로 부딪히고 있었다. 옆에는 그 남자의 인스타그램 계정이 태그 되어 있었다. 나는 그 남자의 계정을 들어가 보았다. 팔로워 수가 만 명이 넘었다. 그가 올린 게시글들은 모두 좋아요가 천 개 이상은 달려 있었다. 그러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이 들어 스마트폰 화면을 껐다. 왼 손에 쥔 약과 음료가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스마트폰 화면이 아닌 그냥 전원을 꺼버렸다.


  “야, 오늘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려. 손님 몰려올 시간이다. 정신 바짝 차려.”

  사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언성을 높였다. 정말 그의 말대로 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저 한 팀당 추가 수당을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웨이팅 명단을 작성하기 위해 인원을 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결국 내가 받는 건 최저시급이다. 오늘 밤을 꼬박 새운 탓인지 눈에 초점이 흐려졌다. 그러나 손님들의 주문과 요구는 내 몸 상태를 신경 쓰지 않았다. 정말 이대로 쓰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요, 저희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한계점이다. 이제 더 움직이면 쓰러진다. 그럼에도 몸은 멈추지 않았다. 좀비처럼 포스기에 소주 한 병을 추가하고 냉장고 문을 열어 손님에게 가져다 드렸다. 그런데 술병을 바아 간 여자에게서 익숙한 향이 났다. 틀림없다. 하윤의 샴푸 냄새다. 고기 냄새를 뚫고 그녀의 샴푸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하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럼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보고 싶다. 정말 미치도록 보고 싶다. 고작 하루 안 봤는데 미치도록 생각난다. 부드러운 그 손과 술잔을 맞대고 싶고 샴푸 냄새가 나는 머리를 쓰다듬고 싶고 내 몸에 고개를 들이대면 품에 안고 싶고…… 고작 너의 주변에 머무는 사람이 아닌 중심이 되고 싶다.

  손님이 모두 빠지고 난장판이 된 테이블과 가게 바닥만이 남아 있었다.

  “그래, 오늘 고생 많았고 마감 잘하고 가. 나는 이만 갈게.”

  사장이 나가자 넓은 가게에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우선 테이블부터 치우려 창고에서 빈 술 짝을 꺼냈다. 하나씩 술병을 넣으려는데 스마트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내일 생화학 과제 어디부터였지?’

  성빈의 문자였다. 아, 오늘 과제가 있었지. 잊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당장 이 모든 테이블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까지 하면 족히 자정은 넘을 텐데. 오늘도 꼴딱 밤을 새우겠네. 연신 한숨이 나왔다. 숨결이 느껴질 때마다 입안에선 단 맛이 느껴졌다.


  “오늘 나 집 안 들어와. 어제 밥 안 해놨으니까 시켜서 먹던가 해.”

  “너 어디 가는데?”

  “다음 달이면 기말고사잖냐. 바빠지기 전에 여자 친구랑 1박 2일로 국내여행 한 번 다녀오려고.”

  “미친놈……”

  “너도 요새 꽤나 힘들었잖아. 여행이라도 좀 다녀오던가.”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방학하면 당장 화학 기사 자격증이랑 토플 학원도 알아봐야 하는데. “

  “난 가끔 네가 쓰러질까 겁나.”

  “내가 한 선택이잖아. 견뎌야지.”

  성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장 다음 달에 치르게 될 기말고사가 다가오기 전에 다음 학기에 할 인턴 실습에 붙어야만 했다. 그러나 스마트폰 화면 위로 떠오른 불합격 문자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점은 내가 힘든 이유는 쉴 틈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는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하윤의 얼굴이었다. 당장이라도 그녀의 위로를 받는다면…… 정말 모든 게 다 괜찮을 것 같았다. 눈물이 고인 눈가를 훔치고 다시 노트북을 켜고 한글 파일을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습관처럼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고 습관처럼 시작 전 두 줄, 두 칸을 띄웠다. 마우스 커서가 깜빡거렸다. 나는 커서의 깜빡임을 따라 눈을 깜빡거렸다. 그때, 엄마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혹여 목소리가 잠기지 않았는지 목을 몇 번 가다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아들. 학교 생활은 좀 할 만 해?”

  “응. 엄마는 일 좀 할 만 해?”

  “응. 아들 좀 힘들면 휴학하고 좀 쉬어. 몸 상한다.”

  “빨리 졸업하고 취업해야지…… 그래야 빚 하루라도 빨리 갚지……“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만 일정하게 훌쩍이는 소리만이 내 귀로 넘어왔다.

  “엄마, 나 할 게 좀 있어서 나중에 내가 다시 전화 걸게.”

  뭔가 엄마의 훌쩍이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하윤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을 했을까. 문득 든 생각에 머리를 쥐어박았다. 할 거나 해야지.


  시험을 치르기까지 매일 내 숙면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었다. 숨이 헐떡이고 잠이 몰려올 때면 늘 카페인 음료와 커피를 들이켰다. 몸은 몰라보게 말라 거울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그래도 내가 버틸 수 있는 건, 침대에 누울 때마다 머릿속을 아른거리는 하윤의 얼굴이었다. 하윤은 동기들 사이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라는 말이 돌 만큼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교수님들도 그녀의 이름을 빼놓고 출석을 불렀다. 언제 하윤이 모습을 드러낼까 했다 기말고사 기간이 다가오고서야 하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살짝 오른 살집이 뭔가 지금 그녀가 행복하다는 걸 말해주는 듯했다.

  

  그녀는 이제 내 옆자리에 앉지 않았다. 나는 맨 앞 즈음에, 그녀는 맨 뒷자리에. 그만큼의 거리가 나와 하윤의 거리였다. 다만, 쉬는 시간이나 수업이 끝나고 잠깐 보이는 그녀의 옆모습으로 나는 만족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지치는 이 삶을 버티는 이유가, 아직은 너였기에 이 빌어먹을 불수의근은 내 의지를 따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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