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오 Jan 20. 2023

깨져버린 거울 너머로

*공포 장르가 아니므로 안심하시고 보셔도 됩니다.



  거울 깨지는 소리가 집안 전체에 울려 퍼졌다. 날카로운 유리 파편은 바닥에 흩뿌려졌고 내 손은 피로 흥건하게 물들어 있었다. 거울 속 비치어지는 내 얼굴은 잔뜩 갈라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손이 아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연신 울려대는 심장만이 그 후 집안의 내려앉은 소리를 채웠다.

  거울이 깨지고 아내는 베개를 들고 딸의 방으로 갔다.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가끔 아내는 잠꼬대로 나를 죽여버리겠다고 중얼거리거나 눈을 부릅뜬 채로 잠에 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죄책감보단 두려움이 온몸을 감쌌다. 해가 뜨면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돌아가는 게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아내는 밤동안 자기가 한 일을 모른다는 듯 평소와 같이 아침밥을 차리고 걸레질을 하고 옷가지들을 갰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방긋 웃으며 나를 맞이하기도 했다. 정말 저 여자가 나를 죽일 계획인 걸까.

  거울을 깬 이유는 다름 아닌 아내였다. 사고로 딸이 죽고 그녀는 늘 샤워를 마치면 거울 앞에 섰다. 그러고선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었다. 호기심에 나는 벽에 몸을 바짝 붙이고 그녀가 뭐라고 중얼거리는지 귀를 기울여 보았다. 딸이 죽은 지 얼마 안 지났을 땐 딸을 생각했다. 그러나 날이 거듭 될수록 거울을 보는 아내의 눈은 점점 초라해졌다.

  너도 이 거울을 참 많이 봤는데…… 그래도 너는 늘 내게 좋은 딸이었어.

  내 딸은 살아서 잘 웃고 다녔는데 지금 거기서도 잘 웃고 다닐까.

  잘 웃는 딸이 진짜 내 딸일까. 그럼 웃지 않는 딸은 내 딸이 아니고?

  살아있는 딸만 내 딸이면 죽어버린 딸은 내 딸이 아닌 걸까.

  지금 내 곁에 없는 유현인 그럼 누구지?

  유현인 누구지?

  ……

  나는 누구지?


  옆집 개가 미친 듯 짖어댔다. 개를 무서워하던 아내는 두 귀를 막고 딸이 자던 방의 문을 굳게 닫았다. 생각해 보면 딸은 개를 사랑했다. 그녀는 지나가는 강아지를 볼 때마다 한 번을 빠짐없이 손을 흔들었고 다리에 붙어 코를 킁킁대는 강아지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털 알레르기가 있는 나도 동물을 좋아하진 않았다. 나와 아내는 늘 그런 딸을 보며 쟤는 누굴 닮아서 저러는 걸까, 하며 신기해하곤 했다. 당연히 어릴 적 필히 거쳐가야 하던 관문인 반려견을 키우게 해 달라는 딸의 부탁은 단칼에 거절되었다. 아마 처음으로 딸이 며칠 동안 방 문을 굳게 닫은 이유였다. 그 뒤로 문에 굳게 닫힌 날이 한 번 더 있었다. 그날은 딸의 졸업식 날로 아내와 내게 생긴 갑작스러운 일로 딸의 초등학교 졸업식을 가지 못 한 것이었다. 딸은 그날 저녁을 먹는 내내 눈이 퉁퉁 붓도록 눈물을 흘렸고 결국 집에 돌아와서는 방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나와 아내는 다음 있을 중학교 졸입식은 반드시 큰 꽃다발을 사들고 가리라 다짐했다. 결국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아내가 딸의 장례식에서 쏟아낸 눈물 중에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도 있었을 거다.

  개의 울부짖음이 그치자 아내는 다시 딸의 방에서 나왔다. 그리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쥐고 그녀가 좋아하던 일일 드라마 채널로 돌렸다. 아내는 집중을 하면 목을 앞으로 쭉 내빼는 습관이 있었다. 거북이처럼 뻗은 목의 길이는 그녀의 집중 시간을 말해주었다. 그러다 아내가 혀로 입술을 한 번 핥고 입을 열었다.

  “강아지 한 마리 해줄걸 그랬어. “

  “나 털 알레르기 있었잖아.”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갑작스러운 말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무언가 저 긴 아내의 목이 내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찬물로 세수를 했다. 고개를 들었지만 깨져버린 거울은 내 얼굴을 비추어주지 않았다.


  아내가 딸의 방으로 간 뒤로 그녀의 증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도무지 어림잡을 수 없었다. 거울이 깨지기 전에도 우리의 낮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기에 내 머릿속은 더 복잡해져만 갔다. 한밤중 나는 방에서 나와 아내가 있는 딸의 방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역시나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정말 모든 게 내 탓인 걸까. 나는 문 앞에 주저앉아 머리를 기대었다. 그날은 딸이 보충수업으로 학원에서 늦게 끝나는 날이었고, 비가 내려 우산을 써야 했다. 딸에게 데리러 간다고 말을 했지만 강변북로에서 사고가 나는 바람에 도착 시간이 지연됐고 결국 나는 딸을 데리러 가지 못했다. 결국 딸은 혼자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가로등 하나가 꺼져버린 골목을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마침 그때 코너에서 자동차 한 대가 속도를 줄이지 않았고 당연히 딸은 우산에 가려져 차를 보지 못했다.

  나도 가끔은 강변북로를 타는 게 아니고 일반 도로를 탔다면, 미리 보고서를 제출해 한 시간 추가 근무를 하게 되지 않았더라면, 그날에 월차를 냈다면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아내는 오롯이 딸이 죽은 이유를 내 탓으로만 돌렸다. 어쩌면 딸이 죽고, 나와 아내의 사이엔 이 방문보다 더 두꺼운 벽이 생겨버린 게 아닐까 싶었다.


  근무 중에 걸려온 전화는 앞에 지역번호가 붙어있었다. 개인 휴대전화였기에 내 가슴을 덜컥 내려 앉히기에 충분했다.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수화기 너머로 여자의 목소리가 넘어왔다. 아내가 죽었다. 아니, 아내도 죽었다. 그때 깨져버린 유리조각, 그녀는 조각 하나를 주워 숨겼었고 결국 오늘, 주저흔 하나 없이 손목을 그었다. 당장 안치실로 가야 하는데 쉽게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맞아, 딸의 사고 소식을 듣고도 나는 쉽게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없었다. 그땐 차가 막혀서,라는 변명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머리를 기대 아내를 떠올리기만 했다. 그녀가 그 유리조각을 줍고 손목을 긋기까지, 딸의 방에서 어떤 생각을 한 걸까. 아니 딸이 죽고 그녀는 거울 너머로 어떤 생각을 한 걸까. 그리고 난 깨트린 거울 너머로 어떤 생각을 했었더라.

  


  



작가의 이전글 존재만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