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오 Jan 22. 2023

해와 달이 지는 곳에서



  파도가 치는 소리에 눈을 감았다. 짭짤한 바닷바람이 내 입가에 와닿을 때마다 입맛을 다셨다. 내 마음을 아는 것처럼 갈매기 하나 보이지 않았고 텅 빈 갯벌만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울퉁불퉁한 바닷길을 걸었다. 진흙을 밟거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도 했지만 주머니 안에 넣은 손은 절대로 빼지 않았다.

  밀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조그만 게들은 뒤뚱거리며 갯벌 안으로 숨어 들어갔고 망둥어들은 바다를 향해 몸을 높게 펄쩍였다. 바람이 세차게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밀물이 더 빠르게 밀려 들어오는 듯했다. 저 물에 잠겨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덜컥 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발걸음을 바다 반대편으로 돌렸다. 울퉁불퉁한 길에서 발을 떼고 아스팔트 길에 발을 디뎠다. 하얗던 운동화가 진흙이 묻어 거뭇거뭇하게 물들어 있었다. 아스팔트 길에는 내가 발을 디딜 때마다 한 발자국씩 내 흔적이 남았다. 나는 내 흔적을 보고 주머니에 든 사진을 매만졌다. 생각해 보면 바닷길을 걸을 때부터 이 사진을 매만지고 있었는데 왜 이제 와서 이게 느껴졌을까. 주머니에 손을 빼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졌다. 그런데 손을 넣었던 엄지가 따끔거렸다. 잠시 손을 빼보니 붉은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사진에 베인 것 같다. 나는 손이 베였다는 사실보다 먼저 떠오른 건 사진이었다. 반대편 손을 주머니에 넣어 사진을 꺼내 보았다. 다행히 핏자국 없이 하얀 테두리가 드러났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러곤 잠시 입꼬리를 올렸다. 바람의 방향을 따라 갈대가 고개를 기울였다. 바닷바람이라 그런지 상처가 난 엄지가 따끔거렸다. 한 번 상처에 침을 묻혔지만 따끔거림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밀물은 생각보다 빠르게 차올랐다. 구릿빛이던 갯벌은 어느새 반짝이는 바닷물로 채워졌다. 나는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해는 아직 내 머리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엄지가 따끔거리던 게 잊혔다. 곧바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다 공기 중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그때, 갈대밭길 건너 사람의 형체가 희미하게 보였다. 나는 곧장 피우던 담배를 껐다. 점점 형체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옆구리에 커다란 상자를 끼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걷고 있었다. 내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했다.

  몇 발자국 더 걷다 그가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았다. 한껏 진지해 보이는 그의 표정에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남자가 상자를 내려놓았다. 뚜껑을 열고 그 안에서 항아리 하나를 꺼냈다. 그러다 항아리 안에 손을 넣더니 새하얀 가루를 바닷바람에 태워 날리기 시작했다. 누가 죽은 걸까. 무언가 그를 계속 지켜봐서는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뒤꿈치를 들고 갈대밭 사이로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부는 세찬 바람에 갈대가 내 얼굴을 쳐 내렸다. 커다랐던 갈대는 생각보다 아팠다. 고통은 눈을 질끈 감는 걸로 끝나지 않고 중심을 잃게 만들었다. 뒤꿈치를 든 탓에 결국 균형을 잡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아프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따가운 시선을 견디기 못 하고 천천히 남자가 있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그는 넘어진 나를 보고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뭡니까. 여긴 밀물이 이 길까지 물이 차올라 밀물 시간에는 출입을 못 하는데. “

  “아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째려보았다.

  “제 뒤로 쭉 가시다 보면 중간에 샛길이 하나 보일 겁니다. 거기가 출구니 서둘러 가시죠.”

  ”아직은 여길 더 걷고 싶네요. “

  “거, 고집 참 센 양반이네. 죽고 싶은 거요?”

  “죽어도 상관없을 것 같긴 합니다.”

  남자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곤 다시 몸을 돌려 흰 가루를 뿌리기 시작했다. 나도 그냥 몸을 일으키고 그의 뒤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 그를 스쳐 지나가는데 술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도 모르게 구역질이 났다.

  “누군가랑 같이 가는 것도 뭐, 나쁘진 않을 것 같네. 그럼 가기 전에 뭐 얘기라도 합시다.”

  남자가 항아리 안에 든 천을 꺼내고 남은 가루를 탈탈 털어내며 말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그를 돌아보았다.

  “혹시 누군가 죽었나요.”

  “아, 저는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잠시 제 곁을 떠났을 뿐이라고.”

  “그래도 무언가를 잃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군요.”

  남자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쪽도 무언가 잃어버렸군요.”

  “아, 그냥 뭐…… 얼추 비슷합니다. “

  남자가 깊은 탄식을 내뱉더니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도 그를 따라 엉덩이를 바닥에 붙였다. 멍한 눈이었다. 삶의 의지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멍한 눈이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다시 입가에 짭짤한 맛이 느껴졌다.


  “참 아끼던 딸이었습니다.”

  남자가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나는 다리를 모으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몸이 약한 아내는 딸을 낳고 바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참 세상이 얼마나 야속한지 딸마저 제게서 빼앗아 버리더군요. “

  말을 하는 내내 항아리를 쓰다듬는 걸 멈추지 않았다. 나도 그를 따라 주머니에 있는 사진을 어루만졌다.

  그가 항아리를 두 번 두드렸다. 그러곤 고개를 돌려 주머니 안에 넣은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안에 무언가 있군요.”

  어딘지 모를 민망함에 재빨리 손을 뺐다.

  “소중한 거군요. 그렇게 손이 베였는데도 놓을 생각을 하지 않으시니.”

  나는 멋쩍게 웃으며 베인 오른손을 등 뒤로 돌려 땅을 짚었다.

  물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해는 점점 지평선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한숨이 멈추질 않았다. 짭짤한 공기 탓인지 입이 근질근질했다. 뭔가 그의 텅 빈 눈을 보자니 말을 털어도 될 것 같았다.

  “네, 제 전부였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흔한 이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제겐 결혼까지 약속을 한 제 전부였습니다.”

  “저런, 헤어졌군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이었다. 내 말을 듣고 내게 한심한 눈빛이 아닌 안쓰러운 눈빛을 보이는 건.

  “상실감이 크시겠군요. 그러니 이곳에 온 거겠죠. 이해합니다. “

  

  신발 바닥에 묻었던 진흙이 씻겨져 내려갔다. 이제는 어디를 가든 흔적이 남지 않을 거란 생각에 괜히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평선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웃긴 일이었다. 해든 달이든 오랜 시간 동안 고생하며 세상을 밝히다 이곳에서 사라진다. 그런 그들이 지는 이 해안은 반짝이는 모래사장이 아닌 눈살이 찌푸려지는 뻘이다. 늘 제 역할을 해낸 뒤 마지막으로 보는 게 고작 이 풍경인데도 그것들은 불평 하나 없이 다시 떠올랐다가 자취를 감춘다. 아마도 그것이 내가 이곳을 택한 이유이지 않을까 싶었다. 바짓단이 축축하게 물들었다. 남자도 눈을 감고 천천히 차오르며 느껴지는 수온을 만끽하는 듯했다.

  “한 번 묻겠습니다. 정말 여기에 가만히 계실 건가요?”

  남자가 눈을 뜨지 않은 채 물었다. 우선 그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가 볼 수 없는 것 같아 네, 하고 짧게 대답했다.

  “다행입니다. 세상 모두가 이해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당신이라도 저를 이해해 줘서.”

  이미 물은 목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물이 더 밀려 들어온다면 평생 하지 못 할 말일 것 같았다. 해가 서서히 지평선 안으로 기울었다. 나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작가의 이전글 깨져버린 거울 너머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