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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Jan 24. 2023

Dancing In The Moonlight



  차가운 새벽공기가 피부에 와닿았다. 콧잔등에 송골송골 맺히는 이슬은 아직 내가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알려주었다. 겉옷을 입었지만 안에 입은 운동복에서 땀냄새가 올라왔다. 지퍼를 살짝 내리고 몸 안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보았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땀냄새였다. 이대로 지하철에 탄다면 출근을 하는 모든 승객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받을 게 뻔했다. 스마트폰을 꺼내 남은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이틀 전에 아르바이트 월급이 들어왔지만 월세니, 통신비니 교통비니 이것저것 빠져나가면 수중에 남는 돈은 얼마 남지 않았다. 뭔가 월급이 내 통장을 스쳐 지나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연습실에서 집까지는 약 만 원의 택시비가 나온다. 지하철역은 출근을 위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는 과정 중에서도 한숨을 굉장히 많이 쉬었을 텐데 지하철에서 이런 역한 페로몬의 향을 맡으면 얼마나 짜증이 날까. 나는 담배를 태우며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24시간 운영을 하는 카페에 들어갔다. 연습실 근처에 새로 생긴 곳으로 아메리카노를 삼천 원이란 싼 값에 팔았다. 사람이 한적해지는 늦은 오전 시간까지 눈을 붙이려다 욱신거리는 다리가 쉽사리 잠을 허락하진 않았다. 카페엔 빈자리가 많았지만 직원들은 분주하게 커피머신을 작동시켰다. 카운터 앞을 줄지은 사람들은 모두 플라스틱 컵에 커피를 받아 한 모금 들이키며 문을 열고 나갔다. 아마 그들에겐 이 카페인이 몰려오는 아침잠을 깨우는 약 같은 게 아닐까 싶었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스마트폰에 이어폰 연결해 귀에 꽂았다. 그리고 이번에 방영한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보며 실력자 댄서들의 무대를 감상하였다. 사실 말 그대로 우리는 ’ 스트릿‘에서 무대를 보이고 기껏 해봤자 아이돌들의 백댄서로 활동하는, 그저 이름 모를 예술가 혹은 어시스턴트로 알려졌다. 그런데 저렇게 방송에 나와 이름과 실력을 떨친다는 게 그저 신기하고 부러울 뿐이었다. 더군다나 조명이 비추어지지 않는 무대 뒤가 아닌, 무대 앞에 서서 조명을 받아 공연을 선보였다. 나는 괜히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깜빡 잠에 들었다. 영상을 틀어둔 탓인지 스마트폰은 이미 방전되어 검은 화면만 드러내고 있었다. 카운터로 달려가 스마트폰 충전을 맡기며 지금 시간을 물어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던 늦은 오전 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다. 어쩐지 허기가 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빈 속에 들어간 카페인이 속을 뜨겁게 데우고 있었다. 마침 중불에 달구어진 설탕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내 몸에 모든 감각들을 뒤편으로 고개를 돌리게 하는데 충분했다. 그곳엔 커피와 곁들여 먹을 빵이나 케이크를 굽는 주방이 있었다. 나는 결국 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텅 빈 진열대 가리켰다.

  “지금 빵을 만드시는 것 같은데 혹시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

  직원이 주방을 한 번 들여다보고는 두 손을 모았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점장님이 예약받은 빵만 만들고 계시거든요.”

  짧은 탄식이 나왔다.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러다 커튼을 열고 점장이란 사람이 얼굴을 드러냈다. 검은 뉴스보이캡에 덥수룩한 수염만으로도 그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일머리 없게 왜 그래. 그래도 이 시간에 직접 찾아와 주신 고마운 분인데.”

  점장은 그녀를 째려보다가 웃음을 보이며 내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 만드는 건 예약받은 빵이지만 주문량보다 많이 만들어서 남는 게 좀 있습니다. 아마 15분 뒤면 빵이 나올 테니 조그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

  방금과는 달리 한 층 높아진 목소리에 친절함이 묻어 나왔다.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마성의 목소리였다. 그가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며 나도 따라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직원이 내 자리로 오더니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살피곤 무언가를 건넸다. 코팅이 된 메뉴판 같은 종이였다. 그녀는 잘 읽어보라고 주의를 주고는 카운터로 돌아갔다.


  눈을 감고 내가 원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빵을 씹어 보세요. 분명 멀지 않은 미래에 내가 떠올린 장면을 마주하게 될 겁니다. 다만, 그만큼의 대가는 따르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직원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그녀는 내 시선을 피해버렸다. 점장이란 남자의 휘파람 소리가 주방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그녀에게 받은 안내문을 여러 번 곱씹었다. 요즘 이상한 콘셉트를 잡고 영업을 하는 카페가 많다던데 이곳도 참 특이하네.

  남은 재고를 파는 것이었기에 사천 원짜리 소금빵을 천 원에 샀다. 고소한 빵 냄새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얼음이 잔뜩 녹아 물에 가까운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고 칼로 소금빵을 썰었다. 배에선 여전히 꼬르륵, 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결국 빵을 다 썰지도 않았는데 잘린 한 조각을 포크로 찍었다. 입에 넣으려는 찰나 다시 안내문이 떠올랐다. 내가 원하는 장면…… 한 번이라도 좋으니 많은 관중들이 보는 무대 위에 서보고 싶다. 많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맹한 커피 향 뒤로 짭짤한 빵이 씹혔다. 빵을 씹으면 씹을수록 분해되어 나오는 포도당의 단 맛이 짭짤한 소금과 만나 혀를 축축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창문을 보니 카운터에 선 직원의 얼굴이 비추어 보였다. 그녀는 손바닥을 이마에 짚고는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빈 접시와 잔을 반납하고 스마트폰을 받았다. 나는 허리를 숙이며 직원과 점장에게 인사했다. 문을 여니 쌀쌀한 공기가 피부에 와닿았다. 참 특이한 콘셉트의 카페네.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지하철역 아래로 내려갔다.


  “채린아, 이거 거절할 이유가 없어. 당장 해야 해.”

  수화기 너머 들리는 선배의 목소리는 다급하다 못해 흥분한 듯했다. 막 집에 도착해 잠에 들려던 찰나였어서 그녀의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결승전 무대 백던서로 너를 컨택했다고. 잘하면 네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예, 그, 그렇겠……죠. 근……데 아, 네? 뭐라고요?”

  정신이 번뜩였다. 이런 기회가 생기면 분명 눈물을 흘리거나 환호성을 지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아무런 말도,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스마트폰을 들고 그 자리에서 미동도 없이 멈춰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아까 카페에서 먹은 소금빵이 떠올랐다. 혹시 내가 떠올린 게 정말로 이루어진 걸까.

  “합 맞춰보는 건 그쪽 연습실에서 하게 될 거야. 주소 보내줄게. 부럽다. 나도 그런 무대 한 번쯤 서보는 게 꿈인데.”

  나는 통화 종료음이 들리고 나서도 한참 동안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냥 꿈을 꾸는 게 아닐까 싶어 볼을 꼬집는 게 나의 첫 움직임이었다.

  선배가 보내준 주소에 도착했다. 계단을 내려가 문을 열어보니 정말 티브이에서 본 얼굴들이 거울 앞에 서서 몸을 풀고 있었다. 그들이 내게 환한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를 컨택한 여자는 본인이 만든 춤을 직접 백댄서들에게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나도 그녀의 열정에 함께 타올라 몸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채린 님, 움직임이 좋네요. “

  그녀가 거울을 통해 내게 말을 걸었다. 그녀의 칭찬에 멋쩍게 웃음을 보였지만 연습이 끝나기까지 그 말이 가슴속에서 일렁였다.


  공연 당일. 백댄서끼리 맞춘 옷을 입고 무대 뒤에서 한참을 서로 연습했다. 손과 발이 모두 떨렸다. 대기실이 지하에 위치했음에도 관객석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데 문득 카페에서 받았던 안내문이 떠올랐다. 이에 따른 대가가 뭘까. 꿈에 그리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괜히 느껴지는 불안감은 식은땀을 멈추지 않기에 충분했다. 공연이 시작되기까지 삼십 분 가량이 남았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거울 앞에서 연습한 춤들을 확인했다. 가장 어려웠던 동작, 높게 뛰어올라한 바퀴 구르며 착지, 곧장 일어나 다시 왁킹. 이미지 트레이닝은 모두 마쳤다. 이제 머릿속에 있는 값을 출력하면 된다. 높게 뛰어오르고 구르려는 찰나, 발목에 통증이 느껴졌다. 비명도 나오지 않는 고통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이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고통을 느낄 틈 따위 없었다. 단체 메시지 방에서 갑작스러운 소집이 있었다. 주최 측과 소통 오류로 우리가 쓸 수 있는 무대 공간이 좁다는 소식이었다. 그 무대 크기에 맞춰 백댄서를 구한 그녀는 한 명 내지 두 명의 댄서를 줄여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녀는 난감한 표정을 보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공연 삼십 분 전인데 이게 말이 되냐고요. 어쩌면 좋지……”

  그녀의 고민은 큰 의미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다른 댄서들이 나를 힐끔거리며 보고 있기에 그 줄어들 댄서로 이미 나를 택한 듯했다. 나는 삔 발목을 천천히 돌려 보았다. 뼈가 끊어지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입술을 꽉 깨무는 걸로 비명 데시벨을 0으로 만들었다. 아마 발목이 안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를 뺄 명분이 생기니까. 나는 무대에 서고 싶었다. 빵을 베어 물면서 실없이 떠올린 꿈이 아니었다. 그전부터 아니, 이 선택을 한 이유 자체가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발목 통증은 점점 심해지는 듯했다.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무대에 올라 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냥 대형을 조금 좁히더라도 다 같이 서면 안 될까요? 사실 대형을 망가뜨리는 큰 동작도 없고 이 인원으로 연습을 했잖아요. 그리고…… 솔직히 모두 이 무대 위에 서고 싶잖아요. “

  “음…… 여러분 생각은 어때요?”

  그녀가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모두 서로의 눈치를 보거나 고개를 숙이고 나를 째려보았다. 그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채린 님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우리 같은 스트릿 댄서들은 한 번이라도 더 이런 무대 위에 서야 하잖아요. 조금 불편하더라도 해봅시다.”


  조명은 내게 비추어지지 않았지만 광활한 관객석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친 듯 뛰었다. 잠시 발목에 고통도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중심에 있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했다. 그녀가 처음 고개를 까닥이는 걸 시작으로 댄서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제 연습을 한 대로 나를 보여주면 됐다. 그런데 몸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발목 통증이 더 심해져만 갔다. 땀이 뺨을 타고 흐르다 바닥에 떨어졌다. 다시 내가 어려워한 부분, 덜컥 겁이 났지만 그냥 과감하게 몸을 던졌고 결국 그 자리에서 내 발목은 완전히 뒤틀려버렸다. 주저앉은 몸을 쉽게 일으킬 수 없었다. 노래는 끊기지 않았고 그녀는 여전히 퍼포먼스들을 보여주었다.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비추어지지 않는 조명 덕분에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에. 관객석 너머 환하게 뚫린 천장 위로 달이 빛나고 있었다. 달빛이라도 나를 비추어 주는 걸까.


  무대가 끝나고 나에 대한 기사는 역시 단 한 줄도 쓰이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당분간 발목을 쓰지 말라고 했기에 잠시 이 생활을 접기로 했다. 그래도 많은 관객 앞에서 나를 보여주었기에 후회는 없었다. 다시 연습실 근처에 있던 카페에 가보았다. 그런데 빵을 팔던 카페는 온데간데없고 임대 딱지가 붙은 빈 건물만이 퀭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그때 맛보았던 소금빵의 맛이 혀끝에서 아른거렸다. 나는 그 무대에 서 보았다. 한 번으로 충분할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았다. 매일 그런 무대 위에 서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어쩌면 소박하고 무력했던 내가 야망이란 걸 가지게 된 것 같았다. 발목에 찬 붕대를 풀기까지 수없는 영상 시청과 이미지 트레이닝을 쉬지 않고 했다. 아마 이 대가가 없었으면 거기까지에 만족을 하는 내가 되었을 것 같았다. 나는 괜히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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