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오 Jan 18. 2023

손금 봐드립니다.

짧은 콩트



  만 원 이상 옷을 사신 분께 무료로 손금 봐드립니다. 엄마의 가게 앞에는 ‘빈티지 샵’ 이란 이름보다 큰 글씨로 적힌 문구가 있었다. 요즘 들어 손금을 공부하는 엄마에게 딱 적절한 마케팅 전략이었다. 손님들은 무료로 앞으로의 운세를 알 수 있어서 좋고, 엄마는 공부한 손금을 볼 수 있어서 좋고, 양 쪽 입장에서 이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만 원에서 몇 백 원이 모자라면 엄마는 손금을 핑계로 양말 몇 켤레를 더 팔곤 했다.

  붉은 안경에 모피옷을 걸친 여자가 가게로 들어왔다. 그녀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고 한 손에는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불길한 기운을 느낀 나는 창고로 들어가 물류를 정리하는 척했다. 그녀가 억지스러운 우아한 목소리를 내며 사장 나오라고 말했다. 엄마도 침을 한 번 크게 삼키고 제가 사장이라고 말했다.

  “사장님, 올해부터 재물운이 있어서 큰 복이 찾아올 거라고 했잖아요.”

  엄마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손바닥을 크게 펼쳐 엄마의 눈앞에 들이댔다. 엄마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의 손금을 다시 바라보았다. 어, 여기 보이는 선이 재물선인데 이곳에서 끊겼다가 다시 길게 이어지는 걸 보면 올해 재물운이 들어오는 게 분명합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손님을 찾아오게 될 겁니다. 엄마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녀의 찌푸려진 인상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곤 쇼핑백을 카운터에 던져 올렸다. 됐으니까 이거 환불해 줘요. 나도 괜히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엄마는 쇼핑백 안에 든 옷가지들을 꺼내며 상태를 살펴보았다. 옷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옷에는 문제가 없는데 그 망할 손금이 틀렸잖아요. 그러니까 환불해 줘요. 엄마의 한숨소리가 창고까지 들렸다. 당장이라도 창고를 뛰쳐나가 여자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환전함을 열었다. 만 원짜리 지폐를 건네자 그녀가 새침하게 지폐를 낚아채곤 가게 밖으로 나갔다.

  “엄마, 왜 환불을 해준 거야? 저런 진상은 상종을 하지 말아야지.”

  여자가 나가자마자 창고로 나와 말했다. 엄마의 표정은 무언가를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그녀가 나간 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널브러진 옷가지를 정갈하게 개기 시작했다.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다시 옷을 진열해 둔 엄마는 돋보기안경을 쓰고 손금 책을 펼쳐 읽었다. 나는 엄마를 보곤 고개를 여러 번 가로저었다. 솔직히, 엄마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책을 덮은 엄마는 두 검지로 눈가를 매만졌다. 이런 일까지 겪으면서 왜 손금을 공부하려고 하는 걸까. 나는 결국 턱끝에서 일렁이던 말을 꺼내버렸다. 엄마, 마케팅 전략인 건 알겠는데 그걸 왜 자꾸 공부하는 거야? 무슨 도움이 된다고. 엄마가 머리에 걸친 안경을 벗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다. 그냥, 네 아빠가 떠난 게 내 손금 때문이라고 하길래 내가 다시 확인해보고 싶었어. 입이 절로 다물어졌다. 엄마는 아빠와 이혼을 한 뒤로 옷가게를 차렸었다. 그리고 늘 카운터에 앉아 멍하니 통유리 반대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 사실 엄마는 아빠를 그리워하고 있던 걸까. 엄마의 결혼생활은 끝에 머물렀을 줄 알았는데 그 발자국의 끝은 견고한 벽 앞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stargazing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