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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Jan 17. 2023

stargazing



  당신이랑 커다란 그네를 같이 타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등을 밀어주는 세기에 따라 당신은 내게서 멀리 떨어지지만 더 빠르게 제게 오는, 그런 당신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늘 붉은 목도리를 맨 어린 당신은 혼자 놀이터 벤치에 앉아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우리가 눈사람을 만들 때도, 딱지치기를 했을 때도, 그네를 탈 때도 당신은 늘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그때로 돌아가 당신께 다가갔다면…… 지금 당신은 저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그날은 고등학교에 올라오고 처음으로 맞이한 방학이었다. 거리마다 울리는 매미소리는 햇빛을 더 뜨겁게 일구는 것 같았다.

  “날도 더운데 그냥 PC방이나 가자. 나 한 판만 이기면 승급전이야.”

  한호가 아이스크림을 크게 베어 물고 말했다. 입 안을 가득 채운 아이스크림 탓인지 그의 발음은 잔뜩 뭉개져 있었다.

  “안 돼. 오늘부터 학원 특강 있담 말이야. 내가 지난 기말고사에서 수열 이해 못 해서 깨나 고생했잖아. 2학기엔 그런 일이 반복되선 안 돼.”

  “한 판 한다고 그게 달라지냐?”

  한호는 남은 아이스크림을 단 번에 입에 넣었다. 이가 시렸는지 그는 손을 바르르 떨었다.

  “야, 정인아. 저기 쟤, 우리 초등학생 때 걔 아니야?”

  나는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아슬아슬한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일명 ‘걸그룹’들의 무대가 틀어진 티브이가 있었다. 저런 옷을 입고도 미소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그저 안쓰러웠다. 그런데 그중 유독 눈에 띄운 한 사람이 있었다. 진하게 화장을 했음에도 뚜렷하게 보이는 이목구비, 세라가 분명했다.

  “와, 쟤 맨날 반에서 조용하지 않았어? 그런데 저런 걸 하네. 신기하다.”

  “에이, 닮은 사람일 수도 있잖아.”

  나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손차양을 하고 다시 티브이 화면을 보았지만 확실히 그녀는 세라였다. 무대가 마치고 다섯 명의 소녀들은 각자 카메라에 잡히기 위해 온갖 표정을 보였다. 그러나 잠깐 잡힌 세라의 얼굴은 뿌듯함보단 지친 얼굴에 가까웠다. 아니야, 설마 세라겠어. 나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고 가방을 고쳐 맸다.

  “나 이제 정말 가야 해. 방학 때 볼 수 있으면 보자.”

  학원으로 향하는 내내 티브이에서 본 무대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 ‘안세라’를 검색해 보았다. 그러자 정말로 그녀의 얼굴이 검색창에 떠올랐다. 나이도, 이름도, 얼굴도. 모두 세라임을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속한 그룹은 며칠 전에 막 데뷔한 신인 걸그룹으로 세라는 그중에서 막내 역할을 맡고 있었다. 비록 소속사는 작은 기업이었지만 수록곡이 많이 담겨있는 걸 보니 작정을 하고 만든 그룹 같았다.


  학원 쉬는 시간 내내 나는 유튜브에서 그녀의 영상을 찾아보았다. 신인 걸그룹답게 이름을 알리려 온갖 예능이나 음악 프로그램, 비디오 등에 열심히 참여한 듯했다. MC는 세라의 노래 실력에 모두가 감탄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이렇게 감미로웠구나. 가끔 세라의 노래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유튜브나 음악 청취 앱 댓글에서도 세라의 노래 실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도 그들을 따라 댓글을 남길까 고민했지만 혹여 그녀가 이 댓글을 보았을 때, 부담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스마트폰 화면을 잠갔다.

  쉬는 시간이 5분가량 남았다. 편의점에서 간식을 먹고 온 학생들이 음식 냄새를 풍기며 학원 안으로 들어왔다.

  “너 이번에 엔시티 앨범 샀어?”

  “당연하지. 나는 열 장이나 샀는걸?”

  “대박이다. 정말 팬사인회 당첨되는 거 아니야?”

  “모르는 거지. 누구는 50장이나 샀는데 전부 낙첨이래잖아.”

   나는 귀에 꽂은 이어폰의 볼륨을 줄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팬사인회? 앨범을 사면 갈 수 있는 건가? 곧장 검색창으로 돌아가 팬사인회에 대해 검색했다. 그러니 정말 앨범을 사면 낮은 확률로 팬사인회에 갈 수 있다는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앨범을 많이 사면 그만큼 당첨될 확률도 높아진다. 이번엔 세라가 속한 그룹 ‘로맨스 걸스 앨범’이라고 검색을 해보았다. 검색창 맨 위로 이번 앨범 쇼핑목록이 떠올랐다. 그런데 밑에 적힌 가격을 보니 한 장 당 만오천 원 정도였다. 나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보았다. 이번달에 받은 용돈 이 만원. 만약 저 앨범을 산다면 다음 달까지 오천 원으로 버텨야 한다. 게다가 당첨이 안 될 수도 있었다. 수업 종이 울렸다. 나는 고개를 번쩍 들고 다시 교실로 들어갔다.

  칠판에는 온갖 수학 공식들이 나열되었다. 기껏 핀 수학의 정석에는 한글보다 숫자가 더 많이 적혀 있었다. 잠깐이라도 정신을 놓는다면 앞에 모든 강의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앨범의 가격과 지갑 안에 든 지폐 두 장이 연신 피어올랐다.

  “강정인, 너 딴생각하지?”

  학원 선생님이 칠판을 두드리며 내 이름을 불렀다. 시선이 내게 쏠리자 절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집중 잘해야 해. 지금 이거 놓치면 앞으로 할 미적분, 기하와 백터 이런 건 아무것도 이해 못 해.”

  나는 작은 목소리로 네, 하고 짧게 답했다. 다시 수학의 정석을 내려다보았다. 자그만 숫자들이 개미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집중을 하려 글씨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데도 세라의 얼굴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신촌에 있는 앨범 가게에 왔다. 역에서 내려 현대 백화점 골목으로 들어가자 앨범 가게 앞에는 길게 줄이 늘어져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두 각자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앨범을 사러 온 것이었다. 나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차례를 기다렸다. 땀이 옷을 흠뻑 적셨다.

  “헐, 혹시 엔시티 앨범 사러 오셨나요?”

  옷 앞섶을 팔락거리며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앞에 선 여자가 물었다. 나는 말을 더듬거리며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남자가 이곳에 오는 경우는 드문데 뭔가 되게 신기하네요.”

  “하하…… 저도 처음인지라.”

  “이번에 또 곡 낸 가수가 누가 있지? 누구 거 사러 오신 건지 말해주면 안 돼요?”

  “아, 그…… 로맨스 걸스라고 있습니다……”

  “아! 이번에 새로 데뷔한 그룹인가. 거기 팬이시구나. 팬사인회 당첨되길 바랄게요.”

  나는 더 이상의 대화를 피하려 고개를 꾸벅 숙였다.

  차례가 되어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온갖 가수들의 앨범이 곳곳에 꽂혀 있었다. 세라의 앨범은 ‘신인 앨범’이란 코너에 있었다. 나는 그녀의 앨범 한 장을 들고 곧장 계산대로 향했다.

  “로맨스 걸스 브로마이드 필요하세요?”

 브로마이드? 그 벽에 붙여두는 그 큰 사진을 말하는 건가. 아직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 직원이 크고 길쭉한 통을 꺼내 내밀었다. 거절할 틈도 없이 나는 그걸 받아 품에 안았다.

  “네, 만오천 원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지갑을 열어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건넸다. 오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받자 나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고작 이 돈으로 한 달을 어떻게 버티지?


  “야, 정인아. 기껏 왔는데 뭔 이상한 페이지나 빤히 쳐다보고 그러냐.”

  팬사인회 당첨자 발표 날이었다. 발표는 우선 공식 팬 페이지에 공지가 되고 추후에 따로 문자가 온다고 했다. 차마 집에서 결과를 볼 수 없을 것 같아 PC방에 오자는 한호의 제안을 승낙했다. 오후 세 시. 결과가 나왔다. 나는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마우스 스크롤을 내렸다. 설마 한 장밖에 안 샀는데 되겠어? 속으론 이 생각을 연신 읊었지만 떨리는 가슴은 어쩔 수 없었다. 48번 당첨자. 강*인. 그 옆으론 내 전화번호 뒷자리가 적혀 있었다. 설마 당첨된 건가? 나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만세를 불렀다.

  “뭔데 그렇게 좋아하는 거야. 어?”

  호기심을 참지 못 한 한호가 내 모니터 화면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뿔싸, 나는 곧장 모니터 화면을 껐지만 음흉한 미소를 짓는 한호를 보니 이미 한 발 늦은 듯했다.

  “뭐야, 너 방학 동안 바쁘다더니 연예인 덕질 하려고 바쁜 거였냐? 로맨스 걸스는 또 무슨 그룹이고.”

  한호는 키보드 위에 손을 얹더니 검색창에 로맨스 걸스를 검색했다.

  “아, 여기 초등학교 때 그 여자애 있는 그룹이네. 뭐냐. 네가 거기 팬사인회를 왜 가?”

  “몰라. 야, 빨리 게임 돌려. 나 시간 얼마 안 남았다.”

  남은 시간은 두 시간 남짓 남았다. 한호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미소를 살짝 보이는 걸 보니 그냥 넘어가는 듯했다.


  개인 문자로 정해진 팬사인회 장소와 시간, 순번이 나왔다. 강남 코엑스몰. 혼자 이 멀리까지 온 건 처음이었다. 팬사인회가 열리는 곳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크게 플랜 카드가 걸려 있었지만 아직 신인인 탓인지 사람이 그렇게 몰려들지는 않았다. 나는 스마트폰 화면에 순번을 띄워놓고 대기석에 앉았다. 긴장을 한 탓인지 입장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왔다. 자리에 앉아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세라의 영상을 다시 찾아보았다. 분명 목소리도 들어보지 못했고 말도 한 번 섞어보지 못했는데 왜 나를 알아볼 거란 기대를 하는 걸까. 괜한 머쓱함에 머리를 긁적였지만 두근거리는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어느덧 자리가 북적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아슬아슬한 옷을 입은 소녀 다섯 명이 작은 단상 위로 올랐다. 그 맨 뒤, 세라의 얼굴이 보였다. 절로 미소가 나왔다. 진하게 화장을 했지만 초등학생 때와 달라진 모습은 전혀 없었다. 여전히 말랑일 것 같은 볼살, 우울해 보이는 눈, 두터운 입술. 괜히 손을 흔들고 싶었다. 그때, 옆에 사람들이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거나 인사를 했다. 나도 그들을 따라 슬쩍 손을 흔들었다. 세라가 대기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서비스 차원인지 살짝 눈웃음도 보였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일었다.

  사람들은 한 명씩 줄을 서서 앨범에 사인을 받았다. 사둔 선물을 건네기도 하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나는 괜히 빈손이란 사실에 머리를 긁적였다. 내 차례가 다가왔다. 단상으로 향하는데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날 알아볼까? 내가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녀도 알까? 어느덧 맨 마지막에 앉아있는 그녀의 앞에 서게 되었다. 세라는 눈웃음을 보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원래 예쁜 아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내 가슴을 뛰게 할 정도였나.

  “안녕하세요.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실까요?”

  “아, 아… 강정인입니다.”

  “네, 정인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자 그녀는 악수, 하고 작게 말했다. 그제서 난 그녀의 손을 맞잡고 팔을 흔들었다. 따듯했다. 뭔가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는 따듯하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손을 떼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녀는 날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설레는 마음 위로 아쉬움이 내려앉았다.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영상을 찾아보지 않을 줄 알았다. 이제 생각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나를 올려다보며 지은 그녀의 눈웃음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을 마주한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그들이 신곡을 낼 때마다 앨범을 사곤 했지만 번번이 응모에는 실패했다. 대학에 갈 때까지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그녀를 보는 것 만으로 만족했다. 로맨스 걸스는 어느덧 자리가 잡혀 나름 이름을 날렸다. 팬사인회가 열린다면 경쟁률이 최소한 수백 대 일이 되었고 단독 콘서트는 오 초도 되지 않아 마감이 되어버렸다.

  “정인 선배, 유기화학 수업 들으러 가세요?”

  “응. 너도 그 수업이지?”

  “네. 같이 가요. 시간이 좀 남는데 교내 카페에서 커피라도 하나 사 갈까요? 제가 사드릴게요.”

  “아, 아니야. 나는 괜찮아. 너 마시고 싶으면 마셔.”

  지유가 볼에 바람을 가득 넣었다. 그녀는 내가 군대에 전역하고 복학한 시기에 같은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나를 마주칠 때마다 내게 말을 걸었다.

  “근데 선배는 매일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걷는 거예요? 난 가끔 그러다 선배가 넘어질까 겁나요.”

  “나? 그냥 별 생각 안 하는데……”

  거짓말이었다. 그날, 팬사인회에 다녀온 후 나는 군복무를 하면서도, 잠에 들면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그녀가 떠올랐다.

  “선배, 오늘 저녁에 뭐 하세요?”

  “저녁? 글쎄. 오늘 전공 수업 들은 거 노트에 정리해두지 않을까?”

  “난 선배랑 같이 밥 먹고 싶은데요?”

  지유가 내 앞길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이내 눈웃음을 지었다. 고등학생 때 세라를 만난 날 그녀도 내게 이런 표정을 보여주었다.

  “그래. 빨리 마치고 연락할게.”

  말을 마치자 지유가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뭐가 저렇게 좋아서 들뜬 걸까. 나를 좋아하는 걸까. 그렇다고 한들 나는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 문득 든 생각에 내 대답은 노,였다. 적어도 세라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고…… 그 순간이 찾아왔을 때,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대답이 바뀔 것 같았다.


  칠판에는 온통 Carbon(탄소)의 약자인 C로 가득했다. 사이크로 헥세인, 벤젠 등 한글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랫동안 칠판을 보자니 눈이 침침했다. 주먹을 쥐고 눈을 지그시 누르는데 스마트폰에서 문자 알림이 울렸다. 한호였다. 나는 몸을 옆으로 돌려 한호의 문자를 읽었다.

  ‘야, 당장 연예 뉴스 봐바.’

  ‘나 지금 수업 중이야.’

  ‘그게 중요해? 빨리 보라고.’

  괜히 인상이 찌푸려졌다. 뭐길래 수업 중에 뉴스를 보라고 난리지. 나는 그의 말대로 인터넷에 들어가 연예계 뉴스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메인 기사에 세라의 얼굴이 크게 떠올랐다. 밑에는 사진보다 작은 글씨로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안세라, 소속사 대표와 은밀한 관계.’ 나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기사를 들어가 조그만 글씨를 하나씩 읊어보았다. 세라는 연습생 때부터 아쉬운 춤 실력에 데뷔조에 들어가기 어려웠지만 대표와 은밀한 관계를 가짐으로 데뷔를 할 수 있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17로 기자들은 온갖 녹취록과 증거 사진을 베포 했다. 이상하게 숨이 가빠왔다. 세라가? 나는 점점 가빠오는 숨에 강의실을 뛰쳐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변기에 얼굴을 박고 연신 헛구역질을 했지만 몸을 뜨겁게 데우는 이 느낌은 게워지지 않았다. 도무지 수업을 들을 수 없었다. 나는 강의 쉬는 시간 틈을 타 가방을 챙겨 학교를 빠져나왔다.


  좁은 방 안, 침대에 몸을 눕혀 고개를 살짝 들면 세라의 포스터가 붙은 벽이 보였다. 정말 그녀가 그런 짓을 했을까? 나로선 알 수 없었다. 사실 나는 그녀와 대화 한 번 안 해본, 거의 남에 가까운 사이인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러나 쉽게 잠이 들지는 않았다. 머릿속이 먹구름으로 가득 찬 기분이었다. 빗방울이 한 방울이라도 떨어진다면 그땐, 참았던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분명 잠에 들지도 않았는데 해는 저물어 있었다. 어떤 생각으로 시간을 보낸 건지 어림도 잡히지 않았다. 그때, 지유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제서 나는 그녀와 저녁을 먹기로 한 약속이 떠올랐다.

  “선배, 괜찮아요?”

  “응? 어…… 괜찮아.”

  “걱정했잖아요. 수업 중에 갑자기 나갈 선배가 아닌데. 식사 안 하신 거 아니에요? 저녁은 먹을 수 있겠어요?”

  입맛은 따로 돌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 정신으로는 도무지 남은 하루를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응, 안 했는데…… 밥 말고 술 마실래? 좀 마시고 싶네.”

  “아, 저는 좋아요.”

  “응. 금방 나갈게 학교 먹자골목에서 만나자.”

  통화가 끊어졌다. 나는 나갈 준비를 하기 전에 다시 인터넷 뉴스로 들어가 보았다. 아직 세라와 소속사 대표의 해명은 나오지 않았다. 댓글에서는 이 정도면 혐의를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수두룩했다. 공식 SNS계정을 들어가 보았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올라온 모든 글마다 댓글을 다는 기능은 막혀 있었고 메시지도 보낼 수 없도록 막아놓았다. 세라의 개인 계정도 마찬가지였다. 두 개밖에 올라오지 않았던 게시물은 모두 내려가 있었고 프로필과 정보 모든 게 지워져 있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다시 헛구역질이 났다. 가슴속을 연거푸 불태우는 이 뜨거움을 모두 토해내고 싶었다. 그러나 심장이 뛰는 건 불수의근이다.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무리 심호흡을 하고 물을 들이켜도 심장은 내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소주잔은 손바닥보다 작았다. 그 잔을 가득 채우는 건 쓰디쓴 소주였다. 스무 살 때, 이걸 처음 마셔본 나는 다음날까지 침대에서 일어나질 못 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이게 마시고 싶은 걸까. 나는 잔이 채워지자마자 잔을 기울였다. 소주의 뜨거움이 타들어가는 답답함을 덮어버리는 것 같았다.

  “선배, 괜찮은 거 맞아요?”

  지유는 빠르게 비는 내 잔을 채우며 물었다.

  “응. 괜찮아. 지유는 수업 들으면서 어려운 점 없어?”

  괜히 말을 돌렸다. 뭔가 남에게 걱정을 받는다는 사실이 싫었다. 더군다나 초등학생 때, 바라만 보던 여자애, 지금은 걸그룹이 되어버린 그녀로 인해 속이 불타오른다는 사실을 말한다는 것도 싫었다. 나는 잔을 비울 때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되새겼다. 거듭해서 잔이 비워질수록 떠올리는 생각은 점점 변질되어 갔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시간이 지나면 해명을 하는 글이 떠오를 거야,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허위사실이라는 게 밝혀질 거야, 시간이 지나면 세라는 다시 웃음을 보일 거야, 시간이 지나면…… 머릿속에 파노라마가 비치다가 이내 검은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그럼에도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 내 앞에 앉아있던 지유의 얼굴이 점점 흐릿해졌다. 잠이 쏟아진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조그맣게 지유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빠, 괜찮아요? ……”

  

  눈을 떴을 땐,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머리를 움켜쥐고 일어나니 낯선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선배, 일어났어요? 콩나물국 드세요.”

  지유의 목소리였다. 콩나물국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유는 앞치마를 하고 한 손에는 국자를 들고 있었다. 아, 2집 앨범의 세라의 사진도 앞치마를 매고 국자를 들고 있었지. 그러다 놓았던 정신이 돌아왔다.

  “어? 뭐야. 여기 너희 집이야?”

  “네. 전 선배 집이 어딘지 모르잖아요. 길거리에 버리지 않고 온 걸 영광으로 아세요.”

  “아…… 미안해서 어쩌지.”

  “미안하면 나중에 밥 제대로 한 번 사주세요.”

  “그래……”

  미안함도 잠시, 나는 당장 스마트폰을 찾아 인터넷에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믿기지 않는 기사가 메인 기사에 떠올랐다.

  ‘로맨스 걸스, 안세라. 금일 새벽 네 시, 자택에서 변사체로 발견.’

  나는 스마트폰을 쥐고 그 어떤 행동도, 말도 취할 수 없었다. 분명 오보일 거야. 그래, 그럴 리가 없어. 이건 분명 오보야.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그녀의 얼굴이 보일 거야.

  “다 됐어요. 좀 먹어요.”

  “자유아, 미안한데 혹시 티브이 좀 켤 수 있을까?”

  “아, 네. 어떤 거 틀어드릴까요?”

  “그냥, 뉴스면 돼.”

  티브이를 틀고 뉴스 채널로 돌렸다. 아나운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오늘 새벽에 있었던 걸그룹 S양의 자살 사건을 말하고 있었다. 아, 나도 모르게 짧은 탄식이 나왔다.

  “선배, 저 사실 어제 선배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지유가 내 허벅지에 손을 얹고 말했지만 그녀의 말은 내 귀에 닿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이윽고 뉴스에서 세라의 소속사 대표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그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검은 마스크를 껴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미안해 지유아. 조금만 이따가 얘기하자.”

  나는 리모컨을 쥐고 볼륨을 키웠다. 대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여러 개의 겹쳐진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불미스러운 사건을 일으킨 점, 깊이 사죄드리겠습니다. 제가 감히 여러분들께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세라에게 걸그룹을 제안한 건 저였고, 세라도 노래하는 게 좋다고 제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세라의 노래 실력에 비해 춤 실력이 많이 뒤처진 건 사실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데뷔조에 들어가는 것조차 벅찼고, 저도 모르게 피어오르는 욕심에 해선 안 될 제안을 건넸습니다. 결국 세라는 마지못해 승낙했고 로맨스 걸스의 마지막 멤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세라는 데뷔를 하고 나서도 달리게 되는 악플과 쉽게 늘지 않는 춤 실력에 늘 스트레스를 받아왔습니다. 하나 해명드리고 싶은 건, 최근 세라와 찍힌 사진은 다른 관계 탓이 아닌 오롯이 그녀를 위로해 주기 위해, 대표와 연예인 사이로 만난 겁니다. 더 이상, 우리 세라를 힘들게 하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철저히 조사받아서 죄를 뉘우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세라를 편히 쉬도록 도와주십시오.”

  그의 인터뷰가 끝나자 잇따른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는 입을 꾹 다물고 경찰의 인솔대로 연행되었다. 이윽고, 세라의 사진이 떠올랐다. 여전히 두터운 입술에 덜 빠진 볼살, 어딘가 우울해 보이는 눈이었다. 이것이 마지막으로 마주한 세라의 얼굴이었다. 다시 그녀를 마주했을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이제 그 해답을 평생 미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선배, 이제 됐어요?”

  “응…… 미안해. 그래서 하려던 말이 뭔데?”

  “나 선배 좋아해요. 늘 선배를 바라보고 따라다녔어요. 이제 제 마음 좀 받아주면 안 돼요?”

  예상이 틀리진 않았다. 그런데 이 답은 다시 세라를 마주했을 때 드는 생각에 따르기로 했다. 이제 영원히 그 답은 알 수 없다.

  “지금은…… 좀 힘들 것 같아.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니? 정리할 게 좀 있어서 말이야.”

  이대로 지유의 집에 있기엔 무안했다. 나는 고마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여는데 뒤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손을 멈추었지만 침을 한 번 크게 삼키고 멈췄던 몸을 움직였다.


  세라의 장례식은 우리가 초등학교 때, 처음 만난 놀이터에서 이루어졌다. 그녀는 걸그룹이 돼서도 이 놀이터 벤치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다. 오랜 시간 동안, 그녀는 이곳에 앉아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나는 세라가 앉았던 벤치에 앉아 그녀가 바라보았을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앉으니 놀이터에 있는 놀이기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먹먹히지는 듯싶다가도 어딘가 한결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벤치를 손으로 어루만졌다. 그런데 벤치의 끄트머리, 네임펜 따위로 적은 것 같은 글씨가 보였다. 나는 고개를 숙여 흐릿한 글씨를 읊었다.

  ‘외롭다. 미치도록 외롭다. 말을 걸어주는 사람 하나 없다. 어떻게 하면 친구들이 나를 바라볼까.’

  문득 십여 년 전, 이곳에 앉았던 세라를 떠올렸다. 허공을 바라보면서 입을 꽉 다물고 몸을 천천히 흔들었던 그녀. 아마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던 게 아닐까. 나는 몸을 살랑이며 그녀가 냈던 노래들을 천천히 그리고 작게 따라 불렀다.


  지유는 다음학기에 휴학을 했다. 뭔가 수업에 가는 길이 혼자라는 사실이 어색했다. 세라의 자살사건은 어느덧 잊혔다. 사람들은 다른 연예인의 노래를 듣거나 팬사인회에 응모했다. 로맨스 걸스는 해체를 한 뒤로 뿔뿔이 흩어져 누구는 솔로 가수로, 누구는 예능으로, 누구는 완전히 잠적을 했다. 가끔은 세라의 장례식이 이루어진, 세라를 만난 그 놀이터 벤치에 앉아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하늘에선 눈이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세라는 눈이 내려도 눈을 피하지 않고 붉은 목도리를 부여잡기만 했다. 나는 목도리를 꺼내려 가방을 열었다. 목도리와 함께 펜 한 자루가 딸려 나오더니 벤치에 떨어졌다. 그 아래엔 세라가 적었을 글씨가 있었다. 나는 펜 뚜껑을 열고 그 밑에 답장을 썼다.

  ‘네 목소리 너무 아름다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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