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오 Jan 16. 2023

폭설 위에서 잃어버린 건



  아침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인지 허리가 조여왔다. 나는  갑갑함을 줄이고자 벨트를 풀었지만 여전히 더부룩한 배는 쉽게 꺼지지 않았다. 소파에 눕혔던 몸을 일으켰다. 트림이 나올  같았지만 침을   삼켜 참기로 했다. 싱크대에서 물이 , 떨어졌다. 안에는 아직 음식물 찌꺼기가 묻은 그릇들이 수북 쌓여 있었다.

  “우리 이제 그만 이혼하자.”

  어젯밤, 그녀가 뱉은 말이 아직도 선명하게 귓가에 맴돌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시원한 바깥공기로 귀를 씻어내고 싶었지만 빌어먹을 눈이 문을 가로막고 있었다. 제설이 되기까진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녀는 창밖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어디 즈음에 닿고 있는지는 몸이 가려울 정도로 궁금했지만 어젯밤 이후 우리는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약속을 했기에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아마 지금 당장이라도 집을 뛰쳐나가고 싶은  내가 아닌 아내일 것이다.  안에 내려앉은 침묵 덕분인지 새하얀 눈이 가득 쌓인 바깥이 보일러를 틀어 놓은 집보다  따듯해 보였다. 아내의 몸은 떨림 하나 없었다.  하나 꿈쩍이지 않는  보였다.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려앉은 침묵으로 차가워진 집 안의 공기를 높이고자 티브이를 켰다. 화면이 뜨자마자 나타난 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나운서였다. 그녀가 말에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몸이 서서히 따듯해지는 기분이었다. 뉴스는 시민들에게 외출 금지령을 내렸다. 밤새 내린 폭설 때문인지 슬쩍 창문 밖을 보더라도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2010년 이후로 처음 내린 폭설은 도시를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잔뜩 어질러진 도로 위, 제설을 하는 공무원들만이 도로를 누볐다. 아내는 여전히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의 작은 뒤통수는 이 눈이 그치면 당장 집을 떠날 거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공무원들의 노력에도 눈은 쉽게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뉴스에선 외출 금지령 시간이 더 연장되었음을 알렸다. 갑갑함을 도무지 참지 못 한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그녀의 뒤에 섰다. 새하얗고 눈부신 도시, 당장 창문 밖으로 떨어지더라도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을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사이 겹겹이 옷을 껴입고 제설제를 뿌리거나 삽질을 하는 공무원들. 문득 차오르는 안쓰러움에 절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고개를 앉아있는 아내에게로 돌렸다. 그녀도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혀로 입술에 침을 한 번 묻히고 입을 열었다.

  “치워도 결국 다시 쌓인다는 걸 저 사람들도 알 텐데 왜 굳이 지금 치우려고 하는 걸까.”

  오랜만에 입술을 떼서 그런지 그녀의 목소리는 반쯤 쉬어있었다.

  “그래도 저들에겐 이게 의무겠지. 그래서 쌓여도 힘들게 다시 치우고, 또 다시 치우고…… 그러다 결국 지쳐버리겠지.”

  말을 마친 그녀가 나를 한 번 올려다 보았다. 그녀가 한 말은 공무원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입술을 꽉 깨물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보니 그녀가 앉아있는 곳은 창문 난간이 아닌 캐리어 위었다. 벌써 짐을 다 싼 모양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곤 다시 새하얀 눈이 잔뜩 쌓인 바깥 세상을 바라보았다. 세상…… 지금 저 세상은 나와 다른 세상일까.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소파에 앉았다. 리모컨을 쥐었지만 채널을 돌리지는 않았다. 나는 아내의 뒷모습과 티브이 속 화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래, 그녀도 지친 거겠지. 덜컥 찾아온 임신 소식에 결혼식도 없이 혼인신고를 했지만 불행하게도 그녀는 아이를 유산했다. 그 뒤로 아내와는 단 한 번의 데이트도, 잠자리도 가지지 않았다. 늘 덤덤한 표정으로 일을 다녀오고,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했다. 그녀는 참고 참다가 결국 지쳐버린 거겠지……

  마침내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움직임을 일찌감치 알아차렸지만 일부로 티를 내지 않으려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녀는 서재방에 들어가 문을 굳게 닫았다. 그 문이 잠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눈이 다 그칠 때까지 저 문을 열리지 않을 것이다. 먹었던 아침이 다 소화가 될 법도 한데 여전히 뱃속이 들끓는 듯했다. 오히려 더 갑갑해졌다. 이대로 점심을 먹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아침 내내 그녀가 보았을 새하얀 도시를 바라보기로 했다. 뒤에선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나 새하얀 풍경을 보자니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고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휴대전화 의존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