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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Jan 13. 2023

휴대전화 의존증



  딱 내 잠을 방해하기 좋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어중간 한 불빛이었다. 나는 빛을 피하려 억지로 등을 돌렸다. 그러나 검지와 스마트폰 액정이 부딪히며 나는 소리는 여전히 내 귓가를 맴돌았다. 이번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써보았다. 숨이 턱 막혔지만 불빛과 소리를 차단하기엔 충분했다. 이제는 그가 스마트폰으로 뭘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분명 그만하라고 잔소리를 하면 또 인상을 찌푸릴 게 분명했다. 나도 모르게 끙, 소리가 나왔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액정을 두드리는 움직임이 이불을 타고 전해졌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쉽게 오지 않을 잠을 청했다.


  나를 깨우는 건 시끄러운 알람소리였다. 쿡쿡 쑤시는 눈을 힘겹게 뜨면 남편은 나보다 먼저 눈을 뜨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베개에 머리를 기대 스마트폰을 두드리고 있었다. 밤을 꼬박 새운 건지, 일찍부터 일어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스마트폰을 눈에서 떼지 않게 되었을 때부터 천천히 다크서클이 내려오는 눈가는 그의 숙면 시간을 도무지 어림잡을 수 없도록 했다. 나는 눈을 비비며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 문을 열자 코를 찌리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우유는 유통기한이 보름이나 지나 있었고, 엊그제 먹다 남은 통닭이 밀폐용기 안에 담겨 있었다. 나는 남은 통닭의 살을 발라 찢고 전자레인지 안에 넣었다. 그리고 양상추와 방울토마토 등을 얇게 썰어 그 위로 찢은 닭살을 올려두었다. 남편은 여전히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자택근무로 돌린 건 한 달 전이었다. 그때부터 내 아침은 그의 점심 상을 차리는 데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다.

  “채소 상하기 전에 먹어야 해서 샐러드 만들었어. 점심에 밥이랑 먹어.”

  남편은 짧은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한 손에는 양갱을 쥐고 겉옷을 챙겨 입어 집을 나왔다.


  “요즘은 사이버 모임이라고 관심사나 같거나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끼리 얘기도 나누고 그런가 봐요.”

  “저도 최근에 이사하면서 엄마들 모임에 가입했는데 좋은 정보도 얻고, 공감되는 얘기도 나누고 좋더라고요. 민서 씨는 그런 거 안 해요?”

  비빔밥을 입에 넣으려다 그녀의 질문에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글쎄요. 제가 스마트폰을 잘 안 하다 보니까……”

  재빨리 비빔밥을 입 안으로 구겨 넣었다. 덕분에 내게 다시 돌아오는 질문은 없는 듯했다. 그런데 문득 사이버 모임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쳤다. 나는 그 단어를 연신 곱씹어 읊었다. 그러다 다시 호기심이 생겼다. 남편은 매일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집으로 돌아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 가득 쌓인 설거지 거리였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남편은 소파에 앉아 여전히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겉옷을 의자에 걸쳐두고 고무장갑을 꼈다. 뽀드득 거리는 접시 소리를 들으면 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꽉 깨문 입술을 열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연신 소파로 돌렸다. 남편의 표정은 입을 꾹 다물고 무언가 집중하는 듯싶었다. 생각해 보니 저렇게 스마트폰을 하는데 웃음 한 번을 안 지었다. 그의 화면을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그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는 순간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쉽게 호기심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설거지를 마치자마자 욕실로 들어가 따듯한 물을 받았다.

  “여보, 물 받아놨는데 목욕이라도 해. 반신욕 좋아했잖아.”

  반신욕이란 말에 그가 고개를 들었다. 한 달 만에 마주친 남편의 눈이었다. 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곧장 욕실로 향했다. 욕실 문을 여는 그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었다. 실패인가.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때, 배터리가 없다는 알림이 울렸다. 그는 어, 하고 짧은 탄식을 내뱉더니 소파 위에 널브러진 충전기를 꽂고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신이 주신 기회다.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소파로 향해 남편의 스마트폰을 켜보았다. 다행히 비밀번호는 바뀌지 않았다. 나는 남편이 접속한 최근 목록으로 들어가 보았다. ‘사이버 모임’ 회사 점심시간에 사람들이 한 말과 똑같았다. 그 안에는 여러 분야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었다. 나는 남편의 활동 분야를 보기 위해 내 정보를 들어갔다. 그런데 남편의 활동명이 ‘건호 아빠’로 되어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건호……일 년 전, 유산이 되지 않았다면 우리의 아들이 되었을 아이의 이름이었다. 그의 활동 모임 이름을 보니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모임이었다. 남편은 그곳에서 남들을 위로해 주는 동시에 남들에게 위로받고 있었다. 건호가 유산되었을 때, 그는 눈물을 터뜨리는 내 옆에서 아무런 말도 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나는 한 달이 넘도록 밥도 잘 먹지 않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남편의 아픔은 뒷전이었던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스마트폰을 소파 위에 얹어놓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보여줘야 할지 어림도 잡히지 않았다. 미안해, 건호 아빠. 나는 욕실 문을 닫은 그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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