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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Jan 12. 2023

어쩔 수 없어서



  “유림아, 너도 올 수 있으면 와.”

  얼마 전 결혼을 한 지선이 살짝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이게 아마 동창회의 목적이지 않을까 싶었다. 보험을 들 생각이 없는지 묻거나 청첩장 혹은 돌잔치에 와달라고 하는 것. 이번에 내 손에 쥐어진 건 돌잔치 초대장이었다. 혜리가 슬쩍 내 손을 붙잡았지만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선은 남편과 애가 기다리고 있다며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돌잔치 초대장을 가방에 넣고 지퍼를 끝까지 닫았다. 절대 꺼낼 일 없을 거라고 다짐하며. 앞에 보이는 술잔을 들이켰다. 쌉쌀한 알코올이 혀끝에서 느껴지더니 식도부터 위까지 뜨거운 알코올의 기운이 타고 내렸다. 혜리는 나를 보고 안절부절 못 하는 듯 보였다. 나도 그녀의 떨림이 느껴져 혜리의 무릎에 손을 살포시 얹었다.

  “괜찮아.”

  혜리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내 앞에 놓인 빈 술잔을 가득 채우더니 본인의 잔과 맞닥뜨렸다.

  “어후 술이나 마시자. 저거 알면서도 아주 미친년 아니야?”

  “혜리야. 나 정말 괜찮아.”

  술이 들어가고서야 혜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다물었다. 취기가 살짝 올라왔다. 볼이 뜨거워지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야, 좀 끊어. 이러면 네 남편도 힘들어.”

  라이터를 켜고 불을 붙이려는 찰나 혜리가 나를 뒤따라 나왔다.

  “알겠어. 노력해 볼게. 일단 오늘은 이것까지만.”

  나는 그녀 반대로 고개를 돌리고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사실 오랫동안 담배를 끊었었다. 남편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생각하게 되며 자연스레 담배를 멀리하게   같다. 다시 담배를 피우게     전부터였다. 남편과 함께 금연 선언을 했지만 그가 다시 담배를 입에 물면서  선언은 깨져버렸다. 생각해 보면 남편을 만나게  계기도 담배였는데, 어쩌면  돌잔치 초대장을 받고 가슴이 울컥이는 것도 담배 때문이지 않았을까.


  “여보 나 왔어.”

  남편은 방금 잠에서 깬 듯한 눈으로 현관으로 나왔다. 그는 내 겉옷을 받아주다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어후, 얼마나 마신 거야. 술냄새 엄청 나.”

  나는 멋쩍게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분명 아직까지 다정한 남편인데, 왜 오늘만큼은 그가 이렇게 미울까. 나는 가방을 소파 위에 던져뒀다.

  “씻을게 먼저 자.”

  단호한 말 끝에 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샤워를 하러 들어가는데 평소보다 깨끗하게 청소된 주방이 눈에 들어왔다. 칭찬이 받고 싶었던 걸까.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 문을 굳게 잠갔다.


  샤워를 하고 나왔을 , 남편은 몸을 웅크리고 잠에 들어 있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충전해두려 가방을 열었다. 휴대전화를 꺼내는데  봉투가 스르륵 딸려 나왔다. 돌잔치 초대장이었다. 분명 열어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나도 모르게 봉투 안에 담긴 초대장을 꺼내보았다. 터질 듯한 볼을 가지곤 활짝 웃는 아이, 그를 보고 아이와  닮은 미소를 짓는 부부. 누가 보더라도  부부의 아이라는  단번에 알아차릴  있을  같았다. 코를 한 번 훌쩍였다. 그런데 왜 가슴이 미어질까. 왜 뺨을 타고 눈물으 흐를까. 괜찮을 줄 알았다. 두 번의 유산도, 참다 못 한 남편의 정관수술도. 그런데 왜…… 고작 이 종이쪼가리에 흐느끼는 걸까. 발걸음이 향한 건 다름아닌 남편이 자고있는 안방이었다. 어깨를 잔뜩 움츠린 그의 몸은 마치 축구공을 연상케 했다. 둥글게 굽은 저 등을 세게 한 대 내려치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입술을 꽉 깨무는 걸로 화를 가라앉혔다. 남편을 바라보기엔 간신히 억누른 화가 다시 치솟을 것 같아 다시 소파 위로 몸을 던졌다. 옆에는 돌잔치 초대장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제서 나는 초대장 아래 조그맣게 적힌 지선의 계좌번호를 보았다. 미친년……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당장 초대장을 찢으려 윗장을 움켜쥐었지만 차마 아이의 얼굴을 두동강내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초대장을 다시 봉투에 넣고 가방에 집어 넣었다. 초대장이 눈에서 사라지자 나는 그제서 몸을 눕힐 수 있었다.


  “고기라도 좀 먹고 그래야지, 냉장고에 뭔 채소밖에 없다냐?”

  시어머니는 우리 집에 오면 가장 먼저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다. 그러곤 늘 빠짐없이 냉장고 안에 대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죄송해요. 어제 동창회가 있었어서 장을 못 봤어요.”

  “어휴, 네가 골고루 잘 안 먹고 힘이 없으니까 애도 힘을 못 부친 거다.”

  역시 이번에도 빠지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늘 잔소리 뒤에 유산된 아이를 덧붙였다.

  “엄마, 그만해. 유림이도 원해서 그런 게 아니잖아.”

  “너도 마찬가지야. 사내자식이 좀 배도 나오고 그래야지. 삐쩍 말라가지고. 그러니 애가 잘 베겠어?”

  “엄마, 나는 최선을 다 했어. 이제 그만 얘기 해.”

  남편이 인상을 찌푸리며 냉장고 문을 닫았다. 시어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부엌으로 향했다. 나는 이렇게 무안한 상황으로 얼버부리려는 남편이 싫었다. 그냥…… 이 상황이 소름끼칠 정도로 싫었다.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참외를 자르는 시어머니 옆으로 갔다.

  “어머님, 앉아서 쉬고 계세요. 제가 할게요.”

  “됐다. 아들내미랑 며느리 과일도 못 잘라주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거실로 돌아갔다. 남편은 뉴스를 보며 소파에 몸을 기대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초대장이 든 가방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어제 찢어서 버렸어야 했나. 그때, 시어머니가 새하얀 참외가 담긴 접시를 올려놓았다. 껍질의 노란 부분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손질이었다. 남편은 포크로 참외 조각을 찍어 올려 입 안으로 밀어넣었다. 나도 그를 따라 참외를 아삭아삭 씹었다.

  “얘들아, 나는 손주 하나 보고 죽는다면 소원이 없다. 정 안 된다면 요즘 뉴스에 나오는 이식인지 뭔지 그것도 상관 없다. 딱 한 번만 내 소원좀 들어주면 안 되겄냐.”

  내 손등 위로 시어머니의 손길이 느껴졌다. 까슬까슬했지만 따듯한 손이었다. 가만 보니 그녀는 우리가 앉은 소파 아래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나는 볼멘소리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남편은 손에 쥔 포크를 내려놓고 티브이를 껐다.

  “엄마, 나도 유림이도 힘들어.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 안 되는 걸 어떡해. 우리도 원한다고.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대로 안 됐어. 그러니 이제 받아들이자고.”

  처음이었다. 남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연신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반대편 손을 시어머니 손등 위에 얹었지만 곧장 그녀는 포개어진 손을 뺐다.

  “미안하다. 너희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나는 이만 간다. 명절에 내려올 수 있음 내려오고.”

  시어머니는 곧장 가방을 챙겨 현관으로 향했다. 나는 앞까지 모셔다 드린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손사레를 치며 나를 밀어냈다. 고개를 남편이 있던 곳으로 돌렸지만 그는 꺼진 티브이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여보, 어머님 가신다잖아.”

  그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도어락 잠기는 소리와 함께 집 안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나는 남은 참외를 랩으로 감싸 냉장고 안에 넣었다. 남편은 여전히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도무지 어림도 잡을 수 없었다.


  설거지를 하려는데 남편이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누가 뭐라고 하던, 우리만 행복하면 된 거 아니야? 유림아, 휘둘리지 말자. 우리.”

  고개를 푹 숙였다. 나도, 남편도.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고, 남편은 입을 움찔거리기만 했다. 그러다 그의 입술이 서서히 열렸다.

  “다녀와. 돌잔치. 가서…… 우리가 더 잘 살고 행복하다는 걸 보여줘.”

  숙였던 고개가 절로 번뜩 들어 올려졌다.

  “미안해. 일부로 보려던 건 아니고, 그냥 소파 위에 있길래 우연히 보게 됐어.”

  움직일 수 없었다. 창피하고, 미안하고, 울고 싶었다.

  “그래, 알겠어. 고마워.”

  베란다 창고에 쌓아둔 아이 장난감들이 유리창 사이로 보였다. 나는 입을 앙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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