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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Jan 08. 2023

디케의 칼과 저울


 

  새하얀 입김이 피어오르다 공기 중에 홀연히 사라졌다. 콧대에 걸친 안경에는 김이 서렸다. 더군다나 입을 가린 마스크 탓에 안경에 낀 김은 쉽게 빠지지 않았다. 옷 앞섶으로 안경을 닦으려는 찰나 확성기 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모두가 바라보는 단상 위에는 키가 작은 남자 한 명이 올라가 있었다. 그의 목에는 카드형 사원증이 걸려 있었다.

  “ , 오늘은 여러분들께서 수고 좀 많이 해주셔야겠어요. 지금 전쟁 중인 이웃 국가 C국에서 물품을 대량으로 사는 바람에 하루빨리 물건을 납품해야 합니다. 그러니 연장근무할 생각으로 일에 임해주셨으면 합니다.”

  이곳저곳에서 깊은 한숨소리가 잇따라 나왔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애들에게 오늘 늦는다는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매정한 근무 시작 알람에 만지작거리던 휴대전화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로비에 모인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을 따라 내 이름이 적힌 자리로 향했다. 모두가 자리로 돌아가자 공장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계가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나는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평소보다 레일이 돌아가는 속도가 더 빠른 듯했다.

  공장에 다닌  어엿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육중한 기계 앞에 서면 식은땀이 흘렀다. 그만큼 긴장을 놓아서는  됐다. 미끄러져 내려오는 수천  개의 구슬을  손에 쥐어지는 통에 담는 . 그것이  일과였다. 내가 옆으로 건네는  통은 화약과 여러 공정을 거쳐 수류탄이라는 무시무시한 살상무기가 된다. 그렇기에 눈이 떨리더라도 손만큼은   없었다. 앞에서 나와 같은 작업을 하는 동기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는 입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지만 일을  때는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한호야, 오늘은 평소보다 많네.”

  “그러게 말이다. 오늘 안에는 끝나는지……”

  그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푹 숙인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배로 늘어난 작업량에 점심시간도 30분이나 줄었다. 공장장은 두 명씩 교대로 번갈아가며 식사를 하고 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삼십 분을 꼭 지키라는 그의 말에는 힘이 한껏 들어가 있었다. 한층 더 빨라진 기계의 속도는 눈앞을 아른거리게 만들었다. 당장이라도 담배를 한 개비 피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공장장의 모습에 팔을 멈추지 않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대로 있으면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묵직한 손이 내 등을 툭툭 건드렸다. 식사 교대였다. 그제서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동기와 함께 흡연 구역으로 향했다.


  식사 전에 담배를 피우진 않았지만 그러지 않고서야 밥이 멀쩡히 들어갈 것 같지는 않았다. 동기도 담배연기를 힘없이 내뿜었다.

  “아무래도 C국에서 아예 전쟁을 끝낼 모양인가 봐.”

  동기가 하늘을 향해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 나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무기를 대량 생산할 리가 없지.

  “그런데 그거 아나. 원래 우리 아버지 고향이 B국이었어. 매일 밤 아버지는 뉴스를 보고 한숨을 푹 푹, 쉬셔. 아마 아들이 경쟁국인 C국의 무기를 납품한다는 걸 알면 기절하실 지도 몰라.”

  “그럴 수 있겠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어쩌면 내가 만든 저 수류탄이 아버지의 가족이, 아버지의 친척이 죽일 수 있다고……”

  “아닐세. 그래도 군 관계 시설 외 민간시설은 공격할 수 없다는 건 자네도 알지 않나. 그랬다간 전쟁법 위반이라고.”

  “자네 뉴스도 안 봤나. B국 민간인이 C국 군인들에 의해 학살되었다는 거. 그중 몇 명은 수류탄에 의해 몸이 찢겨 나갔다는데 그게 내가 만든 수류탄이었을까,라고 드는 생각이 쉽게 떠나질 않는단 말이지.”

  “담배 다 피웠으면 밥이나 먹으러 갑세.”

  나는 검지로 꽁초를 튕겨내며 동기의 등을 떠밀었다. 사실 민간인이 죽었다는 뉴스를 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는 건 오랜 전쟁에 그런 뉴스 즈음은 관심이 가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런데 내게, 남에게 무신경했던 그런 소식이 다른 누군가에겐 가슴이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소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치마를 걸친 아주머니가 식판 위에 달걀말이 두 개를 올려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동기는 자신의 달걀말이를 내 식판 위로 올려놓았다.

  “나는 입맛이 없네. 자네 이거 좋아하지 않나. 어서 먹고 일이나 하러 갑세.”

  그는 젓가락으로 밥알을 깨작거리며 입에 넣더니 먼저 간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일정하게 말린 네 개의 달걀말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차마 젓가락이 향하질 않았다. 뭔가 나도 입맛이 없어진 것 같았다.


  기계의 움직임이 멈췄을 땐, 창밖은 온통 검게 물들어 있었다. 퇴근 시간이 몇 시간이나 지난 시간이었다. 나는 그제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일이 늦어졌다고 말했다. 집에 들어오니 아내와 애들의 방은 불이 꺼져있었다. 나는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통닭을 식탁 위에 얹어놓았다. 티브이를 켜놓기엔 아내와 애들이 깰까 휴대전화와 이어폰을 꺼냈다. 캔맥주를 따자 탄산 빠져나가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났다. 나는 어깨를 움츠리고 아내와 애들의 방을 살펴보았다. 나오는 사람이 없자 서둘러 맥주를 들이켜기 시작했다. 탄산이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전쟁 상황을 보려 인터넷 뉴스를 보려고 하는데 작게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안전체인을 걸어 살짝 문을 열었다. 좁은 문틈 사이로 동기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인상을 찌푸렸다.

  “웬일이야. 이 시간에.”

  “잠깐 나가서 담배나 한 대 피웁세.”


  분명 집에 돌아올 때까지는 침침하던 하늘이 새하얀 눈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동기는 담배를 입에 물더니 한참 동안 말없이 연기를 들이켜고 내뿜기만 했다. 이 밤에 어쩐 일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의 퀭한 눈은 내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하나를 다 피우자 잽싸게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고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

  “자네, 디케라는 여신을 아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른손에는 칼을, 왼 손에는 저울을 든 여신일세. 다들 그녀를 정의의 여신이라고도 부르지.”

  그의 말에 대법원에 그려진 그림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집에 들어가니까 티브이를 켜놓고 쓸쓸하게 누워계시더라고. 마지막까지 눈은 티브이를 보고 있었는데 어찌 그 눈이 너무 억울해 보였어.”

  그가 한 번 말을 끊더니 담배를 다시 빨아들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눈에는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더라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말이야. 미친놈이지 나도. 얼마나 미쳤는지 병원에 전화 한 통 안 하고 바로 여기로 오지 않았는가.”

  “아니, 그럼 당장 전화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럴 시간이 없세.”

  “시간이 없다…… 매일 뉴스를 보며 가슴 졸여온 아버지의 시간에 비하면 아마 이건 아주 찰나의 시간일세. 내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저울질을 해보았네. 내가 여기서 이렇게 가족을 죽이는 무기를 만드는 시간과……”

  그는 말을 잇지 않고 연신 담배를 빨아들였다. 그러더니 겉옷 안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수류탄 두 개를 꺼내 보였다.

  “요즈음 칼로 싸우진 않지만 내게는 이게 칼이나 마찬가지일세. 디케가 오른손에 쥔 칼처럼. 아무래도 내겐 이게 정의의자 최후의 저항이지 않을까 싶네. 작별인사다. 혹시라도 내가 멀쩡히 살아 돌아온다면 지금처럼 담배나 한 대 피웁세.”

  그는 검지로 꽁초를 떨어트리더니 등을 돌렸다. 나는 그의 실루엣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그의 등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개수가 두 개 모자랍니다. 일렬번호마저 조회가 되지 않습니다.”

  다음날, 그는 공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라진 수류탄 두 개 때문에 그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했다.

  “아직 찍어내야 할 물건이 산더미입니다. 고작 두 개 가지고 소란 피우시지 마시고 서둘러 납품할 물건이나 만드세요.”

  인상을 잔뜩 찌푸린 공장장이 단호하게 말했지만 그도 사라진 두 개의 수류탄이 신경 쓰였는지 연거푸 손톱을 물어뜯었다. 나는 텅 빈 동기의 자리를 보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뉴스를 틀면 그의 소식을 접할 수 있을까.

  해가 저물고서야 나는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정장을 차려입은 아나운서는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빠르게 소식을 읊었다. 이어서 참고 영상이 흘러나왔다. 한창 교전 중이던 진지에 갑작스레 나타난 민간인, 그는 손에 쥔 수류탄을 C국 군인들을 향해 던지려 안전핀을 뽑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수류탄은 그 자리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머리 위에서 터진 탓에 사상자의 신원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는 결국 복수를 하진 못했지만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두 국가는 전쟁터에 외지인이 들어왔다는 사실에 경계가 느슨하다는 걸 깨닫고 잠시 휴전을 선언했다. 타국 민간인의 출입이 다시 벌어지지 않게 경계를 강화한다는 이유였지만 뉴스를 바라보는 모두가 휴전이 아닌 이제 그만 종전을 바랐다. 덕분에 공장 직원들에겐 잠시 휴가가 주어졌다. 더해서 사라진 수류탄이 우리 공장 제품이라는 걸 알게 된 정부는 공장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물론 직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 또한 공허하게 텅 빈 방 안에 책상만 덩그러니 놓인 조사실에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다만, 나는 동기의 행방과 관계에 대해 묻는 모든 질문에 모른다고만 대답했다. 건물 밖을 나오자 그날처럼 눈이 내리고 있었다. 겉옷에는 눈송이가 맺히기 시작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는데 한 할머니가 쪼그려 앉아 뻥튀기를 팔고 있었다. 눈은 무심하게도 뻥튀기에는 물론 할머니 머리 위에도 잔뜩 쌓여 올랐다. 나는 절로 그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 있는 뻥튀기 전부 주세요. 그리고 집에 가세요. 추워요.”

  할머니는 내게 감사합니다, 하고 연신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저울 위에 뻥튀기를 놓고 무게를 쟀다. 아직도 전자저울이 아닌 양팔저울을 쓰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괜히 헛웃음이 났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나는 뻥튀기를 건네받고는 초록빛으로 변한 횡단보도를 뛰어 건넜다. 그런데 그녀의 양팔저울이 머릿속을 연신 맴돌았다. 동기는 어떤 걸 수류탄을 만드는 일과 비교했기에 그런 선택을 했을까. 골목에 들어가자 동기와 담배를 피운 가로등이 보였다. 나는 그곳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담배 하나가 전부 태워질 때까지 그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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