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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Apr 14. 2024

나를 만나는 시간

  이렇게 좋은 봄날 집 콕하며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필자는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다. 필자가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느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복잡할 것 없다. 예를 들어 그릇의 모양과 크기에 따라 담기는 물의 양과 깊이가 다르듯 책에 맞게 그릇을 꺼내면 되는 것이다.

  필자가 읽는 책을 세분화해 보면 대충 이렇다. 책상에서 읽는 책은 깊이가 아주 깊은 책을 읽는다. 예를 들면 뇌 과학과 철학, 물리학과 자연과학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이런 책을 읽고, 소파에선 심리학책을 읽고, 거실을 서성일 때는 시집을 읽으며, 화장실에서는 소설책을 읽고, 머리가 복잡할 때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같은 책과 사회의 이슈가 되는 고독사에 대한 ‘죽은 자의 집 청소’ 같은 단편적인 책을 읽는다.

  최재천 <인간과 동물>이란 책을 하루 만에 다 읽었다. 한마디로 미친 거다. 이 두꺼운 책을 밥도 제대로 안 먹고 읽었으니. 이 책은 모든 학문의 기초이며 통합이 아닌가 생각한다. 동물행동학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왜 사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숙고해봐야 하는 책이다. 인간과 동물은 숙명과도 같은 존재다. 우리 모두 거대하고 거칠고, 냉혹하고 잔인한 자연에 기대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동안 동물들의 몸짓 언어가 궁금해 동물행동학이라는 책을 많이 읽었는데 시원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어느 정도 그 해답을 찾은 것 같다. 예를 들어 늑대는 서로 으르렁 대지만 상대를 죽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집에서 기르는 개를 관찰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개가 먹이를 탐내면 으르렁 거리며 상대의 목을 살짝 물고 놓는다. 또한 지위가 높을수록 꼬리를 세운다고 한다. 인간도 지위가 높을수록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다니지 않은가.

  곤충 중에 개미도 인간처럼 사회적 동물이므로 잔인하고 포악하다고 한다. 인간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잔인성을 가지고 있고, 개미가 전쟁을 하는 것은 노예를 얻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처럼 개미는 노예도 부리고 농업과 낙농업을 하며, 강도도 있고, 사기꾼도 있다는 것. 그리고 개미는 냄새로 길을 찾고 대화도 냄새로 한다.

  꿀벌은 우리나라 대기업처럼 세습한다고 한다. 벌이 하루에 날아다니는 거리는 서울에서 부산까지고, 벌은 춤으로 대화를 한다고. 아침에 정찰벌이 먼저 나가서 꿀이 어디에 있는지 보고 와서 일벌들에게 춤으로 방향을 알린다고. 정찰벌이 제대로 춤을 추지 못하면 일벌들이 쳐다보지 않는다고. 인간사회처럼 왕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딸인 여왕벌이 태어나면 계속 물어 죽이다가 그중에서 살아남아 여왕벌이 탄생하면 집을 물려주고 엄마 여왕벌은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한다.

  갈매기는 12시간씩 먹이를 찾아 집을 나갔다고 돌아온다고. 그런데 갈매기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는 이유가 밖이 위험하니까 나가지 않으려고 해서 싸운다고. 가끔씩 등산을 하다 보면 다람쥐 부부가 싸우거나 새들 부부가 싸우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이런 이유였다니 웃음이 난다. 우리가 사는 가정도 가장이 가장 노릇을 못하고 집에서 놀고먹으면 나가서 막노동이라도 하라고 밖으로 내몰며 부부싸움을 하는 것과 같으니 웃기지 않은가.

  그리고 새들은 색을 구분하지만 곤충은 색을 못 본다고 한다. 또한 동물들의 세계에 일부일처제가 있기는 하지만 새끼들을 조사해 보면 아빠가 다 다르다고 한다. 암컷이 바람을 피운다고. 동물들이 바람을 피우는 것은 인간들처럼 쾌락을 즐기기 위함이 아니고, 우월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한다.

  식물의 꽃은 속된 말로 표현하면 자신의 성기를 세상에 펼쳐놓는 것이라고. 즉, 식물은 바로 꽃이 성기라는 것이다. 좀 웃기고 민망한 말이지만 봄만 되면 우린 식물의 성기를 보고 예쁘다 아름답다 감탄사를 날리며 환장을 했으니 꽃들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부끄러웠겠는가. 남의 성기를 허락도 없이 들여다봤으니 꽃들에게 좀 미안해해야 하는 건 아닌지. 꽃을 만졌을 때 파르르 떠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도 같고. 올봄부터는 꽃을 함부로 만지지 말아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꽃을 쳐다볼 때도 꽃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뭐 그런 생각. 물론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서도 동참하리라 믿고.

  어쨌든 식물은 움직이지 못함으로 화려한 꽃과 달콤한 꿀로 곤충들을 유혹해서 자신들의 유전자를 남기는 것이다. 개중에는 식물도 인간들처럼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며 특정한 곤충에게만 꿀을 제공한다는 것. 꽃들의 사랑에도 일편단심이 있다니 꽃들이 부럽기도 하고. 이만큼 살았는데도 아직도 진정한 사랑을 잘 모르겠고.

  하여간 동물들도 인간들처럼 전쟁도 하고, 배우자 몰래 바람도 피우고, 울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자식들 교육도 시키고 서로 어우러져 살아간다. 그리고 자연은 너그럽지 못함으로 우리들이 오래 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번식을 끝내고 빨리 죽는 것이 자연이 바라는 것이라고. 인간의 수명 또한 평균수명이 길어진 것이지 절대수명이 길이진 것이 아니라고. 생물체는 번식을 위해 알을 낳는데 닭이 달걀을 매일 낳는 것은 인간이 닭을 인위적으로 선택하여 괴물로 만들었다는 것. 우리가 매일 먹는 달걀이 이렇게 만들어졌다니 소름이 돋는다.     

  그리고 모든 암컷이 똑같은 수만큼 자식을 낳으면 변화가 없다고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똑같이 자식을 낳으면 유전자 변화가 생긴다는 것. 환원주의적 개념으로 설명이 잘 되어 있고, 동물들의 행동에서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으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것. 가벼운 질문에서 심오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이 책을 다 읽었을 때는 안개가 자욱한 길에서 길을 찾는 느낌이고, 눈을 감고도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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