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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Apr 28. 2024

구렁이와 동거

  조각가인 오빠는 다니던 직장을 명퇴하고, 퇴직금으로 김제 금산사 근처에 이 천 평이 넘는 밭을 구입해 비닐하우스를 짓고 거기서 닭도 기르고, 농사도 짓고, 채소도 가꾸며 분재와 공예, 조각을 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자 농장에 불청객이 나타났다. 다름 아닌 큰 구렁이다. 녀석들은 언제부터 그곳에 살았는지 정확히 모른다. 어느 날 오빠가 농장에서 김을 매고 있는데 엉덩이 뒤로 싸한 것이 느껴지며 갑자기 시원해서 뒤돌아보니 2미터가 넘는 커다란 구렁이 부부가 스르륵 지나가고 있더란다. 어찌나 놀랐던지 하던 일을 멈추고 친구인 동네 이장을 불러 구렁이를 잡아 자루에 넣어 두었다. 살생을 싫어하는 오빠는 구렁이를 죽일 수도 없고, 팔  수도 없어 밤새 고민에 빠졌다고 했다. 다음날 날이 밝자 구렁이를 배낭에 지고 가서 모악산 깊은 산속에 구렁이를 풀어주고 왔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서 그 녀석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또 녀석들이 나타나 오빠는 기겁을 했고, 어찌어찌하다가 다시 잡아 산속에 놓아주며 제발 농장에는 다시는 오지 말고 여기서 살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돌아왔다고.

  그런데 몇 개월 후에 또 그 녀석들이 농장에 있어 기가 막혀서 기절초풍했다. 뱀은 자신의 영역이 있기는 하지만, 귀소 본능까지 있는지는 몰랐고, 개도 아니고 뱀이 회귀할 줄은 몰랐다. 농장 귀퉁이에 작은 연못이 있는데 거기서 천연덕스럽게 개구리를 잡아먹고 있더란다. 두 번씩이나 구렁이를 잡아 산속에 놓아주었는데 자신이 살던 곳으로 귀신같이 돌아오니 결국 오빠는 구렁이를 내쫓지 못하고 녀석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처음엔 닭과 병아리를 잡아먹을까 봐 노심초사했다고. 농장에 피해를 주거나 닭과 병아리를 잡아먹으면 너희들을 잡아서 팔아버리겠다고 구렁이가 듣거나 말거나 말을 했다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쥐와 개구리 실뱀들은 잡아먹으면서 농장에서 키우는 닭과 병아리는 잡아먹지 않았다고 한다. 구렁이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다고.

  구렁이는 원래 우리나라 토테미즘에 나오는 토지신이다. 옛날에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을 기억해 보면 집터에 있는 구렁이는 내쫓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집터를 지키는 지신이라고 신성시했다. 또한 우리네 조상들은 예로부터 칠성전에 물 떠놓고 빌었다. 그런 자손들이 함부로 살생을 하면 안 된다. 구렁이는 영물로 전해진다. 오빠도 그래서 구렁이를 내쫓지 못하고 불편한 동거를 하는지도 모르겠 있다.

  어느 비가 온 다음날 보니까 구렁이 부부가 비닐하우스 위에 올라가 일광욕을 하고 있어 사람들 눈에 띄면 위험하다고 당자 내려오라고 하니, 오빠 말을 알아들었는지 스르륵 내려와 자취를 감추었다고. 오빠 이외엔 구렁이를 본 사람은 없다고, 필자도 오빠네 농장을 자주 갔지만 한 번도 못 봤다. 오빠가 찍어놓은 사진만 봤다.

  이제는 일하다가 녀석들이 지나가도 아무렇지 않다고. 땅값은 오빠가 지불했지만 본래 녀석들의 영역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몇 번을 갔다 버려도 그 먼 길을 돌아  제집을 찾아오는 구렁이를 어찌할 수 없어 그냥 둬야 될 것 같다고. 오빠는 어쩌다 구렁이와 동거를 할 줄은 몰랐다고 한숨을 푹푹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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