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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May 12. 2024

그 노래

  생살을 에이는 듯한 엄동설한에 어둠이 산자락의 마지막 남은 빛을 쓸어갔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 어둠은 시커먼 입을 벌리고 순식간에 모든 사물을 삼켜버렸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엎드려 있는 시간에 아내를 잃은 한 남자가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구슬프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노랫소리는 너무도 애절하고 사무쳐 듣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고, 북풍한설도 가던 길을 잠시 멈춰 섰다.

  “산에산에 꽃이 피네. 들에들에 꽃이 피네. 봄이 오면 새가 울면 님이 잠든 무덤가에 너는 다시 피련마는 님은 어이 못 오시는고. 산유화야산유화야 너를 잡고 내가 운다. 으 흑흑,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이오.”

  그는 그렇게 남인수의 ‘산유화’를 목이 터져라 부르고 또 부르며 밤새도록 울었다. 멀리 개 짖는 소리만 컹컹 들릴 뿐 밤은 더욱 깊어 갔다. 그의 흐느끼는 소리는 어둠 속으로 멀리멀리 퍼져갔다. 동네 사람들은 그러려니 했다.

  “하이고, 저양반 또 시작이구먼. 또 시작이여. 워째야 쓴당가? 쯧쯧.”

  “그라껭 맨날 저라고 먹지도 못한 술을 마시고 밤이나 나즈나 노래를 불러 싼 게 아그덜 불쌍혀서 어쩐당가? 아그들 밥이나 지대루 혀 줄 랑가 모르겄소?”

  “일본 유학까증 댕겨온 학식 있는 젊은 양반이 안 되긴 안 되었어라? 쪼꼬만 자슥들만 다섯이나 남겨두고 마누라가 저세상으로 가부렀응께 지정신이 겄소? 쯧쯧.”

  동네 사람들은 그렇게 그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한 마디씩 하고 잠들었다. 밤새 자장가처럼 들리던 노랫소리가 조용한 시간은 새벽녘이다. 그 시간은 그가 지쳐서 잠이든 것인지 기절을 한 것인지 조용했다. 오직 닭만이 홰를 치고 있었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는데도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모두 겁을 먹고 혹시나 밤에 그가 죽었을까 봐 울상을 하고 지키고 있다.  아궁이에 불을 지핀지도 오래되어 방은 냉골이고, 끼니도 거른 지 오래되었다.

  오후가 되자 그는 겨우 일어나 또다시 술을 사러 나갔다. 하루아침에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씻는 것은 고사하고, 셔츠는 찢어져 맨살이 훤하게 보이고, 때가 묻어 꼬질꼬질했다. 면도는 언제 했는지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 얼굴을 덮고 있었다. 겨울인데도 옷을 제대로 갖추어 입지 않아 온몸이 얼어 동상에 걸린 것처럼 벌겋다.

  빛이 휴식을 위해 조금씩 자리를 옮겨갈 때 그는 아이들과 함께 눈이 하얗게 쌓인 산길을 걸어 어느 무덤가에 섰다. 얼마 전 병으로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젊고 아름다운 아내를 잊지 못하고 날마다 술에 취해 아내의 무덤을 찾는다. 그리운 아내가 잠들어 있는 무덤 앞에 앉아 손으로 눈을 쓸어내리며 또 그 노래를 부른다.

  “산에산에 꽃이 지네. 들에들에 꽃이 지네. 꽃은 지면 피련마는 내 마음은 언제 피나 가는 봄이 무심하랴 지는 꽃이 무심하더냐 .산유화야산유화야 너를 잡고 내가 운다. 나보고 어쩌라고 이 어린것들을 어쩌라고……으 흑흑.”

  그는 그렇게 온몸에 물이 다 말라버릴 때까지 아이들을 끌어안고 울고 또 울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이 너무 커서 자식들 챙길 여력도 없이 정신 줄을 놓고 말았다. 사람이 생을 다하면 ‘지수화풍’으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질긴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죽음 보다 더 지독한 삶을 살다 갔다.

  슬픔이 너무 지나쳐도, 분노가 너무 과해도, 기쁨이 너무 넘쳐도, 사람들은 정신 줄을 놓는 다고 한다. 아마도 방심하여 심신 미약에서 오는 현상이 아닌 가 싶다. 꽃이 피고 지고를 몇 해를 반복해도 오직 그의 시간만 멈추어 있었다. 평생을 그렇게 아내를 그리워하며 애창가인 그 노래를 부르며 과거 속에 살다 갔다.    

 

   “아버지, 이제는 그곳에서 어머니만나서 행복하신가요?”



사진 장기택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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