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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Jun 02. 2024

고아라는 주홍 글씨


  그곳에 이제 겨우 4살인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형의 손을 잡고 장날에 시장 구경을 하고 있다. 점심으로 보름달만 한 찐빵을 사 먹고, 만두도 사 먹었다. 배가 부른 아이는 형과 함께 서커스 구경을 하고 있었다.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에 다녀온 아이는 형이 자리에 없다는 것을 알고 찾아 헤맨다.

  꼬마는 엉엉 울며 이곳저곳을 형을 찾아 헤매다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터미널로 가서 무작정 버스를 타려고 발버둥을 쳤다. 발이 잘 닿지도 않은 어린아이가 버스에 오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누군가가 뒤에서 그 아이를 번쩍 들어서 올려 주었다. 버스는 그렇게 터미널을 벗어나 빠르게 질주해 갔다. 분명 그것은 꿈이었다. 자신이 집을 잃어버린 날의 기억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계속 같은 꿈을 꾼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생선 냄새가 진동하는 어느 시장이었다. 배가 고파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닐 때 어른들이 와서 그를 데려갔다. 그곳은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모여 사는 고아원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고 초중고를 다녔다. 그곳이 부산이라는 것을 나중에 철이 들고 알았다.

  고아원에서 생활은 비참했다. 명절이 되어도 갈 곳도 없고, 형들은 기분이 좋아도, 나빠도 엄마 수녀님의 눈을 피해 밤이면 소리가 나지 않게 이불을 뒤집어 씌워놓고 그를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아다.

  조금씩 머리가 크고 생각이 깊어질수록 정체성이 흔들렸다. 뿌리가 약한 나무가 바람에 끊임없이 흔들리듯, 그는 사춘기를 누구보다 힘들게 보냈다. 학교에서 고아라는 놀림을 받을 때면 반항심이 생겨 아이들을 때렸고, 선생님과 교우들의 관심도 위선 같아 싫었다. 가랑잎보다 더 낮은 자존감 때문에 뿌리가 없으니 영혼 자체가 흔들렸다. 그럴 때면 그는 늘 부모님을 원망했다. 왜 자신을 찾지 않는 것인지 원망스럽고 미웠다.

  분노로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어느 날 그는 부모님과 세상에 대한 분노가 쌓여 고아원을 탈출해 거리를 떠돌며 배회했다. 세상은 온통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사는 아이들이 많은데, 왜 자신에게는 그 따뜻한 가정이 없는 것인지 신을 원망하며 세상에 대한 원망과 저주를 퍼부어댔다. 밤거리의 뒷골목을 떠돌아다니며 삶의 맨 밑바닥을 경험했다. 거리의 생활이 길어질수록 고독과 외로움도 깊어만 갔다. 어린 그에게서 삶의 희망은 점점 멀어져갔다.

  그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도 싫었다. 개 같은 운명의 굴레를 스스로 벗어버리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자기 자신의 삶을 끝내는 것이었다. 그는 빈속에 소주와 함께 한주먹의 수면제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그는 ‘더러운 세상이여 안녕’을 외쳤다.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하늘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이제는 더 이상 시궁창 같은 세상과 싸우지 않아도 되고, 고아라는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행복했다. 그렇게 그는 죽음의 문턱을 조금씩 위태롭게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죽음도 쉽지가 않았다. 장자가 끊어지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게거품을 물고 데굴데굴 구르다 길에 쓰러져 있는 그를 지나가는 행인이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다.

  신은 어린 그를 순순히 데려가지 않았다. 죽음을 맛본 그 지옥을 잊지 말고 다시 살아주기를 바란 것일까. 그는 자신이 더러운 인생을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참기 힘들어 미쳐 날뛰었다. 엄마 수녀님이 달려오고, 그는 그렇게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고 우울증 약까지 먹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엄마 수녀님의 설득으로 그는 고아원으로 다시 돌아가 학업을 마쳤다. 그리고 그는 다시 세상 속으로 던져졌다. 고아원은 고등학교를 마치면 그곳을 나와야 했다. 엄마 수녀님의 당부의 말도 대충 듣는 둥 마는 둥 가방을 챙겨 고아원을 나오던 날 하얗게 눈이 내렸다. 아무 데도 갈 곳이 없고, 그 누구도 반겨주지 않는 천애고아인 자신이 서럽고 불쌍해 오랫동안 거리를 헤맸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다짐했다. 가족을 찾아 이 서러움의 대가를 꼭 보상받고 말겠다고.

  그렇게 서울로 상경해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열심히 일했다. 돈을 모아 자신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던 날 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그녀가 화장지를 사들고 찾아왔다. 그는 결국 마음이 따뜻한 그녀와 결혼해 예쁜 가정을 꾸렸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지만, 가슴속은 늘 허전하고 쓸쓸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컸다. 특히 명절날 처가에 가게 되면 더욱 그랬다. 그는 가족을 찾기 위해 별짓을 다했다. 여러 방송국에 자신의 사연을 적어 보내기도 했다. 가끔은 이상한 전화가 왔지만, 가족에 대한 소식은 없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것은 오직 해남의 어느 장터 어디라는 것, 그것이 흐릿한 기억의 전부였다.

  어느 날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친구가 찾아와 한 잔 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건설현장을 떠돌며 날품을 팔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밤이 새도록 술을 마시며 지나간 시간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상수야, 니는 부모님 안 찾을 끼가?”

  “음, 내는 안 찾을 끼다.”

  “와?”

  “모두 헛수고 아이가. 생각해 보그라. 내를 고아원에 갖다 버린 부모를 굳이 찾아서 뭐 하겠노? 니는 길을 잃어버렸지만도 내는 아이다카이.”

  그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자신은 길을 잃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지만, 상수와 다를 게 없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부모님이 자신을 찾지 않는 것은 자신을 분명 버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술을 마시는데 술이 취하지가 않았다. 알코올이 들어간 몸은 정신이 더욱 맑졌다. 그들은 술을 사 들고 여인숙에 들어가 밤새도록 부어라 마셔라 했다.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보낸 그에게 상수가 물었다.

  “현우야, 그란데 니는 부모님을 와 찾을라 카노?”

  상수의 질문에 그는 대답을 쉽게 하지 못했다. 왜 가족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뿌리를 찾겠다는 일념인지, 아니면 그 보다 다른 이유가 있는지를. 생각에 잠겨있는 그를 깨운 것은 상수의 다음 질문이었다.

  “현우야, 만약에 말이다. 만약에 니가 가족을 찾았는데 니 가족이 니에게 도움이 안 되고, 짐이 된다카믄 우짤끼고? 그래도 가족을 찾을 끼가? 내는 내가 가족을 찾는 것을 포기한 이유가 내 한 몸도 건사하기 힘들어서다. 만약에 가족까증 책임져야 한다믄 그것은 몬할 것 같거든. 그래서 가족 찾는 것을 포기했다 아이가.”

  그는 상수의 말에 움찔하며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내면의 깊게 뿌리박힌 고아라는 주홍글씨를 지우고 가족의 덕을 보면서 폼 나게 잘살아보겠다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상수의 말처럼 만약에 그렇게 그리던 가족을 만났는데 그 가족이 자신에게 도움은 못 되고, 짐이 된 다면 그것은 힘들 것 같았다. 자신도 살기가 어려운데 가족까지 책임져야 한다면 생각해 볼 일이었다.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상수와 헤어져 아내에게 말도 안 하고 무작정 길을 떠났다. 그는 어렴풋한 기억을 잡고 그 옛날 그가 버스를 타고 떠났던 그 장터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서울에서 해남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실로 오래간만이었다. 이곳에 오기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루면 다녀갈 수 있는 거리인데 어쩌다 보니 40년이라는 세월을 흘러 보냈다. 자신은 그동안 무엇을 한 것인지 서글프고 서러워서 눈물이 왈칵 났다.

  이곳은 장날은 아니었다. 차를 세워두고 읍내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 옛날 자신이 집을 떠났던 터미널, 어린아이가 되어서 그곳에 다시 서 있었다. 차들은 쉴 새 없이 사람들을 싣고 떠남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아련한 그 기억의 끈을 잡고 밤마다 꾸는 꿈을 정확히 들여다봤다. 그것은 꿈이 아니고, 바로 자기 자신이 집을 잃어버리던 그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참 동안 멍하니 분주하게 오가는 고속버스를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발길을 돌렸다. 상수의 말처럼 자신이 가족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면 가족을 더 이상 찾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여유롭지는 않아도 착한 아내를 만나 예쁜 아들딸 낳고 이렇게 살면 됐지, 뿌리가 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는 만나게 될 것이고, 설사 살아서 만나지 못한다 해도 이제는 크게 아쉬울 것도 없을 것 같다.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며 왔던 길을 다시 차를 몰아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내린 새로운 뿌리가 자라고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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