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아 조인순 작가 Sep 01. 2024

하얀 웃음

  평온했던 가정이 하루아침에 깨지고, 외줄을 타듯 버겁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면 신께 간절하게 너무도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제발 아침에 눈뜨지 않게 해달라고, 제발 이대로 죽게 해달라고…….”

  그녀의 소원은 오직 그 하나뿐이었다. 현실이 너무나 고달프고 힘들어 자살할 용기도 없어 아침에 눈뜨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신은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기에는 두 아들이 너무나 어렸기 때문이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고, 그녀도 체념하며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 그런 그녀를 가끔씩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다였다. 오늘도 그녀를 만나 격조했던 시간들을 풀어놓았다. 고만고만하던 어린 아들들은 벌써 커서 큰아들은 대학생, 작은 아들은 국방의 의무 중이다. 예전보다 얼굴이 좋아 보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피로에 찌들어 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느냐는 상투적인 질문에 그녀는 한마디로 ‘세상이 무채색이’라 한다.


  갑작스런 사고로 남편을 보내고 두 아들을 홀로 키우며 살아야 했던 그녀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아이들이 자라서 여유를 가질 만도 한데 여전히 세상이 무채색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이 자꾸만 목에 걸린다. 무채색은 말 그대로 색감은 없고 빛과 어둠만 있고, 더 나아가 삶의 희망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세상에 대한 원망도 내포되어있다.


  중년의 주부들은 대개 젊어서 남편 뒷바라지와 자식 키우느라고 자신을 잊고 살다가 자아를 찾아 밖으로 나간다고 하지만, 그것도 여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지금도 그녀처럼 산업현장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정신없이 일하며 언제 잘릴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 속에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여성들이 많다. 어쩌면 그녀들은 친구와의 수다도 사치일 수 있다.


  가장이 없는 가정은 어머니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경제적인 책임도 져야 하고, 아이들도 돌봐야 한다. 이처럼 이중고의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어머니의 성격은 양성의 반응을 보인다. 그녀의 성격도 많이 변했다. 어느 집이나 남편이 부재한 가정에서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물론 남편이 있다고 해서 다 행복하거나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은 어리광 한번 제대로 부리지 못하고 애어른이 된다. 언제나 엄마의 고단한 삶을 옆에서 지켜보기 때문에 일찍 철이 든다. 그녀의 아이들도 일찍 철이 들어 자신들의 일은 알아서 척척 한다. 공부도 잘해 몀문대에 입학해 장학금도 받는다.


  이제는 좀 웃고 사는 것이 어떠냐고 했더니 그녀는 아직도 백지보다 더 하얀 웃음을 웃는다. 아이들 키울 때는 애들 생각에 제정신이 아니어서 잘 몰랐는데 이젠 몸이 여기저기 아파 만사가 귀찮단다.  요즘도 아침에 눈뜨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오늘도 그녀의 하얀 웃음이 허공에 부딪쳐 부서진다.



작가의 이전글 무언의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