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익어가는 어느 골목길을 걷다가 큰 모과나무가 있는 집 앞에 서서 사진을 찍으며 모과나무를 올려다봤다. 모과가 노랗게 익어 주렁주렁 달려서 보기가 좋았다. 요즘은 토종 모과를 만나기가 쉽지가 않는데 이 모과나무는 토종 같았다. 골목 가득 모과향이 진했다.
가로수나 공원에 심는 모과나무는 관상용으로 적합하게 개량해서 심기 때문에 열매가 익어도 먹을 수가 없다고 한다. 토종처럼 향기가 진하지도 않고, 모과가 갖고 있는 본원의 효능도 없기 때문이라고. 모과는 다 같은 모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생각에 잠겨 모과나무를 올려다보고 서 있는데 순간 대문이 벌컥 열리더니 망이 달린 긴 장대를 든 중년의 남자가 나왔다. 필자와 눈이 마주친 그는 싱긋 웃으며 망이 달린 장대를 들어 노랗게 익은 모과를 하나 따더니 웃으며 필자에게 내밀었다. 엉겁결에 필자는 모과를 받아 들었다. 그런데 그는 다시 모과를 따더니 필자에게 또 내밀었다.
“하나 더” 하면서.
필자는 말없이 모과를 받아 챙겼다. 그의 주먹보다 더 큰 모과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그의 다음 행동이 궁금해 바라보고 서 있었다. ‘설마 세 번째로 딴 모과까지 주지는 않겠지? 세 번째도 주면 어떡하지? 그만 됐다고 사양을 해야 하나? 아니면 손에 들고 있는 모과를 내려놓고 받아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세 번째로 모과를 따서 필자를 쓱 쳐다보더니 모과를 들고 대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무 말도 없이. 고맙다는 말도 못 했는데... 거참.
혼자서 글감을 찾아 전국을 여행하다 보면 종종 의외의 일들과 마주하게 된다. 밥을 얻어먹을 때도 있고, 과일을 따는 과수원을 지날 때엔 과일도 얻어먹을 때도 있다. 김치도 얻어 올 때도 있고, 농산물을 이것저것 챙겨줄 때도 있다. 필자는 남들이 보기에 첫인상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닌데도 인복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낯선 나그네에게 친절을 베풀어 줘서 고맙고 감사하다. 그래서 그 고마움을 이렇게 글로 전한다.
어쨌거나 나그네에게 선뜻 가을을 나누어준 그가 고마웠다. 손에 든 모과를 배낭에 넣고 메려고 하니 배낭이 무거웠다. 모과가 너무 커서 두 개를 담으니 배낭이 묵직했다. 너무 무거워 하나만 가져올까 하다가 그의 성의가 고마워 그냥 두 개를 지고 왔다. 어깨가 좀 아프기는 했지만, 잘 익은 모과를 가져다 깨끗이 씻어 바구니에 담아 거실에 두었더니 집안 가득 모과향이 난다. 모과를 볼 때마다 가을향기를 선물해 준 그가 생각나 미소가 지어진다. 모두들 세상이 각박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아직도 살만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