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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콩이의 여정

by 루아 조인순 작가

위층 아파트에 젊은 부부가 27개월과 9개월 된 사내아이 둘을 데리고 이사를 왔습니다. 아이들이 어찌나 정신없이 뛰는지 층간소음이 장난이 아니었어요. 지진이 난 것처럼 집 전체가 흔들렸거든요. 참다못해 경비실로 서너 번 인터폰을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사과가 아닌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위층의 말을 듣고 살짝 열을 받았죠. 그런데 뜻밖의 대답에 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천국과 지옥은 다름 아닌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지옥을 스스로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하게 되었지요. 피할 수 없으니 즐겨야 하는데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며칠을 생각하다 편지를 썼어요.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는 말에 반성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실례를 한 것에 대한 사과의 편지를 써서 현관문에 붙여 놓았습니다. 이튿날 답장이 왔더군요. 아이들에 대한 정보와 함께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우린 그렇게 이웃 간에 화해하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알아 가는 중입니다. 큰애가 밤낮없이 콩콩거리고 뛰어 콩콩이, 작은 애는 시도 때도 없이 울어 앙앙이라고 제가 별명을 붙여 부릅니다. 그런데 이 콩콩이를 자세히 관찰해 보니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혼자 듣고 있다가 깔깔대고 웃을 때도 있답니다. 세상의 빛을 본지 이제 겨우 2년밖에 안 됐는데, 그 어린 것이 하루 동안 여정이 순탄치가 않고 어른보다 더 빡세더라고요.


콩콩이는 성격도 활달하고 부지런한데 일정 또한 빠듯합니다. 아침 6시가 넘으면 일어나 엄마 아빠를 깨우고 뛰어다닙니다. 덕분에 우리 집도 잠을 포기하고 일찍 일어나죠. 아예 잘 수가 없답니다. 동생이 일어나 울면 함께 놀다가, 8시쯤 아빠가 출근하면 현관문 앞에서 따라간다고 떼를 쓰고 울고불고 한바탕 난리가 납니다. 아파트가 흔들흔들합니다. 이웃에게 미안한 엄마는 우는 콩콩이를 달래다 지쳐 갖은 협박과 윽박지름을 병행하다 간신히 데리고 들어갑니다.


조금 잠잠하나 싶으면 9시가 넘어 콩콩이가 앙증맞은 가방을 메고 뒤뚱거리며 놀이방에 갑니다. 그럼 또 한 번 전쟁이 납니다. 이번엔 앙앙이가 형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나는 것이지요. 현관문을 열어 놓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 내내 울어 아파트가 함께 우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아이들 울음소리라 애완견 짖는 소리보다 백배 낫습니다.


오후 4시에 콩콩이가 돌아오면 집안은 또 한바탕 뒤집어집니다. 콩콩이 뛰는 소리, 장난감 던지는 소리, 둘이 싸우는 소리, 앙앙이 우는소리, 콩콩이 엄마의 고함지르는 소리, 뭐라고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답니다. 오죽하면 아들 둘 키우는 엄마는 ‘미친년’, 아들 셋 키우는 엄마는 ‘정신 나간 년’ 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만큼 딸 보다 아들 키우기가 힘들다는 뜻이겠지요.


저녁 6시가 넘으면 콩콩이 아빠가 퇴근해옵니다. 저녁 먹고 가족이 밖에 나가 놀다가 8시쯤 들어와 뛰어다니다 밤 11시가 넘으면 이 둘은 잠을 잡니다. 가장 조용한 시간입니다. 이제는 만성이 돼 쿵쿵거리면 콩콩이가 뛰는구나, 앙앙이가 울면 배고파 우는구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용하면 ‘오늘은 어디 갔을까? 왜 조용하지?’ 뭐 이런 생각도 합니다. 밤에 자다가 아이들이 울면 어디 아픈가 하고, 걱정하다 잠도 못 자고 뒤척일 때도 있습니다.


어제는 콩콩이 아빠가 미안하다고 케이크와 과자를 한 보따리 사들고 왔더라고요. 부모는 자식을 낳으면 사회에 대한 책임도 함께 져야 하기에 세상에서 자식 농사가 가장 힘들다고 하나 봅니다. 아이들 키우는 것이 죄도 아니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 되는 일이니 마음만 받겠다고 돌려보냈습니다. 어릴 적엔 뛰어놀며 커야 하는데 주택도 아니고 아파트라 마음대로 뛸 수가 없으니 조금 짠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도시의 아파트는 내 집 거실이 곧 아랫집의 지붕이니 이웃 간에 서로서로 조심을 해야지요.


얼마 전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콩콩이를 보았는데 친구와 미끄럼틀을 먼저 타려고 싸우고 있더라고요. 덩치가 큰 그 아이가 밀쳐서 넘어져 울고 있더군요. 그렇게 좌충우돌하면서 콩콩이는 놀이방에서 힘의 원리에 의해 사회성을 하나하나 배워가겠죠. 엄마에게 떼를 써봤자 동생이 있으니 통할 리 만무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몸과 정신이 성장해 갈 겁니다.


이제는 그 몇 개월 동안 좀 컸다고 동생도 돌봐주고, 아빠가 출근할 때 울지도 않고 배웅을 합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장마에 호박 크듯”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갑니다. 오늘도 콩콩이의 여정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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