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사 속에

by 루아 조인순 작가

꽃피는 춘삼월이라 해도 봄은 아직 멀고 늦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스칠 때 칙칙하고 높다란 철조망을 걷어내며 교정아파트 담장을 허물고 있어 궁금해서 작업감독에게 물었다.


"왜, 담장을 허물고 있나요?"

"여기다 유채 씨를 뿌리려고요."

“유채 씨요?”

“네, 좀 늦기는 했지만 봄이 되면 노란 유채꽃이 활짝 필겁니다.”

“세상과의 경계에 유채 씨를 뿌린다고요? 굿!"

'이젠 교도소에서 별것을 다하네?'


봄이 되니 안양교도소도 여자가 화장을 하듯 주변을 화사하게 단장하느라 바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어느새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 노란 유채꽃이 활짝 폈다. 지나가는 사람들 걸음을 멈추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우와, 너무 예쁘다!"

덕분에 벌과 나비도 바쁘게 움직인다.

「들어가지 마시오!」


팻말이 무색하게 하루가 다르게 꽃밭은 살짝살짝 사람들의 발자국을 남겼다. 최선의 선택으로 유채꽃을 T자로 잘라내고 여럿이 앉을 수 있도록 벤치를 갖다 놓았다.


이곳이 죄인을 가두는 교도소 울타리 밖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이웃들은 물론이고, 면회 온 사람들도 지나가다 꽃밭에 들어가 찰칵찰칵 추억을 남긴다. 며칠이 지나자 아름답던 유채꽃은 어느새 시들어버리고, 사람들의 관심도 멀어질 때 빈 벤치만 덩그러니 홀로 남아 쓸쓸하게 꽃밭을 지키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외로움에 떨던 벤치도 어디론가 치워졌고, 꽃밭 또한 트랙터에 의해 흔적도 없이 갈아엎어졌다. 남겨진 것은 유채 씨뿐 덕분에 주변의 새들이 날아와 배를 채우느라 하루 종일 분주하다.


아직 봄을 따라잡지 못한 여름이 전속력을 다해 달음박질 칠 때 모든 것은 이렇게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며 끝도 없이 서사 속에 잠긴다.


사진 장기택작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생각의 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