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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총량의 법칙

by 루아 조인순 작가

꽃들이 하나둘 피어나는 봄날에 문화센터에서 야외수업 겸 진안 마이산으로 꽃구경을 갔다. 예전에 가족과 와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겨울이라 추워서 산행은 못하고 그 유명한 거꾸로 자라는 고드름만 보고 왔다. 역고드름은 주변의 기온이 급격하게 하강하며 대기의 흐름인 바람이 없어야 고드름이 언다고 한다. 그렇게 거꾸로 자라는 고드름 때문에 명소가 되어 1월이면 소원을 빌러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마이산에 12시쯤 도착했는데 평일인데도 관광차가 많았다. 조선시대부터 산의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라고 부른다. 동봉은 숫마이봉 서봉은 암마이봉이라 하는데, 숫마이봉 중턱에 있는 화암굴 속에 있는 약수를 마시고 산신에게 빌면 아들을 얻는다고 전한다. 능선을 따라 올라가니 예전에 없던 계단을 깔끔하게 만들어 놓아 올라가는 길이 편하고 좋다. 사방이 급경사로 이루어져 있는 마이산은 남쪽과 북쪽 사면에서 섬진강과 금강의 지류가 각각 발원하는 곳이다.


봄비가 내리고 난 뒤라 하늘은 맑고 순풍이 불어 기분은 최고였다. 벚꽃이 가장 늦게 피는 곳이라고 하더니 역시 개화까지는 일주일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안타깝지만 꽃구경은 못하고 돌탑만 보고 왔다.


남부주차장에서 출발해 마이산 능선을 따라 북부주차장으로 내려가 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출발했다. 함께한 일행들이 젊은 사람보다 나이 든 어른들이 많아 은근히 걱정했는데 무탈하게 산행을 마치고 탑승하니 안심이 되었다. 2시간 넘게 걸었고, 점심때 반주로 막걸리도 한 잔씩 했으니 피곤해 모두 주무시겠지 했는데, 예상은 빗나갔다.


모처럼 나왔는데 그냥 갈 수 있느냐고 차 안에서도 음주가무가 계속되더니 설마설마했는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관광차 부비부비가 시작된 것이다. 방송에선 관광차 안에서 음주가무를 금하고, 이를 어기면 벌금까지 물린다고 아무리 떠들어 대도 옛날과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법만 바꾸지 말고 관광차 안에 아예 노래방 기기를 달지 못하게 해야 법을 지킬 것 같다. 음주를 해도 조용히 하면 좋을 텐데 꼭 그렇게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며 몸을 흔들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쌓이면 그럴까 하면서도, 관광차를 타면 음주가무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식도 문제인 것 같다.


70이 넘은 할머니가 마이크를 잡더니 “나 오늘 망가질 거야. 말리지 마!” 하고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는데, 그러다 쓰러질까 봐 조금 걱정도 됐다. 80이 넘은 할아버지도 함께 온 사람들을 부추기며 “이 나이에 무서울 것이 뭐가 있느냐고” 흔들었다. ‘무서운 것이 없는 게 아니고 부끄럽고 창피한 것이 없는 게 아닌가?’ 50대인 나도 무서운 것이 많은데 80대가 무서운 것이 없다고 하면 말이 안되지 않는가.


미셀 푸코에 의하면 사람에게는 누구나 “지랄총량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 말은 사람는 누구나 평생 사용할 지랄, 좋게 말해 에너지가 있는데 젊은 시절 그 지랄을 다 하지 않으면 늙어서라도 그 지랄을 하고 간다고 한다. 쉽게 말해 자신의 내면에 깊이 감추고 있는 어두운 내면을 욕망이라고 한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이드’와 같은 맥락이다. 이 욕망이란 놈은 평상시에는 이성으로 꾹꾹 누르고 있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 기회가 되면 절대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고개를 들어 지랄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도 그 욕망이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젊을 땐 관광차 안에서 남녀가 서로 몸을 비비며 흔들어대는 것을 보면 경멸했는데, 어느 순간 나도 그 나이가 되니 그렇게 경멸했던 관광차를 그들과 함께 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노래 한 곡 하라고 자꾸 권해서 일어나 할까 말까 속으로 망설이고 있었다. 한 번만 더 권하면 못 이기는 척 나가서 노래를 불러야지 하고 생각했다. 정말 웃기게도 부끄러움이 없어지고 뻔뻔스럽게도 욕망이란 놈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나에게도 지랄총량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인지 내면에 지랄이라는 것이 남아 있어 슬쩍슬쩍 고개를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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