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쌀 한 가마니

by 루아 조인순 작가

병든 아버지와 어린 동생들의 생계를 위해 여인숙 심부름꾼으로 가는 12살 용식이 누나는 울고 있다. 가지 않으면 안 되느냐고, 가기 싫다고 엄마에게 매달리며 서럽게 울던 용식이 누나.


용식이 엄마는 행주치마로 연신 눈물을 닦으며 “네가 안 가면 누가 가느냐. 동생들은 가고 싶어도 너무 어려서 못 가지 않느냐. 그래도 너는 거기 가면 배는 곯지 않고 쌀밥은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일 년만 고생하면 아버지가 자리 털고 일어나실 것이고, 그럼 그땐 집에 와도 된다.”


그녀는 병든 아버지를 위해 일 년에 보리쌀 한 가마니를 받고 읍내에 있는 여인숙에 심부름꾼으로 간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어린것이 벌써부터 가장이 되었다고 대견해하는 사람도 있고, 불쌍하다고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이 담 너머로 용식이네 가족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개해준 아주머니 손에 끌려 마지못해 울면서 가는 그녀에게 용식은 맛있는 거 많이 사 오라고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그런데 그녀가 떠나고 일 년이 채 안 되었을 때 읍내에서 용식이 네로 사람이 왔다. 그녀가 장사꾼을 따라 서울로 야반도주했다고. 보리쌀 한 가마니를 물어내라고 난리였다. 딸이 도망갔다는 말에 용식이 아버지는 큰 충격을 받아 세상을 뜨고, 용식이 엄마도 몸져누웠다.


내가 그녀를 기억하는 것은 여기까지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우연히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난 그녀가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당연히 형편이 좋아져 편안한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사회생활도 많이 해서 생활력도 강하고, 경험도 풍부해 잘 살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나이 70십에 자식은 있어도 남이 된 지 오래고, 여전히 쓸쓸하고 힘든 노년을 홀로 보내고 있었다. 그때 왜 도망갔냐고 물으니 돈을 더 준다고 해서 도망쳤다고 했다.


그렇게 따라간 장사꾼은 그녀를 다방에 시다로 팔아넘겼고, 의지할 때 없는 그녀는 객지에서 혼자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남자를 만나 결혼도 했지만, 얼마 못가 헤어졌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를 못한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다만 나로서는 안타까울 뿐이다. 그녀가 겪었던 모든 일들이 시대적 배경으로 봐서 그녀의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힘든 역경을 딛고 자수성가해 잘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녀처럼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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