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보기에 유유자적 고요히 홀로 흐르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가 않다. 자갈과 모래, 때론 바위뿐만 아니라 온갖 잡동사니들과 함께 흐른다. 그것들이 하나둘 모여 어느 한계점에 닿으면 둑이 되고 섬도 된다. 한마디로 퇴적물이 쌓이는 것이다.
사람들도 살면서 나이를 먹는데 그 나이를 그냥 먹는 게 아니다. 우린 어쩔 수 없이 득 보다 실이 많은 삶을 살며 온갖 풍파를 겪는다. 그 풍파를 견디다 보면 세상을 조금씩 알게 되고 보는 법을 배운다. 그 득과 실들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정신과 뼈 속에 퇴적물이 되어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설사 그것이 지혜가 아니고 아집이라 해도 우린 그 경험에 비추어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세상을 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안목이고, 연륜이라 한다. 무당도 아닌데 반 점쟁이가 된다. 어떤 일에 있어 마지못해 그것을 행하고 나면, 앞으로 닥쳐올 불길한 예감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리고 그 예감은 기분 나쁠 정도로 적중한다.
아파트가 입주한 지 10년이 넘어 베란다 창틀의 실리콘이 부식돼 비만 오면 빗물이 창틀로 스며들어 물이 샜다. 관리실에 얘기했더니 업체를 선정해 주었다.
아들 또래로 보이는 업자는 날짜를 잡아 알려줬는데 작업 날짜가 8월 초라 날씨가 38도가 넘었다. 삼복더위, 예감이 좋지 않아 급하지 않으니 날이 좀 선선해지면 하자고 몇 번을 권했다. 업자는 일정 때문에 곤란하다고 했고, 작업을 빨리 끝내고 휴가 갈 예정이고, 잘하겠다고 했지만 불안했다. 아무리 전문가라 해도 이렇게 더운 날 밧줄을 타고 외벽공사를 한다는 것은 무리고, 꼼꼼하게 하지 않을 것 같다. 올여름은 유난히 더워 집안의 온도도 36도가 넘어 온몸에 땀띠가 나고 숨이 콱콱 막힌다.
불안감을 억누르고 알아서 잘하겠지 했는데 예감이 맞았다. 태풍 ‘솔리’가 무사히 지나가고, 연이어 늦장마가 이어지더니 하늘은 그동안 참았던 빗물을 쉴 새 없이 쏟아 부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창틀을 보니 물이 샜다. 어찌 된 일인지 공사를 하기 전보다 더 많이 샜다. 아마도 창틀의 부식된 실리콘을 긁어내고 제대로 바르지 않은 것 같다. 베란다에 놓아둔 물건과 쌀자루가 모두 빗물에 흠뻑 젖었다.
빗물이 샌 곳을 사진을 찍어 업자에게 보내 AS를 신청했다. 하자보수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그냥 뒀더라면 이 정도는 아닌데 후회막급이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청개구리는 비만 오면 엄마의 무덤이 떠내려갈까 봐 밤새 개굴개굴 울며 무덤을 지키는데, 나는 비만 오면 베란다에 물이 새서 전전긍긍했다. 참다못한 나는 부아가 치밀어 독백을 날렸다.
“에이, 부자 될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