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맞아 미역국을 끓여 먹는데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음력 정월, 몸서리치도록 추운 겨울에 어머니는 나를 낳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정작 미역국을 먹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고, 임신과 출산, 양육으로 고생하신 어머니가 드셔야 할 것 같다.
여자들은 임신을 하게 되면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이 앞선다. 소중한 생명을 삼신할머니는 절대로 대가 없이 그냥 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 견디며 지켜야 할 금기사항도 많고, 심한 입덧과 몸의 변화로 끝임 없이 산모를 시험하며 괴롭힌다. 그렇게 산모의 고난과 시련은 시작되는 것이다.
한 생명의 잉태는 경이롭고 아름답지만, 후유증 또한 크다. 몸은 붓고, 가렵고 젖은 팽창돼 스치기만 해도 아파 소스라치며 비명을 지른다. 임신 초기에는 잘 먹지도 못하고, 물만 마셔도 구토를 한다. 어지러워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오직 인고의 시간을 참고 견뎌야만 무사히 출산을 할 수 있다.
지금은 의료기술이 발달해 그런 일은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산모가 출산하다 저승길 가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가끔은 임신중독과 출산으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 여자들은 지옥을 경험하며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자식을 낳아야 하는 것이 숙명이다. 조물주의 장난치곤 좀 가혹한 벌이다.
산모는 산달이 가까워 오면 몸이 소처럼 변한다. 변해버린 자신의 몸을 보면 낯설어 참는다고 참아도 슬프고 우울하다. 아기가 커갈수록 신모의 온몸은 살이 터서 가렵고 흉측하다. 남자에게 군대의 계급장이 있다면, 여자에게는 임신의 흉터가 계급장이다. 밤에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똑바로 누워 있지도 못한다. 몸이 무거워 잘 걷지도 못하고, 혼자서는 일어나지도 못한다. 화장실에 갈 때면 아기가 변기에 빠져버릴 것 같아 겁나고 무섭다.
열 달을 무사히 채우고 출산한다 해도 고난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달리 ‘진자리 마른자리’가 아니다. 밤에 아기가 아파 울기라도 하면 가슴이 철렁한다. 아기를 안고 응급실을 뛰어갔다 오는 일은 허다하다. 병치레를 심하게 하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내 자식이 이렇게 아플까 하는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무지한 생각도 한다.
어쨌건 대체로 산모는 출산 후 첫국밥으로 미역국을 먹는다. 아기는 그 미역국을 엄마의 젖을 통해 태어나 처음으로 세상의 음식을 맛본다. 달착지근하고 부드러운 미역국 맛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만만찮다는 것을 알려주는 고통의 맛이기도 하다.
예전엔 출산이 가까운 산모에게 가족이나 지인들이 미역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 미역 중에서도 고향인 기장 미역을 최고로 쳤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며 몸을 푼 산모가 미역국을 끓여 먹고 젖이 잘 돌아 아기와 산모가 무탈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당나라 서견 <초학기>에 고래가 새끼를 낳고 미역을 뜯어먹어 산후의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을 고려 사람들이 보고 산모에게 미역을 먹였다는 설이 있다. 고래가 어찌 알고 출산 후 미역을 뜯어먹었는지 알 수 없지만, 조상님들 덕분에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미역국을 어머니는 생일 때마다 찰밥과 함께 끓여주셨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맛본 미역국을 이젠 내손으로 끓여 먹는다. 그때의 맛은 아니지만, 나를 낳던 어머니의 출산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며 미역국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