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난히 날씨가 춥고 몸서리치도록 시리고 맵다. 사방을 둘러봐도 겨울의 무겁고 고단한 발걸음이 느껴진다. 다른 해보다 눈이 많이 왔다. 모두들 이상기온 현상이라고 하지만 겨울은 추워야 한다.
어린 시절 강원도 묵호에서 산 적이 있는데 겨울이면 그곳엔 눈이 많이 왔다. 눈이 지붕을 거의 덮을 정도로 쌓여서 옆집과 옆집을 오고 가는 길은 눈 터널을 뚫어 그곳으로 아이들은 왕래했다. 식수를 먹기 위해서는 얼음을 도끼로 깨야만 했고, 허드렛물은 눈을 퍼다 녹여서 사용했다.
하여간 그때처럼은 아니지만 올해는 눈이 많이 온다. 밖엔 오늘도 함박눈이 내린다. 얼마 전에 내린 눈도 다 녹지 않았는데 또 눈이 내린다. 눈 위에 눈이 또 내려 쌓여있다. 운동장에는 사람 대신 눈사람이 많이 서 있다. 파출소에 근무하는 전경들이 눈을 치우다치우다 처리를 못하니 대형 눈사람을 만들어 여기저기 세워 두었다.
눈사람을 보니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다. 사람들도 대형 눈사람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긴다. 나도 지나가다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어른이 되어도 마음속 한 구석에는 동심이 자리 잡고 있다.
결국 동심이라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른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다 보니 동심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 꾹꾹 눌러 처박아 놓은 동심이 어느 순간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런 광경을 보게 되면 살며시 미소 짓게 되는 것 같다.
예전에 이렇게 추운 날에는 어머니가 팥 국수를 해주셨다. 부모님이 모두 전라도가 고향이다 보니 우리 형제는 부산에서 태어났어도 음식은 모두 전라도 음식을 먹고 자랐다. 팥 국수는 전라도 음식이다.
긴 겨울이면 어머니는 가마솥에 팥을 삶아 밀가루 반죽을 해 홍두깨로 밀어 팥 국수를 만들어 주셨다. 긴긴 겨울 밖에서 뛰어놀다 들어오면 따뜻한 팥 국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형제들은 밥상에 둘러앉아 게걸스럽게 팥 국수를 배가 터지도록 먹고 또 먹었다.
오늘처럼 날이 우중충 한날에는 팥 국수를 해 먹기가 좋다. 아침부터 팥을 삶고 밀가루 반죽을 해 홍두깨로 밀어 팥 칼국수를 만들었다. 걸쭉하게 만들어진 팥 칼국수를 한 그릇 떠서 동치미와 함께 먹으려고 식탁에 앉았다.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으니 그 옛날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이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창밖에 내리는 함박눈을 보며 옛 기억을 소환했다. 온 가족이 들러 앉아 맛있게 먹던 그때의 그 맛을 기억하며 맛이 아닌 추억으로 팥 국수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