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란 놈은 천연덕스럽게 잘 있다가도 가끔씩 알 수가 없다. 어느 날은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맑다가도, 또 어느 날은 죽상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기분이 좋아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치기도 하며,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와 암흑세계가 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어쨌든 오늘은 이 마음이란 놈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삼엄하게 경계를 친 벽을 허물고 마음의 방에 들어가려니 방어기제가 발동한다. ‘너 저 문은 절대로 열면 안 돼!’ 이렇게 계속 쫓아다니며 앞을 막아선다. 난 문 앞에서 망설이다 ‘괜찮아, 괜찮아.’를 반복하며 어렵게 문을 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컴컴한 방구석에 얽히고설킴들 사이로 누군가 혼자 울고 있다.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소녀 같다. 난 울고 있는 소녀를 꼭 안아주고 토닥토닥해줬다. 어른이든 아이든 울고 있을 때는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 된다. 그저 울음이 멈출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 주고 안아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한참을 울던 소녀는 눈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심리학을 보면 상처가 많은 사람은 속이 단단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오히려 더 쉽게 상처 받고 아파한다고 한다. 바닷가 돌멩이는 거센 파도에 깎기고 깎여 반질반질 해지는데, 사람의 마음은 바닷가 돌멩이처럼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때론 마음도 사물들을 정리하듯 정리 정돈이 필요한데 정리를 하지 않고 적당히 뭉쳐서 처박아 놓으면 어느 구석 인지도 모르게 가끔 따끔거리고 쿡쿡 찌르며 아프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꺼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쓰다듬어주면 되는데, 그것을 아직도 잘 못하는 것은 그때 그 마음과 대면하기가 껄끄럽거나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닌지.
누구나 마주하기 싫은 진실 하나쯤은 가슴속에 품고 살겠지만, 그것들을 너무 오래 처박아 두면 이자가 붙어 기억이 왜곡된다. 기억이란 것은 과거의 경험이 순간순간 끊임없이 현재의 삶에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삶을 잠식하고 침범하는 아주 나쁜 침략군일 수도 있다.
가끔은 이 침략군을 꺼내서 현실을 제대로 알려주고 각인시켜야 한다. 몸만 크고 마음은 크지 못하면 언제든지 이 침략군에 의해 영혼 전체를 점령당할 수 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마음이란 놈을 잘 달래고 관리해야 한다.
우리들 모두는 지나간 시간에 기대서 추억을 먹고살지만, 그렇다고 아직 오지도 않을 미래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또한 과거에 묶여 현실을 불행하게 살 필요는 더 더욱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찬란하게 떠오른 태양을 내일 아침에도 볼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