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을향기

by 루아 조인순 작가

가을 가뭄이 계속돼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지 않고 나뭇잎들이 바싹 말라 떨어진다. 10월의 첫날 오랜만에 가을비가 촉촉이 내려 조금은 해갈이 되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바람도 심하게 불어 모락산에 도토리와 밤이 수두룩하게 떨어져 있다. 잠시 동안 밤을 주웠는데 주머니 속이 가득 찼다. 여기저기 부스럭 대는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밤보다는 도토리를 줍는 사람들이 더 많다. 올해는 태풍도 없고 날이 가물어 대체적으로 과일들이 모두 작고 개수는 더 많이 달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밤 들이 모두 작고 귀엽다.


예전에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엔 도토리를 주워 떫은맛을 제거하기 위해 오랫동안 물에 담가 우려내고 도토리 밥을 해 먹었다고 한다. 유럽 농민들과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기근이 심하게 들면 이것을 주워다 주식으로 먹었다고 전한다.


이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피죽이었던 도토리를 요즘은 별식인 묵을 만들어 먹기 위해 줍는다. 방송에서는 겨울에 다람쥐가 먹을 것이 없다고 너무 많이 주워가지 말라고 당부 하지만, 그 또한 자연도태설에 위배되는 말이다. 사람도 먹고, 벌레와 다람쥐, 산짐승도 먹어야 자연도태설이 성립되지 않겠는가.


낙엽들 사이로 다람쥐들이 도토리와 밤을 까먹느라고 바쁘다. 다람쥐는 가을이 되면 하루에 약 38번 정도를 나무를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겨울에 먹을 식량을 주워 운반한다고 한다. 밤이나 도토리를 10개 정도 입속에 물고 힘겹게 집을 왔다 갔다 한다. 가을에 다람쥐를 자세히 보면 볼이 통통한 것을 볼 수 있다. 살이 쪄서가 아니고, 입속에 식량을 물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부지런한 녀석이다. 먹고 살기가 사람이나 짐승이나 쉽지가 않다.


자신의 집 창고를 다 채우고 남는 식량은 겨울에 먹기 위해 집 주변 땅속에 파묻는데, 문제는 겨울이 돼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파도 밤과 도토리를 어디에 묻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듬해 봄이 되면 여기저기서 도토리나무와 밤나무 싹이 돋아난다. 몇 년 만 있으면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니 다람쥐들은 먼 곳까지 식량을 구하러 가지 않아도 안전하게 새끼를 키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처럼 다람쥐의 망각 덕분에 이 나무들은 자신의 자손을 많이 퍼트릴 수 있어 좋고, 숲은 더욱 풍성해져 많은 생명들을 품고 먹여 살린다. 이와 같이 동식물들은 서로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자손을 번창시켜 대를 이어 영생을 누린다.


가을 하늘은 높고 맑아 공기는 상큼하다. 선선한 가을바람에 나무들이 가지를 흔들어 댈 때마다 가을의 결정체인 열매들이 툭툭 소리를 내며 땅 위에 떨어져 뒹군다. 잘 익은 밤과 도토리를 주워 냄새를 맡아보니 가을 향기가 물씬 풍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잡초의 꿈